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와 기한은(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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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조급한 '때(Time)'의 문제를 넘어 강력한 '권능(Power)'의 삶으로
주제: 조급한 '때(Time)'의 문제를 넘어 강력한 '권능(Power)'의 삶으로
본문: 사도행전 1:6-11
서론: 기다림에 지친 청춘들에게
서론: 기다림에 지친 청춘들에게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모인 청년 여러분을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우리 이렇게 인사할까요?
“피곤한 심령이 오늘의 예배를 통해 상쾌하기를 축복합니다!”(예레미야 31:25)
말씀의 근거한 축복입니다. 함께 읽어볼까요?
"이는 내가 그 피곤한 심령을 상쾌하게 하며 모든 연약한 심령을 만족하게 하였음이라 하시기로"
다시한번 우리 축복합시다! “피곤한 심령이 오늘의 예배를 통해 상쾌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 청년들의 삶을 한 단어로 정의한다면 무엇일까요? 저는 '기다림'이라고 생각합니다. 열심히 노력해서 준비하고 사회에 나와서 결과를 기다리는 것 말이죠. 취업 합격 문자를 기다리고, 꾸준히 모아둔 적금이 만기되기를 기다리고, 아니면 내 짝이 나타나기를 기다립니다. 우리는 늘 마음속에 시계를 차고 살아요. 나는 언제 될까? 언제 이루어질까? 그리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묻습니다. "하나님, 기도한 것 도대체 언제 이루어지나요? 언제 이 고생이 끝납니까? 언제 내 인생에도 볕이 듭니까?"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도 우리와 똑같은 심정이었습니다. ‘아 이런 고된 삶 언제 해방되어 나라가 회복될까? 언제 나의 삶이 평안해질까?’ 그렇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감격적인 순간에, 제자들이 가장 먼저 던진 질문은 이와 같았습니다.
6절입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우리 이 질문을 좀 더 깊이 들여다봅시다. 당시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였습니다. 그들은 로마인들에게 끔찍한 착취와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자신들이 기대했던 모든 꿈이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긴 예수님의 능력을 눈 앞에서 목격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가슴이 다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 죽음도 이긴 능력이라면, 저 로마 군대쯤은 단숨에 쓸어버릴 수 있겠구나. 드디어 우리가 로마를 뒤엎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나라가 되고, 우리도 한 자리씩 차지하는 '영광의 날'이 왔구나!”
그래서 그들은 다급하게 물은 것입니다. “주님! 우리가 대박 나는 그 타이밍이 바로 지금(NOW)입니까?” 그들의 관심은 온통 '이 땅에서 잘 사는 것과 나의 성공 시기' 에 꽂혀 있었습니다.
본론 1: 왜 예수님은 '때'를 감추시는가?
본론 1: 왜 예수님은 '때'를 감추시는가?
제자들의 이 뜨거운 질문에 예수님은 아주 냉정하게 대답하십니다. 7절을 보십시오.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예수님은 제자들의 간절함을 묵살하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건 너희가 알 필요 없다"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기 때문이죠. 왜 예수님은 우리의 가장 큰 궁금증인 '때(Timing)'를 감추시는 걸까요? 여기에는 아주 중요한 영적인 이유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주권'의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때와 시기가 "아버지의 권한"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시간을 통제하려고 합니다. 우리는 내가 내 인생의 주인 노릇을 하려고 합니다. 내가 계획한 일들이 이루어지도록 모든 최선을 다합니다. 기도도 합니다. 주님 내 기도 들어주세요! 이루어주세요! 언제까지 이루어주세요! 그리고 내가 정한 데드라인(Deadline)에 하나님이 움직여주지 않으면 우리는 화를 내고, 삐지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조급한 마음으로 내가 원하는 때에 이루어지기를 원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3분 컵라면'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물 붓고 3분만 지나면 결과물이 나옵니다. 배고픈데 1분이라도 더 걸리면 화가 납니다.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나의 때'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인스턴트 라면으로 만들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최고급 '스테이크 코스 요리'로 만드는 마스터 셰프(Master Chef)와 같습니다. 이 마스 터셰프는 고기를 숙성시키고, 굽고, 레스팅(Resting)하는 정확한 시간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손님이 배고프다고 주방에 들어가서 "아, 현기증 나니까 대충 익은 고기 그냥 빨리 내놓으세요!"라고 소리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요리는 망치는 것입니다. 고기가 가장 맛있게 익는 시간은 손님이 정하는 게 아니라, 셰프가 정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권한(주권)'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인생은 컵라면이 아니다. 내가 가장 완벽한 작품을 만들고 있으니, 주방장인 나를 믿고 기다려라."
