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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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1:1-11

오늘은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만나서 반갑습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할까요.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게 무슨 당연한 소리인 줄 싶겠지만, 이 진리는, 우리의 인삿말을 넘어서서, 우리가 이땅에서 경험해야 할 진리입니다. 정말로 주님께서 나의 구원되심을 고백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사람들은 위기를 만나면 본능적으로 한 가지 질문을 던집니다. 이 위기 가운데서 누가 나를 구원해줄 것인가? 저희 아이들을 보면, 위기의 상황이 생기면 누구를 가장 먼저 찾을까요? 엄마를 찾습니다. 소변이 마렵다. 그러면 엄마를 찾습니다. 배가 고프다. 물이 먹고 싶다. 책이 읽고 싶다. 엄마를 찾아요. 그럼 엄마가 없으면요? 당연히 아빠를 찾겠죠. 아이들은 혼자 하지 못하거나, 하고 싶지 않은 것들이 많기 때문에, 엄마나 아빠를 찾는거죠.
이건 사실 아이들만의 이야기는 아닙니다. 어른이되어도, 우리도 똑같습니다. 어떤 문제나 위기가 생기면요, 그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게 사람이 되었든, 뭐 방법이 되었든, 정보가 되었든 찾는거죠.
그리고 동시에 또 하나를 질문합니다. “정말 이 사람이 가능한가?” 사람을 찾아도 질문을 하는거죠. 저 사람이 이 위기에서 날 구원해줄 것인가?
야구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아시겠는데요. 야구에는 구원투수라는게 있습니다. 이 사람은 뭐하는 투수에요? 위기의 상황에서 팀을 구원해줄 투수인거에요. 구원투수는 왠만하면 실력이 좋겠지요. 그래야 감독이 위기에서 그 투수를 기용할거 아니에요. 그런데 감독도 고민 하는거에요. 저 타자한테는 어떤 투수를 내야 우리 팀을 구원할건가, 구질이나 상대 타자의 특성이나, 우리 투수의 특성을 고려해서 투수를 기용하는거죠.
이 사람이 우리 팀을 위기에서 구원할 것인가? 이 질문에 감독은 답을 내려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을 살다보면 수많은 위기와 문제 가운데 우리는 서게 됩니다. 그리고 그 위기와 문제에서 답을, 구원할 방법과 사람을 찾게 됩니다. 여러분 이 질문이 든다는 것 자체는 아주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이 질문 가운데 답을 찾을 때에, 예수님이 우리 인생의 참 구원을 주신다라는 경험들이 우리의 인생의 여정 속에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저와 오늘 살펴볼 본문은 사무엘 상 11장 말씀인데요. 오랜만에 수요예배를 함께 해서 그런지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요, 사무엘 선지자에게 우리를 통치할 눈에 보이는 왕을 세워달라고 했지요. 하나님은 그들의 요구를 들으시고 눈에 보이는 인간 왕을 세워주십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 이름이 누구였어요? 바로 사울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기름부음을 받게 되고,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세워지게 됩니다.
오늘 11장에 보면요, 이스라엘에 위기가 찾아오게 됩니다. 1절에 보면요 암몬 사람 나하스라는 사람이 올라왔다. 그리고 도착한 곳이 어디에요? 길르앗 야베스였습니다. 야베스 사람들은 나하스에게 이야기 합니다. 우리와 언약을 맺읍시다. 우리가 그러면 당신을 섬기겠습니다. 부탁을합니다. 이 상황은 무엇을 보여줍니까? 길르앗 야베스 주민들은 지금 나하스를 이길 수 없는거죠. 그의 힘 앞에 굴복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섬길테니 우리와 동맹을 합시다 부탁을하는거에요.
나하스가 이렇게 말합니다. 2절에 보시면요, 그래? 그럼 나와 언약을 하려면 너희 오른쪽 눈을 다 빼면 언약해줄게. 이 나하스가 말한 내용은 진담반 조롱 반의 말입니다. 군인들의 오른쪽 눈을 다 빼면 어떤 일이 생길까요? 한쪽 눈이 없다고 일상생활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한쪽 눈이 없으면요 거리감이 사라지게 됩니다. 당시에 전쟁도구인 활이나, 창, 투석기를 정확하게 조준할 수 없게 되고요, 전쟁에서 굉장히 불리하게 됩니다. 그러니깐 완전히 반역 못하게 철저하게 짓밟아 놓는 방법 중 하나가 바로 눈을 빼는 겁니다. 그렇지만 여기에는 조롱의 의미도 있는거죠. 너희들이 과연 할 수 있겠냐 라는 의미도 있는거에요.
