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 예수그리스도를 푯대로 달려가는 한해가 됩시다.새 설교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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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views2026년 1월 9일 새해 첫 설교 예수소망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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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예수그리스도를 푯대로 달려가는 한해가 됩시다.
본문: 빌립보서 3장 12-16절
12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13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15그러므로 누구든지 우리 온전히 이룬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어떤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16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느덧 2025년이 지나고 2026년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한 해를 맞이하면서 어떤 새해 다짐이나 목표를 세우셨습니까? 아니면 이루시고자 하는 소망과 기도 제목이 있으십니까?
모두가 같은 새해를 맞이하고 시작 하지만 우리의 삶은 각자의 목표에 따라 다양한 갈림길로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좋은 학교를 가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성공 신화를 써 내려가려는 사업가 등 많은 이들이 청사진을 그리며 올 한해를 맞이합니다. 그러한 다양한 목표 가운데 오늘 본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목표가 모두 한 곳을 지향해야 함을 오늘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목표가 무엇인지 오늘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먼저 본문의 배경을 살펴 보겠습니다.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쓴 옥중서신으로 로마의 황제 네로가 통치하였던 시기였습니다. 로마 황제 네로는 AD 54-68년까지 황제로 재위하였는데 황제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독교를 박해 했습니다. 특히 로마 대화재 사건 이후에는 그 박해가 더욱 극에 달했는데 이때 순교한 사도가 베드로와 바울이였습니다. 박해로 인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은 우리가 보지 않아도 고난 그 자체 였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한 때 사도 바울은 죄수로 네로 황제의 칙령을 기다리고 있는 가택 연금 가운데서 빌립보 성도들을 향하여 오늘 본문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언제 죽음을 맞이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서신을 보냈다는 사실은, 사도 바울이 빌립보 교회를 얼마나 깊이 사랑하고 있었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이는 마치 죽음을 앞둔 부모가 세상에 남겨질 자녀에게 삶의 방향을 분명히 일러주는 마지막 유언과도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권면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좌절하지 말고 기쁨으로 푯대를 향해 달려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빌립보서 3장에서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는 유대인으로서 혈통이나 율법적인 의, 종교적인 열심을 자랑하는 것 모두를 배설물로 여겼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만이 가장 가치있는 것이라 말합니다.
반대로 교회 안에서 율법과 행위로 의를 얻으려 했던 이들을 향해 ‘개들, 행악한자들’이라고 강하게 경고하면서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라 말합니다. 이는 잘못된 가르침이 성도들의 시선을 예수님에게서 떼어 놓고, 잘못된 목표로 나아가게 하기 때문이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그리고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분명히 말합니다. 성도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자 분명한 목표가 오직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전체적인 배경을 이해하시면서 2026년을 맞이하는 우리가 어떤 푯대를 향해 나아가야 하는지 오늘 본문을 통해 함께 살펴보는 시간이 되길 원합니다.
본론
12절: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아멘.
사도 바울은 ‘이미 얻은 것이 아니라 온전히 이룬것도 아니다’ 말합니다. 이 표현은 이미와 아직이라는 종말론적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이 땅에 사람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를 대신 감당하셨고 이로 말미암아 성도는 구원을 얻게 되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구원이 이미! 시작된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종말적으로 예수님의 재림의 순간은 도래하지 않았습니다. 이 사실을 사도 바울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온전히 이루어질 날을 바라보며 살아갔던 것입니다. 그는 매일의 삶을 이미와 아직 사이에서 예수님의 재림과 몸의 부활을 소망 가운데 기다렸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 또한 이미 구원받은 백성이지만, 동시에 장차 이루어질 예수님의 재림으로 완성될 온전함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는 갓난 어린 아이가 부모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았다고 해서 그 순간 모든 것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법적으로는 분명히 상속자이지만 실제로 유산을 온전히 소유하고 누리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처럼 우리 역시 이미 구원의 상속자이지만, 완전한 구원의 소유는 아직 앞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장차 이루어질 그 날을 바라보며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간다.” 말합니다.
성도의 삶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놓치지 않고 계속적으로 인내하며 달려가는 삶입니다. 이 삶은 나의 의지로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닌 예수님께서 붙잡아 주셨다 말합니다. 이 표현은 수동태적 의미로 사도 바울의 믿음이 자신의 결단이나 의지에서 시작된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그의 믿음은 다메섹 도상에서 친히 찾아오신 예수님의 인격적 만남에서 시작 되었습니다.
오늘날 우리 역시 같은 은혜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의 삶을 시작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예수님의 붙잡힘 안에 살아가야 합니다. 상속을 받았다고 해서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양들이 울타리 안에 있을 때 비로서 자유를 누리고 목자의 보호를 받을 수 있듯이 성도 역시 예수님 안에 거할 때에 안전해 질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올 한 해, 어떤 목표를 세우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까요?
