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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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경 설정(Contextualizing): 이사야의 체험과 메시지를 통해 설교의 토대를 닦음.
입체적 조명(Analyzing): 무지(A)와 임재(B)라는 두 축을 역사, 신학, 현재적 상황으로 입체적으로 조명하여 청중의 동의를 얻어냄.
내면화 및 실천(Internalizing): 분석된 내용을 개인의 삶에 적용할 수 있는 강력한 동사형 문장으로 전달하여 변화를 이끌어냄.

I. 본문해설-[해석적 기초 형성]

이 부분의 제목들은 설교의 **'신학적 뿌리'**를 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사야 64:1–4 NKRV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주께서 강림하사 우리가 생각하지 못한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에 산들이 주 앞에서 진동하였사오니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 귀로 들은 자도 없고 눈으로 본 자도 없었나이다
1. [이사야의 소명과 영광의 체험]-본문을 해석하기 전, 설교의 주인공인 이사야가 어떤 영적 배경을 가졌는지 설명하여 본문의 ‘절규’가 어디서 기원했는지 그 **'정당성'**을 부여합니다.
이사야서의 주제는 “하나님의 영광”의 신학이다. 이사야는 선지자로서 소명을 받을 때에 비범한 방식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고 자기가 얼마나 추루한 죄인인지를 깨달았다(사 6:5).
그러나 이사야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깨닫고 자기가 끔찍한 죄인임을 알게 된 바로 그 지점에서 선지자로 부르셨으니 이는 하나님의 시각에서 자신과 이스라엘을 정확히 보게 된 사건이었다(사 6:8).
2. [심판과 회복의 이중적 메시지]-이사야 전체의 구도를 보여줌으로써, 64장의 기도가 단순한 넋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한 간구'**임을 인식하게 합니다.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심판의 말씀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하도록 부름을 받았으나 하나님은 그들의 강팍한 마음 때문에 선지자가 전하는 바를 깨닫지 못할 것이라고 예고하셨다(사 6:10).
이사야는 자신이 쓴 선지서의 마지막 부분에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심판자로서 임하실 것이나 회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서는 자비와 사랑과 은총을 베푸실 것을 약속하셨음을 말한다(사 63:7).
그러면서 선지자는 주의 거룩한 땅을 짓밟아 더럽힌 이방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구한다(사 63:15).
또한 하나님의 법도와 믿음의 길에서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이켜 다시 거룩하신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늘로부터 임하는 부흥을 달라고 간구한다(사 63:17).

II. 하늘을 가르고 임하시는 주

1. [부흥을 향한 절규]
이에 이사야 선지자는 자신이 받은 말씀의 마지막 부분에서 부흥을 구한다. 선지자는 이스라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갈망하는 그 사이에서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친히 임하시는 부흥을 간구한다.
이사야 64:1–2 NKRV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2. [비상한 영적 회복의 간구]
그러면서 이사야는 일찍이 어떤 선지자도 표현하지 못했던 강력한 문체로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 아니 하나님 자신이 이 땅에 친히 강림하시는 비상하리만치 탁월한 영적 회복의 역사를 위해 3가지 기도로써 간구한다. 오늘은 그중 2가지 기도를 살펴보고자 한다.
이것은 일상적인 기도가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고유한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이방 백성들과 다름이 없이 우상숭배와 세상 사랑에 빠져 있는 상태에서 구원해 달라는 기도다.
곧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으로도 고칠 수 없는 영적인 타락으로부터 이스라엘이 거룩함을 회복하게 해달라는 처절한 기도다.

A. 주의 이름을 알게 하소서-[논리적 심화와 확장]   (지성적 접근)

이 부분의 제목들은 '무지'라는 문제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지성적 각성'**을 촉구합니다.
1. [거룩하심의 두 가지 차원: 초월성과 도덕성]-성경적 정의(거룩성)와 문제(무지)를 대조하여 진단합니다.
첫째로, 주의 이름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한다(사 64:2). 이사야 선지자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과 그들의 원수인 이방의 백성들이 모두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여기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그분의 존재와 성품의 탁월성을 가리키는데 전자는 존재적 초월성이고 후자는 도덕적 완전성이다.
이는 하나님의 존재에 있어서 그 어떤 피조물과도 비교될 수 없는 초월적 절대자시라는 뜻이며 또한 성품에 있어서 인간과는 달리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다는 의미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달을 때 거기에는 그 깨달음에 합당한 반응이 반드시 뒤따라온다. 그렇지 않다면 그는 진정으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난 것이 아니다.
이것은 크게 두 가지로 설명된다. 존재에 있어서는 자신이 지극히 미천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품에 있어서는 자신이 도덕적으로 비참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준다.
그래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경험한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와 성품을 오직 그분께 전심으로 한없이 의존하는 마음을 갖게 된다.
하나님은 이것을 믿음으로 보시며 이때 인간의 영혼은 기능적으로 가장 올바르게 자신의 고유한 역할을 잘 수행하게 되며 미학적으로는 가장 아름답게 되는데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의존미라고 부른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은 아무것도 의존하지 않으시는 독립성 때문에 아름다우시고 인간은 하나님을 의존하는 것 때문에 아름답다.
2. [무지의 죄악성]
이스라엘 선지자는 당시 세상이 주의 원수들로 가득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들마저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정상적인 상태로 돌이키기 어려울 정도로 침체에 빠져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치 영적으로 잠자는 것이 피할 수 없는 운명인 것처럼, 완전히 앞을 보지 못한 맹인이 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렸기 때문이다(호 4:6).
이스라엘과 이방인의 가장 큰 죄는 하나님을 모르는 것, 곧 무지였다. 이것은 결코 그들이 마땅히 알아야 할 하나님을 알 수 없도록 피해를 당한 것이 아니다.
그들 스스로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고 선택한 결과였다. 그래서 무지는 변명할 수 없는 악이다.
이는 마치 불의한 일을 행하는 자가 진리의 빛을 싫어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그 정죄는 이것이니 곧 빛이 세상에 왔을 때 사람들이 자기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요 3:19)
3. [잘못된 신학: 무지 옹호론과 반박]-(가톨릭, 리처드 백스터, 루터): 교회사적 사례를 끌어들여 설교의 논거에 **'권위와 무게'**를 더합니다. '무지'가 개인의 문제를 넘어 시대적 비극임을 증명하는 확장적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로마 가톨릭 교회는 시대에 따라서 어떤 경우, 무지를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보거나 그것을 신앙에 도움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적극적으로 옹호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사실을 보여주는 한 예로서 이러한 내용은 16세기 영국의 가톨릭 신학자인 헨리 콜(1500-1580)이 당시 개신교 신학자인 존 주얼(1522-1571)과의 논쟁 중에서 신뢰하게 비판받은 내용에 잘 나타난다.
이것은 엘리자베스 1세 여왕(1533-1603)의 명령으로 개최된 로마 카톨릭 때 개신교의 공개 토론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그들은 예배를 모국어인 영어로 드릴 것인가 혹은 라틴어로 드릴 것인가에 대해 논쟁을 하였는데 토의 내용을 기록한 글 중에서 가톨릭 측의 헨리 콜의 발언에서 이러한 사실이 잘 나타난다.
“내가 이 말을 하겠습니다. 비록 이것은 신학적인 표현은 아니지만, 결코 터무니없는 말은 아닙니다. 무지는 경건의 어머니입니다.”
이 내용은 존 주얼이 자신의 스승인 이탈리아 출신의 위대한 종교 개혁 피터 마터 베르미글리(1499-1562)에게 쓴 편지 속에서 실려 있다.
헬리 콜에 따르면 이 말은 미사를 평신도들이 못 알아듣는 라틴어를 진행하는 것이 그들에게 신비감을 조성해서 더욱 쉽게 믿도록 해준다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청교도 리처드 백스터(1615-1691)는 자신의 책 『참된 목자』 제2부 1장 1절에서 이러한 무지를 목회적 관점에서 다루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무지는 실질적으로 모든 오류입니다. 그리고 세상에 있는 그 어떤 죄도 어느 정도의 무지를 자신의 부모나 유모로 삼지 아니하는 것이 없습니다.”
4. [교회의 존재 목적과 무지의 현실]
주의 원수들로 가득한 당대의 상황에서 이사야 선지자는 토혈의 노래를 부른다. 제발 그들이 무지에서 벗어나 주의 거룩한 이름을 알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열렬하게 간구한다.
인간 세상의 모든 고통의 근원적 뿌리는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 있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 세계의 창조와 인간 구원의 경륜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경륜의 지식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살아야 행복한 삶인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만으로 패역한 그들을 결코 일깨울 수 없는 무지에서 벗어나게 할 수 없기에 선지자는 하나님의 거룩한 심판을 통해서라도 부흥을 경험하여 그분을 알게 해 주시도록 간구한다.
