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구원의 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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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6:10 NKRV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아침에 출근하여 컴퓨터를 키니 윈도우 업데이트를 하라는 공문, 30일까지 마치지 않으면 차단시켜 버리겠다는 통보, 날짜 지나면 자비없이 차단한다니까 무섭더라고요
윈도우는 창문이라는 뜻이죠, 그런 의미에서 오늘은 성경에 등장하는 창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의 보호방식은 폐쇄가 아니다. 창이 나 있는 보호공간: 방주

창세기 6:16 NKRV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방주라는 큰 배를 주문제작을 맡기시는데, 주문옵션으로 창을 내라고 말씀을 하세요.
배나 뭐 구조물 사람이 들어가 사는 것에 창문을 내는건 당연하죠. 우리한테는 당연한데,
만약에 하나님이 창문에 대한 언급을 안 하셨으면, 노아는 창문을 냈을 것 같나요 안 냈을 것 같나요?
갑자기 만약에 게임을 시켜서 죄송하지만, 저라면 창문에 대한 언급이 없으셨어도 아 창문 당연히 있어야지 하면서 제 임의대로 냈을 것 같은데, 노아 할아버지는 언급이 없었다면 진짜 창문을 안 만들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만약에 그렇게 돼서 창문이 없는 방주가 된다면 그 공간은 어떤 공간이 될까요?
독방, 창 없는 감옥에 갇힌 감금의 장소가 되었겠죠.
여러분 혹시 창 없는 공간에 오래 계셔본 적 있으십니까? 창문은 내부와 외부를 잇는 접속면입니다. 창문이 없다는 것은 곧, 3가지가 흔들리게 됩니다.
시간 감각이 흐려지고(낮/밤, 계절의 표지가 사라짐)
방향 감각이 약해지고(‘어디를 향해 사는지’가 흔들림)
생각의 환기가 멈추기 쉽고(생각이 내부에서만 맴돎)
결론: 결국 자기 안에 갇히는 감금이 일어납니다.
1. “닫힌 공간”과 “창문”
닫힌 방에 몇사람 넣으면, 다툼, 괴롭힘, 갈등이 필연적으로 발생하죠. 
그런데 “창문”만 만들어줘도 달라진다. 창이 없는 방과 / 창이 있는 방, 둘 중 어느 집단이 더 화합되었나?
창이 쾌적하게 깔려 있는 창 있는 공간 안의 사람들이 더 화목하게 잘 지내더랍니다.
창문의 존재는 “창 밖의 세상”이 있다는 믿음을 준다. 그런 전제를 준다.
 “방안이 전부가 아니다.” “창 밖의 세상이 있다.”
 이 생각만으로도 많이 달라진다. 
  고시원은 방을 다닥 다닥 많이 만든다. 창문 없는 방과 창문 있는 방이 나온다. 
근데 창문 있는 방이 1.5배 비싸다고 한다.
지하 식당에 간 적 있다. 지하니 당연히 창문이 없다. 
그런데 가짜 창문을 만들고, 그 바깥에 형광등을 켜서 마치 햇빛이 들어오는 양 꾸몄다. 
일순간 답답함이 사라지는 걸 느꼈다. 창문은 존재만으로도 강한 힘이 있다. 
방주는 홍수라는 심판과 혼돈의 시간에, 가족과 생명을 보호하는 거대한 보호 공간입니다. 성경은 놀랍게도 그 방주에 **창(채광창/개구부)**가 있었다고 기록합니다(창 6:16).
홍수가 멎은 뒤 노아는 그 창을 열고 바깥을 살피며, 새를 보내 외부의 상태를 가늠합니다(창 8:6). 이 장면이 주는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보호는 단순히 모든 창과 입구를 없애 “폐쇄하는 것”이 아닙니다.
‘닫힘’ 속에서도 하나님은 살필 수 있는 창, 분별할 수 있는 통로를 남겨 두십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방주’ 같은 시간을 허락하십니다.
빠르게 파도치는 세상의 물결에서 잠시 차단된 방주 같은 시간. 세상과 동떨어진 잠시간의 시간. 그러나 우리가 그 방주에 머무르며 창을 내지 않는다면, 그곳은 보호 공간이 아니라 고립공간으로 흘러갈 것입니다.
그때 인간은 현실을 읽지 못하고, 내부의 두려운 생각만 증폭시키며, 희망이 아니라 절망의 생각으로 꽉찬 폐쇄적 인간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무언가 찌푸둥하시면 창문을 여십쇼.
물리적인 창문, 진짜 창문도 열어서 신선한 공기도 쐬시고,
또 정신적인 창문 세상을 판별하는 창문도 여시고,
제일 중요한 영적인 창문도 여시길 바랍니다.
진짜 창문으로 밖을 보게 된다. 전혀 다른 “창 밖의 세상”이 있다. 
이건 하나님이 보여주셔야 가능하다. 이걸 “계시”(revelation)라 한다. 
드러냄(reveal)만큼 보인다. 알려 준 만큼 알 수 있다. 
계시의 절정이 “말씀”이다. “성경”이다. 