이 말을 들은 야베스 장로들이 부탁합니다. 일주일만 시간을 주십시오. 그런다음 결정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런 다음 전령들을 보내어 자신들을 구원해줄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왕이 세워졌잖아요. 그게 누구에요? 바로 사울입니다. 여러분 당시 사울 왕에 대한 사람들의 평가는 별로 좋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대와는 달랐습니다. 그는 아직 왕다워 보이지 않았고요, 그가 왕이라는 것에 대한 신뢰감 역시 별로 없었습니다.
사울이 기름부음을 받을 때에 어떤 사람들이 그래요. 10장 27절에 보세요.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여 예물을 바치지 아니했다” 어떤 일부 사람들의 입에서 나온 말이지 몰라도, 사실 그래요. 사울이 뭐 진짜 사람들이 왕으로서 추대할만한 업적을 남겨서 왕이 된거에요? 그런거 아니에요. 그가 왕으로써 능력이 있는지 검증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사무엘이 기름을 부어 사울을 왕으로 세운거에요. 일부 사람들의 말 속에 대중들의 마음이 담겨 있는거죠. “정말 사울이 왕 되는 것이 맞습니까?” “저 사람으로 괜찮겠습니까?” “저 사람이 우리를 구원할 사람이 맞습니까?” 이런 마음들이 대중들의 마음 속에 있었다는거에요.
그런데 하나님은 이 질문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십니다. 이 질문 앞에 하나님은 말이 아니라 오늘 사건으로 대답하십니다. 오늘 본문은 사울 왕의 개인의 성공담이 아니라, 이 사람들의 의심 한 가운데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어떻게 시작되고 이루어지는지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이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우리는 어떤 왕을 기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위기 가운데 어떤 존재를 의지하고 붙들고 있는가?”
여러분 우리의 삶도 똑같습니다. 그래도 믿음 있는 사람들은요, 인생의 문제와 위기 앞에서 기도를 합니다. 기도하시죠? 방법도 찾지만 우리는 기도를 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문제를 두고 기도하면서도 우리 마음에는 어떤 마음이 있어요? 정말 내가 기도하면 이게 해결이 될까? 내가 간구하면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까? 이런 의심이 듭니다.
제가 대학교를 입학할 때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신학교에 입학하게 되었고 이제 대학교 이제 입학금과 등록금을 내야 되는거죠. 그런데 가정형편상 제가 부모님에게 손벌리기도 어려운 상황이었고요, 혼자 힘으로 해결해야 되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게 그것을 한번에 해결할 능력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때 늘 기도하면서 그 기도를 한거죠. 하나님 저 신학교 입학해야 되는데 등록금좀 해결해주세요. 그런데 기도하면서도 어떤 마음이 드는지 아세요? 과연 이게 해결이 될까? 이 큰 돈이 어디서 생길까? 이런 마음이 계속 드는거에요. 그니깐 기도하면서도 의심이 드는거죠. 뭐 결말은 별로 중요하지 않지만, 우리가 위기나 문제가 생기면 이러한 의심이 생기는게 어떻게 보면 자연스러운 반응이라는거에요.
