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라디아서 6장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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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존 스토트 + 내생각
그리스도인의 삶이란 어떤 것일까?
앞서 바울은 갈라디아서 앞부분에서 자세하게 설명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 -> 율법이나 할례와 같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공로를 믿고 받아들인 사람 (그래서, 율법과 믿음에 대해서 자세하게 설명함) 1-4장
율법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가 주신 자유를 누리는 사람 = 육체가 아닌, 성령으로 사는 사람 5장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고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서 말함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사람은, 율법과 할례와 같은 인간의 행위나 공로를 의지하지 않으며, 이로써 율법의 종이 아닌, 그리스도께서 주신 자유를 누리며 살아간다. 그는 성령을 좇아, 성령의 열매를 맺으며 살아간다. (=성령으로 행한다)
5:25 그렇다면 성령으로 행하는 삶은 어떤 삶인가? 어떤 변화가 생기는가?
26 :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고, 서로 노엽게 하지 않고, 서로 투기하지 않는다.
갈라디아서 5:25–26 NKRV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노엽게 하거나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바울은 개인의 영적인 변화가 확장되어 공동체/관계에서 어떤 변화로 나타나는지 말한다.
성령으로 사는 사람은, 헛된 영광을 구하지 않는다.
예수님을 믿기 전 우리가 구하던 영광들, 돈, 명예, 건강, 성공, 편안한 삶, 육신의 만족
이것이 헛되다는 것을 아는 것 (가치관의 변화)
헛된 영광 : Self conceit / Kenodoxos 자신에 대한 공허하거나 헛되거나 거짓된 견해를 갖고 있는 사람
자신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거나, 완전히 자만에 빠져있다. (타인과의 관계는 망가질 수밖에 없음)
자만에 빠지면 우리는 서로 노엽게 하거나, 투기한다.
1 노엽게 함 prokaleo 누군가에게 싸우자고 ‘도전’한다는 의미 (우월감)
자신의 우월감을 지나치게 확신한 나머지, 그것을 보여주고 싶어한다는 의미
증명할 기회를 갖기 위해 사람들에게 그것을 갖고 논쟁하자고 도전한다.
2 투기 서로의 은사나 재능을 시기하여 서로 투기함 (열등감)
성령의 열매인 사랑은 이와 다르다. 타인에 대하여 우월감이나 열등감을 가지고 헛된 영광을 추구하지 않으며, 그것을 억제하기 위해 성령으로 행하려 애쓴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않는다.(롬 12:3)
관점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참된 기독교적 관계는, 경쟁이 아닌 서로섬김에 의해 지배된다.
“내가 너보다 나으니 그걸 증명해 보이겠어” “네가 나보다 나으니 나는 화가 나”가 아니라
“너는 당연히 중요한 존재이며(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너를 만드셨고, 그리스도께서 너를 위해 죽으셨으니) 너를 섬기는 것은 내 기쁨이며 특권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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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론
1 . 짐을 서로 지라. (6:1-5)
갈라디아서 6:1 NKRV
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공동체 안에 인간의 연약함, 범죄함이 드러나거든,
손가락질하고 그에 대해 평가하기보다 (제자광성교회 박한수 목사)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범죄한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6:1
죄에 붙잡힌 (프롤렘프테)
-사람이 죄를 피해 달아나지만 그보다 빠른 죄가 따라붙어 붙잡는다는 개념이다.
그러한 자를 바로잡아야 한다 (카타르티제테)
-세속 헬라어에서는 부러진 뼈들을 맞추는 의미로, 신약성경에서는 그물을 수리하는 의미로 사용된 단어다.
바로잡는 일은 신앙의 초보자가 아닌 신령한 자들, 성령을 좇아 사는(갈5:16) 성숙한 믿음의 소유자들이 감당하게 되어 있다.
온유한 심령(프라우테토스, 갈 5:22)
누구도 범죄로부터 면역을 가진 사람이 없다는 경각심을 가지고 수행해야 함(고전10:12)
짐을 진 그리스도인을 향하여
6:2
섬기는 그리스도인은 무거운 짐(바레)을 진 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보낸다.
