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6 새벽기도회: 창세기 49:2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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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하시겠습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를 새벽기도회 자리로 인도하시고 말씀과 기도의 자리로 초대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주의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을 깨닫고 아멘으로 화답할 수 있는 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저희의 죄를 물리치시고 저희에게 말씀을 들리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말씀을 주실 때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저희에게 역사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끊이지 않게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이 시간도 주님의 말씀 가운데로 나아가니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함께 읽을 하나님의 말씀은 창세기 49:29-33 입니다. 제가 봉독하도록 하겠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가 그들에게 명하여 이르되 내가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선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의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의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의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 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밭과 거기 있는 굴은 헷 사람에게서 산 것이니라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를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 그의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반갑습니다. 새벽기도회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 주동안 또 치열하게 산다고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어느덧 2026년 새해 1월도 절반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시간은 우리가 붙잡을 수 없이 전속력으로 빨리 달리는듯한 느낌인데요. 이렇게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살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함께 말씀과 기도를 통해 발견하길 소망합니다.
여러분, 잠시 즐거운 상상을 하나 해보겠습니다. 만약 여러분에게 세계에서 가장 비싸고 하려한 ‘7성급 호텔 펜트하우스’ 숙박권이 생겼다고 생각해 봅시다. 청소도 다 해주고, 최고급 요리가 매일 제공됩니다. 침대는 구름처럼 편안하고, 창밖의 경치는 환상적입니다. 그런데 조건이 딱 하나 있습니다. “평생 여기서만 살아야 하고, 당신의 진짜 가족이 있는 고향 집에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시겠습니까? 처음 일주일, 한 달은 꿈만 같을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어떨까요? 아무리 호텔이 좋아도, 내 손때 묻은 물건이 없고, 내 가족의 추억이 없는 그곳은 결국 ‘남의 집’일 뿐입니다. 내 집이 아닌 것이죠. 여행을 다녀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아무리 좋은 리조트에 가도, 여행 마지막 날이 되면 “아, 빨리 집에 가서 쉬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지 않던가요? 분명히 나는 쉬려고 여행을 온 건데 “집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집에 들어갔을 때 편안함을 느끼는 이유는 집 자체가 좋은 집이어서도, 집에 좋은 것들이 있어서도 아니라 내 집이라는 것과 가족이 있기 때문입니다. ‘편안한 곳’과 ‘돌아가야 할 곳’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날 성경 속 인물, ‘야곱’이 딱 이런 상황이었습니다. 그는 지금 당시 세계 최강대국이었떤 이집트의 ‘로열 스위트룸’에 살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이집트의 총리였으니, 그는 파라오 다음으로 권력이 가장 높은 자의 아버지 대우를 받으며 부족함 없는 풍요를 누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야곱이 죽음을 앞두고 자식들을 불러 마치 폭탄선언을 합니다.
“나를 이 편안한 이집트에 묻지 마라. 나는 내 조상들이 있는 저 척박한 땅, 가나안의 동굴로 돌아가야겠다.”
남들이 보기엔 “복에 겨운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습니다. 최고급 땅을 놔두고, 왜 굳이 밭 한구석에 있는 칙칙한 동굴로 가겠다는 것일까요? 오늘 우리 눈에는 야곱의 이 고집스러운 유언 속에, 우리가 결코 놓치지 말아야 할 ‘진짜 집’에 대한 비밀이 숨겨져 있습니다. 그 비밀이 무엇일지 함께 말씀을 통해 알아보면 좋겠습니다.
오늘 읽은 본문의 전체적인 내용은 야곱의 마지막 순간을 보여줍니다. 그는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유언이 참 독특합니다. 보통 유언으로 자식들에게 재산을 어떻게 나눠 가지라고 하거나, 묘비명을 어떻게 써달라고 할텐데, 야곱은 아주 단호하고도 간곡하게 “나를 이집트에 묻지 말고, 내 조상들이 있는 가나안 땅, 막벨라 굴에 묻어달라”고 요청합니다.