나의 생각과 나의 의가 반영된 목표가 아니라, 주님께서 원하시는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 잡힌 바 된 그리스도인들의 참된 모습입니다. 예수님께 붙잡힌 성도는 나 자신을 위한 목표보다 이웃을 위한 목표를 세우게 되며, 나의 유익보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는 삶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사랑과 헌신, 봉사 그 과정 속에서 성도는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가고 우리의 삶 전반에서 예수님의 의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닮아감으로 그리스도인의 향기가 저 멀리까지 퍼져나가는 복 된 한 해를 누리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예수님께 붙잡힌 자. 목표를 정하고 그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성도에게 다음으로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은 “잡으려고 달려간다.”라고 말합니다.
얼마 전 겨울 방학을 맞은 자녀들에게 저는 방학 시간표를 짜 오라고 말했습니다. 방학이 되면 생활 습관이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이 가져온 시간표를 보니 하루가 아주 빽빽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일어나는 시간, 공부하는 시간, 밥 먹는 시간, 잠자는 시간, 숙제하는 시간까지 세세하게 적혀 있었습니다. 그 시간표를 보며 저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과연 이걸 다 실천할 수 있을까.
성숙한 그리스도인들의 삶에는 반드시 실천이 뒤따라야 합니다. 생각과 마음속 결심으로만 그치는 것이 아닌 우리의 삶의 자리에서 한 걸음씩 옮겨 가는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밥을 먹지 않고 생각만으로 생명을 유지 할 수 없습니다. 숟가락 뜨고 젓가락으로 음식을 섭취 하여야 합니다. 주님께 나아가는 실천. 그것의 대표적인 실천이 바로 기도하는 삶입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교제를 가능하게 하고 또한 기도는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합니다.
기도의 실천이 바로 예수님을 붙잡는 삶인 것입니다.
올 한 해, 주님을 닮아가는 실천을 한 걸음씩 내딛어 가시길 소망합니다. 어린아이처럼 아장아장 걸어도 괜찮습니다. 미약한 걸음이여도 주님은 귀히 여기시고 택한 자녀를 포기하지 아니하십니다. 이 푯대를 향해 나아가는 실천의 삶이 결국 우리를 하늘의 시민권자로 인도할 것입니다.
푯대를 향해 나아가기 시작했다면 다음은 달려가는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잡으려고 달려간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사도 바울이 사용하는 헬라어 *‘디오코(διώκω)’*는 단순히 빠르게 움직인다는 뜻이 아니라, 목표를 분명히 두고 끝까지 추적하여 좇는 삶의 태도를 의미합니다.
한때 사울은 이 단어의 의미 그대로, 그리스도인들을 끝까지 추적하며 핍박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만난 이후 그는 더 이상 교회를 핍박하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좇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좇고 있습니까? 사울과 같은 삶입니까? 아니면 사도 바울과 같은 예수님을 좇는 삶입니까? 가장 내게 유익하고 가장 가치 있는 일은 푯대이신 예수님을 좇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푯대 이신 예수님을 좇아가는 길. 결코 쉬운 길이 아닙니다. 그 길은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길이 아니라 자기를 부인하는 길이고, 높아지는 길이 아니라 낮아지는 길입니다. 또한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는 기도처럼, 자신의 뜻보다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는 길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위하여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그리스도인 또한 자기 십자가를 지고 복음을 따라 걸어가는 고난의 길입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길을 외면하고 아무도 가지 않으려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아멘. 예수님을 좇지 않고는 하나님 아버지께 올 자가 단 한명도 없습니다. 다른 길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푯대로 삼아 올 한해도 예수님께서 가신 그 길을 좇아 묵묵히 달려가시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 되시길 원합니다.
오늘 말씀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이 각기 다른 삶의 자리에서 살아왔고, 신앙의 자리와 걸음의 속도도 서로 다르다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이 염려한 것은 그 차이 자체가 아닌 성도들이 서로 다른 방향을 향해 흩어지는 것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서 3장 16절에서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 말합니다. 이를 바른성경에서는 ‘오직 우리가 어디에 이르렀든지 같은 길을 좇아가도록 하자’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이는 예수님께 붙잡힌 그 자리에서 같은 푯대를 바라보며 같은 길로 함께 나아가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예수소망교회 역시 현실적인 문제들에 노출되어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 성격의 차이, 신앙의 표현 차이가 때로는 우리를 멀어지게 하고 갈라 놓으려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한 모든 상황 속에서도 한 가지는 분명히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푯대입니다! 예수그리스도를 푯대로 삼고, 예수님이 가신 길을 함께 좇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6년을 맞이하는 예수소망 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같은 푯대를 바라보는 교회, 각자의 걸음은 달라도 같은 방향을 포기하지 않는 교회, 서로를 정죄하기보다 함께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는 공동체 말입니다.
이미 예수님께 붙잡힌 자로서, 온전함을 향해 가는 길 위에 선 우리가, 오늘도 같은 길로 함께 걸어가길 원합니다. 푯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분이 가신 길을 따라 묵묵히 달려가길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푯대로 삼는 올 한해가 이 땅에서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로써 구원의 기쁨을 함께 누리고 예배하며 찬양하는 복 된 삶이 되시길 예수님 안에서 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