원리상 이것은 모든 유형의 짐들에 적용되지만, 여기서의 문맥은 특별히 유혹과 영적인 실패의 무겁고도 큰 압박감이 커다란 비중을 차지함을 언급하고 있다. ‘신령한 자’들이 바로잡는 일을 수행하는 동안 모든 신자들은 기도와 권면에 참여해야 한다. 바울은 이것이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리라고(아나플레로세테) 말했는데, 그리스도의 법이란 곧 사랑의 원리이다(갈5:14, 요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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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스토트는 6:2를 일반적인 원리로 본다.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우리는 모두 짐을 지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 짐을 혼자 지게 하지 않으신다
-어떤 사람들은 혼자 지려 애쓴다.
-자신의 짐을 갖고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는 것이 불굴의 인내를 나타내는 표시라고 생각하지만, 그것은 기독교적이라기보다 스토아적이다.
-또 시편 55:22 “네 짐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가 너를 붙드시고”. 주님께서 마태복음 11:28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자들에게 내게로 오라 하시며 쉬게하신다는 약속이 있기에, 우리에게 짐으 져주시는 신적 존재가 있는데, 그분만으로 충분하며 인간의 도움을 요구하는 것은 연약함의 표시라고 생각한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죄와 죄책의 짐을 지실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죽으셨을 때, 우리의 죄의 짐을 대신 지셨다.
-하지만 우리의 다른 짐들 “염려, 유혹, 의심, 슬픔”의 경우는 다르다.
베드로전서 5:7 NKRV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짐을 지는 것은 중대한 사역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하며 할 수 있는 일이다.
그것은 성령으로 행하는 것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함.
마틴 루터는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강한 어깨와 튼튼한 뼈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라고 썼다.
3절 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우리가 서로의 짐을 지지 않거나 질 생각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가 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인 듯 하다.
갈 5:26 다른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태도는 우리 자신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의해 지배를 받는다.
우리가 헛된 영광을 구할 대, 다른 사람들을 노엽게 하거나 투기하는 것처럼, 자신이 뭔가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할 때, 그들의 짐을 지기를 거절한다.
하지만 우리자신에 대해 이렇게생각하는 것은 스스로 속이는 것이다.
자만심은 ‘헛된 영광’, 우리 자신에 대해 잘못된 생각을 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대단한 존재’가 아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아닌’ 존재다. 성령께서 눈을 열어 우리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실 때, 우리는 그것을 깨닫게 된다. 우리는 자신의 형상으로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께 반역한 자이며, 하나님의 손에서 멸망 외에는 아무 것도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이것을 깨닫고 기억할 때, 우리는 자신을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유리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며, 그들을 섬기거나 그들의 짐을 지는 일을 거절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더욱 자신을 다른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안된다. 이런 비교는 대단히 가증스럽고 위험한 것이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그리하면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남에게는 있지 아니하리니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4,5절)
우리는 이웃을 자세히 조사하고 우리 자신을 그와 비교하는 대신, ‘자기의 일’을 살펴야 한다.
우리는 각기 자기의 짐을 져야 하기 때문이다. 즉 우리는 우리의 한 일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져야 하며, 언젠가 하나님께 그것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짐을 서로 지라’2절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5절 사이에 모순은 없다
2절 ‘바로스’ 무거운 짐
5절 ‘포르티온’ 사람의 짐꾸러미를 나타내는 일반적ㄷ인 용어
그러므로 우리는 혼자 지기에는 너무 어려운 다른 사람의 짐을 져야 하지만 ,우리가 나눠질 수 없는 - 모든 사람이 혼자 지기에 충분히 가벼운 꾸리미이기에 사실상 나눠질 필요가 없는-한 가지 짐이 있는데, 그것은 심판 날 하나님께 우리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 날에 너는 나의 짐을 질 수가 없고 나는 너의 짐을 질 수가 없다.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짐을 지는 것의 한 예
1절
죄를 짓는 현장에서 그것이 “드러나게” 되는 경우는 종종 있다. 바리새엔들이 예수님께 데려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힌(요 8:4) 여인이다.
a 무엇을 해야 하는가?
바로잡고 “카타르티조” 명령어로, 정돈하다라는 의미이며, 이전 상태로 회복하다라는 의미다.
세속 헬라어에서는 골절되거나 탈구된 뼈를 잇는다는 의미로 의료 용어로 사용되었다.
