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이후의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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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alm 8 NKRV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 1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2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3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 9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찬송가: 435장 나의 영원하신 기업
Genesis 9:18–29 NKRV
18 방주에서 나온 노아의 아들들은 셈과 함과 야벳이며 함은 가나안의 아버지라 19 노아의 이 세 아들로부터 사람들이 온 땅에 퍼지니라 20 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 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 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전형상화 (말씀)
창세기에서 노아의 이야기는 세부분으로 나뉩니다. 노아의 족보/ 노아의 홍수 / 그리고 노아의 언약 입니다. 어제 우리가 묵상한 말씀이 노아의 언약에 대한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다시 언약을 맺으시고 온 땅의 생물들과도 이 언약이 확대 됩니다. 하나님의 홍수 심판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생명체들을 임했습니다.(노아와 그 가족 8명과 방주로 구원하신 생명체를 제외) 따라서 성경에서 방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만 생명이 있습니다. 창조한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할 정도로 선하게 창조 되었는데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피조물 인간의 반역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와서 모든 창조 질서가 일그러졌습니다. 죄는 죄를 낳고 내리막길이라 자연적으로 증폭 합니다. 아담과 하와의 자녀 아벨과 가인이 실패하고 셋을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이러졌지만 셋의 자손 또한 죄인으로 태어나 죄 가운데 살아갈 수 밖에 없었고 결국은 더 이상 창조의 질서를 보존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하나님의 홍수 심판인 섭리 가운데 세상에 펼쳐 졌습니다.
그리고 노아와 언약을 맺으시면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과 역사는 다시 시작합니다. 꺼진듯 하지만 다시 피어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다시금 그 결국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미래의 모습이 그려집니다. 죄가운데 태어나는 인간의 실존 입니다. 로마서 3장 10-18절 말씀이 인류의 정확한 상황인 것입니다.
Romans 3:10–18 NKRV
10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13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15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16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17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18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노아는 농사를 짓고 첫 수확에 즐거워 포도주를 먹다가 취하여 실수를 합니다. 벌거벗음으로 하체를 드러냅니다. 실수는 수치를 낳습니다. 좋은날, 기쁠때 절제가 필요한 것은 우리의 연약함(죄성) 때문입니다. 그 실수를 본 노아의 세 아들중 작은 아들 함은 아버지의 실수를 드러내어 조롱하고, 샘과 야벳은 옷으로 가려줍니다. 그리고 이를 알게 된 노아는 함은 저주를 하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합니다. 그리고 노아는 350년을 더 살고 950세에 죽습니다. 여기까지가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형상화 (현재적 상황)
오늘 말씀을 통해 오늘의 우리의 모습을 살펴보면 구원과 구원 이후의 삶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독교는 구원에 대한 이야기 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속량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고 자녀가 되었다. 에서 끝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특히 한국 교회는 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신앙이다 보니 구원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구원에 대하여 집중하는 경향이 큽니다. 이것은 너무 바르고 좋은 신앙의 시작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구원 이후에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시는 (마란아다,마라나타) 그날을 바라 보지만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삶이 남아 있습니다. 구원 이후의 신자들의 삶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 들이고 복음을 삶으로 살아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이 사실을 언제나 강조합니다.
