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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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오늘 본문의 내용은 노아의 아들인 셈과 그리고 그의 후손인 데라의 족보를 다루고 있습니다.
먼저 셈의 족보는 10절에서 26절까지는 셈의 아들 아르박삿부터 시작해서 데라까지 다루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본문에서 셈의 족보 형태는 누가 누구를 몇살에 낳은 후, 몇년을 살았다라는 내용이 계속 반복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러한 패턴은 앞서 창세기 5장에 기록된 아담의 계보 형식과 매우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차이점이 있다라고 한다면, 창세기 5장의 족보는 특정 인물들에 대해 특별한 언급이 있었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그러한 부분은 없이 단순히 기록만 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또한 눈여겨 볼 점은, 셈의 족보는 앞서 이미 10장 21절에서부터 32절까지 함과 야벳의 족보를 다루면서 함께 다룬 바가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다른 점이 있다고 한다면, 창세기 10장에 나타난 셈의 족보는 각각 자녀들의 이름이 다 나와 있다는 점과 그리고 에벨이라는 자 이후로 족보에 기록된 이름들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에벨에게 두 아들 벨렉과 욕단이 있는데, 10장에서는 욕단의 자손들만 이름이 기록되어 있고, 오늘 본문에서는 벨렉의 후손들만 기록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27절부터 데라가 셈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별도로 족보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어떻게 보면 10장은 욕단 이후의 족보, 오늘 본문은 벨렉 이후의 족보라고 봐도 무방하지 않나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벨렉이라는 자를 주목할 수 있는데, 벨렉의 이름은 앞의 10장 25절을 보아 알 수 있듯이, 나눔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즉, 에벨은 벨렉이 태어났을 때 세상이 나뉜 것을 보고 벨렉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는데, 세상이 나뉜 사건은 바로 오늘 본문 앞에 바벨탑 사건을 가리킵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벨렉은 오늘 본문의 족보 중에서도 중간쯤에 속해 있으며, 족보의 시작은 1절에서 밝히고 있듯이 홍수 사건 이후 2년입니다.
이는 앞의 바벨탑 사건을 통해 알 수 있듯이, 홍수 심판 사건 이후로도 벨렉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인간의 죄성은 여전히 계속 만연해 있었다는 것을 우리로 하여금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가지 추론해볼 수 있는 것은 바벨탑 사건에서 하나님의 신적인 역사가 일어난 후로도, 사람들의 죄성은 여전하였고 별 다를 바가 없었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우선 셈의 후손들은 분명 가계 대대로 그들의 조상 노아가 여호와께서 셈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내용을 들었을 것이고 또한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대대로 노아가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말한 내용을 생각하면서 살아왔다고 한다면, 이 가문 안에서 누군가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살았더라는 내용이 있을 법 합니다.
그러나 창세기 5장에 나타난 에녹이나 또는 라멕처럼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역사 앞에서 어느 누구도 어떠한 구체적인 행동의 정황이 나타나고 있지 않고 그러한 내용에 대해 오히려 침묵하고 있습니다.
에벨 조차도 벨렉을 낳았을 때, 세상이 나뉘어진 것을 보았다고 한다면, 그 역사가 보통의 역사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벨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하였다라는 구체적인 삶의 정황이 앞의 10장에서나 오늘 본문에서도 나타나 있지 않습니다. 이는 그만큼 당시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였다고 추론할 수 있겠습니다.
또한 데라와 관련해서도 여호수아 24:2 에서는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셈 족보의 마지막 주자인 데라도 하나님이 아닌 다른 신들을 섬겼다라는 내용을 통해, 그만큼 당시 얼마나 영적으로 어둡고 소망 없이 살아가고 있는 시대였는지 우리로 하여금 간접적으로 추론할 수 있게 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본문 27절부터는 데라의 족보를 다룹니다. 여기서 주목할 만한 점은, 데라의 족보는 셈의 족보처럼 누가 누구를 몇살에 낳고 몇살을 살았다는 패턴을 따르지 않고 있다라는 점입니다.
데라가 셈의 후손임에도 불구하고, 셈의 족보와 데라의 족보가 동일한 형식으로 하나의 연속성을 가지지 않고 마치 구별된 하나의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족보에서는 데라가 아브람과 나홀 하란을 낳았다는 것과 하란의 죽음, 그리고 데라의 자녀들이 누구에게 장가를 갔는지 아주 개인적인 가정사에 대해 주목하여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마지막 30절에서 사래는 임신하지 못하여서 자식이 없었다는 내용으로 오늘 본문이 마무리가 됩니다.
