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힘이 끝난 자리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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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자기가 야곱을 이기지 못함을 보고 그가 야곱의 허벅지 관절을 치매 야곱의 허벅지 관절이 그 사람과 씨름할 때에 어긋났더라
그가 이르되 날이 새려하니 나로 가게 하라 야곱이 이르되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그 사람이 그에게 이르되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가 이르되 야곱이니이다
그가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설교
설교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군 장교였던 짐 스톡데일(Jim Stockdale) 장군은 포로수용소에 갇혀 무려8년 동안 끔찍한 고문을 견뎌냈습니다.
훗날 그가 풀려났을 때 한 기자가 물었습니다. "장군님, 수용소에서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누구였고, 반대로 견디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우리는 보통 비관적인 사람들이 먼저 죽었을 거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스톡데일의 대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먼저 죽은 사람들은 바로 낙관주의자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항상 이렇게 말했답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나갈수 있을 거야." 그런데 크리스마스가 지나도 석방되지 않습니다.
그러면 또 말합니다. "부활절에는 꼭 나갈 거야." 부활절이 지나고, 추수감사절이 지나고... 그렇게 기대했던 '희망의 날'들이하나둘 빗나갈 때마다, 그들은 깊은 절망에 빠져갑니다.
결국 그들은 반복되는 실망을 견디지 못하고 점점 버틸 힘을 다해 갔다고 합니다.
자신들이 만들어낸 막연한 희망에 배신당해, 마음이 무너져버린 것입니다.
반면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크리스마스에 못 나갈 수도 있다는 냉혹한 현실을 직시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결국에는 반드시 살아나갈 것"이라는흔들리지 않는 믿음의 근거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버텼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제가 왜 이 말씀을 드릴까요?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낙관주의'를 '믿음'이라고 착각하며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열심히 하면 성공하겠지", "돈좀 모아두면 노후가 편안하겠지", "내계획대로 착착 진행되면 행복하겠지."
내가 계산하고, 내가 쟁취하고, 내가 설정해 놓은 희망입니다.
하지만 인생의 고난이 찾아오면 어떻게 됩니까? 내가 가지고 있던 기대가 무너질 때, 근거 하나 없었떤 세상의희망을 붙들던 사람들은 스톡데일의 동료들처럼 허무하게 무너지고 말겁니다.
오늘 본문의 야곱을 봅시다. 그는 평생 자신의 꾀와 노력으로 인생을 '낙관'하며 살아온 사람이지 않습니까?
"형도 속일 수 있고, 아버지도 속일 수 있고, 외삼촌 집에서도 부자가 될 수 있었어요” 야곱은 늘 자신만만했습니다.
하지만 오늘 밤, 얍복 강가에서 야곱의 희망이 산산조각 났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의 군사를 끌고 온다는 소식 앞에, 그가 쌓아 올린 성공의 공식은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합니다.
지금 야곱은 인생 최대의 위기 앞에 서 있습니다.
자신의 힘으로 세운 그 희망이 무너지는 절망의 자리입니다.그렇다면, 이 위기의 밤에 하나님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야곱을 일으켜 세우실까요?
1대지 : 절망의 끝자락은 하나님을만나는 시작점입니다.
1대지 : 절망의 끝자락은 하나님을만나는 시작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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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일어나 두 아내와 두 여종과 열한 아들을 인도하여 얍복 나루를 건널새
그들을 인도하여 시내를 건너가게 하며 그의 소유도 건너가게 하고
오늘 우리는 칠흑 같은 어둠이 내려앉은 얍복 강가에 홀로 서 있는 한 남자를 봅니다.
지금 그의 귓가에 들리는 강물 소리는 평화로운 소리만은 아니었을 겁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재촉하는 시계바늘 소리처럼, 혹은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지금 야곱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단순히 ‘걱정된다’ 수준이 아닙니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공포, 숨이 턱턱 막히는 두려움이 그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들려오는 소식은 절망적입니다. 형 에서가 오고 있습니다. 혼자 오는 것이 아닙니다. 4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오고 있습니다.
20년 전 빼앗긴 축복을 피로 갚겠다는 복수의 말을 내뱉은 에서가 말입니다.
