자족(自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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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경건: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의 자세
1) 경건: 하나님을 의식하는 삶의 자세
오늘 본문이 말하는 “경건”은, 초월적 대상을 인식함으로 말과 행동, 마음의 결을 조심하는 태도입니다.
한마디로, 하나님 앞에서 사는 감각입니다.
그러므로 “경건에 관한 교훈”이란, 하나님을 인식하는 사람에게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와야 할 언행과 마음가짐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됩니다. 우리는 성경적 재정 원리를 배울 때, 이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바꿔 끼우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겉모습은 비슷해 보입니다. 둘 다 예배하고, 둘 다 말씀을 듣고, 둘 다 기도합니다.
그러나 출발점이 다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경건과, 내 이익을 얻기 위해 빌려온 경건은 똑같은 외양을 하고도 전혀 다른 열매를 맺습니다.
경외에서 벗어난 경건은 결국 “거룩한 가면을 쓴 이익 추구”가 됩니다.
그래서 그런 사람에게서 자주 나타나는 열매가 무엇입니까? 교만입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낮추는 대신, 말씀을 판단하고 재단하고 선택합니다.
듣는 자리인데 심판자의 자리에 앉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분명합니다.
부정적인 말, 언쟁, 다툼, 분쟁, 시기, 비방, 험담이 점점 자라납니다.
자신도 모르게 마음이 부패하고, 결국에는 진리 자체가 흐려집니다.
마침내 신앙생활과 예배까지도 “내가 얻어낼 것”을 위한 장으로 변질됩니다.
그래서 자기 생각과 맞지 않으면 교회 안에서 다툼이 일어납니다.
2) 민수기 12장: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만든 비방
2) 민수기 12장: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음’이 만든 비방
이 모습을 민수기 12장에서 생생하게 봅니다.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합니다. 겉으로는 “문제 제기”처럼 보이지만, 그 말 속에는 이런 심장이 숨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
이 말은 단순한 의견이 아니라 권위에 대한 시기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에 대한 도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일을 “리더십 갈등” 정도로 처리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핵심은 모세가 아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은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책망의 무게가 그것을 드러냅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내 종 모세 비방하기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
여기서 핵심 단어는 “두려워하지 아니하느냐”입니다.
경건이 무너질 때, 사람은 말이 쉬워지고 판단이 빨라집니다.
그리고 그 말이 공동체의 심장을 병들게 합니다.
결국 미리암은 나병에 걸리고, 공동체 전체의 행진이 멈춰 섭니다.
한 사람의 비방이 개인 문제로 끝나지 않고, 공동체의 발걸음까지 멈추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정 원리든, 신앙의 원리든, 어떤 교훈을 배우든지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듣고 있는가, 아니면 내 이익을 위해 말씀을 이용하고 있는가?”
3) 자족: 경건이 ‘큰 이익’이 되게 하는 전제조건
3) 자족: 경건이 ‘큰 이익’이 되게 하는 전제조건
그런데 본문은 동시에 이렇게 말합니다.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이 말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앞에서는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뒤에서는 “경건은 큰 이익”이라 말합니다.
여기서 분별의 열쇠가 무엇입니까?
바로 자족입니다.
경건이 큰 이익이 되기 위한 전제조건은 “더 갖고 싶다”가 아니라 **“이미 주신 것을 누릴 줄 안다”**입니다.
자족은 “욕심이 없는 성격”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필요를 아신다는 믿음입니다.
자족은 가난을 미화하는 태도가 아니라, 소유가 내 존재를 결정하지 않는다는 영적 자유입니다.
예화
예화
예배 후 교제를 위해 빵과 커피를 준비했다고 합시다.
어떤 사람은 예배를 하나님께 드리며, 빵과 커피는 그저 사랑의 덤으로 받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예배를 빵과 커피를 얻는 통로로 여깁니다.
겉으로는 둘 다 예배합니다. 둘 다 빵과 커피를 먹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마음의 방향이 드러납니다.
예배를 도구로 여긴 사람은, 빵이 바뀌거나 커피가 달라지면 불평합니다.
나아가 “왜 이걸 준비했냐”고 따지고, 누군가를 탓하고, 공동체에 소음을 만들기도 합니다.
결국 예배가 아니라 자기 욕구가 중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반면 자족하는 사람은, 무엇이 나오든 감사할 이유를 찾습니다.
그리고 더 좋은 것이 주어지면 그것을 나누는 쪽으로 마음이 움직입니다.
자족은 감사로 연결되고, 감사는 나눔으로 번집니다.
그래서 자족이 있는 사람에게 경건은 진짜로 “큰 이익”이 됩니다.
삶의 질이 바뀌고, 관계가 회복되고, 재물이 도구가 됩니다.
4) 돈: 선물이 될 수도, 뿌리가 될 수도 있다
4) 돈: 선물이 될 수도, 뿌리가 될 수도 있다
여기서 우리는 10절의 경고를 붙잡아야 합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입니다.
돈 자체가 악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문제는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돈은 빵과 커피처럼 도구입니다.
그러나 도구를 사랑하기 시작하면, 도구가 주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늘 경계해야 합니다.
돈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돕는 도구로 남아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말까지도 돈을 위한 포장지가 되어버렸는가.
그리고 17절의 가르침이 핵심을 찍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
하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선한 사업을 하며,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신앙의 성숙이고, 재정의 성숙입니다.
경건은 소유를 늘리는 기술이 아니라, 소망의 방향을 바로잡는 은혜입니다.
경건은 이익을 위한 사다리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그 경건이 자족과 만날 때, 하나님은 그 삶을 단단하고 넓게 만드십니다.
설교 후 소그룹 나눔 질문
설교 후 소그룹 나눔 질문
오늘 설교에서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삼는다”는 말이 내 삶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나요?
최근 내가 즐겼던 부정적인 말(불평, 비교, 뒷말, 판단)이 있다면 무엇이며, 그 말의 뿌리는 무엇이었나요?
“한 사람의 말이 공동체의 행진을 멈춘다”는 관점에서, 내가 속한 공동체(가정/교회/팀)에서 조심해야 할 말의 습관은 무엇인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