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감당 못할 기쁨 2026 0114 행5:2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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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가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31 이스라엘에게 회개함과 죄 사함을 주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32 우리는 이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에게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우리에게는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기쁨이 있습니다.
[설교문 원고] 거룩한 불복종: 세상이 감당 못 할 기쁨
[설교문 원고] 거룩한 불복종: 세상이 감당 못 할 기쁨
본문: 사도행전 5장 29-32절, 40-42절
제목: 거룩한 불복종: 세상이 감당 못 할 기쁨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새벽 기도의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많은 '눈치' 속에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회식 자리의 술잔 앞에서, 혹은 취업 면접관의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선택적 침묵'을 강요받습니다. '예수 믿는다고 유별나게 굴지 마라', '적당히 융통성 있게 살아라'라는 무언의 압박입니다." 신앙인으로서의 정체성을 드러내면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우리는 때로 입을 다물고 세상의 흐름에 순응하곤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그런 우리에게 거룩한 충격을 주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사도들은 지금 **'산헤드린 공회'**라는 곳에 잡혀 왔습니다. 이곳은 당시 유대 사회의 입법과 사법을 총괄하는, 대법원이자 국회 같은 최고 권력 기관입니다. 평범한 어부 출신 베드로에게는 쳐다보기도 힘들 만큼 무시무시한 자리였지요. 대제사장은 그들을 추궁합니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하게 금지하지 않았느냐? 그런데 너희가 너희 가르침을 온 예루살렘에 가득하게 하는구나."
세상의 명령은 단순합니다. "침묵하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 위협 앞에서 베드로는 타협하거나 변명하지 않습니다. 29절을 보십시오. 베드로와 사도들은 대답합니다.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오늘 이 아침, 이 사도들의 야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문을 통해 이 거룩한 용기가 어디서 나오는지 세 가지로 나누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완전히 설득된 사람들입니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에 완전히 설득된 사람들입니다.
29절에서 베드로가 말한 '순종하다'라는 단어에 주목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5:29 “29 베드로와 사도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헬라어 원어로 '페이다르케인(πειθαρχεῖν)'이라는 단어가 쓰였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윗사람의 말을 듣다" 정도의 의미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설득되다(페이도)'와 '통치(아르케)'가 합쳐진 말입니다. 직역하면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내 전 인격이 완전히 설득되었다"는 뜻입니다.
베드로의 이 선언은 단순한 반항이 아닙니다. "나는 이미 더 높은 권위, 더 위대한 사랑인 하나님께 완전히 마음을 빼앗겼다. 그래서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를 더 강력하게 이끌어간다"는 소속의 선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교회에서는 하나님의 종이라 하면서, 세상에서는 여론과 사람의 눈치에 설득 당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이 '설득됨(페이다르케인)'은 내 의지로 하는 자기최면이 아닙니다. 바로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 임하셨던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실 때 일어나는 기적입니다. 오늘 이 새벽, 성령의 불이 우리 이성과 감정을 태우사, 억지로 하는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께 압도되어 자발적으로 따르는 '페이다르케인, 설득'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둘째, 우리는 계산하는 자가 아니라 증언하는 자입니다.
둘째, 우리는 계산하는 자가 아니라 증언하는 자입니다.
사도들이 이렇게 담대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들이 전하는 복음의 확신 때문이었습니다. 30절과 31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임금과 구주로 삼으셨느니라."
세상은 예수를 실패자라며 나무에 매달아 저주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다시 살려 만왕의 왕으로 삼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역전의 복음입니다.
이 사도들과 대조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행5:34
34 바리새인 가말리엘은 율법교사로 모든 백성에게 존경을 받는 자라 공회 중에 일어나 명하여 사도들을 잠깐 밖에 나가게 하고
바로 '가말리엘'입니다. 그는 존경받는 율법교사였지만, 사도들을 처형하려는 공회원들에게 이렇게 조언합니다. "내버려 두라. 이 사상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막을 수 없을 것이다." 행5:38-39
38 이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사람들을 상관하지 말고 버려 두라 이 사상과 이 소행이 사람으로부터 났으면 무너질 것이요
39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났으면 너희가 그들을 무너뜨릴 수 없겠고 도리어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될까 하노라 하니
솔직히 말씀드리면, 우리는 베드로보다 가말리엘처럼 살고 싶을 때가 많습니다. 지혜롭고, 점잖고, 무엇보다 손해 보지 않는 안전한 길이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하나님 보시기에 신앙은 계산이 아닙니다. 세상 처세술로는 가말리엘이 정답일지 몰라도, 십자가 앞에서는 오답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신앙은 관망이 아닙니다. 계산이 아닙니다. 사도들은 결과가 어찌 되든, 당장 매를 맞을지라도 지금 여기서 예수를 증언했습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셋째, 세상의 능욕을 하나님의 훈장으로 여기는 기쁨입니다.
셋째, 세상의 능욕을 하나님의 훈장으로 여기는 기쁨입니다.
결국 사도들은 채찍질을 당하고 풀려납니다. 억울하고 분하고, 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이 충격적입니다. 행5:41 41절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41 사도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 공회 앞을 떠나니라
채찍을 맞았는데 어떻게 기뻐할 수 있습니까? 미쳐서가 아닙니다. 여기서 '합당한 자'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타크시오(καταξιόω)'입니다. "가치가 있다", "자격이 있다"는 뜻입니다.
사도들은 그 고난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아, 하나님께서 나를 당신의 고난에 동참할 만큼 '수준 높은 자'로 인정해 주셨구나!"
"내가 주님을 위해 핍박받을 자격(Worthy)이 있다고 보증해 주셨구나!"
오늘날 우리 몸에 채찍 자국은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정직하게 일하다 승진에서 누락된 아픔, 술자리를 거절하다 겪는 은근한 따돌림, 주일을 지키기 위해 포기한 기회들... 세상은 그것을 '미련함'이라 부르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베드로의 채찍 자국과 똑같은 '영광의 훈장'으로 보십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그만큼 '수준 높은 자(카타크시오)'로 인정하신다는 뜻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은 우리를 위협하고, 때로는 우리의 믿음을 조롱할지도 모릅니다. 정직하게 살려고 하면 손해를 보고, 말씀을 따르려 하면 바보 취급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사람의 위협보다 하나님의 위로에 더 깊이 설득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믿음을 지키다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가슴에 가장 영광스러운 훈장을 달아주고 계신 순간입니다.
오늘 하루, 세상의 소리 앞에 움츠러들지 말고, "나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자다"라고 담대히 선포하십시오.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그 거룩한 기쁨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새벽, 세상의 위협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께만 순종했던 사도들의 외침을 듣습니다.
주님, 우리는 때로 사람의 시선이 두려워 침묵했고, 당장의 불이익이 두려워 세상과 타협했음을 고백합니다.
이 시간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함을 부어 주시옵소서.
단순히 억지로 따르는 순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통치에 완전히 설득된 '페이다르케인'의 믿음을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크게 들리게 하시고,
계산하고 눈치 보는 가말리엘의 길이 아니라, 담대히 십자가 복음을 증언하는 사도들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오늘 하루, 믿음을 지키다 겪는 어려움이 있다면, 그것을 부끄러움이 아닌 하나님이 달아주시는 영광스러운 훈장으로 여기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인해 능욕 받는 것을 오히려 기뻐하며,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임금과 구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