교회가 이 세상에 존재하는 세 가지 목적이 있다. 첫째로는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서 존재한다. 둘째로는 교회 자신의 지체들을 돌보기 위해 존재한다. 셋째로는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분을 알게 하기 위해 존재한다.
5. [루터의 탄식: 교리적 무지와 목회적 방임]
1517년에 마르틴 루터(1483-1546)가 종교개혁을 시작하고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때였다.
곧 1527~1529년경 루터는 자신을 지지해주고 개신교를 선택했던 작센의 프리드리히 3세의 후계자이자 신성 로마 제국의 선제후로서 이른바 널리 “확고한 요한”이라고 불리던 요한 데어 베슈텐디게(1468-1532)의 영지에 있는 교회들을 순방하였다.
그런데 그때 순방 당시 루터는 자신을 따르던 개신교 성직자들의 타락과 교인들의 끔찍한 무지를 목격하면서 깊이 탄식하였다. 그중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루터에게 가장 충격적인 사실은 일평생 교회를 다녔다는 사람들이 신앙의 기초인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을 전혀 알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었다.
루터는 후일 자신이 집필한 교리서인 『평범한 목사들과 설교자들을 위한 소교리 문답』의 서문 2항에서 당시 개신교의 이러한 끔찍한 현실에 대해 다음과 같이 탄식하였다.
“도와주소서 자비로우신 하나님! 평민들은 기독교 교리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있으며 특히 시골 사람들은 더욱 그러합니다.”
더욱이 그때 루터가 시골 교회를 돌아보면서 기함을 한 것은 그들이 이신칭의 교리를 방종한 삶을 살아도 되는 근거로 떠받들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이 광경을 보고 루터는 거의 절망적인 탄식을 토하였다. 그는 불행하게도 많은 목사들이 교인들을 가르칠 능력도 없고 무능하다고 진단하였다.
그런데도 목사들은 모든 사람들이 다 같은 구원받은 기독교인이라고 주장하며 세례를 받게 하고 거룩한 성찬도 허락한다고 질타하며 주교들을 비난하였다.
루터는 교인들을 그렇게 무지하게 되기까지 수치스럽게 방임한 목회자들의 목양적 직무유기에 대해 곧 뵈옵게 될 그리스도께 무엇이라고 답변하겠느냐고 되물었다.
루터는 복음을 통해 자유를 얻었다고 주장하면서도 구원에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 것에 대해 관심이 없는 개신교인들을 향해 『소교리 문답』 서문 3항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그들은 주기도문도, 사도신경도, 십계명도 모릅니다. 그들은 마치 단순한 가축이나 이성 없는 돼지들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복음이 주어지니까. 그들은 기독교인의 자유만을 누릴 줄 알았습니다.”
6. [현대 교회의 무지에 대한 통탄]-역사적 사실을 다시 현대의 상황(스마트폰, 형식적 예배)으로 가져와 **'청중의 삶에 밀착'**시킵니다.
루터가 종교 개혁을 일으킨 동기가 무엇이었는가? 그것은 복음에 대한 가톨릭의 무지와 고집 때문이 아니었는가? 알고 보면 그가 개신교를 세운 것도 바로 그 복음에 대한 무지로부터 사람들을 건져내기 위함이었습니다.
잊지 말라! 청교도들에 의하면 무지는 “거의 악”이거나 “바로 그 악”이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무지에 대해 성경이 정확히 정확하게 지적해 주는 견해다.
나는 지금 이 설교를 하는 순간에도 너무나 마음이 아프다. 나의 심장을 날카로운 칼끝으로 도려내는 것 같이 쓰라리다.
왜냐하면, 루터의 이 탄식이 오늘날 우리 조국 교회의 현실에 그대로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의 허망한 풍설과 성경의 진리를 구분하지 못하고 그것들을 뒤섞어 생각하면서 어디로 믿음의 닻을 내려야 할지를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 중 너무나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가까운 친구들은 스마트폰이고 즐거우면 쇼츠나 동영상을 감상하는 것이다.
거기에 무슨 인생의 목적을 향한 진지한 탐구가 있겠으며 신령한 인식이 있겠는가?
또 어떤 사람들은 나름대로 미친 듯 열심히 노력하며 아침부터 저녁까지 갓생의 삶을 살아내지만 그것은 마치 잡을 수 없도록 사라지는 아침 구름을 좇는 것과 다름이 없다(호 6:4).
왜냐하면, 사람들의 그러한 몸부림은 안타깝게도 하나님에 대한 무지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7.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 대한 갈망]
우리의 눈을 교회 속으로 돌려보자.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으로 불리기를 마다하지 않지만 그들 중에서 참으로 간절히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자 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빌 3:8)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너무나 사모하여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배설물처럼 여겨지기까지 그분을 알고자 하는 지식으로 달음질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빌 3:8)
우리들 중에는 매주 단지 형식적으로 예배에 참여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기대하는 바 없이 주일을 범했다는 양심의 가책을 달래기 위하여 예배 시간에 교회로 오는 사람들은 얼마나 많은가?
그들이 교회에 오는 것은 얼른 예배를 마치고 돌아가기 위함이다. 그러나 그들이 집으로 돌아갈 때는 올 때보다도 더 허전한 마음으로 교회를 떠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설교자로서 이렇게 믿음 생활하는 여러분들을 볼 때마다 눈물이 앞을 가린다.
내가 목회자로서 여기 이렇게 있는데, 여러분들을 영적으로 유능하게 잘 돌보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 주여 나를 용서하소서.”
그래도 나는 꿈을 꾼다. 기도한다. 여러분이 마치 눈도 뜨지 못한 갓난아이가 엄마의 젖꼭지를 찾아서 입술을 벌린 채 젖가슴에 얼굴을 비비는 것처럼 그렇게 모든 신령한 것들에 대한 무지를 처절히 미워하고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갈망하게 되기를 말이다.

B. 하늘을 가르고 심판하소서-[영적 역동성 부여]  (영성적 접근)

이 부분의 제목들은 '기도'와 '임재'라는 주제를 통해 설교의 **'영적 온도'**를 높이는 역할을 합니다.
1.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를 구함]-'하늘을 가름', '열쇠' 등의 이미지를 사용하여 하나님의 임재가 인간의 기도로 요청될 수 있다는 **'영적 원리'**를 제시합니다.
둘째로, 하늘을 가르고 심판해 달라고 간구한다(사 64:2-3). 이사야 선지자는 당시 절망적인 영적 상황을 보면서 심장이 터질 것 같은 비통한 마음을 가지고 특별한 기도를 드린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이스라엘에게서나 이방인들에게서나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지 못하는 현실에 대한 불붙는 아픔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사야 64:1–2 NKRV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 앞에서 산들이 진동하기를 불이 섶을 사르며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 주의 원수들이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 이방 나라들로 주 앞에서 떨게 하옵소서
여기에서 “섶”이라고 하는 것은 “잎나무, 풋나무 등 땔나무들을 통틀어 하는 말로서 주로 많은 가지나 덤불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이 비유의 의미는 다음과 같은 것이다. 즉, 잘 마른 나뭇가지나 풀, 섶에 붙은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오른 것처럼 그렇게 지금도 여전히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준엄한 심판을 통해서라도 그들에게 알게 해달라는 기도다.
이는 이중적인 대상을 바라보고 드리는 기도이다. 한편으로 주의 길을 떠나고 마음의 완고해진 이스라엘 백성을 돌이키게 해달라는 기도이고 또 한편으로는 주의 성소를 유린한 이방 민족의 원수들을 멸해 달라는 기도이다.
2. [부흥: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
이것은 당시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에 대한 거룩한 영적 각성을 주고 교만한 이방 족속들에게는 엄중한 심판을 통해 그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게 해달라는 기도이다.
이것은 강력한 하나님의 임재 부흥을 구하는 기도다. 역사적으로 언제나 참되고 거룩한 부흥은 교회와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간섭이다.
부흥은 한 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식으로 성령 임하게 하시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일을 통해 거룩하신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알려주고 자신들이 얼마나 비천한 죄인들인지를 깨닫게 해주는 하나님의 특별섭리이다.
여기서 “하늘을 가르시고”라는 말은 “하늘을 열고”라는 말과 동의어다.
성경을 살펴볼 때 아무도 하늘 문을 열거나 닫을 수 없다. 그렇게 하실 수 있는 분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 한 분뿐이시다(겔 1:1, 마 3:16, 계 3:8).
그것은 오직 거룩하신 하나님의 권능에 달렸으니 그 하나님이 닫으신 하늘 문을 사람이 열 수 없고 또한 그 하나님이 여신 하늘 문은 사람이 닫을 수도 없다(계 3:8).
그러나 오직 간절한 기도는 그것을 가능하게 한다. 왜냐하면, 그런 기도는 거룩하신 하나님을 움직이기 때문이다.
엘리야 선지자를 생각해보라. 아합의 시대에 3년 6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는 가뭄이 계속 되었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비가 오기를 바라고 기도했겠는가?
