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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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3서 1–4
“장로인 나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성경 66권, 1,189장의 내용을 압축하고, 또 압축하면 한 단어로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 단어는 바로 “사랑”입니다. 성경에는 무수히 많은 사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어떤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지가 셀 수 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2024년 마지막 주일 오후 예배면서, 사랑 목장 헌신 예배인 이 시간, 어떤 사랑의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면 좋을지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러던 중 교회에서 함께 하는 성경 읽기가 내일이면 요한계시록 마지막 4장을 읽으면서 끝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으로 가기 전 요한3서의 말씀이 제 마음을 강하게 울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한 목사님께서 평생을 붙잡고, 외치신 구절입니다. 그래서 한국교회가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이 말씀이 우리 삶에 온전히 이루어지려면, 말씀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우리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먼저 요한3서의 전체적인 배경을 알아보면, 요한3서는 당시 순회 전도자를 선하게 대접했던 ‘가이오’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그를 칭찬하기 위해서, 또 반대로 악한 태도로 순회 전도자를 배척했던 ‘디오드레베’를 본받지 말라고 권하기 위해 쓴 편지였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에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했던 순회 전도자들이 귀했습니다. 사도들만으로는 복음을 전하는 일을 다 감당할 수 없었기에 순회 전도자들과 협력하며 복음을 전하는 일에 힘썼습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순회 전도자들이 여러 지역의 교회를 다니면서 설교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이오’라는 사람이 사도들과 순회 전도자들을 기쁨으로 영접하고 잘 대접했던 사람이었습니다.
본문으로 함께 읽지는 않았지만, 9절부터 12절까지는 ‘디오드레베’라는 사람도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냐면,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는데, 순회 전도자들을 대적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게다가 그는 악한 말로 비방하며, 그것도 모자라 교회 안에서 많은 분쟁을 일으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3서는 전체적으로 가이오를 격려하고 위로하는 동시에,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을 경계하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오늘 본문인 1장 2절을 원문에 가깝게 직역하면, “사랑하는 자여, 내가 너를 위해 기도하니, 모든 일에 잘되고 건강하기를 바란다. 그것은 네 영혼이 잘된 것과 같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이 본문을 통하여 말하고자 하는 의미를 바르게 알기 위해선 ‘잘된다’가 가지고 있는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잘된다’라는 단어는 원래 “여행을 잘하다”, “올바른 길을 가다”라는 뜻으로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여행은 우리 인생 전체의 여정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긴 여행을 허락하셨고, 오늘 2024년이라는 한 해의 마지막 주일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제가 마지막 오후 예배에서 설교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이라는 여행을 잘한다는 것, 인생의 여행을 올바르게 간다는 건 무엇일까요? 그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오늘 말씀의 중점입니다.
인생의 여행을 잘할 수 있는 비결을 알기 위해서는 이어지는 구절을 보아야 합니다. 3-4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요한3서 3–4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사도 요한은 3절과 4절에서 “진리 안에서 행한다”라는 표현을 반복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라는 사람이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여, 진리 안에서 행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기뻐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소식을 듣는 것보다 더 즐거움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진리 안에서 행한다(walking in the truth).”라는 말은 진리와 함께 걸어간다, 진리와 여행한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2절에서 말하는 “잘된다”가 가지고 있는 진짜 의미입니다.
“잘된다”가 있으면 반대로 “잘 안된다”도 있습니다. 그러면 “잘 안된다”가 어떤 뜻을 가졌는지를 보면, ‘길을 잃다, 잘못된 길로 들어섰다’라는 뜻이 됩니다. 이 말을 구약성경에서는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신약성경에서는 “불법을 행한다.”라는 표현을 주로 사용합니다. 정리해 보면, 요한3서 1장 2절 에서 말씀하고 있는 잘된다, 형통의 의미는 진리와 함께 여행하는 것이고, 잘 안된다는 건 진리가 없이 불법을 행하며 걷는 것입니다.