마가복음 1:19에서는 자기 그물을 ‘깁는’ 사도들에 대해 사용되었다.
좀더 넓은 범위의 해석은 아른트 깅리치는 “밤에 물고기를 잡고나서, 그들이 그물을 ‘씻고 수선하고, 접음으로’ 그것을 ‘분해, 검사, 수리’하고 있었다”고 말한다.
바울의 지시가 얼마나 적극적인지, 누군가 어떤 잘못을 행하는 것을 발견하면, 그 일이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고 말려들고 싶지 않다는 핑계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곁에 서 있어서는 안된다. 또한 마음속으로 그를 멸시하거나 정죄하고, 그저 자신의 좋지 않은 행실로 인해 고생을 하면 ‘꼴 좋다’라든가 ‘자업자득이다’라고 말해서는 안된다. 또 그를 사역자에게 고자질하거나 그에 대해 다른 친구들에게 뒤에서 험담을 해서도 안된다.
우리는 그를 바로잡아야 한다. 그를 올바른 길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루터는 그 명령을 이렇게 적용한다. “ 그에게 달려가, 당신의 손을 내밀고, 그를 다시 일으키고, 친절한 말로 그를 위로하며, 어머니같은 팔로 그를 안아주라”
타락한 형제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지 정확한 것은, 마태복음 18:15-17의 예수님의 가르침에서 배울 수 있다.
우리는 형제에게 가서, 직접 얼굴을 맞대고 개인적으로 그의 잘못을 그에게 말해야 한다. 예수님도 우리의 목적이 긍정적이며 건설적인 것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예수님은 우리가 그를 ‘얻으려고’ 애써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바울이 여기에서 우리가 그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b 누가 해야 하는가?
“신령한 너희는…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그는 성숙한, 시령한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후에 고린도후서 2:14-3:4에서 그들에 대해 더 충분히 설명하며, 갈라디아서 5:16-25에서 이미 그들에 대해 기술하기 시작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는 성령께서 내주하시지만, ‘신령한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며 ‘성령으로 행한다’. 그래서 성령의 열매가 그들의 삶에 나타나는 것이다. 실로 죄를 범한 형제를 바로잡는 이 사랑의 사역이야말로 우리가 성령으로 행할 때 해야 하는 일이다. ‘신령한 그리스도인’만이 그를 회복시키려 해야 한다.
c 어떻게 그 일을 해야 하는가?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온유한: 프라오테스가 갈 5:23에서는 성령의 열매 중 하나로 나온다.
라이트푸트 감독이 쓴 글에 따르면, 온유는 참된 영성의 특징이기 때문이다.
신령한 그리스도인들만이 바로잡는 사역을 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신령한 사람들만이 온유하기 때문이다.
바울은 그리고 나서 우리 자신을 살펴보아 우리도 시험을 받지 않도록 하라고 덧붙인다.
이것은 온유함이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죄를 짓기 쉬운 성향을 자각하는 것에서 생겨난다는 것을 시사한다.
필립스는 “어떤 우월감도 갖지 말고 너 자신이 시험을 받지 않도록 경계하라”고 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 형제가 죄를 짓는 것이 드러날 때, 그를 바로잡아야 하며, 성숙하고 신령한 신자들이 이 미묘한 사역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시행해아 한다는 것을 보았다. 현대 교회에서 사도의 이 명백한 명령을 순종하기보다 어기는 경우가 더 많은 것은 슬픈 일이다. 하지만 성령으로 행한다면 우리는 서로를 더 사랑할 것이며, 서로를 더 사랑한다면, 서로의 짐을 질 것이고, 서로의 짐을 진다면 죄에 빠진 형제를 바로잡으려는 일을 피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사도의 이 교훈을 마땅히 순종해야 할 만큼 순종한다면, 많은 몰인정한 뒷공론을 피할 수 있을 것이며, 더 심각한 타락을 막을 수 있고, 교회의 유익이 촉진되고 그리스도의 이름이 영광을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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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4
다른 사람의 짐을 지려면,
그의 오류를 용납하지 못하고, 마치 자신은 실패를 모르는 자인 것처럼 과시하는 그릇된 자세를 버려야 한다.