살기 위해 야곱은 무엇을 합니까? 그의 비상한 머리가 빠르게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그는 자신의 전 재산을 두 떼로 나눕니다. "형이 한 쪽을 치면, 나머지 한 쪽이라도 건져야겠다.” 철저한 계산입니다.
그것도 모자라 종들을 앞세우고, 자식들을 앞세우고, 가장 사랑하는 아내 라헬마저 강을 건너보냅니다. 그리고 정작 자신은 맨 뒤에, 가장 안전한 후방에 남습니다.
상황이 틀어지면 언제든지 도망치겠다는 심산이 뻔히 보이는것 같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 솔직히 한번 생각해 봅시다. 이러한 모습이 정말 야곱만의 이야기입니까?
우리가 야곱의 상황이라면 과연 다르게 행동했을까요?
인생의 거센 파도가 닥쳐올 때, 내 사업이 부도 위기에 처하고, 건강 검진에서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듣고, 자녀의 앞길이 꽉 막혔을 때, 우리는 가장 먼저 무엇을 합니까? 모두가 망했다는 그 순간에
나느 무릎 꿇고 기도합니까? 아니면 야곱처럼 내가 살길을 찾아 발버둥 칩니까?
내가 가진 인맥을 동원하고, 여기저기 전화를 돌리고, 있는 돈 없는 돈 다 써보고, 어떻게든 이 위기를 모면할 곳을 찾는 것, 그것이 우리의 솔직한 모습 아닙니까?
그렇기 때문에 저는 오늘 이 야곱의 치열한 몸부림을 단순히 '불신앙'이라고 매도하고 싶지 않습니다.
이건요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우리가 '연약한 인간'이기 때문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반응 입니다.
우리는 두려우면 떨고, 아프면 피하고 싶은 그런 연약한 영을 가진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경을 자세히 들여다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뜻을 위해 쓰셨던 사람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그들의 전성기가 아닌, 그들이 가장 낮아졌을때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모세를 보십시오.
그는 당대 최강대국 이집트 왕궁에서 40년 동안 최고의 리더십 교육을 받았습니다.
혈기 왕성했고, 누구보다 지도자로 적합한 조건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내 힘으로 민족을 구원하겠다"는 자신감도 충만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때 그를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가 살인을 저지르고 미디안 광야로 도망친 후, 40년이라는 긴 침묵의 세월이 흐르고 난 뒤에야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그때 모세의 나이가 80세였습니다. 왕자의 패기는 온데간데없었습니다, 손에는 지팡이 하나 든 초라한 노인이 되어 있었습니다. 젊을때 있던 자신감은 다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가 뭐라고 대답했는지 기억하십니까? "주여,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나는 입이 뻣뻣하고 둔한 자입니다."
무엇이든 할 수 있을거 같던 젊은 모세 더 이상 없습니다 그저 "나는 아무것도 못 합니다"라고 고백하는 늙고 약한 모세만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비로소 그를 들어 이스라엘의 구원자로 세우셨습니다.
기드온은 또 어떻습니까?
그는 미디안 군대가 무서워 포도주 틀에 숨어 몰래 밀을 타작하던 겁쟁이였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큰 용사'라 부르셨지만, 그는 스스로를 믿지 못하는 사람 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양털 뭉치로 표적을 보여달라고 끊임없이 시험합니다.
믿음이 없어서 흔들리고 또 흔들리는 사람 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나무라지 않으시고, 끝까지 그를 붙들어주셔서 결국 300명의 용사로 거대한 적을 물리치는 사사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어땠습니까? 그는 호언장담하던 사람이었죠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런 그가 결정적인 순간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합니다.
심지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을 목격하고도, 자신의 실패감과 죄책감을 이기지 못해 "나는 물고기나 잡으러 가노라" 하며 옛 생활로 도망쳐버렸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보고도 소망을 갖지 못한 채, 밤새 빈 그물질만 하며 절망하던 그 실패의 자리로 예수님이 직접 찾아와 주십니다.