둘째, '관심사'의 전환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질문 속에 있는 '이스라엘의 회복'은 결국 '나의 유익, 나의 민족, 땅의 일'에 국한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통해 한 자리 차지할 생각만 하고 있었습니다. 만약 그때 예수님이 "그래, 내일 로마가 망한다"라고 하셨다면, 제자들은 전 세계를 구원하는 복음의 증인이 되는 대신, 칼을 들고 로마 군인과 싸우러 나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시계를 보는 알바생'과 '비전을 보는 사장님'의 차이와 같습니다. 아르바이트생의 관심사는 오직 하나입니다. '언제 퇴근 시간이 되나?' 계속 벽시계만 쳐다봅니다. 사장님이 "우리 가게를 통해 이 동네를 행복하게 만들자!"라고 비전을 말해도, 알바생은 속으로 "그래서 시급은 언제 올려주는데요? 언제 집에 가는데요?"라고만 생각합니다. 지금 제자들의 모습이 딱 이렇습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할 거대한 '하나님 나라의 비전(CEO의 마음)'을 품고 계신데, 제자들은 "그래서 이스라엘 회복 그러니까 내 월급날은 언제입니까?"라며 '알바생 마인드'로 묻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때를 감추신 이유는, 우리가 퇴근 시간만 기다리는 '시계 보는 알바생'이 아니라, 주인의 마음을 품고 함께 일하는 '하나님 나라의 동역자'가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시선을 '나의 성공'에서 '하나님의 사명(Mission)'으로 돌리시기 위해 침묵하십니다.
우리가 "내가 성공하는 때, 대박나는 때, 언제입니까?"라고 묻는 그 질문은, 때로는 하나님 보시기에 "방향이 틀린 질문"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무시해서 침묵하시는 게 아닙니다. 여러분이 더 크고 위대한 '하늘의 일' 하나님의 사명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잠시 침묵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라보길 원하는 하나님의 사명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본론 2: '권능' - 엘리야의 질주를 배우라
본론 2: '권능' - 엘리야의 질주를 배우라
예수님은 "때는 알 필요 없다"고 하신 뒤, 제자들이 진짜 붙잡아야 할 대안을 주십니다. 사도행전 1장 8절 말씀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리라"
예수님은 '시기'를 묻는 제자들에게 '능력'을 약속하셨습니다. 왜일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이 승천하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능한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그들은 예수님과 함께했던 복음의 사역들을 지금 하나도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증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열정만으로는 로마는 커녕 자신의 두려움 하나도 이길 수 없었죠.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에게 '성령의 권능'을 입혀주시겠다고 약속합니다.
이 '권능'이 무엇인지 설명하기 위해 구약 성경의 한 장면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바로 '엘리야와 아합의 병거' 이야기입니다(열왕기상 18장).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승리한 엘리야는 3년 반의 가뭄을 끝내는 비가 올 것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악한 왕 아합에게 "이제 곧 비가 내리니 비에 막히지 않도록 마차를 타고 빨리 내려가소서"라고 말합니다. 당시 아합 왕은 왕이 타는 '병거(전차)'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튼튼한 말들이 끄는 병거는 당대 최고의 속도와 힘을 자랑합니다. 아합은 그 병거를 타고 빗속을 뚫고 자신의 성 이스르엘 성으로 전력 질주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놀라운 장면을 기록합니다.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왕상 18:46)
여러분, 상상이 되십니까? 엘리야는 늙은 선지자입니다. 그에게는 말도 없고, 병거도 없습니다. 맨몸과 맨발입니다. 그런데 '여호와의 능력(권능)'이 임하자, 그는 말들이 끄는 왕의 병거를 앞질러 달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권능입니다.
행복한 청년 여러분, 세상 친구들을 보면 '아합의 병거'를 탄 것 같아 부러울 때가 있습니다. "쟤는 부모님 잘 만나서 유학 가고, 쟤는 스펙이 좋아서 대기업 가는데, 나는 맨발이구나." 우리는 자꾸 병거(환경, 스펙)아 없어서 늦게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아합의 병거를 부러워하지 마라. 너에게는 '여호와의 능력'이 임할 것이다."