노아와 그 아들들은 홍수 심판에서 방주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언약속에 새롭게 시작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어디서 입니까? 이 땅 입니다. 이것을 간과 하면 우리는 목적과 방향을 다시 잃어 버리게 됩니다. 세상의 사람들도 삶의 목적이 있습니다. 성공 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더 많은 것을 가지고 소유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아내, 능력있는 남편을 가지고 소유하고 싶어 합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좋은 집 좋은차 가지고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받으며 부와 명예와 권력과 인정을 받으며 시간적인 여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꿈을 이루는 시작이 건물주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 목표를 이루면 어떻습니까? 그 목표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을 얻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앞선 모든 우상은 처음에는 자신을 자유케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실제로 그런 기쁨을 주고 보여 주지만, 내가 통제한다고 생각하는 우상이 나를 통제하는 상황에 직면 하게 됩니다. 나의 기쁨과 만족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한 돈과 지위와 권력이 나를 묶고 이전보다 더 우리를 노예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우상의 특성 입니다. 술은 우리의 마음을 즐겁게 하지만 그것이 우상이 되면 술은 더 이상 즐거움이 아니라 재앙 입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는 처음에 그것은 즐거움 이었지만 어는 순간 그 포도주는 노아를 통제해 버립니다. 그렇게 실수를 하고 수치를 당하는 자리에 가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그렇게 나락으로 떨어 집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의 종들을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왜 살아가고 무엇을 위해 살아가는지를 잃어버리면 그 다음은 오로지 자기 이익만 남습니다. 모든 판단의 기준이 이것이 내게 무슨 이익이지? 이것이 기준이 됩니다. 우리가 구원의 기쁨 , 감격을 잃게되면 신자라도 세상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이 살아가지요? 우리의 구원이 무엇입니까? 내가 하나님이 되어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살아갈 수 밖에 없는 죄많은 인생이 하나님이 우리의 주님이 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는 전환이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을 즐거워 하는 것이 이제 저와 여러분 삶의 목적과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삶의 목적과 이유를 잊어 버리는 순간 우리는 다시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존재로 전락 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기억하십시오! 구원은 그리스도인 삶의 전부가 아니라 시작입니다. 구원 받은 우리는 삶의 목적과 이유를 회복하고 그것을 위해 살아가는 새로운 피조물이 된것입니다.
오늘 노아는 다시 그 부분에서 실패를 맛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실수는 함의 나쁜 태도를 유발합니다. 창세기 4:7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유감스럽지만 노아가 실수를 하지 않았으면 함의 저주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죄가 우리 앞에 항상 있지만 그리고 우리를 당기지만 우리는 죄에 끌려 가면 안됩니다. 셈과 야벳은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교회 안에서 리더들의 실수를 많이 봅니다. 아니 리더가 아니더라도 교회안에는 죄인들이 모이는 곳이기에 성도간에도 서로 알고 관계를 맺다보면 그 안에 사람들의 허물을 발견 안할수가 없습니다. 그럴때 우리는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함이 아버지의 벌거벗음을 형제들에게 알리듯이 부지런히도 우리도 교인들의(교역자) 허물을 형제들에게 알립니다. 덮어두지 않습니다. 스스로를 의롭다 주장할 기회를 죄인들은 놓치지 않습니다. 말을 옮깁니다. 일을 키우는데 일가견이 있습니다.
재형상화 (적용과 대안제시)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두가지를 전합니다.
첫째, 구원이 끝이 아니다. 시작입니다.. 구원받은 자녀는 하나님의 자녀 답게 삶을 살아야 합니다. 삶의 목적과 이유가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님 나라여야 합니다.그렇기에 하나님을 즐거워 하고 그 영광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이제는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구원 받기 전에는 할수 없었던 삶, 삶의 목적과 이유를 모르고 오직 자신의 이익이 판단 기준이었던 삶에서 떠나 하나님의 백성으로 자녀로 부름받아 그분의 나라를 위해 기쁘게 함께 하는 삶으로의 전환 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 수직적인 부분에서의 변화 입니다.
두번째, 수평적인 관계에 있어서 교회안에서 성도들과 교역자의 허물과 실수를 드러내어 알리는 것이 아니라 옷으로 덮는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노아의 두 아들 셈과 야벳의 행동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누군가의 잘못을 비판이나 비난을 하지 않는것은 모른척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도 창세기 9:23 “23 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옷을 가져가 덮어 주는 것입니다. 못본척 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덮어주는 행위가 바로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입니다. 셈과 야벳이 함께 했지요~~ ! 우리에게 형제 자매들의 허물이 보일 때 그들의 약함(죄성)을 위해 긍휼히 여기고 함께 하나님 앞에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긍휼이 여기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헤아림으로 우리도 하나님 앞에 헤아림을 받는다는 사실을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세요~~ , 저도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다른 사람의 허물을 사실 가장 믿고 사랑하고 친한 권사님과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말해도 그 갈증 (자기의)이 해결이 안됩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또 다른 사람을 찾고 여기 저리 말을 옮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마음을 모두 터 놓으십시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나신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입니다. 기도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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