야곱의 이러한 말을 우리가 더 풍성하게 이해하려면 야곱이 죽을 당시의 상황을 짚을 필요가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 당시 세계 최강대국인 ‘이집트’에 와 있습니다. 더구나 그의 아들 요셉은 파라오 다음으로 권력이 높은 이집트의 총리입니다. 말하자면 야곱은 ‘총리의 아버지’로서 국빈 대우를 받으며 가장 풍요롭고 안전한 곳에서 노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그는 이집트에서 무려 17년 동안이나 살았습니다.
만약 우리가 야곱이라면 어디에 묻히고 싶다고 할까요? 화려한 이집트의 장례 문화를 따를 수도 있고, 총리의 아버지답게 거대한 피라미드 같은 무덤을 만들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이집트는 살기 좋고 풍족한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오늘 본문에서 야곱이 말하는 ‘가나안 땅 막벨라 굴’로 왜 가겠다는 것일까요? 굳이 먼길을 떠나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있는 가족묘에 묻히고 싶었던 고집이 있었던 것일까요? 아니면 단순히 고향이 그리워서, 향수병 때문에 이러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야곱이 굳이 막벨라 굴을 선택한 것은 단순한 ‘무덤’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29절을 보십시오. 야곱은 ‘헷 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이 은 사백 세겔을 주고 헷 사람 에브론으로부터 밭을 사서 막벨라 굴에 자신의 아내인 사라를 장사한 것을 말합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산 것은 아내 사라의 시신을 안장할 장소가 필요했던 이유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대한 최초의 법적 소유권을 확보하고, 후손들을 위한 믿음의 터전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의 행동으로 정당한 법적 소유권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을 야곱도 오늘 본문 30절과 31절에서 말하였고, 자신의 부모인 이삭과 리브가를 비롯하여 자신의 아내인 레아도 그 곳에 장사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지금 자신의 몸은 풍족한 이집트 땅에서 지내고 있지만, 자신의 영혼은 진짜 주소지, 내 후손들이 영원히 살아야 할 땅은 이집트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 ‘가나안’이라는 사실을 말입니다. 야곱이 막벨라 굴을 자신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이 정당한 대가를 치르고 산 땅임을 강조함으로써 일종의 ‘영적 등기 권리증’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자식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얘들아, 이집트가 아무리 좋아 보여도 여기는 우리 집이 아니다. 우리가 돌아갈 곳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저 땅이다. 내 시신을 그곳에 묻음으로써, 너희도 언젠가 그곳으로 가야 한다는 것을 결코 잊지 말거라.”
이것이 바로 야곱의 믿음입니다. 야곱이 굳이 굳이 막벨라 굴을 고집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편안함’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선택한 믿음의 행위입니다. 그는 눈에 보이는 이집트의 풍요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약속을 더 신뢰했습니다.
우리가 이 야곱의 유언에서 또 하나 주목해야 할 아주 중요한 표현이 있습니다. 29절과 33절에서 반복해서 나오는 표현인데요, 바로 “내 조상들에게로 돌아간다”는 말입니다. 33절에서는 “백성에게로 돌아갔더라”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관주가 있으신 분들은 보시면 아실텐데 ‘열조’라고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돌아간다’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원어의 뜻을 깊이 살펴보면 이것은 ‘소집되다’ 혹은 ‘모이다’라는 뜻입니다. 영어 성경에도 ‘모이다’라는 것으로 번역하기도 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는 허무한 뜻이 아닙니다. 야곱에게 죽음은 자신의 삶의 종점인 끝이 아니라, 먼저 간 믿음의 조상들과 친척들, 바로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는 곳, 그리고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계신 영원한 총회로 ‘소집 명령’을 받고 가는 것입니다. 마치 군인이 평상시에는 일상생활을 하다가 상부에서 소집 명령이 떨어지면 그 즉시 하던 것을 멈추고 소집하는 것처럼 말입니다.
