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09 수련회 셋째날 집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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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20:24–29 NKRV
24 열두 제자 중의 하나로서 디두모라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이르되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그 상처가 나를 살렸습니다

요한복음 20:24-29
수련회 마지막 날 저녁 집회 | 약 30-40분

서론: 세 번의 말씀을 돌아보며

이번 수련회 동안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에 대해 함께 나눴습니다.
첫째 날, 갈라디아서를 통해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 안에는 이미 예수님의 흔적이 있습니다.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게 아닙니다. 우리 모두에게 있습니다.
둘째 날, 야곱을 통해 배웠습니다. 그 흔적은 하나님과 씨름하고 깨어질 때 더 깊어집니다. 야곱의 절뚝거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증거였습니다.
오늘은 마지막 날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흔적을 발견하고 새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예수님의 흔적을 발견하는게 그리고 그 흔적을 새기는 것이 목적이 아니다. 목적은 그래서 우리가 이 땅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이다.

첫째, 왜 부활하신 예수님께 상처가 남아 있었습니까?

여기서 잠깐 멈춰서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완전히 새로운 몸으로 일어나셨습니다. 부활의 몸은 더 이상 죽지 않는 몸입니다. 완전한 몸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예수님의 손에는 여전히 못 자국이 있었습니다. 옆구리에는 여전히 창에 찔린 상처가 있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예수님은 그 상처를 없앨 수 있으셨습니다. 완전히 깨끗한 몸으로 부활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부활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1. 그 상처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증명합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죽으시는 것을 봤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봤습니다. 못이 박히고, 창에 찔리는 것을 봤습니다.
부활하신 분이 정말 그 예수님이 맞는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상처가 증거입니다. "내가 그때 그 예수다. 십자가에서 죽은 바로 그 사람이다. 이 상처가 증거다."
예수님은 유령이 아니셨습니다. 환상이 아니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죽으셨던 바로 그분이 실제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2. 그 상처는 예수님의 사랑을 보여줍니다

예수님의 손에 있는 못 자국은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이 손에 못이 박혔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있는 상처는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해 찔렸다."
그 상처는 단순한 상처가 아닙니다. 사랑의 증거입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주는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그 상처를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사랑의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너를 이만큼 사랑한다. 이 상처가 증거다."

3. 그 상처는 우리의 구원을 확증합니다

이사야 53장 5절 말씀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예수님의 상처는 우리의 치유입니다. 예수님의 찢어짐은 우리의 회복입니다.
그 상처가 남아 있다는 것은 우리의 구원이 완성됐다는 증거입니다. 값이 다 치러졌다는 증거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선언의 표시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하늘에서 그 상처를 가지고 계십니다. 그 상처는 영원히 우리를 위한 사랑의 증거로 남아 있습니다.

4. 그 상처는 우리를 위해 남겨두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예수님은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의심한다고 야단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만져보라고 하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도마가 믿을 수 있도록. 우리가 믿을 수 있도록.
예수님은 그 상처를 우리를 위해 남겨두셨습니다. 우리가 의심할 때, 흔들릴 때, 힘들 때 볼 수 있도록. "나는 정말 너를 위해 죽었다. 이 상처가 증거다. 믿어라."

둘째, 도마의 의심은 믿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도마는 '의심 많은 제자'로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는 도마를 부정적으로 볼 때가 많습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의심쟁이". 하지만 도마의 마음을 조금 더 들여다봅시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봤다!"
그때 도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도마도 예수님을 사랑했습니다.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다녔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기적을 보고, 함께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그런데 다른 제자들이 말합니다. "예수님이 살아나셨어! 우리가 봤어!"
도마는 믿고 싶었을 겁니다. 너무나 믿고 싶었을 겁니다. 하지만 한 번 상처받은 마음은 쉽게 열리지 않습니다. 다시 실망할까 봐 두렵습니다.
도마의 의심은 불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도마의 의심은 간절함이었습니다. "나도 믿고 싶다. 너무 믿고 싶다. 하지만 다시 실망하면 어떡하나. 확실하게 알고 싶다."
도마가 왜 "못 자국"과 "창 자국"을 말했을까요? 도마는 예수님이 어떻게 죽으셨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서 못 박히시고, 옆구리가 찔리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상처까지 확인해야 정말 그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도마의 의심은 예수님을 향한 간절한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정말 믿고 싶었기 때문에 확실히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도마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래서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도마가 원하는 대로 해주셨습니다. "보고 싶다고? 봐라. 만져보고 싶다고? 만져봐라."