그에게 조반을 차려주시며 세 번의 사랑 고백을 받으시고 그를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베드로의 자신감이 완전히 무너진 그 실패의 바닷가에서 그를 다시 사도로 부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야곱도, 모세도, 기드온도, 베드로도, 그들의 인간적인 희망이 완전히 끊어진 그 순간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제 끝났다", "답이 없다"라고 말하며 절망하는 그 순간이, 우리 성도에게는 하나님이 일하기 시작하시는 가장 복된 시간이 됩니다.
나의 모든 계획이 실패하고, 나의 알량한 힘이 바닥나고, 내가 의지했던 세상의 줄들이 다 끊어질 때— 바로 그때가, 내 자아가 죽고 오직 하나님만 남아 일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첫 번째 복이 무엇인지 기억하십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마 5:3)
여기서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몸과 영 모두가 파산한듯 하여 어떠한 힘도 없는, 죽은 것과 같은 상태를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제게는 아무런 대안이 없습니다. 제 힘으로는 이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두 손 번쩍 드는 그 파산 상태, 그것이 바로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야곱에게는 지금 이 자리가 그 가난의 자리였습니다.
20년간 쌓아온 재물도, 4명의 아내도, 11명의 아들도 지금 이 순간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혼자입니다. 희망이 무너진 자리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자리에 하나님이 찾아오셨다고 증언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지금 인생의 얍복 강가에 홀로 서 계십니까?
사방이 적들로 둘러싸인 것 같고,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보이지 않아 두려움에 떨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기뻐하시길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이 일하시기 위해 여러분의 손을 완전히 들게 하시는 중이기 때문입니다.
지금이야말로 나의 손을 내리고 하나님의 능력에 몸을 맡겨드리는 시간 입니다.
나의 잔꾀와 노력이 완전히 힘을 잃었을 때, 우리에게 남은 것은 단 하나,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뿐입니다.
모든 소망이 끊어진 그 절망의 끝자락이, 사실은하나님을 가장 깊이 만날 수 있는 은혜의 시작점임을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믿으시길 바랍니다.
대지2 : 내 생명의근원이 부러질 때, 하나님의생명이 시작됩니다.
대지2 : 내 생명의근원이 부러질 때, 하나님의생명이 시작됩니다.
이러한 자신의 힘이 모두 끊어진, 홀로남은 야곱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한번 보겠습니다.
야곱은 홀로 남았더니 어떤 사람이 날이 새도록 야곱과 씨름하다가
히브리어로'씨름하다'는 예아베크(yēʾāḇēq)'입니다.
이 단어는'먼지'를 뜻하는 명사'아바크(ʾāḇāq)'에서왔습니다.
이 단어는 이 싸움이 스포츠가 아니라 "먼지가 풀풀 날리도록 땅바닥을 뒹굴고, 온몸에흙먼지를 뒤집어쓰는 그런 싸움이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야곱은 지금 점잖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흙구덩이 속에서 상대방과 뒤엉켜 구르며, 입안에 흙먼지가 씹히고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는, 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매달리는 생존의 몸부림을 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야곱이 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끝까지 항복하지 않자, 하나님은 야곱의 가장 결정적인 곳을 치십니다.
성경에서는 허벅지 관절이라고 표현한 환도뼈입니다.
히브리어로 이 부위를 '야레크(Yarek)'라고하는데, 고대 근동에서 이 뼈는 몸을 지탱하는 힘의 중심이자, 생명을 잉태하는 '생명의 근원'을상징합니다.
하나님이 야곱의 환도뼈를 치셨다는 것은 단순히 다리를 못 쓰게 하신 것이 아니라는 겁니다.
야곱이 평생을 의지해왔던 자신의 힘, 자신의미래, 자신의 생명줄을 완전히 끊어버리셨다는 뜻입니다.
이건 어떻게 보면 재기 불능의 완전한 패배처럼 보일지도 몰릅니다.
이제 야곱은 도망칠 다리도 잃었고, 싸울 힘도 잃었습니다. 쟁취하던 인생이 끝이 나버립니다.
그런데 여러분, 바로 여기서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내 힘으로 서 있을 수 없게 된 바로 그 순간, 야곱은 비로소 하나님을 붙잡기 시작합니디.