3. [기도: 하늘 문을 여는 열쇠]
그러나 성경은 오직 한 사람 엘리야만이 닫혔던 하늘의 문을 열고 실로 오랜만에 단비가 내리게 하였다고 말한다(왕상 18:42).
이에 대해 기도의 사람, 에드워드 바운즈(1835-1913)는 고전이 된 자신의 책 『기도와 기도하는 사람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엘리야는 기도로 하늘 문을 닫았다... 그는 믿음의 허리띠에 구름의 열쇠를 가지고 있었고, 그의 말대로 하늘의 창문을 잠그거나 열 수 있었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것은 단지 엘리야의 기도가 특별했기 때문이 아니라 기도자로서 엘리야가 특별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말한다.
야고보서 5:17–18 NKRV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주고 땅이 열매를 맺었느니라
4. [변화된 기도자만이 부흥을 가져온다]-강조점이 '기도의 내용'에서 **'기도하는 사람(기도자)'**으로 옮겨갑니다. 특히 **[부흥의 불쏘시개가 될 한 사람]**과 같은 제목은 설교의 결론으로 가기 위한 '감정적 비등점'을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이것은 오랜 가뭄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했지만, 오직 엘리야 선지자만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행하신 일이었다.
우리는 자주 기도를 통해 상황을 바꾸고자 하지만 종종 하나님은 기도하는 과정을 통해서 기도자를 바꾸고자 하신다.
그런데 기도자를 바꾸는 기도는 매우 특별해야 한다. 일상적으로 드리는 기도, 마음이 실리지 않은 습관적 언어의 반복으로는 결코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
쇳덩어리 같은 마음이 불 같은 성령의 감화와 열렬한 기도에 힘입어 온전히 녹아내려 버려야 한다. 그리고 자기가 철저히 깨어지는 경험을 통해서만 기도자는 새 사람으로 변화된다.
특히 이사야 선지자와 같이 하나님께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는 강력한 부흥을 간구하는 사람들은 기도하기 이전에 먼저 자신이 온전히 그분의 뜻에 합당하게 변화되도록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봉헌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사야가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던 그 거룩한 소명의 때를 기억해 보라. 그는 비록 왕족 출신의 고위 관료나 왕궁 서기관이었을 것으로 추측되지만 신앙적으로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러던 그가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의 영광을 경험하였다.
그때 그는 기쁨의 환호성을 지른 것이 아니라 절망 속에서 처절하게 부르짖었다.
이사야 6:5 NKRV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5. [거룩한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
그때 이사야는 자신이 선지자로 부름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아니 그것은 그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이사야는 다만 이 두려운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 앞에서 스스로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이사야 선지야는 자기 앞에 펼쳐진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광경이 너무나 두려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자리를 떠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두려움 속에서 이끌리는 사랑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함의 경험 안에 있는 인간이 느끼는 “이끌리는 사랑”이다.
더욱이 천사인 스랍 중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빨갛게 타오르고 있는 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대었을 때 더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사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 6:7)
이것이 바로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느끼는 거룩한 감정과 “하나님을 향해 떨리는 두려움과 이끌리는 사랑”이다.
6. [부흥의 불쏘시개가 될 한 사람]
결국 그는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능력으로 정결하게 된 이후에야 비로소 선지자로 소명을 받았고 그가 할 일은 자기와 만난 영광스러우시고 엄위로우시며 거룩하신 하나님을 이스라엘과 열방 가운데 증거하는 것이었다.
이사야는 이스라엘이 먼저 그렇게 자신이 정결하게 되어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알게 하는 도구가 되는 것이 그의 유일한 소원이었다.
그래서 주께서 친히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하실 때 이사야는 담대하게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 라고 하였던 것이다(사 6:8).
이것은 결코 세상적인 출세를 위한 부르심이 아니었다. 오히려 이스라엘과 이방인들 가운데 멸시받는 하나님의 이름을 다시 영광스럽게 드높이기 위한 소명이었던 것이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금 역사 속에 강림하셔서 심판을 통해서라도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을 이스라엘과 이방나라의 원수들에게 알게 해달라고 했다.
이사야 선지자가 죽을 때까지 붉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그 일을 위해 부르짖을 수 있었던 것은 자기가 목격한 하나님의 영광의 경험 때문이었다.
한 사람의 신자가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게 되기를 갈망하는 마음의 크기는 그가 경험한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의 체험의 크기에 비례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그분의 이름이 땅에 떨어질 때 가슴을 치며 애통할 수 없다(애 1:11).
그런 사람들은 죽어가는 영혼 안에서 멸시를 받는 거룩한 하나님의 형상 때문에 마음을 찢을 수 없다.
오히려 그들은 그렇게 슬퍼해야 할 때 덧없이 노래 부르며, 가슴 벅차도록 찬양을 부를 시간에 무료하게 시간을 보낸다.
이것이 바로 역사적으로 소수 사람들만이 강력한 부흥을 간구하였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도를 응답하신 이유다.
그들이 거룩한 부흥을 위한 기도를 드리기 전에 먼저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자기의 죄악을 깨끗이 씻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의 기도에는 힘이 있었고, 삶과 일치되었기에 신령한 능력으로 충만하였다. “하나님이 함께하는 한 사람. 그가 바로 부흥을 위해 불쏘시개처럼 쓰실 사람이다.”
7. [한국의 사례: 원산 대부흥의 사건]
이러한 일에 대하여 한국교회사에 길이 남을 웅변과 같은 하나의 실례가 있다. 그것은 원산 대부흥의 사건과 이어서 일어난 그 유명한 평양 대부흥이다.
1903년 8월 24일 월요일부터 8월 30일 주일 원산에서는 남감리교 교회와 캐나다 장로교 장로회 소속 여선교사들이 모여서 연합 사경회를 갖고 있었다. 여선교사들은 이 뜻깊은 사경회에 강사로 섬겨주도록 캐나다 출신의 선배 남성 선교사인 로버트 하디에게 부탁하였다.
그들이 하디를 강사로 초청한 것은 두 가지 이유였다. 같은 캐나다 출신의 선교사로서 유대감 때문이었고 마침 그가 거주하는 곳도 원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강사로 초청받았을 때 하디 선교사는 그 요청을 거절하려고 했다.
그 결정적인 이유는 두 가지 때문이었는데. 강의 주제에 대한 무거운 부담감과 자신의 영적 상태 때문이었다. 그들은 하디 선교사에게 기도에 관해 가르쳐 주기를 간청하였다. 그러나 당시 하디는 자신의 신앙에 있어서나 사역에 있어서 철저하게 실패했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여성 선교사들, 특히 메어리 화이트와 루이스 맥컬리 등의 끊임없는 간청으로 원산 선교사 연합 사경회의 강사로 섬기는 것을 승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선교사들과 하디를 향한 하나님의 섭리였다.
강사로 섬길 것을 수락한 후 하디는 사경회를 위한 설교 준비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그 과정에서 뜻밖의 은혜를 받았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자신의 사역의 태도에 대한 반성이었다. 그는 사경회를 준비하면서 자기 안에 있는 심히 악한 것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자신이 한국인들을 무식하고 더러운 민족으로 여기는 백인우월주의와 심리적 교만이었다.
그는 말씀을 준비하면서 그런 악들이 자기 마음속에 가득 차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리만치 영적으로 각성하게 되었다.
또한 설교를 준비하면서 그는 자신의 심령이 깊이 깨어지는 경험을 하였다. 그가 설교 본문으로 선택한 것은 누가복음이었다.
누가복음 11:13 NKRV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
이러한 사실은 하디 선교사의 자서전적 기록들과 당시 선교 잡지인 『선교지 한국』에 실려 있다.
그것들에 따르면 하디는 자신의 선교사에게 실패한 원인이 성령의 부재고 자신의 성령 충만하지 못하고 그 대신 실패에 대한 핑계를 대기 바빴기 때문임을 깊이 깨달았다.
또한 하나님께는 간절히 성령을 구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신다는 사실을 설교할 성경본문을 통해 깨달은 것이다.
이 사실을 깨닫자 그는 이론적 설교 준비를 멈추고 완전히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오직 자기의 죄악을 회개하고 성령 부어 주시기를 간절히 빌었다.
이때 영적 경험에 대해 로버트 하디는 후일 다음과 같이 술회하였다.
“난 성령 충만 없이는 어떤 영적 열매도 맺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내 자아와 교만을 내려놓고 성령님을 구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하디는 캐나다 출신으로서 또한 선교사로서 열정적으로 사역을 했다. 1890년에 한국에 온 그는 1898년부터 강원도 지역 선교사를 맡았지만 3년이 넘도록 이렇다 할 선교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었다.
그는 이런 실패의 원인을 무지하고 미개한 조선인 탓으로 돌렸다. 하디는 자신의 선교 사역에 대해 깊은 좌절감과 함께 조선인들에 대한 자기 우울감과 혐오감을 동시에 가지고 있었다.