창 밖을 볼 수 있는 사람과 볼 수 없는 사람은 큰 차이가 있다. 
닫힌 방에 있는 사람은 방 안이 전부인양 행동하고 결정한다. 
계시가 들어오는 창문인 하나님의 말씀을 열지 않는 사람은
자기 생각의 방안에서 고립되는 것입니다.
영적인 창, 말씀의 창을 열어 나의 영혼이 폐쇄되지 않게 하시길 축원드립니다.
창세기 8:6 NKRV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라합과 미갈: 창문은 공식 출입구가 아닌 구원의 틈이 된다

이렇게 노아의 방주에 난 창을 통해 하나님의 보호방식은 폐쇄가 아니라 늘 영적인 창이 열려있는 보호공간을 통해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았다면,
여호수아의 라합 사건과, 다윗의 도망 사건을 통해서 드러나는 창문의 의미가 또 있습니다.
여호수아 2:15 NKRV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사무엘상 19:11–12 NKRV
사울이 전령들을 다윗의 집에 보내어 그를 지키다가 아침에 그를 죽이게 하려 한지라 다윗의 아내 미갈이 다윗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이 밤에 당신의 생명을 구하지 아니하면 내일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고 미갈이 다윗을 창에서 달아 내리매 그가 피하여 도망하니라
라합은 정탐꾼을 창문으로 내려 보냅니다. 그리고 붉은 줄을 창에 매어 표징으로 삼습니다. 미갈도 다윗을 창문으로 도피시키고, 권력의 폭력에서 생명을 빼냅니다.
여기서 창문은 “문”과 대비됩니다.
문은 제도가 허락하는 길입니다.
창은 때로 제도가 막아버린 길을 넘어서는 틈입니다.
신앙의 역사에서 구원은 종종 ‘정상 경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열어주시는 뜻밖의 틈에서 일어납니다.
라합의 창문에 매인 붉은 줄은 기억해야 할 상징입니다. 구원은 추상적 감정이 아니라, 현실의 경계면에 남는 표지입니다. “이 집은 표가 있다. 이 사람은 약속 안에 있다.”
적용
하나님이 내게 여시는 창은 때로 ‘내가 생각한 문’이 아니라, 새로운 관계의 틈, 회개의 틈, 도움 요청의 틈일 수 있습니다.
창문을 “수치”로 닫지 말고 “구원의 통로”로 사용해야 합니다.
열왕기하 7:19–20 NKRV
그 때에 이 장관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 일이 있으랴 하매 대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였더니 그의 장관에게 그대로 이루어졌으니 곧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죽었더라
말라기 3:10 NKRV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창 7:11은 “하늘의 창문(아루봇 하샤마임)”이 열려 홍수가 쏟아진다고 말합니다(심판 이미지).
왕하 7장은 “하늘에 창문이 열려도 그런 일이 가능하겠느냐”는 불신/냉소의 말이 나옵니다(현실 불가능의 프레임).
말 3:10은 헌신/신뢰의 언어 속에서 “하늘 문(창문)을 열어 복을 붓는다”가 등장합니다(공급 이미지).
“하늘의 창문”은 물리적 창이 아니라 세계의 닫힘/열림에 대한 표현입니다.
동일한 은유가 **심판(파국)**과 공급(회복) 양쪽으로 쓰입니다. 이는 “외부로부터 오는 힘”이 언제나 인간에게 위협이자 선물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왕하 7장의 회의는, 인간이 가진 **가능성의 한계(‘현실성’의 감옥)**를 드러냅니다. 성경은 그 한계를 “하늘의 창문” 은유로 흔들어 깨웁니다.
다니엘 6:10–11 NKRV
다니엘이 이 조서에 왕의 도장이 찍힌 것을 알고도 자기 집에 돌아가서는 윗방에 올라가 예루살렘으로 향한 창문을 열고 전에 하던 대로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의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그 무리들이 모여서 다니엘이 자기 하나님 앞에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을 발견하고
본문 포인트: 다니엘은 법령이 내려진 뒤에도, 자기 다락방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열린 창문을 두고 이전처럼 기도합니다.
인문학적 해석
창문은 단순 환기구가 아니라 **‘방향성의 상징’**입니다. 망명지 바벨론에서 예루살렘 방향으로 열린 창은, 다니엘이 어디에 속해 있는지(정체성), 무엇을 우선하는지(가치)를 공간적으로 고정합니다.
더 중요한 점: 창문이 “열려 있다”는 것은 신앙이 사적 내면의 취미가 아니라 공적 위험을 감수하는 삶의 형식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창문은 ‘보여짐’의 통로이기도 합니다.
핵심 개념 연결: 창문 = “내면의 결심이 세계에 노출되는 경계면(윤리적 실존의 경계)”.
접속: 닫힌 세계 속에서도 외부를 감지하는 통로(노아)
열림/닫힘의 은유: 세계가 닫혔는가, 열리는가(하늘의 창문)
방향성: 정체성과 가치가 향하는 자리(다니엘)
전환/탈출: 제도적 출입구가 아닌 구원의 틈(라합·미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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