성령이 임하시면,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자연적인 힘을 얻습니다. 그것은 맨발로도 병거를 앞지르는 영적인 추진력입니다. 그 영적인 추진력으로 무엇을 합니까? 세상이 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을 닮아 세상에서 구원의 증인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의 힘과 노력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여러분을 힘들게 하는 그 고달픈 환경은, 여러분을 주저 앉히려는 곳이 아닙니다. 내 힘(맨발)으로는 안 되기에, '하나님의 능력'을 덧입도록 허락하신 기회의 장소라는 것입니다.
본론 3: 청년들을 위한 두 가지 적용
본론 3: 청년들을 위한 두 가지 적용
그렇다면 이 성령의 권능을 입고 오늘을 사는 것, 그럼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1) '하늘만 쳐다보는 자'가 아니라 '땅을 밟는 증인'이 되십시오.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 제자들은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고 책망합니다. 많은 청년이 힘든 현실을 잊기 위해 도피합니다. "빨리 주님이 오셔서 세상이 끝났으면 좋겠다" 라며 종말론적 도피를 하거나, 현실의 책임을 회피합니다. 하지만 독일의 루터교 신학자 뱅겔은 “종말의 때는 멀지만 가깝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그 시간 거리의 멀고 가까움을 상관할 것이 없이 그저 오늘 근면히 주님을 섬길 뿐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령의 능력을 받은 사람은 오늘 내게 주어진 삶의 현장, 일상에서의 자리, 아르바이트의 자리, 독서실의 한 자리, 직장의 업무를 사소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곳이 바로 내가 예수님의 증인이 되어야 할 '땅 끝'임을 알고, 그 자리에서 치열하게 성실함으로 승부합니다. 오늘 내게 주신 사명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진짜 기다림입니다.
2) '고아같은 불안'을 버리고 '아들의 확신'을 가지십시오.
우리가 "언제입니까?"라고 끊임없이 묻는 내면의 깊은 곳에는 '불안'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잊으신 건 아닐까?", "이러다 나만 낙오자가 되는 건 아닐까?" 하는 마음, 바로 '고아의 영'입니다. 그러나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 내면에서 가장 먼저 바뀌는 것은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는 신뢰의 회복입니다. 내면의 적용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의 침묵을 '거절'로 해석하지 않고 '신뢰의 훈련'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아빠가 나에게 가장 좋은 때를 알고 계셔. 내가 정한 때에 안 주시는 건, 나를 미워해서가 아니라 더 완벽한 하나님의 타이밍을 위해서야." 이 내면의 단단한 신뢰가 회복될 때, 우리는 환경이 변하지 않아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결론: 내 시간표를 찢고 하나님의 미션에 탑승하라
결론: 내 시간표를 찢고 하나님의 미션에 탑승하라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우리는 자꾸 내 인생의 시간표를 짜놓고 하나님께 결재해달라고 조릅니다. "25살엔 졸업, 27살엔 취업, 30살엔 결혼..." 그리고 그 시간표대로 안 되면 실패했다고 좌절합니다. 이제 그 '나만의 시간표'를 찢어버리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의 거대한 미션에 탑승하십시오.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향한 가장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엘리야가 자신의 힘이 아니라 여호와의 능력으로 병거를 앞질렀던 것처럼, 오늘 여러분도 내 힘을 빼고 성령의 능력을 구하십시오.
"주님, 언제입니까?"라고 묻는 대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님, 나는 때를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습니다. 오늘 나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이 답답한 현실을 뚫고 나아가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이 믿음으로 한 주간을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찬양 -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주님, 나는 때를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을 믿습니다. 오늘 나에게 성령의 권능을 주셔서, 이 답답한 현실을 뚫고 나가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께 주여 한번 크게 외치고! 성령의 권능을 구하며 결단합시다! 주여!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는 늘 남들과 비교하며 나의 타이밍을 계산하느라 불안했습니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하나님을 원망했던 우리의 조급함을 용서해 주시옵소서. 이제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에 온전히 맡깁니다. 대신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의 권능을 부어 주시옵소서. 세상의 병거를 부러워하지 않고, 여호와의 능력을 덧입어 오늘이라는 경주를 매일 기쁨으로 달리게 하옵소서. 내면의 불안을 잠재우고, 현실의 자리를 성실하게 지키는 예수님의 증인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