그는 원산선교사연합사경회를 위해 말씀을 준비하면서 크게 회개했다. 조선에서의 자신의 선교적 실패가 조선인들 때문이 아니라 자신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지 않고 교만심과 자기 힘으로만 일하려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원산선교사연합사경회의 제3일째이던 1903년 8월 26일 수요일 원산에 있는 한 선교사의 사택에서 그는 동료 선교사들 앞에서 고백하였다.
“나는 지난 3년간 강원도에서 사역했지만, 실패했습니다. 나는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지 않았고 나의 학식과 능력 그리고 의사라는 직업을 의지했습니다. 나는 조선인들을 무시했고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내 안에는 교만과 인종적 우월감이 가득 차 있었습니다.”
거기에 모든 동료 선교사들은 하디의 고백 앞에서 큰 충격을 받았고 다른 선교사들도 하나둘씩 일어나 자신들의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다. 이어서 불길 같은 기도의 은혜가 임하였는데 그것은 형식적인 기도가 아니라 커다란 통곡과 많은 눈물을 동반한 철저한 회개의 기도였다.
특히 메어리 화이트, 루이스 맥컬리와 같은 지도적 위치에 있는 여성 선교사들이 깊이 회개 하며 영적인 각성의 본을 보여주었다.
하디 선교사는 이러한 깊은 죄의 고백을 단지 선교사들 가운데서만 할 것이 아니라 조선인들 앞에서도 똑같이 고백하여야 한다는 내면의 음성을 듣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러면서는 1903년 8월 30일 주일 당시 원산 남산동 교회에서 주일 오전 예배 시간에 설교하는 도중 거기에 모여있는 조선인 신자들 앞에서 하디 선교사는 진실하게 고백했다.
“나는 여러분을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서양인으로서 우월감과 교만심을 가지고 여러분을 무시했습니다. 나의 선교가 실패한 것은 여러분의 무지 때문이 아니라 바로 나의 교만함과 성령 충만하지 못함 때문이었습니다.”
하디 선교사의 이 진솔한 고백은 그날 거기 모인 조선인 신자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이를 계기로 회개운동의 불길이 선교사들의 모임을 뛰어넘어 조선인 신자들 사이에 회개운동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가게 되었다.
1903년 원산 대부흥의 사건은 후일 1907년 평양 대부흥의 불쏘시개가 되었다. 하디 선교사의 공개적 회개는 그 당시 서양인 선교사로서는 전례가 없는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 사건을 계기로 조선인들에게는 개인의 죄에 대한 공개적 자백이 부흥 집회의 자연스러운 한 흐름이 될 수 있었다.

III. 적용과 결론-[선포적 결단 촉구]

이 부분의 제목들은 앞선 논리들을 **'행동 지침'**으로 변환하는 역할을 합니다.
1.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II-A의 결론) 지적인 회개를 촉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사야 시대의 비극은 하나님을 모르는 ‘무지’였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의 비극도 다르지 않습니다. 스마트폰과 영상 매체에는 박사학위를 받을 만큼 해박하지만, 정작 거룩하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지한 채 살아가고 있지 않습니까?
영혼의 눈이 멀어버린 상태를 ‘평안’이라 착각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평안이 아니라 영적 죽음입니다. 이제 그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을 마비시키는 세상의 헛된 즐거움을 끊어내고, 다시금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갈망하십시오.
2. 하늘을 가르는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II-B의 결론) 실제적인 기도 생활의 변화를 촉구합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늘 문을 여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 문은 저절로 열리지 않습니다. 자신의 죄를 끌어안고 애통해하며, “주여, 주님이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부르짖는 한 사람, 바로 ‘하늘을 가르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통해 열립니다.
엘리야처럼, 이사야처럼 기도의 제단에 자신을 태우십시오. 형식적인 예배, 습관적인 기도의 껍질을 깨뜨리십시오.
“주여, 이 메마른 땅에, 우리 가정에, 우리 교회에 하늘을 가르고 임하여 주옵소서!”라고 절규하십시오.
3. 부흥의 불쏘시개가 되십시오. (설교 전체의 요약) 청중의 정체성을 재정의하며 파송하는 **'비전 선포'**의 성격을 띱니다.
역사는 다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소수의 사람들에 의해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여러분에게 묻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누가 이 시대를 위해 울며, 누가 무너진 성벽을 위해 기도하겠습니까? 여러분이 바로 그 ‘한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의 가슴에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거룩한 불이 붙는다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이 시대를 태우는 거룩한 부흥을 일으키실 것입니다.
하늘을 가르고 임하시는 주님을 사모하며 기도의 자리로 나아갑시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주경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이사야 64장 1-4절을 중심으로 한 설교를 **주경신학적(Exegetical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하실 때, 본문의 의미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핵심 요소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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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문맥적 배경: 공동체 탄식시 (Communal Lament)
* **구조적 위치:** 이사야 63장 7절-64장 12절 까지는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 탄식 기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기 혹은 그 이후 예루살렘의 황폐함을 목격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절규입니다.
* **주경적 포인트:** 이 기도는 하나님의 **'침묵'**과 **'부재'**라는 고통스러운 현실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왜 선지자가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소서"라고 외치는지, 그 절박한 시대적 배경(성전 파괴, 영적 침체)을 이해해야 합니다.
### 2. "하늘을 가르고" (Rending the Heavens)의 의미
* **단어 연구:** 히브리어 **'카라(קָרַע)'**는 단순히 문을 여는 것이 아니라 **'옷을 찢다', '천을 찢다'**와 같이 거칠고 강력한 동작을 의미합니다.
* **신학적 함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는 죄로 인한 두꺼운 장막(하늘)이 가로막혀 있어, 인간의 힘으로는 결코 뚫을 수 없다는 고백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그 장막을 찢고 내려오셔야만 구원이 가능하다는 '전적인 타락'과 '전적인 은혜'의 신학이 담겨 있습니다.
### 3. 시내산 신현(Theophany)의 회상
* **역사적 유추:** 1절의 "산들이 진동하기를"과 3절의 "두려운 일을 행하시던 그 때"는 출애굽 당시 **시내산의 강림**을 회상하는 것입니다.
* **주경적 포인트:** 선지자는 과거에 역사하셨던 하나님을 기억하며(Remembrance), 그 동일한 능력이 오늘 현재의 고난 속에서도 재현되기를 구하고 있습니다. 주경신학에서는 이를 **'과거의 구원 사건이 현재의 소망이 되는 논리'**로 설명합니다.
### 4. 하나님에 대한 역설적 묘사: "일하시는 하나님" (4절)
* **우상과의 대비:** 고대 근동의 우상들은 사람이 밥을 차려주고 옮겨줘야 하는 '수동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은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친히 일하시는(acts for)"** 분입니다.
* **기다림(앙망)의 신학:** 히브리어 **'하카(חָכָה)'**는 간절한 인내를 뜻합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최선은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것'뿐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공로를 배제하고 오직 하나님의 주권적 열심을 강조하는 대목입니다.
### 5. 신약으로의 연결 (Intertextuality)
* **마가복음 1:10:**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이 갈라짐(찢어짐)"을 묘사할 때 사용된 헬라어 '스키조'는 이사야 64:1의 70인역(LXX) 단어와 일치합니다. 즉, 이사야의 이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공생애 시작**으로 응답되었다는 신약적 성취를 보여줍니다.
* **고린도전서 2:9:** 사도 바울은 64장 4절을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자들을 위해 예비하신 것이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는 신령한 복임을 강조합니다.
### 6. "주의 이름"과 "영광"의 신학
* 본문 2절에서 "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는 단순한 지식적 인지를 넘어, 하나님의 **통치권(Lordship)**이 회복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주경학적으로 '이름'은 그 존재의 본질을 뜻하므로, 열방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달라는 통치적 선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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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경신학적 요약 질문]** (설교 준비 시 스스로 던져볼 질문)
1. 선지자는 왜 '하늘이 열리길' 구하지 않고 **'하늘이 찢어지길'** 구했는가? (인간의 전적 무능력 인식)
2. 과거 시내산의 경험이 오늘날 우리 삶의 고난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역사적 하나님의 현재성)
3.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 일하는가, 아니면 우리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가?** (사역과 신앙의 본질적 차이)
이러한 주경학적 분석을 기초로 설교를 구성하시면, 감성적인 호소에 그치지 않고 성경 본문의 깊은 무게감을 전달하는 파워풀한 설교가 될 것입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성경신학(Biblical Theology)** 관점에서의 설교 준비는 본문이 성경 전체의 거대한 이야기 흐름(창조-타락-구속-완성)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구속사적 맥락'**에서 어떻게 그리스도와 연결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이사야 64장 1-4절 을 성경신학적으로 조명할 때 주목해야 할 핵심 포인트 4가지를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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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내려오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궤적 (Divine Descent)
성경신학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오시는 '강림'의 역사를 추적합니다.
