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누가복음22:39-46
물과 피 물이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감람 산에서 기도하시다 (
하지만 그분의 하나님이 보시기에 죄인으로 서셨으며, 따라서 엄중한 공포가 그분의 영혼 위에 떨어졌고, 그 심장은 건강에 좋은 활동을 거부하였으며, 피와 같은 땀이 그분의 얼굴을 적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우리를 대신한 저주가 되기 시작하셨고, 그분은 우리에게 부과되어야만 했던 모든 징벌을 온전히 감당하시기 전까지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신성 안에서 그 징벌을 두 부분으로 구분하는데 익숙해 있습니다.
죽음의 징벌과 실제적 고난의 징벌!
그리스도는 이 둘 모두를 감내하셨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의 호의와 임재를 상실하였던 것은 바로 죄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예수께서는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분이 모든 개인적인 위로를 잃어야 했던 것은 죄인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위로를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입고 계신 옷의 마지막 천 조각마저도 그분에게서 찢겨 벗어졌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아담처럼 옷이 벗겨진 채 외로이 남겨졌습니다.
그 영혼을 자신을 지탱시킬 수 있었던 모든 것을 상실할 필요가 있었고,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위로가 될 만한 것들을 잃어버리셨습니다. 그분은 긍휼을 베풀거나 도울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음을 보셨습니다. 그분은 외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3.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피처럼 흐르는 땀을 보시오
우리는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같이 되더라”는 말씀을 읽습니다. 다소 범상치 않을지라도. 이 현상은 다른 사람들 안에서도 목격되어 왔습니다. 갈렌(Galen)의 오래된 의학 서적들을 포함한, 기록된 몇몇 사례들이 있습니다. 몇몇은 보다 최근의 기록이고, 장기간의 질병을 앓은 이들 안에서, 그리고 죽음의 공포 아래서 어떤 이들은 피와 같은 땀을 흘렸습니다.
그러나 이 경우는 전적으로 본질적으로 다른 이유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분이 피와 같은 땀을 흘리심을 알아차렸을지라도, 그것은 땅바닥에 뚝뚝 떨어지는 피땀이었습니다. 그 피는 응고되어 큰 덩어리들을 형성하였습니다. 나는 크고 무거운 덩어리인 “응혈”(gouts)이라는 어휘보다 이 상황이 의미하는 바를 더 잘 표현할 수 없습니다.
이는 어떤 경우에도 목격된 바가 없습니다. 약간의 피의 유출의 사례는 이전에 심신이 약해진 사람들의 경우에서 알려진 바는 있지만, 큰 덩어리의 피땀은 유례가 없습니다.
여기에 그분을 필적할 사람은 없습니다. 그분은 단지 약 30세 전후의 신체 건강한 분이었으며,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없이 노동하였습니다. 그러나 시험과 투쟁으로 말미암아 발생한 정신적 압박과 사탄의 시험을 좌절시키기 위한 힘을 쏟는 긴장은 그분의 정서를 자연스럽지 않은 흥분으로 몰아갔고, 그분의 땀구멍은 땅 바닥에 떨어지는 피와 같은 땀을 큰 덩어리로 내보내었습니다. 이는 죄가 구세주의 피땀을 뽑아내게 할 수 있을 만큼, 죄의 무게가 얼마나 끔직한가를 잘 증명해줍니다.
나의 형제자매들이여!
이는 주님이 가지신 사랑의 힘이 얼마나 큰지를 증명해줍니다.
나무를 베지 않고 추출하는 고무질(gum)이 항상 최상의 것이라는 아이삭 암브로스(Isaac Ambrose)의 관찰은 바른 것이었습니다.
이 고귀한 녹나무(camphor-tree)는, 옹이가 달린 채찍으로 맞아 상처를 입을 때, 그리고 십자가상에서 못이 꿰뚫을 때 가장 달콤한 향을 내었습니다.
그러나 보십시오.
채찍이 없고, 못이 없고 상처가 없을 때, 그 나무는 최상의 향기를 내뿜었습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고난의 자원성(voluntariness)을 설명합니다. 왜냐하면 창이 없이도 그 피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기 때문입니다.
거머리를 붙이거나 칼로 그을 필요도 없었지요.
그 피는 자발적으로 흘렀습니다. 통치자들이 “오, 샘이여 솟아라!”할 필요도 없었습니다. 자발적으로 그 피는 선홍색을 띠며 콸콸 흘렀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사람들이 마음속에 두려움에 찬 고통을 겪어야 한다면(나는 의료적 사안에는 익숙지 않습니다만), 명백히 피가 심장을 향해 몰려들 것입니다. 뺨은 창백해질 것이며, 까무러치는 발작이 일어납니다. 마치 시련을 통과하는 동안 피가 속사람에게 영양을 공급하려는 듯이, 피가 안쪽으로 흐릅니다.
그러나 그분의 고통 가운데 있는 구세주를 보십시오.
스스로에게 자양분을 주기 위해 그분의 피가 심장으로 몰리는 고통 대신에, 그분의 피는 땅을 적시도록 바깥으로 흘렀을 만큼, 그분은 전적으로 자아에 대해서는 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땅에 쏟을 만큼, 그리스도의 고통의 절정은 인류를 위해 그분이 감당하신 희생 제사와 완성을 그 려내고 있습니다.
나의 형제들이여!
그분이 통과하신 싸움이 얼마나 격렬했는지를 알지 못합니까?
그리고 당신에게 들려지는 소리를 듣지 못합니까?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
제9장
겟세마네의 고뇌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36이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저기 가서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7 베드로와 세베대의 두 아들을 데리고 가실새 고민하고 슬퍼하사
38이에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그리고 그 표현은 의미로 가득 차는데 사실 설명하기 쉬운 내용보다는 더 많은 것을 포괄합니다.
예수의 인성은 인간으로서의 그의 본성을 뜻하는데, 예수의 인성은 예수의 신성과는 구별되는 본성이다.
신약과 구약 성경 둘 다 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메시아 예언, 즉
욥과 예수님
신약에서 욥을 언급하는 유일한 구절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