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무엘상 6장 19절 - 7장 2절
Notes
Transcript
제목: 거룩한 위험
제목: 거룩한 위험
본문: 사무엘상 6장 19-21절, 7장 1-2절
본문: 사무엘상 6장 19-21절, 7장 1-2절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찬송: 8장 거룩 거룩 거룩
오늘은 사무엘상 6장 19절에서 7장 2절 말씀을 가지고 거룩한 위험이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을 묵상하려 한다.
하나님의 언약궤가 이방 땅에서 스스로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은 큰 기쁨을 맞이했다. 그러나 그 기쁨은 곧 비극으로 변한다. 우리는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함이 왜 죄인인 우리에게 죽음과 같은 위험이 되는지, 그리고 그 거룩함이 어떻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유일한 안식처가 되는지를 발견하기를 소망한다.
6장 19절은 '거룩함을 가볍게 여긴 호기심의 비극'을 말한다.
6장 19절은 '거룩함을 가볍게 여긴 호기심의 비극'을 말한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여호와의 궤를 들여다 본 까닭에 그들을 치사... (19절)"
벧세메스 사람들은 돌아온 언약궤를 보며 기뻐했지만, 곧 하나님을 경외하는 대신 '구경거리'로 삼았다. '들여다 봤다' 이 말의 히브리어 원문의 뉘앙스는 그들이 하나님을 뚫어지게 감상하며 자신들의 호기심을 채우려 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마치 태양과 같아서, 보호 장비 없이 맨눈으로 태양을 보면 시력을 상실하는 것처럼 아무런 준비 없이 그 영광을 직접 보려 하는 자의 생명을 삼켜버린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는 모습도 이와 닮아 있다. 하나님을 내 삶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도구'로만 여기거나, 예배를 내 감정을 달래주는 '공연'처럼 감상해서는 안된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평가하거나 이용할 수 있는 분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함을 가볍게 여기는 순간, 우리 신앙은 생명력을 잃고 심판에 직면하게 된다. 하나님의 거룩함은 구경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치에 엎드리는 것임을 기억해야 한다.
6장 20-21절은 '거룩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의 절망과 외면'을 말한다.
6장 20-21절은 '거룩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의 절망과 외면'을 말한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이르되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전령들을 기럇여아림 주민에게 보내어 이르되... 너희는 내려와서 그것을 너희에게로 옮겨 가라 (20-21절)"
수많은 죽음을 목격한 벧세메스 사람들은 절규한다. "누가 능히 서리요!" 이 질문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가장 정직한 질문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의 결론은 하나님 앞에 바로 서기 위한 회개가 아니라, 하나님을 내 곁에서 치워버리는 '외면'이었다. 그들은 기럇여아림 사람들에게 사람을 보내 궤를 가져가라고 말한다. 하나님이 '불편한 존재'가 되자 그분을 멀리 밀어내 버린 것이다.
우리 역시 삶의 어두운 부분이 드러날 때, 주님께 가까이 가기보다 주님을 멀리 밀어내려 할 때가 많다. "하나님, 이 부분만큼은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말하며 내 인생의 언약궤를 기럇여아림으로 보내버리지는 않는가? 하지만 하나님을 밀어낸 자리에 남는 것은 평안이 아니라 공허함뿐이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무능함을 인정하는 것은 절망의 끝이 아니라, 비로소 참된 중보자를 구하게 되는 구원의 시작점이 되어야 한다.
7장 1-2절은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으로 바뀌는 거룩한 임재'를 말한다.
7장 1-2절은 '그리스도를 통해 평안으로 바뀌는 거룩한 임재'를 말한다.
"기럇여아림 사람들이 와서 여호와의 궤를 옮겨 산에 사는 아비나답의 집에 들여놓고...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이스라엘 온 족속이 여호와를 사모하니라 (7:1-2절)"
벧세메스가 밀어낸 하나님을 기럇여아림 사람들은 기쁘게 영접했다. 특히 아비나답은 아들 엘르아살을 '거룩하게 구별'하여 하나님을 모시게 했다. 그 결과, 누군가에게는 죽음의 공포였던 하나님의 거룩함이 아비나답의 집에서는 20년 동안의 깊은 평안과 사모함으로 변했다. 이같은 차이는 바로 하나님을 '나의 질서'가 아닌 '하나님의 질서'로 모시는 태도에 있다.
이 장면은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원한 엘르아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벧세메스 사람들이 질문했던 "누가 능히 서리요"에 대한 유일한 답은 예수님뿐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진노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다가갈 수 있는 '안전한 길'이 되어주셨다. 이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라는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대면하고도 죽지 않고 생명을 얻는다. 오늘 하루, 내 공로가 아닌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자. 그분 안에 거할 때, '거룩한 위험'은 비로소 '가장 안전한 품'이 된다.
인생의 고단한 지점인 수요일 새벽,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것은 나를 먼저 귀하게 여기신 하나님의 은혜이다. 오늘 하루 하나님을 내 인생의 가장 무거운 존재로 모셔 들이자. 하나님을 존중함으로 입혀주시는 그 찬란한 하늘의 존귀함을 가득 누리는 복된 하루를 사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한다.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이른 새벽, 찬 바람을 뚫고 주님의 전으로 달려온 사랑하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을 우리 삶의 구경거리나 장식품으로 여겼던 우리의 가벼운 신앙을 회개합니다. 주님의 임재가 내 욕심에 어긋난다고 해서 하나님을 삶의 변두리로 밀어냈던 어리석음을 용서하시고, 이제는 아비나답처럼 우리 마음의 가장 높은 자리에 주님을 모셔 들이는 진실한 예배자가 되게 하옵소서.
주님, 특별히 오늘 새벽 무거운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나온 성도들의 간구에 응답의 역사를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오랫동안 육신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신음하는 지체들을 주님의 전능하신 손길로 안수하여 주시옵소서. 뼈와 마디마디, 혈관과 세포 하나하나를 새롭게 하시고, "내가 너를 고쳤노라"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 속에 강건함을 얻게 하옵소서.
우리 성도들의 일터와 가정을 지켜주시옵소서. 바다와 밭에서, 그리고 각자의 생업의 현장에서 땀 흘리는 그 손길이 헛되지 않게 하시고, 풍성한 결실로 채워 주시옵소서. 특별히 우리의 자녀와 다음 세대를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 자녀들이 아비나답의 아들 엘르아살처럼 거룩하게 구별된 인생이 되게 하시고,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아 이 땅의 거룩한 파수꾼으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지 않고, 주님을 가장 무겁게 여기는 존귀한 인생들이 되게 하옵소서.
한 주의 중간을 지나는 수요일, 우리 도초교회 모든 성도의 가정이 하나님의 언약궤가 머무는 아비나답의 집이 되기를 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안전한 울타리 안에서 세상을 이길 담대함을 얻게 하시고, 매서운 추위 속에서도 주님의 따뜻한 동행을 경험하며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모든 발걸음을 지키시는 주님을 신뢰하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