* **에덴에서 시내산으로:** 타락 이후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하나님은 끊임없이 내려오셨습니다. 이사야의 부르짖음은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 강림(불과 진동)을 회상하며, 그 강력한 **임재의 재현**을 갈망하는 것입니다.
* **성육신으로의 발전:** 이사야의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라는 기도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궁극적으로 응답됩니다. 하나님이 하늘에만 계시지 않고 우리와 같은 육신을 입고 '낮고 천한 땅'으로 내려오신 사건이 이 본문의 신학적 정점입니다.
### 2. ‘찢겨진 하늘’과 휘장의 파기 (The Rending Motif)
* **이사야의 갈망:** 64장 1절의 "하늘을 가르고(찢고)"는 인간의 범죄로 인해 닫혀버린 하늘 문을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여시는 '돌파'를 의미합니다.
* **신약적 성취:** 이 단어는 마가복음 1장 10절(예수님의 세례 시 하늘이 갈라짐)과 마태복음 27장 51절(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짐)로 연결됩니다. 성경신학적으로 볼 때, 이사야가 그토록 원했던 '찢겨진 하늘'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막힌 담이 영원히 허물어지는 사건**으로 완성됩니다.
### 3. ‘기다림(앙망)’과 언약 백성의 정체성
* **남은 자의 신학:** 이사야서 전체에서 중요한 주제는 '남은 자(Remnant)'입니다. 4절에서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일하시는 신"은 하나님의 심판 중에서도 끝까지 언약을 붙들고 견디는 자들을 뜻합니다.
* **종말론적 기다림:** 이 기다림은 구약의 이스라엘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신약의 시므온과 안나가 메시아를 기다렸던 것처럼, 그리고 오늘날 교회가 **그리스도의 재림(Parousia)**을 기다리는 것처럼,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신부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주경신학이 '기다림의 의미'를 분석한다면, 성경신학은 **'성경의 모든 백성은 기다리는 자들임'**을 강조합니다.
### 4. 행하시는 하나님 vs 인간의 공로 (Monergism)
* **오직 은혜(Sola Gratia):** 4절은 "주 외에는... 이런 일을 행한 신을 옛부터 들은 자도 없고..."라고 선포합니다. 다른 종교의 신들은 인간의 행위에 따라 움직이지만, 성경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위해 먼저 일하시는(Initiative)** 분입니다.
* **바벨탑과의 대조:** 인간이 하늘로 올라가려 했던 바벨탑 사건(창 11장)과 정반대로, 이사야 64장은 하나님이 내려오셔야만 해결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는 성경 전체의 핵심 원리인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신학적 흐름을 대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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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신학적 설교 작성을 위한 팁]**
1.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 이사야의 기도가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으로 응답되었고, 장차 올 **재림**에서 어떻게 최종 완성될지를 연결하십시오. (이사야 64장 → 복음서의 성육신 →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
2. **성전 신학과의 연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장소로서의 '성전' 개념을 사용해 보십시오. 건물이 아닌,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신 '참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할 수 있습니다.
3. **심판과 구원의 유기성:** 2절의 '불'과 '진동'이 대적에게는 심판이지만 백성에게는 구원인 것처럼, 십자가 사건이 어떻게 심판(죄에 대하여)과 구원(우리에 대하여)을 동시에 이루었는지 설명하십시오.
**요약하자면,** 주경신학이 본문의 '단어와 문맥'을 파헤친다면, 성경신학은 이 본문을 통해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도도히 흐르는 하나님의 '강림 열망'과 '그리스도를 통한 성취'"**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역사신학(Historical Theology)** 관점에서 이 본문을 준비한다는 것은, 지난 2,000년 교회 역사 속에서 믿음의 선배들이 이 말씀을 어떻게 해석해왔으며, 특히 **'하나님의 임재(부흥)'**와 **'인간의 영적 무지'**라는 주제가 역사적 변곡점에서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이사야 64:1-4 를 역사신학적으로 풍성하게 만들 4가지 핵심 영역을 제안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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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초대 교부들의 '성육신적(Incarnational)' 해석
초대 교회 교부들은 구약의 '하나님의 강림'을 장차 오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예표로 보았습니다.
*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그의 저서 『성육신에 관하여』에서 보듯, 그는 하나님이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셔야만 했던 이유를 '인간의 부패'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왕이 자기가 세운 도성이 반역자에 의해 더러워졌을 때 직접 방문하여 회복시키듯, 하나님은 하늘을 가르고 우리 가운데 오셔야만 했다"는 논지입니다.
* **교훈:** 역사적으로 이 본문은 단순히 '기적'을 구하는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 속으로 틈입(Intrusion)하셔야만 하는 필연성'**을 강조하는 근거로 사용되었습니다.
### 2. 종교개혁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회복
제시해주신 설교문에도 언급되었듯,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64장 2절("주의 이름을 알게 하시며")을 **'성경적 지식의 회복'**과 연결시켰습니다.
* **마르틴 루터와 무지(Ignorance):** 중세 교회가 "무지는 경건의 어머니"라며 성도들을 가르치지 않았던 것에 반해, 루터는 이사야의 외침을 **'복음의 빛이 임하여 영적 무지를 몰아내는 사건'**으로 보았습니다.
* **존 칼빈(John Calvin):** 칼빈은 4절의 "자기를 기다리는 자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을 설명하며, 인간의 공로를 의지하는 로마 가톨릭의 신학을 비판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을 통해 **'오직 은혜(Sola Gratia)'**의 교리, 즉 하나님이 주도권을 쥐고 일하신다는 점을 역사적으로 확립했습니다.
### 3. 부흥 운동(Revivalism)의 역사적 원동력
18세기 대각성 운동부터 20세기 초 부흥 운동까지, 이사야 64장 1절은 **부흥사들이 가장 사랑한 본문**이었습니다.
* **조나단 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차 대각성 운동 당시, 그는 하나님의 임재를 '생각지 못한 놀라운 일(3절)'로 정의했습니다. 부흥은 인간이 기획하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사야의 기도처럼 **'하늘이 찢어지고 임하는 비상한 간섭'**임을 역사적으로 증명하려 했습니다.
* **웨일즈 부흥(1904년):** 이반 로버츠(Evan Roberts)를 비롯한 부흥의 주역들은 "주여, 굽어 살피소서(Bend the church)"라고 기도했는데, 이는 64장의 '산들이 진동하며 주 앞에 굴복하는' 이미지의 역사적 실체였습니다.
* **역사적 통찰:** 교회사 속에서 이 본문은 교회가 매너리즘에 빠졌을 때마다 **'하나님의 비상한 개입'**을 구하는 기폭제 역할을 했습니다.
### 4. 경건주의와 '기다림(Waiting)'의 전통
4절의 "기다리는 자"에 대한 해석은 기독교 영성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합니다.
* **신비주의와 경건주의:** 역사 속의 영성가들(예: 테레사, 요한 크리소스토무스)은 하나님이 일하시게 하기 위해 인간이 자기 의지를 내려놓는 '거룩한 수동성'을 강조했습니다.
* **역사적 적용:** 현대의 조급함과 대비되는, 사막 교부들로부터 내려오는 **'침묵과 기다림의 영성'**이 이사야 64:4를 통해 어떻게 계승되어 왔는지 보여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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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역사신학적 관점의 설교 포인트 요약]**
1. **연속성:** 이사야의 기도가 시내산(출애굽) → 성육신(신약) → 종교개혁(회복) → 부흥 운동(체험)으로 이어지는 **'하나님의 방문의 역사'**임을 선포하십시오.
2. **논쟁의 해결:** "무지가 경건의 어머니인가, 지식이 경건의 토대인가?"라는 역사적 논쟁에서 이사야의 본문이 어떻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손을 들어주었는지 설명하십시오.
3. **한 사람의 중요성:** 교회사적으로 부흥은 항상 이 본문을 붙들고 '하늘을 가르고 임하소서'라고 외쳤던 **'한 사람의 기도'**에서 시작되었음을 강조하십시오. (루터, 에드워즈, 이반 로버츠 등)
이러한 역사적 자취들을 설교에 녹여내시면, 성도들은 자신들의 기도가 2,700년 전 이사야로부터 시작되어 수많은 믿음의 거장들을 거쳐 오늘에 이른 **'거대한 기도의 강줄기'**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조직신학(Systematic Theology)** 관점에서 이사야 64장 1~4절을 준비한다는 것은, 이 본문에 담긴 파편적인 이미지들을 기독교 신앙의 주요 교리 체계(신론, 인간론, 기독론, 구원론 등) 안에서 논리적으로 정립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본문을 관통하는 5가지 핵심 교리적 주제를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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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론: 하나님의 초월성(Transcendence)과 내재성(Immanence)
조직신학의 가장 기초적인 긴장이 이 본문에 나타납니다.
