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부르심 교회, 증언하는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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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부르심-교회, 증언하는 공동체

고린도전서 1:1–9 NKSV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 아울러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람들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3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려주시는 은혜와 평화가 여러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4 나는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여러분의 일로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9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7–9 (NKSV)
얘들아, 질문 하나 해 볼게요.
교회가 뭐예요?
건물이에요? 십자가 있는 곳이에요?
사실 교회는 건물이 아니에요.
성경은 교회를 이렇게 말해요.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들.”
하나님은 우리를 그냥 혼자 살게 두지 않으셨어요.
하나님은 우리를 함께 부르셨어요.
그래서 교회는
👉 혼자 있는 사람이 아니라 👉 함께 있는 사람들이에요.
이걸 성경에서는 어려운 말로 코이노니아라고 불러요.
코이노니아는 이런 뜻이에요.
👉 “같이 웃고”
👉 “같이 울고”
👉 “같이 예수님을 따라가는 것”
교회는
“잘하는 사람들 모임”이 아니에요. “착한 사람들만 있는 곳”도 아니에요.
교회는 예수님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에요.
우리는 가족처럼 함께 예배드리고,
친구처럼 함께 예수님을 따라가요.
한 문장 정리 (아이들과 함께 말하기)
“교회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예수님을 따라가는 가족이에요.”
교회는 모든 시대마다 동일한 질문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시대속에서 교회는 어떤 존재입니까? 교회가 세상과 다른 점이 무엇입니까?
오늘 우리에게 다시 한번 질문해 보겠습니다.
이 시대에 교회는 어떤 존재여야 합니까? (함께 대답하는 시간)
오늘 우리가 읽은 고린도의 첫 장이 바로 이 질문의 대해 치열하게 대답한 내용입니다.
고린도는 로마제국의 상업중심지였습니다. 부와 지식이 넘쳐난 곳이었지만 넘치는 타락도 공존하던 거대한 욕망의 도시였습니다. 이 한복판에 바로 고린도교회가 서 있었습니다.
어떠할까요. 세상의 모진 풍파에 심하게 흔들렸습니다. 또한 교회적인 능력도 많았습니다. 은사도 풍성했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분열이 심했습니다.
이런 상황가운데에서 바울은 교회를 책망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교회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의 대해 이야기를 해 줍니다.
우리도 오늘 이 말씀을 통해 교회로 부름받은 우리의 정체성을 확인하고 이 시대속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함께 길을 찾아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것이 은혜입니다.
고린도전서 1:1 “1 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나 바울과, 형제 소스데네가,”
바울은 자신이 가진 지식과 배경, 업적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그저 부르심을 받은 존재라고 소개합니다.
함께 동역하는 소스데네가와 동일하게 말입니다. 부르심 앞에 바울이나 소스데네가나 동일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논리를 고린도 교회에도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고린도전서 1:2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 아울러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람들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자신이 부름을 받고 나온 것 처럼 고린도교회또한 부름을 받아 나온 존재라는 것입니다.
뿐만아니라 거룩하여지고, 거룩하게 되었다라고 성도앞에 못을 박습니다.
고린도교회는 지금 분열하고 싸움이 있고 세속에 흔들리고 있는데 거룩한 자들이라고 선언합니다.
교회는 현실에 비추어 설명되는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설명되는 존재입니다.
현실이 이렇다고 해서 교회가 이모양이야가 아니라 현실이 비록 이렇고 우리의 모습이 부족해도 교회는 거룩한 존재로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입니다.
이사야 49:1 “1 너희 섬들아, 내가 하는 말을 들어라. 너희 먼 곳에 사는 민족들아, 귀를 기울여라. 주님께서 이미 모태에서부터 나를 부르셨고, 내 어머니의 태 속에서부터 내 이름을 기억하셨다.”
이사야49장은 야웨의 종의 노래라고 불리는데, 하나님의 종으로 부름받은 것이 모태에서 부름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은 이 현실하고 상관없이 우리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존재로 살게 하십니다. 우리 성도들은 비속한 일상속에 성스러움을 심는 사람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성도가, 거룩해진 것은 우리의 노력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내어 구별하셨기 때문이다라고 말을 해줍니다.