이스라엘 백성들도 똑같습니다. 어려움이 생길 때 사울이, 저 사람이 의심이 들어요. 그런데 괜찮습니다. 우리는요 늘 그런거에요. 의심이 완전히 사라져서 순종하는게 아니라요. 우리 안에 의심이 남아 있어도,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그 태도가 중요한거에요. 그 자리에서 뭐가 시작되는지 아세요? 바로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등록금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세요? 당연히 하나님이 채워주셨으니 제가 이 자리에 있지요. 그런데 중요한건 여전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의심이 있었지만 그 의심 가운데에서도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그 자리가 바로 구원의 시작되는 문임을 아셨음을 좋겠습니다. 여러분 우리의 믿음이 완전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때로는 주님이 의심되어도 괜찮습니다. 그분 앞에 그 문제를 가지고 나가세요. 나갈 때에 그 시작이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길인줄 믿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구원을 어떤 방식으로 이루실까요? 오늘 본문에 보면요, 백성들이 사울 왕을 의심했지요, 저 사람이 무슨 우리 왕이야, 저 사람이 저 암몬 족속의 손에서 우리를 구원할 사람 맞아? 이런 생각을 가지고 전령이 사울 왕에게 이릅니다. 본문 6절에 보면요,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이 크게 임하매 그가 크게 노하니라” 여러분 사울이 이 소식을 들을 때 뭐하고 있었어요? 5절에 보면요, 소를 몰고 있었대요, 그니깐 사울은 어떤 멋진 성에 왕좌에 앉아 있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평범하게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일상적인 일을 하고 있었어요. 이 소식을 들을 때 그에게 뭐가 임해요? 하나님의 영이 임합니다. 그는 여전히 왕답지 않은 모습이었지만,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그의 모습이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6절 후반절에 보니깐요, 그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자 뭐가 임했어요? 노가 크게 일어났다. 그가 분노한거에요. 암몬 사람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욕당한 것에 대한 거룩한 분노가 일어납니다. 이 분노는요 공동체를 해치는 분노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공동체를 살리고 구원하는 분노였습니다.
그는 이제 군사를 모집하기 시작합니다. 자신이 몰고 있던 소를 각을 떠서 온 지파에게 보냅니다. 이 소집에 응답하지 않는 지파의 소들은 이와 같이 될 것이다 하며 군사를 소집합니다. 33만의 군대를 모읍니다. 11절에 새벽에 적진 한 가운데 쳐들어가서 암몬 자손을 치는데요 한 낮이 될때까지 그들을 쳐서 무찌르고 길르앗 야베스를 구원해냅니다.
여러분 이 장면이 굉장히 중요한데요. 사울이 왕으로서 처음 보여 준 공식적인 행보가 바로 구원이었습니다. 통치가 아닙니다. 제도와 권력행사가 아닙니다. 구원이었습니다. 성경은 이 장면을 통해서요 왕이 존재 이유를 분명히 가르칩니다. 왕은요 자신을 증명하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대접받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왕은 철저하게 자신의 백성을 살리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의 중심에는요, 사울의 능력이나 결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임재가 있었습니다. 사울은요 하나님의 영이 임했을 때 비로소 왕답게 행동합니다. 다시 말해 왕다움은요 지위에서 나오는게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에 드러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요, 사울이 얼마나 뛰어난 왕인가를 보여 주는 장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이 임할 때에 어떤 구원이 일어나는가를 보여 주는 장입니다. 사람들은 사울 왕을 의심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자 의심했던 구원은 그들에게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 본문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요, 하나님은 당신의 구원을 이루실 때에요. 이처럼 왕과 같은 사람들 특별히 하나님의 영이 임한 사람들을 통하여 구원을 이루신다는거에요. 저는 이 본문을 묵상하면서요,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해야 될 것인가. 우리는 문제가 생길 때에, 왕을 찾아가자. 이것도 중요하겠지만요,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여러분들이 왕과 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날도 자신의 구원을 사람들에게 베풀고 계십니다. 문제와 위기 가운데 인생들을 살려내시기를 원하세요. 그런데 누구를 통해 이 구원을 베푸시는지 아세요? 바로 왕과 같은 자신의 백성들, 성령으로 충만한 자신의 백성들을 통하여 구원을 베풀고 계신다는거에요. 그러므로 오늘 우리의 신앙은 누군가 나타나서 우리를 구원해 주기만을 기다리는 신앙이 아니라, 정말 성령으로 충만하여 져서, 이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을 흘려 보내는 신앙이 되어야 합니다. 조금만 우리 주위를 둘려보세요. 인생의 문제 앞에 위기 앞에 두려움 가운데 있는 이웃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 사울이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이 쓰신거 아닙니다. 사울이 구원에 쓰임 받은 이유가 뭐에요? 성령에 충만하여져서, 그는 구원의 통로가 되어집니다. 여러분 성령에 충만한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정말로 성령에 이끌리어 감동된 곳에, 생명과 구원을 흘러보내는 삶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올 한해 그러한 삶을 살기를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우리의 능력과 힘이 아니라, 정말로 성령께서 허락하시는 그 능력과 그분께서 허락하시는 그 감동에 순종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사무엘상 11장은 분명 감격적인 장면입니다. 사울을 의심했던 백성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실제로 경험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라는 질문은 그날 이후로는 잠잠해졌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고 있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 장면은 사울의 완성이 아니라, 오히려 사울의 한계를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는 출발이기 때문입니다. 사울이 이날만큼 과연 하나님의 구원의 통로로 쓰임 받았냐는 질문을 해보면 사무엘서를 끝까지 읽어보면 알게 됩니다. 그의 구원은 끝까지 이어지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은 이 첫 구원 이후, 점점 말씀보다 자신의 판단을 앞세우고, 하나님의 영보다 자신의 열심을 의지하게 됩니다. 그 결과 그는 백성을 구원하는 왕에서 자신을 지키는 왕으로 변해 갑니다. “우리는 이런 왕으로 충분한가?”라는 질문은 사무엘서를 관통하는 질문입니다. 우리들을 구원할 정말로 참된 왕을 기다리게 하는 질문인거죠.