* **초월성:** "하늘을 가르고"라는 표현은 하나님이 우리 세계 너머에 계시는 거룩하고 구별된 분임을 보여줍니다. (질적 차이)
* **내재성:** "강림하시고"는 그 초월적인 분이 시공간 안으로 들어오셔서 우리 삶에 개입하시는 분임을 보여줍니다.
* **설교적 적용:** 하나님은 멀리 계셔서 우리를 외면하시는 분도 아니요(이신론 비판), 세상과 뒤섞여 구분이 안 되는 분도 아님(범신론 비판)을 조직신학적으로 선포해야 합니다.
### 2. 인간론 및 죄론: 인간의 전적 무능력(Total Inability)
1절의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소서"라는 기도는 인간론적 절망을 전제로 합니다.
* **전적 무능력:** 인간은 스스로 하늘을 열 수 없고, 하나님께 올라갈 수도 없습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 우리 사이는 완전히 단절되었기 때문입니다.
* **영적 지각의 상실:** 제시하신 설교문의 '무지'는 조직신학적으로 **'죄의 지적 영향(Noetic effects of sin)'**이라 부릅니다. 죄로 인해 인간의 이성이 마비되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도달할 수 없게 된 상태입니다.
* **설교적 적용:** 구원은 인간의 개선이나 노력이 아니라, 오직 위로부터의 '돌파'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인간론적 파산을 강조하십시오.
### 3. 구원론: 신인협력설(Synergism) vs 단독사역설(Monergism)
4절의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은 구원론의 핵심을 찌릅니다.
* **단독사역(Monergism):** 구원은 인간과 하나님이 힘을 합쳐 이루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이 주도하시고(Initiative) 완성하신다는 교리입니다. 인간은 오직 '기다림(앙망)'과 '믿음'으로 그 사역의 수혜자가 될 뿐입니다.
* **은혜의 우선성:** 우리가 하나님을 찾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시는 '선행 은총'을 조직신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4. 기독론: 성육신(Incarnation)의 예표
조직신학은 구약의 현현(Theophany)을 기독론과 연결합니다.
* **궁극적 강림:** 이사야가 구한 "내려오심"의 최종적 답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입니다. 조직신학적으로 64:1은 **'로고스(Logos)의 비하(Humiliation)'**와 연결됩니다.
* **중보자 기독론:** 하늘과 땅이 찢겨 단절된 상태에서,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신 그리스도는 스스로 '갈라진 틈'이 되셔서 하나님과 인간을 화해시키는 유일한 중보자가 되십니다.
### 5. 성령론: 부흥과 비상한 섭리(Special Providence)
2절의 불과 물의 이미지는 성령의 사역과 밀접합니다.
* **비상한 사역:** 하나님은 일반 섭리를 통해 세상을 다스리시지만, 때로는 **'비상한 섭리(부흥)'**를 통해 자연 법칙을 뛰어넘는 영적 각성을 주십니다.
* **성령의 조명:** 무지한 인간이 주의 이름을 알게 되는 것(2절)은 성령의 '조명 사역(Illumination)'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조직신학적으로 부흥은 성령께서 하나님의 주권을 강력하게 드러내시는 사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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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직신학적 요약 정리]**
1. **신론:** 하나님의 거룩한 **초월성**이 사랑의 **내재성**으로 나타난 사건이 강림이다.
2. **죄론:** 인간은 죄로 인해 **영적 무지**와 **전적 무능력**에 빠져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
3. **구원론:** 오직 하나님만이 구원의 주체이시며(단독사역), 인간은 오직 은혜를 **앙망**함으로 구원을 얻는다.
4. **기독론:** 이사야의 부르짖음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통해 역사 속에서 객관적으로 성취되었다.
5. **성령론:** 하늘이 열리는 경험은 오늘날 **성령의 비상한 역사(부흥)**를 통해 주관적으로 체험된다.
이러한 교리적 틀을 가지고 설교를 준비하시면, 설교의 메시지가 성경 전체의 가르침과 일치되는 견고한 **'신학적 뼈대'**를 갖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단순히 "열심히 기도하자"를 넘어,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기에 이런 기도가 가능한가"를 가르칠 수 있습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실천신학(Practical Theology)** 관점에서 이 설교를 준비한다는 것은, 선포된 말씀이 어떻게 청중의 삶을 변화시키고, 공동체의 예배와 기도를 형성하며, 구체적인 신앙의 실천으로 이어지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즉, **‘신학적 이론’을 ‘현장의 삶’으로 번역하는 과정**입니다.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주목해야 할 5가지 핵심 영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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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교학적(Homiletical) 관점: '거룩한 열정(Pathos)'의 전달
본문은 차분한 설명문이 아니라 **'피를 토하는 절규(Lament)'**입니다.
* **언어의 선택:** 실천신학적으로 설교자는 본문의 역동성을 언어로 재현해야 합니다. "하늘을 가르고"라는 표현이 단순히 '강림'이라는 신학 용어로 그치지 않고, 청중의 가슴에 **'영적 돌파'**의 이미지로 각인되도록 강력하고 생생한 수사(Imagery)를 사용해야 합니다.
* **설교자의 태도:** 이 설교는 지식을 전달하는 '강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갈망하게 만드는 **'전염'**이어야 합니다. 설교자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임재를 갈망하는 '간절함(Desperation)'을 청중에게 보여주어야 합니다.
### 2. 예배학적(Liturgical) 관점: '기다림'의 의례화
본문 4절의 "기다림(앙망)"은 실천신학에서 매우 중요한 '영성 형성(Spiritual Formation)'의 요소입니다.
* **침묵과 경청:** 설교 후에 곧바로 시끄러운 찬양을 하기보다, 잠시 **'침묵 기도'**의 시간을 두어 청중이 "하나님이 일하시기를 기다리는" 실제적인 훈련을 하게 할 수 있습니다.
* **예배 환경:** 설교 내용에 맞춰 예배의 부름이나 참회의 기도 순서에서 '하늘 문을 여시는 하나님'을 강조하는 기도를 배치함으로써, 설교가 예배 전체의 흐름과 유기적으로 연결되게 해야 합니다.
### 3. 목회 돌봄(Pastoral Care)적 관점: '닫힌 하늘' 아래 있는 이들을 향한 위로
실천신학은 청중의 현재 상황에 민감해야 합니다.
* **영적 침체 진단:** 많은 성도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다" 혹은 "하늘이 닫힌 것 같다"는 단절감을 느낍니다. 이들에게 이사야의 부르짖음이 곧 **'나의 부르짖음'**이 될 수 있음을 알려주어, 그들의 절망을 기도로 승화시키도록 도와야 합니다.
* **소망의 인내:** "생각지 못한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3절)"을 강조하여, 현재의 고난이 끝이 아니라 하나님의 비상한 간섭이 시작될 지점임을 심어주는 목회적 격려가 필요합니다.
### 4. 기독교 교육적(Educational) 관점: '무지'를 타파하는 구체적 대안
설교문에서 강조된 '무지의 죄악성'을 실천적으로 해결할 방법을 제시해야 합니다.
* **지식의 내면화:** 설교에서 루터나 종교개혁자들의 사례를 들었다면,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삶에서 구체적으로 쌓을 수 있을지 제안하십시오. (예: 매일 성경 읽기, 교리 공부, 묵상 노트 작성 등)
* **스마트폰 문화에 대한 성찰:** 설교문 중 "스마트폰이 가장 가까운 친구"라는 지적을 실천적인 **'디지털 금식'**이나 **'미디어 절제'** 제안으로 연결하여 삶의 양식을 바꾸도록 유도해야 합니다.
### 5. 선교적/사회적(Missional) 관점: '부흥의 불쏘시개'로서의 파송
실천신학은 예배당 안에서 끝나지 않고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 **세상 속의 대리자:** 성도들이 가정과 일터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는 자'로 살 것인지 구체적인 미션을 주어야 합니다.
* **변화의 대리인:** "하나님이 함께하는 한 사람(불쏘시개)"이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어떻게 밝힐 수 있을지 도전하십시오. 부흥은 개인의 감정적 고조를 넘어, 세상을 향한 **'공의와 사랑의 실천'**으로 나타나야 함을 강조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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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신학적 요약 질문]**
1. **전달:** 이 설교가 청중의 지성에 정보를 주는가, 아니면 그들의 영혼에 **불을 지피는가?**
2. **적용:** 성도들이 예배당 문을 나설 때, "하나님을 기다린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행동(기도, 절제, 공부)**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는가?
3. **변화:** 이 설교를 통해 우리 공동체 안에 **'하나님에 대한 무지'**를 경계하는 실질적인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가?