살기 위해 매달립니다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
"하나님, 내 힘인 환도뼈가 부러졌습니다. 이제 나는 내 힘으로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은혜 주지 않으시면, 하나님이 나를 붙들어주지 않으시면, 나는 이 먼지 구덩이 속에서 죽습니다!"
바로 이 고백이 터져 나올 때,
하나님은 그에게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주십니다.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뜻을 가진 이름을 주십니다.
참으로 이상하지 않나요? 환도뼈가 부러져 걷지도 못하게 되었는데, 하나님은 그가 이겼다고 하십니다.
무엇을 이긴 것입니까? 내 고집이 꺾이고, 내 자아가 부러져서, 하나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는 존재가 되는 것. 하나님께 철저히 짐으로써 하나님의 은혜를 입는 것.
이것을 성경은 '진짜 승리'라고부르고 있습니다.
예화
20세기 선교의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엘리자베스 엘리엇선교사님을 아십니까?
1956년 남미 에콰도르의 깊은정글, 당시 그녀의 남편 짐 엘리엇은 아우카 부족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들은 외부인을 무조건 죽이는 것으로 악명 높은 부족이었습니다.
며칠 뒤, 끔찍한 소식이 들려옵니다. 강가에 착륙했던 남편과 4명의 동료 선교사가 아우카 부족의 창과 도끼에 무참히 살해당했다는 것입니다.
그때 엘리자베스의 나이는 고작 스물아홉 살(29세)이었습니다.
그녀의 품에는 태어난 지 겨우 10개월된 딸 발레리가안겨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낯선 정글 한복판에서 남편을 잃었습니다. 아이는 아빠 얼굴도 모른 채 자라야 합니다. 그녀 인생의 가장 든든한 기둥이자 환도뼈였던 남편이, 그것도 가장 잔혹한 방식으로 부러져 나간 것입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이것은 완벽한 비극이자 패배였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짐을 싸서 고향인 미국으로 도망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2년 뒤, 그녀는 어린 딸을 데리고 남편을 죽인 그 아우카 부족 마을로 걸어 들어갔습니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한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그녀는 훗날 자신의 저서와 강연을 통해 당시의 심정을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모든 지지대가무너져 내렸을 때, 나는 비로소 하나님만이 나를 지탱하시는 유일한 반석이심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은 나의모든 것이 되셨습니다."
그녀가 자신의 부러진 환도뼈를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팔을 의지하여 그들에게 다가갔을 때, 하나님은그 과부와 어린아이를 맹수와 독충, 그리고 살기 등등한 원주민들 사이에서 완벽하게 보호하셨습니다.
결국 그녀의 헌신에 감복한 아우카 부족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놀랍게도 그의 남편 짐 엘리엇을 창으로 찔렀던 청년'민카야닌'는 훗날 그 부족의 첫 번째 목회자가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야곱이 경험한 승리이자, 믿음의 선진들이 걸어간 '진짜 승리'의 길입니다.
오늘 이 시간, 저는 여러분께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의 '환도뼈'는 무엇입니까?
"이것만큼은 절대 건드리지 마세요 하나님!" 하며 마지막까지 움켜쥐고 있는 그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목숨보다 소중한 자녀일 수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평생을 바쳐 일군 사업체나 재물일 수도 있습니다. 또 어떤 분에게는 죽어도 꺾고 싶지 않은 자존심, 혹은 내가 세운 완벽한 미래 계획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이 무너지면 내 인생도 끝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것을 건드리실까 봐 전전긍긍하며, 하나님과 씨름하고 도망 다니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여러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오늘 말씀을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지금이 바로 기회입니다!
더 이상 내 힘으로 설 수 없는 지금이야말로, 하나님이 나의 '전부'가 되시는 기적을 경험할 유일한 시간입니다.
야곱이 환도뼈가 부러진 후에야 비로소 "당신이 축복하지 않으면 놓지 않겠습니다"라고 하나님께만 매달렸던 것처럼, 이제 여러분의 시선을 세상이 아닌 하나님께로 고정하십시오.