사울 이후에 누가 왕이 되어요? 다윗이 왕이 됩니다. 다윗 역시 여전히 부족함을 드러내며 마침내 우리를 참된 왕으로 이끌어 갑니다. 그분은 바로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사울을 향해 던졌던 것과 똑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저 사람이 어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저 사람이 우리를 구원할 메시아가 맞냐”
그 사람들의 의심 속에서도, 예수님은요,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심을 통하여,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시는 참된 왕이 되셨습니다. 사울의 구원은 한 공동체를 한 시절에 살렸내었지만, 예수님의 구원은 죄와 죽음 아래 있던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참된 왕이신 하나님의 자녀 삼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우리 역시 이 땅을 살아가며 이 사람들과 똑같은 질문을 예수님께 던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우리는 너무나 쉽게 영적인 것과 현실을 분리합니다. 뭐 죄는 구원은 예수님께서 주실지 몰라도, 내 인생, 우리 가정, 내 노후, 현실을 책임지는게 정말로 예수님이 맞는 것인가. 우리 가정을 책임지시는 것이 정말로 주님이 맞는 것인가. 지금 내 앞에 있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는 것 같은 인생의 문제와 위기 앞에, 세상의 방법이나 사람이나 재물이 아닌 주님만을 붙드는 것이 정말로 맞는 것인가? 때로는 우리 안에 의심이 들지는 않습니까?
참된 믿음이란, 문제가 없다고 느낄 때 주님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질 때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이 나의 왕되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방법이 더 확실해 보일 때, 저 사람이 더 안전해 보일 때, 돈으로 해결하는 것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질 때, 그 순간 다시 한 번 고백할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주님, 이 문제 앞에서도 주님이 나의 왕되십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영혼의 왕이실 뿐 아니라 삶의 왕이십니다. 교회 안에서만 왕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 위에 왕이 되십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불안한 미래 앞에서도 왕이십니다. 이 고백 위에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첫 번째 기도 제목

오늘 들은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질문을 들었습니다.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우리 역시 인생의 위기 앞에서, 예수님을 영적인 영역에만 두고 삶의 현실에서는 다른 것을 붙들어 왔던 모습은 없었는지 주님 앞에 정직하게 고백하며 기도합시다.
의심이 완전히 사라져서 순종하는 믿음이 아니라, 의심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나의 왕으로 고백하며 나아가는 믿음을 달라고, 내 삶의 모든 영역에서 예수님이 참된 왕 되심을 인정하는 신앙이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두 번째 기도 제목

올 한 해와 교회를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는 **“지경을 넓히다”**입니다. 이 지경은 단순히 외적인 확장이 아니라, 하나님과 더 친밀해져 믿음의 지평이 넓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새롭게 구성된 사랑방 공동체 가운데 하나님의 은혜가 흐르게 하시고, 서로를 살리는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해달라고 기도합시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기신 후원하는 교회들과 선교사님들, 선교 기관들 위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성령의 충만함이 있도록, 그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넓어지도록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 세 번째 기도 제목

올 한 해를 시작하며 결단한 내용과 각자의 개인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하겠습니다.
올해를 시작하며 주님 앞에 결단했던 믿음의 자리, 말씀 앞에 세웠던 다짐들, 그리고 아직 말하지 못한 각자의 삶의 문제와 기도 제목을 주님 앞에 올려 드리며 기도합시다.
주님, 올 한 해를 내 힘과 계획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성령에 충만하여 하나님의 구원과 생명을 흘려보내는 삶이 되게 해달라고, 나를 통해 누군가가 살아나는 한 해가 되게 해달라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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