**결론적으로,** 실천신학적 준비는 **"그래서 이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So what?)"**라는 질문에 답하는 과정입니다. 설교가 공허한 외침이 되지 않도록 청중의 삶을 터치하는 구체적인 적용점들을 신학적 원리와 결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위 설교를 위해 교양학문적 소양(도서관 십진 분류법을 기준)으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이사야 64장 1~4절 설교를 더욱 풍성하고 입체적으로 만들기 위해, **도서관 십진분류법(KDC/DDC)**의 주요 카테고리를 기준으로 활용할 수 있는 **교양학문적 소양**을 정리해 드립니다. 신학적 깊이에 인문학적 넓이를 더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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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0] 철학 및 심리학 (Philosophy & Psychology)
* **인식론(Epistemology):** 설교에서 강조된 '무지'와 관련하여, 소크라테스의 **'무지의 자각(아는 것이 없음을 아는 것)'** 개념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참된 지식은 자신의 무지를 깨닫는 데서 시작한다는 철학적 원리는 회개와 연결됩니다.
* **현상학(Phenomenology):** '기다림'이라는 인간의 경험을 분석합니다. 철학자 가브리엘 마르셀(Gabriel Marcel)의 **'희망과 기다림'**에 대한 고찰이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지연된 만족'**의 심리적 가치를 인용하여 4절의 '앙망'을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미학(Aesthetics):** 설교문에 언급된 **'의존미(Aesthetics of Dependency)'**를 철학적으로 뒷받침합니다. 인간이 절대자 앞에서 느끼는 '숭고(The Sublime)'의 감정을 임마누엘 칸트의 미학 이론으로 설명하면 하나님의 강림 시 느끼는 거룩한 두려움을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습니다.
### 2. [300] 사회과학 (Social Sciences)
* **교육학(Pedagogy):** '무지'를 타파하기 위한 교육의 중요성을 다룹니다. 파울루 프레이리(Paulo Freire)의 **'의식화 교육'** 개념을 빌려, 복음이 어떻게 인간의 영적 무지를 깨뜨리고 자유케 하는지 설명할 수 있습니다.
* **미디어 사회학:** 설교 중 '스마트폰' 언급과 관련됩니다. 현대 사회에서 정보의 과잉이 오히려 본질에 대한 무지를 낳는 **'정보의 역설'**이나, 닐 포스트먼의 **『죽도록 즐기기』** 관점을 인용하여 현대인의 영적 마비 현상을 비판적으로 조명할 수 있습니다.
### 3. [400] 자연과학 (Natural Sciences)
* **물리학(Physics) - 상전이(Phase Transition):** 2절의 "불이 물을 끓임 같게 하사"를 과학적으로 접근합니다. 임계점에 도달했을 때 물이 수증기로 변하는 '상전이' 현상은, 기도가 쌓여 하나님의 임재가 임할 때 일어나는 **'질적 변화'와 '부흥'**의 훌륭한 비유가 됩니다.
* **지질학(Geology) - 지진과 진동:** 1절의 "산들이 진동하기를"과 관련하여 지각 변동의 위력을 설명합니다. 인간이 만든 가장 견고한 구조물(산)조차 흔드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에너지 수치나 지질학적 현상으로 비유하여 경외심을 높일 수 있습니다.
### 4. [600] 예술 (Arts)
* **회화 및 조각:** 역사적으로 '하나님의 강림(Theophany)'이나 '성육신'을 묘사한 예술 작품들을 참고하십시오. (예: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중 손가락이 닿는 장면 등) 시각적 이미지는 "하늘을 가르고"라는 문학적 표현을 구체화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 **음악(Music):** 웅장한 오라토리오(헨델의 메시아 중 '하늘을 흔드시는' 대목 등)나 부흥의 시기에 작곡된 찬송가들의 탄생 배경을 활용하여 설교의 감동을 더할 수 있습니다.
### 5. [800] 문학 (Literature)
* **수사학(Rhetoric):** 이사야의 **'탄식 문학(Lament Literature)'** 형식을 연구하십시오. 절망적인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사용하는 강력한 은유와 역설적 표현들이 어떻게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문학적으로 분석하면 설교의 전달력이 높아집니다.
* **고전 문학:** 사무엘 베케트의 **『고도를 기다리며』**와 같은 작품을 인용하여, '대상 없는 기다림'에 지친 현대인과 '일하시는 하나님을 기다리는' 성도의 기다림이 어떻게 다른지 대조할 수 있습니다.
### 6. [900] 역사 (History)
* **세계사적 변곡점:** 이스라엘의 포로기 역사뿐 아니라, 인류 역사에서 **'결정적인 방문(Visitation)'**이 역사를 바꾼 사례들을 찾아보십시오. (예: 르네상스, 종교개혁 등) 이는 하나님이 역사 속에 개입하실 때 어떤 거대한 변화가 일어나는지 설명하는 근거가 됩니다.
* **문명사:** 인간이 스스로 하늘에 닿으려 했던 바벨탑의 역사와 하나님이 내려오시는 성육신의 역사를 대조하여 문명사적 통찰을 제시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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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자를 위한 교양 활용 팁]**
설교를 준비하실 때, **KDC 100(철학-무지/기다림)**과 **KDC 400(과학-불/진동)**의 지식을 적절히 섞으시면 논리적이면서도 생동감 넘치는 설교가 됩니다.
특히 **300(사회과학)** 분야의 현대 미디어 비판을 결합하시면, 2,700년 전 이사야의 외침이 오늘날 '스마트폰 세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동시대적 메시지'**로 탈바꿈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설교문을 듣는 청중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변화를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말씀을 근거로 답변해 주세요.
이사야 64장 1~4절의 설교를 듣는 청중들이 경험하게 될 변화를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말씀의 원리에 따라 분석하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차원의 영적 성장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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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원에 이르는 지혜의 회복 (15절)
>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기대되는 변화:** 설교에서 강조된 '하나님에 대한 무지'에서 벗어나, **그리스도 중심적인 지혜**를 갖게 됩니다.
* **구체적 양상:** 청중들은 단순히 세상을 살아가는 처세술이 아니라,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신 예수 그리스도만이 내 영혼의 갈급함을 해결할 유일한 구원자이심을 깊이 깨닫는 지성적·영적 회복을 경험하게 됩니다.
### 2. 영적 각성과 잘못된 삶의 교정 (16절a)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 **기대되는 변화:** 스마트폰과 세상 문화에 중독되어 있던 **영적 마비 상태에 대한 '책망'**을 듣고, 삶의 방향을 **'교정'**하게 됩니다.
* **구체적 양상:** "산들이 진동하고 불이 물을 끓임 같은" 하나님의 임재 앞에 서게 될 때, 청중들은 자신의 안일함을 책망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는 막연한 죄책감이 아니라, 하나님을 갈망하는 '바른 상태'로 돌아가고자 하는 거룩한 열망으로 이어집니다.
### 3.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영적 훈련 (16절b)
>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기대되는 변화:** '하나님을 기다리는 삶(앙망)'이라는 **거룩한 습관(Habitus)**을 체득하게 됩니다.
* **구체적 양상:** 4절의 "자기를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게 됨으로써, 조급함을 버리고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영적 인내력을 배웁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이 아니라, 성경의 원리에 따라 '의'를 행하는 구체적인 삶의 훈련(Discipline)으로 정착됩니다.
### 4. 온전한 사명자로의 구비 (17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기대되는 변화:** 무기력한 종교인에서 세상을 변화시키는 **'부흥의 불쏘시개(하나님의 사람)'**로 무장됩니다.
* **구체적 양상:** 설교의 결론처럼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라는 부르심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할 수 있는 영적 실력을 갖추게 됩니다. 청중들은 이제 교회 안의 구경꾼이 아니라, 가정과 일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모든 선한 일'을 감당할 준비가 된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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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결론적 요약]**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의 관점에서 볼 때, 이 설교는 청중들을 **[무지 → 지혜], [방종 → 교정], [조급함 → 기다림의 훈련], [무기력 → 선한 능력의 구비]**라는 단계로 이끌 것입니다.
결국 성도들은 이사야가 선포한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님'을 성경의 렌즈로 명확히 바라보게 됨으로써, **"하나님의 감동(Theopneustos)으로 변화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어서게 될 것입니다.
설교문을 바탕으로 PPT 슬라이드를 제작해 주세요.
이사야 64:1-4 설교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를 위한 PPT 슬라이드 구성을 제안해 드립니다. 시각적으로 강렬한 이미지와 핵심 문구를 배치하여 청중의 집중도를 높일 수 있도록 설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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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1: 타이틀]**
* **메인 제목:**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
* **부제:** 간절한 열망과 놀라운 부흥 (이사야 64:1-4)
* **시각 요소:** 구름 사이로 강렬한 빛이 내리쬐는 하늘 혹은 갈라지는 하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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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2: 본문 읽기]**
* **텍스트:** 이사야 64:1-4 (핵심 구절 강조)
* "원하건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 "주 외에는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하여** 이런 일을 행한 신을..."