"항복하는 자가 승리합니다. 하나님께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이 역설적인 진리를 믿으십시오. 나의 고집이 꺾인 그 자리에 하나님의 은혜가 채워집니다. 나의 힘이 빠진 그 자리에 하나님의 능력이 머뭅니다.
이제 그만 버티십시오. 하나님과 싸우던 힘겨운 씨름을 멈추고, 이제는 하나님 앞에 두 손 들고 항복하십시오.
"하나님, 내 힘으로는 못 합니다. 내 뼈가 부러졌습니다. 이제 주님 없이는 한순간도 살 수 없습니다."
이 거룩한 항복의 고백이 터져 나올 때, 여러분은 더 이상 사기꾼 '야곱'이 아니라, 하나님이 책임지시는 승리자 '이스라엘'로 다시 태어나게 될 것입니다.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것이 깨어지는 아픔 속에서도, 오히려 "하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합니다"라고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대지3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세상 앞에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습니다.
대지3 :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만이 세상 앞에 진정으로 겸손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처절했던 씨름의 밤이 지나고 드디어 아침 해가 떠올랐습니다.
함께 창세기 32:31 합독해봅시다.
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의 허벅다리로 말미암아 절었더라
이제 아침이 되었습니다. 야곱은 환도뼈가 부러져 절뚝거리며 형을 맞이하러 갑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야곱은 누구보다 재빠르게 도망칠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가졌던 사람입니다.
위기가 닥치면 가장 먼저 뛸 준비가 되어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제 그는 자기 두 다리로 꼿꼿이 서서 도망칠 수도, 누구를 쫓아갈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이 '절뚝거림'이야말로 야곱이 받은 가장 큰 은혜의 표식이지 않습니까?
이 절뚝거림은 "이제 나는 내 힘으로 걷지 않고, 하나님의 은혜에 기대어 걷겠습니다"라는 몸의 고백이지 않습니까?
이 절뚝거리는 야곱이 저 멀리서 다가오는 에서와 400명의 군사를 마주합니다.
과거의 야곱이라면 어떻게 했을까요? 아마 뒤로 숨거나, 종들의 등 뒤에 숨어 상황을 살피며 도망칠 궁리를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된 야곱은 다릅니다. 그는 더 이상 뒤에 숨지 않습니다. 형 에서를 향해 몸을 일곱 번이나 땅에 굽히며 나아갑니다. "내 주여... 주의 종 야곱입니다."
하지만 여러분, 오해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형이 무서워 보이는 비굴함이 아닙니다.
이것은 압도적인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자만이 보여줄 수 있는 겸손입니다.
어제까지의 야곱은 '살아남기 위해'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내 목숨이 형의 칼자루에 달려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때의 굽힘은 공포였고, 비겁함이었을겁니다.
하지만 오늘 아침의 야곱은 다릅니다. 그는 밤새 하나님과 생명을 건 씨름을 하며, 내 생명의 주권이 형의 칼날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뼈저리게 확인했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자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내 생명을 완벽하게 붙들고 계심을 확신하기에,
칼을 들고 달려오는 형 앞이더라도 당황하지 않고 여유를 가지고 기꺼이 자신을 낮출 수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이토록 진실하게 낮아졌을 때, 하나님의 일이 나타납니다.
에서의 마음이 한순간에 무너져 내립니다. 성경은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끌어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입을 맞추고 서로 울었다고 기록합니다.
20년 동안 벼르고 별렀던 피의 복수가 눈 녹듯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는 형제의 뜨거운 눈물만 남았습니다.
그때 야곱이 형에게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창세기 33장 10절입니다.
창세기 33:10 (NKRV)"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지난밤 브니엘에서 하나님의 얼굴을 대면하고도 죽지 않고 살았기에, 그 벅찬 은혜가 야곱의 영적인 시선을 바꿔놓은 것입니다.
나 같은 죄인, 사기꾼인 나를 살려주신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나니, 이제는 나를 죽이려 했던 원수 같은 형의 얼굴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열린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용서받은 죄인임을 깊이 알기에, 나에게 칼을 겨누던 형제 앞에서도 기꺼이 낮아져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영적인 능력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러한 야곱의 겸손이 예수님을 그대로 닮았습니다.
