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어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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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다 어른
-마태복음 18장 1~4절-
Intro: 한국의 경쟁 사회
여러분 ‘두바이 쫀득 쿠키’ 아십니까? 요즘 유행이 말이 아닙니다. 이것을 먹기 위해서 줄을 서는 것은 기본이고요. 이제는 어디에 팔고 재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따로 어플이 있습니다.
물론 저도 최근에 이를 먹기 위해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유행하는 두바이 쫀득 쿠키 일명 두쫀쿠를 먹기 위해 경쟁을 합니다. 일찍이 가게에 가서 줄을 서고 만약 못 샀다면 다른 가게로 가고 경쟁을 계속 해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두쫀쿠가 아니더라도 경쟁이 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한국 안에서 경쟁이 얼마나 심한지 뉴스를 통해서도 많이 접하셨을 겁니다.
특히 교육은 입시경쟁이 치열하죠. 사실 인서울을 하기만 해도 잘한 건데 요즘은 서울 안에서도 상위권, 중상위권, 중하위권, 하위권 등등 세부적으로 나눕니다. 그리고 학교를 졸업하면 모든 것이 탄탄대로라고 생각했지만, 회사 취업에서 경쟁이 심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맛집들도 줄을 서야 먹을 수 있고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보기 위해서 온라인 예매를 경쟁해서 얻어야 트리를 보러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한국은 경쟁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런데 이런 문화는 교회에도 있습니다. ‘내가 저 사람보다는 낫지, 내가 저 사람보다는 더 잘해야지’ 우리는 본능적으로 내가 남보다 조금이라도 더 윗자리에 있기를 원하고 경쟁해서 이기기를 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제자들도 똑같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도 속으로 치열하게 눈치 싸움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중에 누가 제일 높은 거야? 누가 2인자야? 누가 예수님의 오른팔이야?’ 이런 마음들을 품고 있었던 거죠.
오늘 이 자리에 나온 우리의 마음속에도 제자들과 같은 마음이 있지는 않으신가요? 오늘 예수님은 이 ‘어른들의 질문’에 충격적인 대답을 내놓으십니다. 그 대답을 파헤쳐 봅시다.
서론1: 어른들의 질문 ‘누가 더 큽니까?’ (1절)
제자들은 앞서 읽은 본문과 같이 예수님께 질문을 합니다. ‘천국에서는 누가 크냐고’ 그런데 이 질문 뭔가 급작스럽게 나온 것 같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라는 말 이후 바로 질문이 나오니 뜬금없이 질문이 던져진 거 같죠. 그렇기에 이 말씀만 보면 제자들은 왜 이런 질문을 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이 질문 뒤에는 제자들의 ‘불안감’과 ‘질투’가 있었음을 우린 알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6장을 보면 베드로는 ‘주는 그리스도시오….’라는 고백을 하고 ‘천국 열쇠’를 약속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러지는 17장 변화산 사건 때도 예수님은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 데리고 올라가셨으며 17장 24~27절 말씀인 성전세 사건에서도 예수님은 베드로만 챙기십니다. 이렇듯 뭔가 예수님은 베드로만 챙기시는 것 같죠.
나머지 제자들은 이러한 모습들을 보고 불안했을 것입니다. ‘뭐야, 서열 1위는 베드로로 확정된 거야?’ 이런 경쟁심과 시기심이 발동하여서 오늘의 본문처럼 누가 천국에서 큰지 질문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여전히 제자들이 세상적인 가치관을 따르고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아무래도 제자들은 여전히 예수님이 로마를 뒤엎고 세워질 ‘정치적 이스라엘 왕국’을 꿈꾸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로부터 해방된 이후 누가 국무총리가 되고 누가 장관이 되는지 이러한 권력 분배에 관심을 가졌던 것이죠. 즉, 더 높은 자리, 더 높은 서열, 더 높은 권력 이것을 누가 가졌는지 물은 겁니다. 제자들은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의 비장함과는 달리, 누가 더 높은 자리를 차지할지에만 왕관에만 관심이 있었죠.
예수님은 제자들을 혼내거나 누가 더 크고 누가 더 높은 자리에 있는지 서열 정리를 해주시거나 명강의를 펼치실 수 있으셨겠지만, 대신 한 어린아이를 제자들 한 가운데 세우십니다.
본론 1: 지금 가던 길을 멈추고 내려오십시오. (3절)
예수님은 왜 어린아이를 갑자기 불러다가 제자들 한 가운데에 세우셨을까요? 제자들의 질문과는 상관없어 보이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라고 말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대답이 아닌 명령을 하십니다. 돌이키라고. 여기서 돌이키라는 말은 단순한 반성 혹은 후회가 아닙니다. 주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이 정도의 권고가 아닙니다.