셋째, 도마는 그 상처를 보고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아라.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도마가 정말 손가락을 넣어봤는지,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아마 넣어보지 않았을 겁니다. 아니, 넣어볼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거기 계셨습니다. 상처를 가지고 거기 서 계셨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도마가 그토록 원했던 것은 '확인'이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예수님이 눈앞에 서 계시니 확인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계신 것 자체가 답이었습니다.
도마의 입에서 고백이 터져 나왔습니다.
28절.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것은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신앙고백 중 하나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의'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그냥 주님이 아니라 '나의' 주님. 그냥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가 된 것입니다.
의심하던 도마가 가장 분명하게 고백했습니다. 간절히 믿고 싶었던 그 마음이 마침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넷째, 도마는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성경 본문은 여기까지이지만, 도마의 삶은 계속됐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본 도마는 그 후에 어떻게 살았을까요?
초대교회 역사와 전승에 따르면, 도마는 놀라운 삶을 살았습니다.

도마는 가장 멀리 간 제자가 됐습니다

베드로는 로마로 갔습니다. 바울은 지중해 세계를 돌았습니다. 그런데 도마는 어디로 갔습니까?
인도까지 갔습니다.
당시 인도는 세상 끝이었습니다. 로마 제국 밖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이었습니다. 언어도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종교도 다른 완전히 낯선 땅이었습니다.
"직접 보고 만져봐야 믿겠다"던 그 도마가, 세상 끝까지 갔습니다.
왜 갔을까요? 예수님의 상처를 봤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사랑을 알고 나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도마는 서기 52년경 인도 남부 케랄라 지역에 도착했다고 전해집니다. 거기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교회를 세웠습니다.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됐습니다.

도마는 자기 몸에도 같은 흔적을 새겼습니다

도마는 인도에서 20년 넘게 사역했습니다. 그리고 서기 72년경, 인도 첸나이 근처에서 순교했습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전승에 따르면 도마는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창에 찔렸습니다.
예수님의 옆구리에 있던 그 상처. 도마가 직접 봤던 그 창 자국. 도마도 같은 방식으로 생을 마감했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도마는 예수님의 창 자국을 봤습니다. "내 손을 네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도마는 그 상처를 봤습니다. 그리고 도마의 몸에도 같은 흔적이 새겨졌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본 사람이 자기 몸에도 같은 상처를 받은 것입니다.
오늘날 인도 첸나이에는 '성 도마 대성당'이 있습니다. 도마가 순교한 장소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인도에는 '도마 기독교인'이라고 불리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습니다. 2000년 전 도마가 세운 교회의 후손들입니다. 지금도 수백만 명이 됩니다.

도마의 변화를 다시 봅시다

처음 도마는 어떤 사람이었습니까?
의심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너무 믿고 싶어서 확인하고 싶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간절했기 때문에 신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본 후 도마는 어떻게 됐습니까?
가장 멀리 간 사람이 됐습니다. 가장 담대한 사람이 됐습니다. 목숨까지 내놓은 사람이 됐습니다.
무엇이 도마를 바꿨습니까?
예수님의 상처였습니다. 그 못 자국, 그 창 자국이 도마를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습니다. 간절히 믿고 싶었던 그 마음이 예수님의 상처를 보는 순간 확신이 됐습니다. 그 확신이 도마를 세상 끝까지 보냈습니다.