비록 고린도가 타락하고 세속에 쩔어 있지만, 교회가 분열가운데 있고 다툼가운데 있지만 여전히 너희 교회는 거룩한 존재다. 구별된 존재다. 세상에 발을 딛고 살지만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를 향한 정체성입니다.
2. 우리를 공동체로 초대하셨습니다. 2절의 말씀을 한번 더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2 “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에 이 편지를 씁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여러분에게 문안드립니다. 또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 아울러 문안드립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 사람들의 주님이시며 우리의 주님이십니다.”
교회는 누구의 소유입니까? 아주 논란을 불러 오는 질문이 될 수 있습니다.
개척을 시작한 임목사의 소유입니까? 우리의 소유입니까? 교단의 소유입니까?
어느 누구도 교회의 소유권을 주장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 주장하실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교회로 부름을 받아 나온 존재이고 이곳에서 공동체를 이루었을 뿐이지
제가 부른것이 아닙니다. 저도 여러분과 동일하게 부름받아 왔습니다.
바울은 “각처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이들에게도”라고 말합니다.
지역이 다르고 다른 배경을 가지고 살고 있더라도 각 위치의 모든 교회는 하나님께 부름받은 존재이고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논쟁이 되고 있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설교가로 막대한 영향을 미친 박영선목사님이 편법으로 세습을 하기 위해 아들과 함께 성도들 데리고 나가서 개척할테니까 40억을 달라고 요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유가 자신이 이 교회에 얼마나 많은 공을 세웠으며 자산가치를 천억가까이 만들어 놓았으니까 십분의 일도 안되는 이 금액을 요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자신한테 이정도 지분은 있다라고 말을 했습니다.
또한 청년세대들에게 한참 핫했던 목사, 온갖 더러운 성추문으로 한국교회를 부끄럽게 했던 전병욱목사는 자신을 비판하던 목사가 있는 교회를 빚을 갚아주는 조건으로 교회를 사버렸습니다.
참고로 우리 움직이는교회에서 임목사의 지분은 1도 없음을 선포합니다. 제가 요구할 수 있는 것 아무것도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각자 불러내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 나라의 삶을 함께 살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9절을 다 같이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9 “9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가지게 하여 주셨습니다.”
개역개정에는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와 더불어 교제하게 “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누구와 함께 살도록 부르셨습니까? 예수그리스도. 이교회의 가장은 하나님 아버지입니다.
교회의 주인되는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라고 각자 흩어져 살아가고 있던 우리를 한 가족으로 한 나라의 시민으로 공동체로 우리를 불러 모으신 것입니다.
교회를 코이노니아라고 부릅니다.
고든 피 라는 신학자는 이것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코이노니아는 단지 예수의 대해 이야기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라, 예수의 삶과 운명, 그리고 그의 길에 함께 참여하는 관계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우리를 공동체로 부르신 것은 예수의 뒷 그림자만 구경하듯이 따라가라고 부르신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에 묶인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생각이 꼭 일치되지 않아도 됩니다. 취향이 같지 않아도 됩니다. 오직 일치해야 되는 한가지. 그것은 예수님과 함께 하는 것에는 일치되어야 합니다.
예수그리스도 한분을 함께 바라보고, 예수의 생명에 참여하고, 예수의 길을 함께 하나가 되어 살아가는 것입니다.
김기석목사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은 예수를 믿는 생각이 아니라, 예수의 리듬에 삶을 맞추는 일이다. 라고 말이지요.
오늘 우리를 교회 공동체, 움이이는공동체로 부르신 것은 예수와 함께 살아내는 삶을 살게 하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3. 교회는 예수와 깊이있는 친교를 통해 증언하는 공동체가 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방법이 무엇일까요? 꿈속에 나타나셔서? 어떤 사인을 주셔서?
복음을 통해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복음은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의 십자가 죽으심과 다시 사심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과 화해를 하게 하신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서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된것이 복음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은사가 넘쳐났습니다. 능력들이 생겨났습니다.
바울은 은사의 대해 부정하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7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면에 풍족하게 되었습니다. 곧 온갖 언변과 온갖 지식이 늘었습니다. 6 그리스도에 관한 증언이 여러분 가운데서 이렇게도 튼튼하게 자리잡았습니다. 7 그리하여 여러분은 어떠한 은사에도 부족한 것이 없으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것들이 예수그리스도를 증언할 수 있게 되었다라고 말을 합니다.