여기서도 주목할만 한 점은 앞서 셈의 족보에 나온 자들이 자녀를 낳았을 때 나이를 보면 데라 이전까지는 삼십세 전후로 자녀들을 낳았다라고 나와 있습니다.
이러한 양상은 홍수 심판 사건 이후로,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 때 당시 매우 일반적이며 당연한 모습인 것이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데라에 이르러 70세라는 늦은 나이에 자녀들을 낳게 되고, 결국 아브람과 사래에 이르러 임신하지 못하여 자식이 없었다라는 것은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들과는매우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그 당시 고대 근동 문화를 고려해 본다고 한다면,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그 집안에 있어 사회적으로 매우 수치스러운 일로 여겨졌으며,
더 나아가 당시 자녀가 하나님께서 주신 복으로 여겨졌다는 점에서, 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것은 결국 그 복을 누리지 못하는 실패한 자로 간주되었습니다.
노아가 셈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울 정도로 셈 족속에게 그에따른 복이 당연하게 주어지고 누릴 것을 기대를 하였으나, 시대를 거듭할 수록 이와는 정반대의 양상으로 흘러가는 것같이 보입니다.
지금까지의 내용을 통해 생각해볼 수 있는 점은, 지금까지의 정황들만 보았을 때, 노아가 셈의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를 정도로,
그의 후손들이 하나님과의 관계 안에서 그에 걸맞는 복을 누리고 있는 것인가 생각해볼 수가 있습니다.
데라가 다른 신을 섬겼다라는 것은, 더 이상 하나님이 살아계시지 않거나 셈 족속에게 있어 하나님께서 실패하신 것이라 여겼기 때문일 수도 있으며,
사래가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된 모습은 궁극적으로 셈의 하나님이라고 불리움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후손에 대해 침묵하시고 버려두셨다라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나 다름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또한 어떻게 보면, 이 시대 동안 하나님께서 셈 족속에 대해 침묵하시고 버려두신 것 같아 보이는 모습은, 궁극적으로는 온 인류에 대해서 내버려 두시는 영적으로 암울한 시대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뒤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부르시어 결국 셈의 하나님이시라는 말이 결국 언약이라는 내용으로 구체화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본문이 바벨탑 사건 이후의 기록되었다는 것은, 영적으로 암울하고 전혀 소망이 없는 것 같은 그 시대가운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때와 방법에 따라 그분의 역사를 준비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세상의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그러한 모든 정황들이 실패처럼 보이지만, 그 실패들이 오히려 결국에는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능력과 영광을 온전히 드러내는 통로가 된다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오늘날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시대 가운데 하나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고 더이상 교회는 소망 없는 것 같다고 목소리를 내는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방법과 뜻대로 준비하시며 그 일들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반드시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세상적인 관점에서 바라보았을 때는 절망적이고 소망없는 가문에 불과한 아브라함을 주권적인 선택으로 부르시어 그 일을 이루어 나가셨듯이,
오늘날에도, 앞으로도, 세상이 보기에 매우 어리석고 미련한 자들에 불과할지 모르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자들을 당신의 주권적인 선택으로 백성으로 부르시고 삼으시어 반드시 그 온전하신 뜻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분의 백성이자 자녀라는 신분으로 부르셨다는 사실을 믿는 믿음이 있다면,
우리의 생각과 이성으로는 결코 이해할 수 없고 하나님의 역사가 눈에 선명히 보이지 않는다 할지라도, 우리에겐 더 이상 절망과 좌절이 아닌 소망이 반드시 있다는 사실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아야만 합니다.
그렇기에 간구하기는 어떠한 불의하고 암담한 현실과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크신 경륜과 계획 속에 그분의 기쁘신 뜻에 따라 이루실 역사를 기대하시면서,
온전히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며 살아가시는 우리 사랑하는 성도님들 되시길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소망합니다.
함께 기도
오늘 들으신 말씀을 생각하시면서 함께 기도해 주시고,
담임목사님을 비롯하여 부교역자들 그리고 여러 교회를 섬기는 직분자들에게 영육간의 강건함과 맡겨진 사역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우리 교회에 허락하신 사역들이 아버지의 나라를 확장하고 온전히 영광을 올려드리는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도록,
육체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환우분들을 위해서도 함께 기도해주시고,
이 나라와 민족, 그리고 열방을 위해서 기도해주시고 마지막으로 각자 가지고 오신 기도제목 가지고 기도하시다 자유로이 돌아가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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