그러한 자기기만에 대한 치료법이 4절에 나타난다.
“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도키마제토 (벧전 1:7)
이것은 자신을 남들과 비교하기보다는 한 걸음 뒤로 물러나서 자기 자신과 성취한 일들을 객관적인 안목으로 바라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자기의 삶을 통해 그 안에서 이루신 일들을 자랑할 수 있게 된다.(롬 12:3)
자랑(카우케마)은 죄악된 속성의 자만이 아닌 인격적 칭송을 뜻한다.
6:5
사실상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짊어진 짐으로 스스로를 시험한다.
이것은 2절과 상충된 내용이 아니다. 2절에서는 무겁고 힘겨운 짐(바레), 즉 도움 없이는 사람이 질 수 없는 짐을 언급했기 때문이다.
여기 사용된 헬라어 단어(포르티온)는 행군하는 병사가 통상적으로 지는 짐을 뜻한다. 이것은 예수님이 그 추종자들에게 부여하시는 짐이다(참조, 마 11:30). 각각의 그리스도인에게는 남과 나눌 수 없고 스스로 져야 할 어떤 책임들이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그러한 짐들이 가볍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사역자와 교사를 향하여
6:6
각 신자가 져야 할 책임중 하나는 교회의 사역자와 교사를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일이다. 아마도 일부 신자들이 전담 사역자들의 재정을 후원하고 있었는데(고전 9:7-14), 유대주의자들이 이를 중단시켰던 것으로 보인다.
주님의 종들에 대한 이러한 자발적 헌금 행위는 혁명적인 것이었다. 유대인들에게는 제사장들을 위한 세금이 부과되었고, 이방인들은 그들의 종교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헌금을 지불하고 서약도 했기 때문이다.
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나눠주듯이, 신자는 가르치는 자와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그들의 사역에 보답해야 한다.
6:7-8
이 구절들은 위의 권면을 보다 깊이 다룬다. 먼저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않으신다는 엄중한 경고가 나온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는 하나님의 법칙은 결코 변치 않으며, 누구도 그 하나님께 코웃음을 칠 수 없다(뮈크레티제타이:콧방귀 뀌다). 각각의 파종자는 그 추수를 결정한다. 만일 사람이 자기의 육체를 위해 심으면, 즉 육욕을 탐닉하기 위해 자기 돈을 허비하면, 망각 속으로 희미해질 추수를 거두게 될 것이다.
반면에 그가 주님의 일을 후원하는 데 자신의 재산을 선용하면, 혹은 성령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 씨를 뿌린다면, 그의 영적 성장을 촉진하고 영생을 거둘 수 있게 될 것이다.
이 원리에 대한 보다 광범위한 적용이 가능하긴 하지만, 여기서 바울은 갈라디아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인 사역자들을 경제적으로 후원하는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6:9
그러나 추수 때까지는 종종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영적 파종 행위에 지쳐버릴 가능성이 있다. 이러한 현실에 직면한 사도바울은 갈라디아 교인들에게 추수 때가 반드시 올 것이므로 낙심하지 말라고 권면했다(바울은 갈라디아에서 그리스도인을 위해 사역했던 기간 중 종종 낙심되었던 때를 상기하면서 이 권면의 대상에 자신을 포함시켰다). 추수는 하나님의 적시에 거행될 것인데, 현재의 삶에서는 부분적으로만 거두게 되고 훗날 그리스도의 심판대에서 온전히 거두게 된다.
6:10 모든 사람을 향하여
그리스도인에게는 상황이 주어지면 모든 이에게 선한 일을 해야 할 책임이 있다. 예수님이 5천 명을 먹이셨을 때, 구원받은 자들뿐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자들도 참여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신자들에게 우선권을 부여하되, 자선행위의 대상을 제한시켜서는 안된다. 가정에서와 같이 가족의 필요를 먼저 채운 후에 이웃을 돌봐야 하는 것ㄷ이다.
본문은 분명하게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해 말씀하고 있는데 각각의 신자들에게 주시는 말씀임을 주목해야 한다. 각각의 그리스도인은 형편과 기회가 닿는 대로 이러한 일을 힘써야 하지만,(롬 12:17-21). 교회가 사회복지 단체는 아니다.