* **디자인:** 가독성이 좋은 명조체 계열, 배경은 차분한 질감의 종이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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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3: 도입 - 이사야의 소명]**
* **제목:** 영광을 본 자의 절규
* **내용:**
* 이사야의 체험: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사 6장)
* 비극적 현실: 이스라엘의 영적 파산과 무지
* **메시지:** "영광을 본 자만이 부흥을 갈망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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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4: 대지 1. 부흥을 향한 절규]**
* **제목:**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소서!
* **핵심 문구:**
* 하늘을 가름: 인간의 힘으로 뚫을 수 없는 단절의 돌파
* 산들이 진동함: 견고한 죄의 요새가 무너짐
* **시각 요소:** 요동치는 산 혹은 강력한 폭포수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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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5: 소대지 A. 주의 이름을 알게 하소서]**
* **제목:** 하나님을 아는 지식의 회복
* **내용:**
* 거룩하심의 두 차원: 초월성(위엄) & 도덕성(완전함)
* 하나님을 경험할 때: 미천한 존재임을 깨닫고 전심으로 의존함
* **핵심 단어:** **[의존미]** - 하나님을 의지할 때 인간은 가장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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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6: 통찰 - 무지의 위험성]**
* **제목:** 무지는 경건의 어머니가 아닙니다
* **인용구:**
* "무지는 모든 죄의 부모나 유모입니다." (리처드 백스터)
* "가축이나 돼지처럼 살면서 자유만 누리려 합니다." (마르틴 루터의 탄식)
* **시각 요소:** 어둠 속에 갇힌 사람 혹은 꺼져가는 촛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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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7: 소대지 B. 비상한 간섭을 구함]**
* **제목:** 하늘 문을 여는 열쇠, 기도
* **내용:**
* 불이 섶을 사름 같게: 걷잡을 수 없는 성령의 역사
* 엘리야의 기도: 닫힌 하늘을 열었던 간절함
* **메시지:** "상황을 바꾸기 전, 하나님은 기도자를 바꾸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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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8: 하나님의 독특성]**
* **제목:** 우리를 위해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
* **내용:**
* 세상의 우상: 인간이 섬겨야 하는 수동적 존재
* 우리 하나님: 자기를 기다리는 자를 위해 **[친히 일하시는]** 분
* **핵심 구절:** "주 외에는... 이런 일을 행한 신을 본 자가 없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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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9: 적용 - 세 가지 결단]**
* **제목:** 이제 우리가 응답할 차례입니다
* **리스트:**
1. **깨어나십시오:** 영적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2. **부르짖으십시오:** 하늘을 가르는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3. **헌신하십시오:** 이 시대 부흥의 불쏘시개가 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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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10: 결론 및 기도]**
* **메인 문구:** "주여, 하늘을 가르고 우리 가운데 임하여 주옵소서!"
* **시각 요소:** 타오르는 불꽃 혹은 기도하는 손의 실루엣.
* **배경 음악:** (추천) '하늘의 문을 여소서' 또는 '이 땅의 황폐함을 보소서' 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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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작 팁:**
1. **폰트:** 제목은 강렬한 **'고딕체'**(예: 에스코어 드림 9), 본문은 가독성이 좋은 **'명조체'**(예: 나눔명조)를 추천합니다.
2. **색상:** 깊은 네이비(Navy)를 배경으로 쓰고, 강조하고 싶은 키워드(부흥, 강림, 불)는 오렌지나 골드 계열을 사용해 보세요.
3. **여백:** 텍스트를 너무 많이 넣지 말고, 설교자의 메시지에 집중할 수 있도록 핵심 단어 위주로 배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설교문을 바탕으로 설교 나눔을 위한 질문지를 만들어 주세요.
이사야 64장 1~4절 설교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성도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소그룹(구역, 셀) 나눔 질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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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나눔 질문지]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
**본문: 이사야 64:1-4**
### 1. 마음 열기 (Icebreaker)
* 최근 내 삶에서 가장 간절하게 하나님의 도움이나 개입이 필요하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함께 가볍게 나누어 봅시다.
### 2. 말씀 속으로 (Observation & Reflection)
**Q1. 선지자 이사야는 왜 하나님께 "하늘을 열어달라"고 하지 않고, "하늘을 가르고(찢고) 내려오라"고 간구했을까요? (1절)**
* 인간의 노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단절'의 상태에 대해 묵상해 보고, 우리 가정이나 공동체 안에 하나님이 직접 찢고 들어오셔야 할 '막힌 담'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Q2. 설교에서는 "무지는 경건의 어머니가 아니라 악의 뿌리"라고 강조했습니다. (2절 관련)**
* 마르틴 루터의 탄식처럼, 혹시 우리도 "구원의 자유"만 누리려 하고 정작 하나님을 아는 지식(십계명, 주기도문, 교리 등)이나 그분에 대한 경외함에는 무관심하지 않았는지 스스로를 돌아봅시다.
**Q3. 4절은 우리 하나님이 세상의 우상과 결정적으로 다른 점이 무엇이라고 말씀합니까?**
* "자기를 기다리는 자를 위하여 친히 일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나에게 어떤 위로와 도전을 주나요? 내 힘으로 애쓰는 대신 하나님이 일하시도록 '기다렸던' 경험이 있다면 나누어 봅시다.
### 3. 삶의 적용 (Life Application)
**Q4. 오늘날 우리의 영적 눈을 멀게 하는 가장 큰 '현대판 무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예: 스마트폰 중독, 세속적 가치관 등)**
* 하나님의 임재보다 더 의지하고 즐거워했던 것들을 끊어내기 위해 이번 주에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인 한 가지는 무엇인가요?
**Q5.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라고 고백하며 부흥의 '불쏘시개'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 내가 속한 가정, 일터, 교회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 내가 먼저 '정결하게 변화되어야 할 부분'은 무엇인지 고백해 봅시다.
### 4. 함께 기도하기 (Prayer)
1. **갈망:** 우리 삶의 닫힌 하늘을 가르고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2. **회개:**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게을렀던 무지를 회개하오니, 다시금 말씀에 대한 목마름을 주소서.
3. **헌신:** 조급함을 버리고 주를 앙망하며, 이 시대를 깨우는 부흥의 통로(불쏘시개)로 살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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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자를 위한 팁]**
* 이 질문지는 지식적인 답변보다 **개인의 솔직한 고백**을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 특히 **'기다림(앙망)'**에 대한 나눔을 할 때, 무기력한 포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신뢰하는 적극적인 인내임을 강조해 주세요.
* 마지막 기도 시간에는 설교 중 언급된 **"하나님이 함께하는 한 사람"**이 바로 나 자신이 되기를 다짐하며 마무리하십시오.
설교문을 1000글자로 요약 정리해 주세요.
### [설교 요약] 하늘로부터 임하시는 주: 부흥을 향한 거룩한 열망
이사야 64장 1~4절은 암담한 현실 속에서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기를 구하는 이사야 선지자의 절박한 호소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자로서, 인간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단절을 돌파해 주시길 간구합니다. 본문을 통해 우리는 세 가지 핵심 원리를 깨닫습니다.
**첫째, 부흥을 향한 처절한 절규입니다.** 이사야는 "하늘을 가르고 내려오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는 단순히 도움을 구하는 요청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재라는 비극적 현실을 찢어버리길 원하는 영적 돌파의 외침입니다. 산들이 진동하고 불이 물을 끓이듯 하나님의 살아계심이 온 천하에 드러나길 갈망하는 것입니다.
**둘째, 무지에서 벗어나 주의 이름을 알게 하소서.** 이스라엘과 세상의 비극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버린 '무지'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역사적으로 마르틴 루터와 청교도들은 무지를 "모든 죄의 부모"라며 탄식했습니다. 오늘날 성도들 역시 세상 문화와 스마트폰에는 해박하면서도 정작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에는 무관심합니다. 우리는 형식적인 예배와 영적 마비 상태를 처절히 미워하며,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 달음질해야 합니다.
**셋째, 하늘 문을 여는 기도의 사람으로 일어서야 합니다.** 엘리야가 기도로 하늘 문을 열었듯, 하나님의 강림은 간절한 기도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상황을 바꾸기 전, 기도를 통해 기도자를 먼저 바꾸십니다. 이사야가 성전에서 자신의 추함을 깨닫고 정결하게 된 후 소명을 받았듯, 우리 자신이 먼저 하나님의 임재 앞에 깨어지고 변화되어야 합니다.
**넷째, 자기를 앙망하는 자를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세상 우상은 인간의 섬김을 받아야 하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기를 바라는 자를 위해 '친히 일하시는' 유일한 분입니다. 이 위대한 약속을 신뢰하며 우리는 신실하게 기다림의 자리를 지켜야 합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무지의 잠에서 깨어나 하늘을 가르는 기도를 시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광에 사로잡힌 '한 사람'이 바로 부흥의 불쏘시개가 됩니다. 주님의 강림을 사모하며 이 시대의 무너진 성벽을 재건하는 사명자로 일어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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