“네 영혼이 잘 됨같이”라는 말은 진리를 듣고, 진리를 받아들이고, 그 진리 안에서 올바르게 걸어가는 인생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도 요한이 말하는 영혼이 잘 되는 것입니다. 가이오라는 사람은 예전에는 진리와 전혀 상관없이, 자기 자신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는데, 이제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진리가 무엇인가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주어졌고, 십자가의 복음을 믿으면 구원받는다.” 이것이 영원불멸의 진리입니다. 가이오는 생명의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이 되어, 진리를 따라 살았습니다. 가이오의 모든 삶은 자기 자신의 욕망을 따라가는 인생이 아니라, 오직 진리를 따라, 말씀을 따라 살아가는 인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래서 가이오는 자신의 삶을 변화시킨 복음을 전하는 사도와 순회 전도자들을 영접하고, 대접하기에 힘쓰기를 기뻐했던 것입니다. 그 소식을 들은 요한도 가이오가 진리 안에서 변화되었음을, 복음이 더 전해질 수 있도록 돕고 있음을 기뻐하며 너의 영혼이 잘 된 것과 같이 범사가 잘되기를 기도한다고 편지를 보내는 게 요한3서의 서론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만 믿으면 모든 일이 형통할까요? 병에 걸리지도 않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성공하게 될까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육신의 아픔을 가지고 살아가면 그건 형통하지 않은 삶일까요? 그렇다고 한다면 저는 형통하지 않은 삶을 사는 거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저는 6년이 넘도록 단 하루도 머리가 아프지 않았던 날이 없었으깐요. 대학병원의 교수조차도, “하루라도 머리가 밝은 날이 있어야 할 텐데요.”라면서 걱정할 정도의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면 저의 삶은 하나님의 은혜가 없는 불통한 삶일까요? 저는 그렇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비록 매일 머리가 아파서 힘들지만, 아픔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에 불통한 삶이 아니라 형통한 삶을 산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사업이 안 된다고 하면, 직장에서 승진이 안 된다고 하면, 그 삶은 불통한 삶일까요? 세상의 재물이 주님이 주시는 은혜와 형통의 기준이라고 한다면 나의 삶은 형통한 삶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데 세상의 재물이 형통함의 기준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성도가 잘 되는 삶을 살아간다는 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님이 부르신 뜻대로 올바른 길을 걸어가고, 인생이라는 여행을 잘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었기에 반드시 부자가 되거나, 이 땅에서 명예와 권력을 보장받을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요한3서 1장 2절 의 말씀을 “예수님만 믿으면 자동으로 구원도 받고, 물질적인 풍요와 육체의 건강”을 보장받는 만능 부적으로 오해하는 성도가 있습니다. 죄송하지만, 성경에는 단 한 구절도 그런 말씀은 없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는 “빛 가운데로 걸어간다”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요한3서에서는 “진리 가운데로 행한다”는 표현을 사용했습니다. 둘 다 같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의 지배를 받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존재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사실 오늘 본문 2절은 사도 요한이 전해지는 복음의 핵심인 “영생”이 들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길을 가는 동안, 우리가 진리를 발견하고, 진리를 깨닫고, 깨달은 진리 안에서 그 길을 걸어간다면, 그 길이 영생까지 이어집니다. 사도 요한이 쓴 요한복음과 요한 1, 2, 3서의 중심 내용은 결국 “영생”으로 이어집니다. 그 영생을 지금 우리의 인생길에서 경험하고 누리는 것이 “네 영혼이 잘 됨같이”라는 의미의 완성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을 통한 영생을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요한3서에서도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생이라는 길을 걸어가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영원히 강건한 삶을 살아가는 것이 성도의 삶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이라는 여행을 잘 갈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뿐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13장 5-6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3:5–6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담대히 말하되 주는 나를 돕는 이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함께하시니 우리는 세상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진리 안에 행하며 그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제 인생의 여행길 중 2년이라는 시간을 청주중앙교회에서 사역하며 사랑하는 성도님들과 함께 믿음의 여행을 함께할 수 있어서 너무 감사하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부족하지만, 그 부족함을 채워주시며 함께 섬겨주신 모든 성도님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전하면서 고별인사는 짧게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진리 안에 행하며, 빛 가운데로 걸으며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흔들림 없이 믿음의 여행을, 인생의 여행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거룩하신 이름으로 간절히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