BKC주석 - 도날드 캠벨 외 3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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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BC주석
1절
프로렘프데 “그가 ~에 압도되다” 빠지다.
프로람바노는 그리스 고전 저작들에서 문자적으로 미리 취하다를 의미하지만, 능동태로는 “예견하다.” “ 앞지르다.”, 또는 예측하다 그리고 수동태로 불시에 습격당하다. 갑자기 사로잡히다. 압도되다. 또는 빠지다를 의미하게 되었다.
갈라디아서 6:1에서는 수동태로 따라서 어떤 것에 의해 압도되거나 함정이 빠짐을 암시한다.
명사 파라프토마 “범죄”, “죄” 는 문자적으로 옆으로 넘어짐, 또는 발을 헛디딤을 의미하는 그리스 문헌에서 후기어이다. 칠십인경과 2성전 유대교에서 “범죄”나 “죄”를 의미하는 여러 히브리어 단어들에 대하여 여러 번 나온다.
파라프토마(하마르티아와 같은 단어 대신)여기서 5:25의 동사 스토이코멘”일직선으로 걷다” “표준에 따르다”., “보조를 맞추다”의 형상과 날카롭게 대조될 어원적 형상 때문에 사용되는 것 같다.
바울과 그의 독자들 모두 도덕적 비행에 사로잡히거나 빠진 그 교회들 내의 신자들을 알았을 것이다. 실제로 베츠가 진술하듯이 그 교회들 내에서 어떤 이들의 이전의 도덕적 범죄들은 갈라디아 인들이 왜 토라를 도입하는 일을 고려했는지를 설명해 줄 것이다.
이 문장의 둘째 부분은 죄가 동료 신자를 함정에 빠뜨릴 때 행해져야 하는 일에 대한 바울의 지시다. 그는 휘메이스 호이 프뉴마티코이(영적인 너희)라는 명칭을 사용하여 독자들을 부른다,. 호이 프뉴마티코이는 다소 반어적으로 또는 갈라디아 교회들 내의 한 집단을 나머지와 구분하기 위해-ㅔ방종주의적인 자들을 율법주의적인 다른 이들과 또는 영지주의자
———————남포교회 박영선 목사
기독교 신앙에서 잘잘못을 가리는게 본질이 아니라,
잘못된 것을 고치도록 하는 것, 짐을 서로 지라 (당사자가 회복될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것 부러진 팔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 (깁스)
사랑으로 희생으로 섬김으로 그사람이 회복될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하나님이 하실 때까지.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공동체 안에서 삶의 현장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짐들을 지라.
타인을 나와 같이 만들려고 하는 것, 편하니까. 짐을 지는 것이 아님...
짐을 지는 것은, 나편한 곳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섬기는 것이다.
에베소서 2:20 NKRV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에베소서 2:21 NKRV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에베소서 2:22 NKRV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짐을) 지고 가는 것이다.
=예수님의 성육신과 십자가.
그리스도의 법=사랑 고전 13장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를 대하듯이 대해야 한다.
실력 “이말 안하려고 했는데...” “나니까 말해주는건데..” 이런말 하지 마라. 스스로를 속이는 자…
사랑이 없다. 사랑은 너그럽게 봐주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13:4–7 NKRV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짐을 나누어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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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라디아서 6:2 NKRV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짐을 서로 지라 ->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
각자 자기의 짐이 있다. 내가 져야 할 짐. 우리가 감당할 수 없는 짐은 주님께서 져주시지만, 우리가 져야 할 짐도 있다.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법 사랑.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사랑.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 계명
우리에겐 사랑의 짐이 있다.
2. 성령을 위하여 심으라.(6:6-8)
갈라디아서 6:8 NKRV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우리의 물질과 시간과 노력을 육체의 만족을 위해 심을 것인가? 성령을 위하여 심을 것인가
3.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라.(6:9-10)
갈라디아서 6:9–10 NKRV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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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정민 목사
교회가 넘어질 때, 연약할 때,
짐을 서로지라
그가 감당할 수 없는 일에 도와주라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가 되라
서로 짐을 나눠 지는 것.