다섯째, 우리도 달라져야 합니다

청년 여러분, 이 이야기가 우리에게 하는 말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본 사람은 달라집니다. 가만히 있을 수 없습니다. 예전처럼 살 수 없습니다.
혹시 여러분 중에 도마 같은 분이 있습니까?
믿고 싶은데 확신이 안 서는 분. 예수님을 따르고 싶은데 의심이 드는 분. 다른 사람들은 은혜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잘 모르겠는 분.
괜찮습니다. 도마도 그랬습니다.
도마의 의심은 불신앙이 아니었습니다. 너무 믿고 싶었기 때문에 확실히 알고 싶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런 도마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상처를 보여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의심도 아십니다. 우리의 연약함도 아십니다. 예수님은 꾸짖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 상처를 보여주십니다. "이것이 너를 향한 내 사랑의 증거다. 믿어라."
이번 수련회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흔적이 깊어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오늘, 그 흔적의 원본을 봤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옆구리에 있는 상처를.
이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떻게 살 겁니까?

1. 그 상처를 매일 기억하십시오

도마는 예수님의 상처를 평생 잊지 않았을 겁니다. 눈을 감으면 그 못 자국이 보였을 겁니다. 인도에서 힘들 때마다 그 상처를 떠올렸을 겁니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저 상처를 받으셨다. 그 사랑이 나를 여기까지 보냈다.'
여러분도 그렇게 사십시오.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매일 기억하십시오. 아침에 눈을 뜰 때, 밤에 잠들 때, 힘들 때, 외로울 때 기억하십시오.
'예수님의 손에 못이 박혔다. 나 때문에.' '예수님의 옆구리가 찔렸다. 나를 위해.' '그만큼 나를 사랑하신다.'
이 기억이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이 기억이 우리를 일으켜 줍니다. 이 기억이 우리를 끝까지 가게 합니다.

2. 그 사랑을 전하십시오

도마는 인도까지 가서 예수님을 전했습니다. 무슨 말을 했을까요?
아마 이렇게 말했을 겁니다.
"나는 예수님의 상처를 직접 봤습니다. 그 못 자국을, 그 창 자국을 봤습니다. 나는 처음에 믿지 못했습니다. 아니, 너무 믿고 싶어서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실망할까 봐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셔서 보여주셨습니다. 나를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상처를 보여주시면서 '믿는 자가 되라'고 하셨습니다. 그 상처가 우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나는 그분을 만났습니다."
도마는 자기가 경험한 것을 전했습니다.
여러분도 전할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손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 안에 새겨진 흔적이 있습니다. 변화된 삶이 있습니다. 경험한 은혜가 있습니다.
그것을 전하십시오. 어려운 말 할 필요 없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을 말하면 됩니다.
"나도 의심했습니다. 나도 힘들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나를 붙들어 주셨습니다."
인도까지 갈 필요 없습니다. 여러분의 학교에서, 직장에서,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전하면 됩니다.

3. 새로운 흔적을 두려워 말고 새기십시오

도마는 예수님의 창 자국을 봤습니다. 그리고 도마 자신도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예수님과 같은 흔적을 자기 몸에 새긴 것입니다.
우리도 새로운 흔적을 새기며 살아야 합니다.
어떤 흔적입니까?
예수님 때문에 생기는 흔적입니다. 복음 때문에 감수하는 불편함입니다. 믿음 때문에 지불하는 대가입니다.
정직하게 살기로 했더니 손해 봤습니다. 그것이 흔적입니다. 주일을 지키려고 포기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흔적입니다. 세상과 다르게 살아서 이상한 눈으로 봤습니다. 그것이 흔적입니다. 누군가를 용서하느라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것이 흔적입니다. 믿음을 지키려고 외로웠습니다. 그것이 흔적입니다.
이런 흔적들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피하지 마십시오. 이것이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의 표시입니다.
둘째 날 야곱에게서 배웠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과 씨름한 후 평생 절뚝거렸습니다. 하지만 그 절뚝거림은 부끄러움이 아니라 하나님을 만난 증거였습니다.
도마도 창에 찔려 죽었습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비극이 아니라 예수님을 따른 증거였습니다.
우리의 흔적도 그렇습니다. 예수님 때문에 생긴 흔적은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님의 사람이라는 증거입니다.