너의 죄를 알라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적극적인 행동을 요구합니다. 돌이키라고. 너희가 가던 길, 너희가 생각하고 있던 모든 생각, 그것 다 옳지 않으니 멈추고 180도 방향을 바꾸라는 급진적이고 적극적인 결단을 요구하십니다.
제자들은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성공’과 ‘지위’ 그리고 ‘권력’에 눈이 멀어있었습니다. 성공을 향해 올라가는 사다리를 타고 있었죠. 예수님은 그 사다리를 타는 것이 잘못됐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 방향이 틀렸으니 바로 내려오라는 것이죠.
본론 2: 무엇이 되어야 합니까? '무력한 자'입니다
그럼 이렇게 방향을 돌렸다면 우리는 어떠한 모습이 되어야 할까요? 예수님은 명확하게 모델을 세워 주십니다. 바로 ‘어린아이’입니다. 우리는 ‘어린아이’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흔히 ‘어린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아이처럼 순수해지고 착해져야 하나?’ 이런 생각이 들 것입니다. 뭔가 도덕적 교훈으로 들리죠. 하지만 우리 아이들을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제가 지금 주님의 은혜로 유년부를 맡아서 아이들과 함께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여정을 이어 나가고 있습니다. 우리 아이들 정말 이쁘고 귀엽고 사랑스럽습니다. 힘들다가도 아이들을 보면 힘이 납니다. 그런데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아이들 말을 듣나요? 아니면 안 듣나요? 안 듣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합니다. 그것뿐인가요? 저에게는 얼굴이 세모낳다. 눈썹은 왜 그러냐. 등등 저를 놀리기 일쑤입니다. 아니라고 하면 더 놀립니다. 찬양 인도할 때 박수는 왜 그러냐. 찬양 인도는 왜 그렇게 하냐 등등 놀리고 도망치기 일쑤죠. 이런 모습들을 보면 순수함과는 거리가 먼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들은 ‘순수함’의 상징이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께서 이야기하시고자 하던 바는 무엇이냐. 바로 ‘가장 낮은 지위’라는 것입니다. 본문이 쓰인 1세기 유대 사회의 배경은 지금과 사뭇 다릅니다. 당시 어린아이는 ‘순수함’의 상징이 아니라 ‘사회적 중요성이 없는 존재’, ‘가장 낮은 지위’의 상징이었습니다.
발언권도 없고, 사람 수에도 끼지 못하는 ‘무력한 존재’ 그 자체였습니다. 즉, 예수님은 세상의 높은 자리로 향하여 가지 말고 돌이켜서 어린아이와 같이 낮은 자리, 낮은 위치를 향하여 가라는 것이죠.
본론 3: 무력한 자로 멈추는 것이 아닌 절대적으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방향을 바꾸는 것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내려오기까지 하라니 예수님의 명령은 너무나 가혹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일구어 놓은 모든 노력과 모든 경험 모든 자존심 모든 재산 그것을 더 크게 만들려고 하지 말라고 하시니 얼마나 당황스럽습니까?
하지만, 돌이켜 낮은 자리로 가지 않으시면 천국은 없다고 단호하게 말씀하십니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저 무기력하게 살아야 하는 걸까요?
우린 아이의 낮은 지위라는 특성 말고 다른 특성도 고려해 보아야 합니다. 바로 ‘절대적 의존’입니다. 어린아이의 생존 방식은 부모를 향한 ‘절대 의존성’입니다. 아이가 무언가 필요하면 일단 부모님을 찾는 거와 같습니다.
우리 아이들을 다시 생각해 봅시다. 아이들 집에 오면 옷도 그저 벗어 던지고 내 옷 건드리지 말라 그러고 더럽습니다. 그래서 간신히 치워서 정리했더니 그럼 뭐라고 하죠? 자기가 찾는 옷 어디 있냐고 묻습니다. 부모님 없이는 옷도 못 찾는 겁니다.
이뿐인가요. 필요한 휴대폰 사달라 그러죠, 뭐 먹고 싶다고 하죠. 부모님 없이는 살 수가 없습니다. 일단 말씀드리지만, 이 모든 이야기 제 이야기 아닙니다. 아무튼 아이는 부모 없이 살 수 없습니다. 부모의 헌신과 노력으로 살아가며 아이는 부모를 절대적으로 의존합니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께 절대적으로 의존해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든지 모든 것을 아시는 주님께 매달리고, 안기고 울고 해야 하는 거죠. 천국에서 큰 자는 능력이 많고 권력이 강한 ‘어른’이 아닌 솔직하게 하나님 없이 하루도 살 수 없다고 고백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예화: 봄성경학교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며 저의 믿음이 작았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작년 3월 2일에 하나님의 은혜로 평내교회에 부임하며 유년부를 섬기게 되었습니다. 인생의 첫 사역지이자 첫 사역이기에 떨리고 긴장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도하심으로 첫 설교를 마치고 선생님들의 도움과 담임목사님과 사역자 분들의 도움으로 한주 한주 잘 적응해 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제 마음 가운데 근심이 한 가지 있었습니다. 바로 부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봄성경학교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부임하기 한 달 전부터 이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부임하고 얼마 안 되어 부서 큰 행사이기에 잘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되었습니다.