어떤 의미인가? 교회 안에 다양한 은사들이 있고 다양한 능력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거나 내편이냐 네편이냐 세력을 만들기위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그리스도를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조심해야 될 단어사용이 있는데, 내편이 되라는 요구입니다.
세례요한이 요한복음 1:29–31 “29 다음 날 요한은 예수께서 자기에게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시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입니다. 30 내가 전에 말하기를 ‘내 뒤에 한 분이 오실 터인데, 그분은 나보다 먼저 계시기에, 나보다 앞서신 분입니다’ 한 적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분을 두고 한 말입니다. 31 나도 이분을 알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이분을 이스라엘에게 알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대 가장 경이롭고 거룩하게 존경받는 세례요한이 자신의 삶은 오로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증언하라고 해서 한 것이다.라고 고백합니다.
또한 요한의 제자들이 요한이 “보아라 하나님의 어린양이다”라고 말하자, 예수를 따라 갔습니다.
요한복음 1:37 “37 그 두 제자는 요한이 하는 말을 듣고, 예수를 따라갔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가서 선생님, 어디에 숙소가 있습니까. 어디에서 지내고 계십니까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 유명한 말씀을 하십니다.
요한복음 1:39 “39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와서 보아라.” 그들이 따라가서, 예수께서 묵고 계시는 곳을 보고, 그 날을 그와 함께 지냈다. 때는 오후 네 시 쯤이었다.”
제자들은 이제 예수와 함께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마을로 돌아가서 형제들 친구들을 데리고 오기 시작합니다.
제자들이 요한을 배신한 것입니까? 요한의 편에서 예수의 편으로 갈아탄것입니까?
아니요 처음부터 예수께로 가야 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을 통해 예수와 함께하는 공동체로 모여지게 됩니다.
복음을 증거하는 것은 물티슈와 사탕 다양한 전도 전략으로 전해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만난 사람들이 결국 하게 되는 고백이고, 가만히 있을 수 없어서 하게 되는 삶이고 말이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가장 먼저 해야 될 것이 무엇입니까? 조직을 짜고, 우리 서로가 친해지도록 기술을 배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들이 우선이 되면 조금만 틀어지고 실망하고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돌아서버립니다.
저는 교회 행정사역을 오래 했기때문에 교회 조직을 짜고 배치하고 훈련하고 지도하는 일에 익숙하고 능숙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왜 우리 교회에서는 그런 열심이 없을까요? 그것으로 교회를 움직여나가보니 예수그리스도 냄새는 다 빠지고 없어지더라는 것입니다. 예수의 향기가 공동체에 하나도 남아있지 않아요.
그러나 먼저 예수그리스도와 깊은 친교가 있게 된 후 우리가 하난되기 시작하면 우리 공동체는 더욱 단단해 지게 됩니다. 우리 개인도 신앙적으로 더욱 단단해지게 됩니다.
결국 우리 교회공동체를 통해 예수의 향기가 세상가운데 흘러가게 됩니다.
세상에서 삶으로 태도로 복음을 증언하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결론을 맺겠습니다.
9절에서 처럼 예수그리스도와 더불어, 함께 할 때 우리 공동체는 예수님을 드러내는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는 각자 홀로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지체들과 삶을 나누는 사귐을 통해 교회라는 공동체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공동체, 코이노니아로 부르셔서 주님이 원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공동체안에서 만들어진 은사와 사귐의 깊이를 가지고 다시 “여러분의 고린도”로, 각자의 삶의 자리로 돌아가서 그곳을 하나님의 나라로, 교회로 만들어가길 원하십니다.
우리는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8절을 함께 읽고 마치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8 “8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날에 여러분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으로 설 수 있도록, 주님께서 여러분을 끝까지 튼튼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9절에서 못을 박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입니다.
신실하신 하나님이 자격없는 우리를 교회로 부르시고, 하나되게 하시고 예수를 따르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의 한줄 요약 교회는 모였을때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흩어져 살아갈 때 증명됩니다.
한주도 힘을 내어 교회로 살아가시길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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