짐= 바로스
혼자서는 어쩔 수 없는 어려움 무거운 짐
감당할 수 없는 죄악에 빠졌을 때, 공동체가 함께 나누어 져야 함. 이단에 빠졌을 때 도와주는 것처럼
5절 짐 포르티온= 각각 자기의 짐
군인이 행군할 때 지는 짐
당연히 마땅히 져야 할 짐...
-> 예수님은 이 짐도 나에게 와서 배우라 내가 가볍게 해주겠다고 말씀하심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는 내려놓고=짐을 나눠지고, 각자가 져야 할 짐은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으로 가볍게 해주심
타인의 짐을 나눠 지지 않는 사람의 특징-> 자기가 무엇인가 된 줄로 아는 사람
나는 되고 너는 되지 않았다. 차별
자기는 신앙이 되었다고 생각함.. 사실은 되지 않았다.
아무것도 되지 않았는데 스스로 된 줄로 아는 사람 = 타락하는 사람의 특징
된줄로 알고 남을 가르치려고 함.
교만한 자. 죄인의 지름길.
설교하는 사람.… 가르치는 사람....
같이 가야지 가르치는 자가 되어서는 안된다.
-자랑할 것이 자기에게는 있어도
->은혜가 깨달아짐, 십자가 외에는 자랑할 게 없다. 고후 1:12
고린도후서 1:12 NKRV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남에게는 있지 않다
신앙은 자기의 짐을 질 줄 아는 사람.
남의 짐을 져줄 수 있는 사람
6절이하
의존적인 존재로 지어진 인간
서로에게
독립적인 존재는 없다....
스스로 된줄로 여기지 말라
심는대로 거둔다.
그런데 반드시 심는대로 거두는 것은 아니다. 낙심하지 말자.
썩어 없어질 것으로 심지 말고,썩지 않을 것으로 심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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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상 목사
1절
바로잡고 = 오래된 의학용어 뼈가 탈골되었을 때 고정해주는 것
너 자신을 살펴보아 너도 시험을 받을까 두려워하라
정신과 의사가 상담을 하다보면 자기도 정신과 상담을 받게 된다는 것처럼
같이 넘어지고 같이 비판자가 되는 것처럼
그렇게 되지 않도록 시험 받을까봐 두려워하라 자기 의를 드러내는 기회로 삼지 마라
2절
서로 짐을 지라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하는 형제를 보면서, 뒷짐지고 구경만 하지 마라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는 것
사랑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
다른 사람의 짐을 대신져 주는 것
쓰러진 사람 넘어진 사람을
비난하는 건 율법이지만
그 짐을 대신 져주는 것이 은혜다
율법의 완성
3절
나도 모르게 나는 저사람과 다르다. 시험든 사람과 다르다. 교만하게 그를 비난한다면 스스로 선 줄로 아는 것, 속이는 것이다.
이것은 옳은 것이 아니다.
4절
각각 자기 일을 살피라
5절 각각 자기 짐을 질 것이라
2절의 짐은 -무거운 짐 혼자 지기 어려운 짐 누가 도와주지 않으면 질 수 없는 짐
5절의 짐은-한사람이 지고갈 수 있는 짐꾸러미. 누구한테 맡길 수 없는 짐. 마땅히 져야 할 짐. 내가 지고 가야 남을 돕는 것이다.
각자의 짐을 잘 짊어져라
누군가 무거운 짐을 지고 힘들어하면, 그의 짐을 나누어지라.
자기 짐을 잘 질 수있도록 도와야 함.
6절 가르침을 받는 자
갈라디아 교회 안에는 거짓 교사가 들어와 있다. 연약한자 부추기고 있다. 사역자를 돕는 일을 끊도록 하고 있다. 못하게 막고 있다.
바울의 정통성. 언제부터 사도였느냐? 비판자들의 이야기
불신하게 하는 것,.
가르치는 자와 좋은 것을 함께 하라
심는 일을 하라.,
사역자와 함께 힘을 나누고.
반드시 좋은 것을 거둘거다.
심는대로 거둘 것이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자를 도와라 그게 심는거다.
마 25 달란트 비유
심어야 거둔다. 심지 않고는 못거둔다.
말씀을 가르치는 자와 동역자가 됨 되라
기회 있는대로
적극적으로
기회가 왔을 때,
해라.
착한일을 해라.
심는대로 거둔다.
땀흘리고 수고한대로 거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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