빌립보서 2장은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증언합니다.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야곱의 이름 뜻이 무엇입니까? '발뒤꿈치를 잡는 자'입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평생토록 장자권과 축복을 '취하려고' 움켜쥐며 살았던 인생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예수님은 정반대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을 '취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셨으나, 그 무한한 힘을 군림하는 데 쓰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 힘으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가난한 자, 세리와 창기들 곁에 서셨으며, 제자들의 발 앞에 무릎 꿇고 그 더러운 발을 씻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심으로 원수 되었던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신뢰하는 아들만이, 아버지의 뜻에 따라 죽기까지 복종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의 모습을 돌아봅시다. 우리가 세상에서 왜 그토록 독해지고, 사나워지고, 말 한마디에도 지지 않으려고 바락바락 대듭니까?
어떻게든 내가 가진 것을 뺏기지 않으려 움켜쥡니까?
솔직히 말해 불안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나를 지키지 않으면 아무도 나를 지켜주지 않을 것 같아서", "여기서 밀리면 끝장날 것 같아서" 날이 서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우리를 사납게 만듭니다.
하지만 환도뼈가 부러진 야곱을 보십시오. 그는 이제 '하나님께 업혀 가는 인생'입니다.
내가 나를 지키려고 아등바등하던 인생이 끝났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가 시작됩니다.
이 보호하심을 믿는 자는 더 이상 세상과 싸워 이기려 하지 않습니다. "그래, 하나님이 나를 아신다. 하나님이 내 인생 책임지신다."
이 배짱이 있기에, 성도는 세상의 공격 앞에서도 넉넉히 웃으며 먼저 손 내밀 수 있습니다.
세상을 품고, 용서하고, 양보할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할 야곱의 모습, 아니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은 바로 이것입니다.
나의 약함이 곧 하나님의 능력이 머무는 통로임을 믿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또한 세상 앞에서 철저히 낮아지십시오.
그 겸손의 자리에서 우리는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평강을 전하는 진정한 '이스라엘'로 다시 서게 될 것입니다.
오늘 에서 앞에 서 있던 이스라엘처럼, 그리고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내려와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님처럼, 철저히 낮아짐으로 오히려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결론
말씀을 맺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두려움에 떨던 야곱의 절망적인 밤이 실상은 하나님을 만나는 가장 복된 기회였음을 확인했습니다.
나의 환도뼈가 부러져 더 이상 세상의 힘으로 설 수 없을 때, 하나님은 오히려 그 빈자리를 당신의 전능하신 보호와 생명으로 가득 채워주십니다.
이제 우리는 끊임없이 쟁취하려는 야곱의 욕망을 내려놓고,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낮아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아 세상을 섬기는 진정한 이스라엘로 나아가야 합니다.
내 힘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에 업혀 가는 삶이야말로,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가장 안전하고 위대한 승리의 길임을 잊지 마십시오.
이번 한 주간, 나의 약함을 자랑하며 하나님만 의지하는 그 거룩한 항복의 자리에 하나님의 놀라운 평강이 함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기도
마지막까지 우리를 붙잡으시고, 결코 놓지 않으시는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야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집중하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주님, 야곱처럼 우리들도 세상의 지혜와 우리의 힘을 최고로 여기며 살아왔음을 고백합니다. 이제는 오직 주님만을 바라보고, 주님의 능력만을 의지하는 삶을 살도록 우리 마음에 성령을 부어 주시옵소서.
이제 하나님 아버지만을 붙잡습니다.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아버지의 능력만을 의지합니다. 상황이 가장 나빠질 때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여정 속에서 하나님 한 분만을 붙잡으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님, 우리에게 주신 크신 은혜를 통해 겸손을 배우게 하옵소서. 우리가 세상에 굴복하여 무릎을 꿇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그리하셨던 것처럼 겸손한 마음으로 낮은 자리에서 섬기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세상에서 소외되고 핍박받는 영혼을 구원하게 하시고, 주님께서 우리의 위로자가 되어주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위로가 필요한 모든 영혼을 품는 진정한 위로자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오직 주님의 능력에 의지하여 하나 되는 공동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몸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