그렇기에 야곱은 죽음을 두려워하며 결코 벌벌 떨지 않았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아들에게 명하기르 마치고 그 발을 침상에 모으고 숨을 거두니...”라고 말씀합니다. 마치 하루 일과를 마치고 침대에서 편안하게 잠자리에 들 듯이, 야곱은 발을 모으고 평온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성경은 그가 “죽었다”라는 표현 대신, “백성에게로 돌아갔다”라고 기록합니다. 야곱은 믿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가 아님을, 그리고 죽음 너머에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모임이 있음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렇기에 야곱의 장례 행렬은 가족과 족장의 죽음을 슬퍼하는 슬픈 장례식이 아니었습니다. 훗날 이스라엘 민족 전체가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으로 가게 될 ‘출애굽의 예행연습’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도 자손들에게 “우리는 결국 약속의 땅으로 가야 한다”는 소망을 시청각 교육으로 보여준 족장이었습니다. 그래서 요셉 또한 자신이 죽을 때 어떤 유언을 남깁니까? 50장 24-25절을 보면 “하나님이 당신들을 돌보시고 당신들을 이 땅에서 인도하여 내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에 이르게 하시리라 하고 … 하나님이 반드시 당신들을 돌보시리니 당신들은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 하라”라고 말합니다. 요셉 또한 미래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가게 될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야곱의 믿음의 행보로 인해 그는 이제 약속의 하나님임을 나타내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는 칭호의 반열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창세기의 마지막 족장으로서 야곱은 믿음의 모습을 보여주며 자신의 생을 마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야곱의 믿음이 오늘날 우리에게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야곱이 살았던 ‘이집트’와 같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 직장을 다니고, 집을 사고, 자녀를 키우며 열심히 살아갑니다. 때로는 이집트의 풍요로움처럼 좋은 차를 타고, 맛있는 것을 먹으며 즐거움을 누리기도 합니다. 그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야곱도 이집트에서 총리의 아버지로 누릴 수 있는 것은 누렸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곳 이집트가 내가 영원히 머물 곳은 아니다”라는 사실입니다. 바로 우리는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한 것은 아니라는 겁니다.
야곱이 그 화려한 이집트 무덤을 마다하고 머나먼 약속의 땅에 있는 막벨라 굴을 선택했듯이, 우레에게도 돌아가야 할 본향이 있습니다. 그곳은 어디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예비하신 하나님이라는 거처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갑니다. 더 좋은 집에 사는 것, 더 높은 자리에 오르는 것이 인생의 목표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말입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이란 결코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야곱이 이집트에 살면서도 마음은 항상 가나안 땅을 향해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이 세상에서 최선을 다해 살지만 마음은 다시 오실 예수님에게 초점을 두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나의 진짜 주소지는 이 땅이 아니라 예수님이 예비하신 거처”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살아갑니다. 세상 사람들은 더 많이 가지려 싸울 때, 우리는 양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진짜 보물은 하늘에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야곱처럼, 죽음은 하나님 품으로 ‘소집’되는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자들은 죽음으로 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제대로 다시 만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야곱은 죽는 순간까지 흐트러짐이 없었습니다. 그는 숨을 거두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녀들에게 “약속의 땅을 기억하라”고 가르쳤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믿고, 무엇을 바라보며 사는지, 이집트의 화려함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약속인지를 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의 땅을 약속해주셨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영원히 사는 곳입니다. 야곱이 막벨라 굴을 보며 가나안을 꿈꿨듯이,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기억하시며, 이집트 같은 세상 한복판에서 살아가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우리가 바라봐야 될 소망이십니다. 세상에 살아가지만, 세상에 속하지 않고 예수님이 예비하신 거처에 속했다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우리 새순교회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두고 함께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오늘도 저희에게 귀한 창세기 말씀을 주시고 이 말씀을 깨달을 수 있게 하시니 참으로 감사드립니다. 오늘 말씀에서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같이 막벨라 굴에 묻히기를 소망하였습니다. 그가 소망하였던 이유는 고향에 대한 향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될 것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야곱과 같은 이런 믿음을 저희 교회가 같게 하시고, 하나님의 약속 안에 평안히 거하는 저희가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특별히 예수님이 미리 예배하신 거처가 있으니 이 땅에 소망을 두지 않고 예수님에게 소망을 두는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게 도와주시고, 주님의 말씀에 따라 최선을 다해 사는 귀한 백성이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