2월부터 기도로 먼저 준비하며 주제를 ‘믿음 있는 어린이’로 잡고 3월에 선생님들과 준비하고 기도로 준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가운데 봄성경학교를 통하여 아이들이 믿음 있는 어린이가 되고 주님을 향한 믿음이 더욱 커지게 해달라고 선생님들과 매일마다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기도 가운데도 저의 마음 한편에는 이 시간이 빨리 지나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주님 이 잔을 내게서 옮기소서’와 같은 그런 마음, 부담감이 컸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에는 이 시간 그냥 잘 마치면 되지, 애들이 변하겠어? 라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당일이 되었습니다. 당일이 되어서 보니 기대한 것보다 아이들이 많이 왔습니다. 아이들에게 설교하고 이제 준비한 공과를 나누어 줬습니다.
그 공과에 마지막에는 하나님께 편지를 쓰는 칸이 있었습니다. 사실 저는 아이들이 주님께 ‘~을 사달라거나’, 재미있는 부탁들을 적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이 시간을 통하여 역사하셨습니다. 사진을 봐주시길 바랍니다. 제가 읽겠습니다.
1.예수님 저도 예수님처럼 기도하고 전도하고 용서하며 사랑할래요.
2.예수님 믿음이 없던 저희를 용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착한 어린이가 되겠습니다. 전 예수님이 있다는 걸 믿어요. 예수님 사랑해요.
3.예수님 제가 오늘 봄 성경학교에서 털어놓아요. 제가 예수님을 믿는데 자꾸 나쁜 영상을 보고 그런 거 보면 잠을 못 자는데 자꾸 생각나요. 밤마다 기도하는데 귀찮고 그래요. 저도 모르게 자꾸 나쁜 말 나쁜 짓을 하게 돼요. 제가 예수님을 더 믿음 있게 믿는 사람이 되게 해주세요.
지금 읽은 편지 말고도 많은 아이들이 이런 고백들을 했습니다. 저는 이 편지들을 보며 너무나 부끄러워졌습니다. 제 믿음이 너무나 연약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 순간만 넘기자고 했던 제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믿음이 아이들의 신앙이 깊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요즘, 다음 세대가 위기라던데 우리 아이들을 보면 아직 희망이 넘치는 것 같습니다. 저보다도 믿음이 크니까요.
밤마다 기도하는 데 나의 힘으로는 기도도 어렵고 변하고 싶어도 변하기 어렵다는 걸 주님께 고백하며 믿음 있는 사람이 되게 해달라는 이 고백 얼마나 값진 고백입니까. 나는 변할 수 없지만 주님의 능력이라면 주님이라면 날 변화시킬 수 있다는 이 고백 이 믿음, 우리가 본받아야 할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도 이렇게 어린아이와 같이 믿음이 좋았던 적이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주님을 처음 만났던 때, 주님께 매달렸던 때, 주님께 울부짖으며 불쌍히 여겨달라고 했던 때 우리도 그런 때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 맞춰서 살아가다 보니 현실에 치여서, 밥 벌어먹기 급한 상황이다 보니 어쩌다 어른 된 거 아닌가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처음 만났던 첫사랑, 첫 믿음 그때를 떠올리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그때와 같이 주님께 매달리고 살아가시길 소망합니다.
주님께 매달리기 위해 예배를 사모하시고 말씀을 사모하시길 바랍니다. 금요기도회 얼마나 좋은지 모르겠습니다. 저도 부임하고 첫 금요기도회에 와서 울부짖으며 기도했습니다.
사역자라는 자리의 부담감이 컸기에 주님께서 해달라고 주님께서 인도하셔서 주님의 은혜로 평내교회에 왔으니, 앞으로도 주님께서 도와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 기도 계속해서 하고 있고 주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으로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주일 예배뿐만이 아니라 수요, 금요기도회에 오셔서 주님께 매달리시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살다 보니 어쩌다 어른이 되어버렸습니다. 체면 때문에 울지도 못하고, 자존심 때문에 매달리지도 못하는 불쌍한 어른이 되었습니다. 이제 그 가면을 벗읍시다. 하나님 앞에서는 그냥 어린아이가 되십시오. "주님 아니면 안 됩니다"라고 매달리는 여러분을,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이번 주 금요기도회 아니 모든 예배 가운데, 그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나오시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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