4. 끝까지 가십시오

도마는 인도까지 갔습니다. 세상 끝까지 갔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순교했습니다. 끝까지 갔습니다.
청년 여러분, 끝까지 가십시오.
신앙생활이 쉽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중간에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의심이 들 때가 있습니다. 지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도마를 기억하십시오.
도마도 의심했습니다. 도마도 "직접 보지 않으면 확신이 안 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믿지 않으려는 마음이 아니라 너무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도마가 끝까지 갔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본 후로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의심이 있어도 괜찮습니다. 지금 약해도 괜찮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바라보십시오. 그 사랑을 붙드십시오. 그 사랑이 여러분을 끝까지 데려갈 것입니다.

결론: 보지 않고 믿는 자의 복

예수님이 도마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9절.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되다."
이 말씀은 우리를 향한 것입니다.
도마는 예수님을 직접 봤습니다. 상처를 직접 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직접 보지 못합니다. 2000년 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은 복되다."
우리가 바로 그 사람들입니다. 보지 않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보지 않고 믿을 수 있습니까?
성경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예수님의 흔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흔적이 예수님이 살아계시다는 증거입니다.
보지 않아도 믿습니다. 그래서 복됩니다.
이번 수련회가 끝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흔적에 대해 배웠습니다. 우리 안에 이미 있는 흔적을 발견했습니다. 그 흔적이 깊어지는 방법을 배웠습니다. 그 흔적의 원본을 봤습니다.
이제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학교로, 직장으로, 가정으로 돌아갑니다.
거기서 어떻게 살겠습니까?
도마는 예수님의 상처를 보고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너무 믿고 싶어서 의심했던 자가, 가장 멀리 간 자가 됐습니다. 세상 끝까지 가서 복음을 전하고, 자기 몸에도 같은 흔적을 새기며 생을 마감했습니다.
우리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상처를 기억하십시오. 그 사랑을 전하십시오. 새로운 흔적을 두려워 말고 새기십시오. 끝까지 가십시오.
도마가 고백했습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오늘 우리도 고백합시다.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상처가 나를 위한 것임을 압니다. 그 사랑에 감사합니다. 나는 그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살겠습니다. 도마처럼 끝까지 가겠습니다."

마무리 기도

사랑하는 하나님 아버지,
이번 수련회를 통해 예수님의 흔적에 대해 배웠습니다. 감사합니다.
예수님, 주님이 부활하셨을 때 상처를 그대로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 상처를 지우지 않으셨습니다. 저희를 위해 남겨두셨습니다. 저희가 의심할 때, 힘들 때, 볼 수 있도록.
그 상처를 봅니다. 손에 있는 못 자국을 봅니다. 옆구리에 있는 창 자국을 봅니다. 그 상처가 저를 위한 것임을 압니다. 그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도마도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너무 믿고 싶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저희도 그렇습니다. 때로 의심합니다. 때로 흔들립니다. 하지만 믿고 싶습니다. 따르고 싶습니다.
주님, 저희의 연약한 마음을 아시고 붙들어 주십시오. 도마에게 상처를 보여주신 것처럼, 저희에게도 주님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십시오.
도마처럼 고백합니다.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도마가 그 상처를 보고 완전히 달라졌듯이, 저희도 달라지게 해 주십시오. 그 사랑을 기억하게 해 주십시오. 그 사랑을 전하게 해 주십시오. 새로운 흔적을 두려워하지 않게 해 주십시오. 끝까지 가게 해 주십시오.
이제 저희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저희가 예수님의 흔적을 가진 자로 살게 해 주십시오. 도마처럼, 바울처럼, 야곱처럼, 흔적을 가진 자로 세상에서 살게 해 주십시오.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되다 하셨습니다. 저희가 그 복된 자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Claude는 AI이며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응답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Opus 4.5Claude는 AI이며 실수할 수 있습니다. 응답을 다시 한번 확인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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