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8 청년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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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2 사십 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리신지라
3 시험하는 자가 예수께 나아와서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
4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6 이르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하시니
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9 이르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서론: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가장 척박한 곳으로]
[서론: 가장 영광스러운 순간, 가장 척박한 곳으로]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한 주간 평안하셨습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본문은 마태복음 전체를 통틀어 가장 당혹스럽고, 인간적인 시선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마태복음 3장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십니다. 그때 하늘이 찢어질 듯 열리고, 성령이 비둘기같이 임합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렁찬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이것은 단순한 칭찬이 아닙니다. 온 우주를 향한 하나님의 **'공식 선포'**입니다. "너는 내 아들이다. 너는 나의 기쁨 그 자체다." 여러분, 이보다 더 완벽한 인정과 영광이 어디 있겠습니까? 이제 예수님의 앞길에는 레드카펫이 깔리고, 사람들의 환호가 이어져야 마땅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 4장 1절은 충격적인 접속사로 시작합니다. "그때에..."영광의 선포가 아직 귓가에 쟁쟁한 바로 그때에,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
여러분, 이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하나님은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왕궁이 아니라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축복의 자리가 아니라 마귀가 기다리는 시험의 자리로 등을 떠미셨습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이 지점에서 자주 넘어집니다. "하나님, 제가 이번 수련회 때 은혜받았잖아요. 제가 헌신했잖아요. 그런데 왜 제 현실은 더 힘들어집니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면, 왜 내 취업 문은 닫히고, 왜 내 관계는 깨지고, 왜 나는 이 외로운 광야에 홀로 있어야 합니까?"
오늘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해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녀를 광야로 보내시는가? 그리고 그 광야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말씀을 통해 광야가 우리를 무너뜨리는 곳이 아니라, 우리의 진짜 정체성이 드러나는 곳임을 발견하기를 원합니다.
[본론 1: 광야(Midbar) - 하나님의 입을 바라보는 곳]
[본론 1: 광야(Midbar) - 하나님의 입을 바라보는 곳]
먼저, 예수님이 서 계신 '광야'의 의미를 다시 정립해야 합니다. 히브리어로 광야를 **'미드바르(Midbar)'**라고 합니다. 이 단어는 '말하다'라는 뜻의 **'다바르(Dabar)'**에서 나왔습니다. 즉, 광야는 아무것도 없는 황무지가 아니라, **'세상의 소음이 차단되어 비로소 하나님의 말씀(Dabar)이 들리는 곳(Midbar)'**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내가 뭔가 실패했거나, 하나님께 벌을 받아서 광야에 왔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본문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죄를 지어서 광야로 가신 게 아닙니다. "성령에게 이끌리어" 가셨습니다.
청년 여러분, 지금 여러분의 삶이 광야 같다면 기억하십시오. 의지했던 통장 잔고가 바닥나고, 믿었던 사람에게 실망하고, 내 계획이 다 틀어져서 오직 하나님만 바라볼 수밖에 없는 그곳. 그곳은 여러분이 버려진 자리가 아닙니다. 세상의 모든 가면을 벗고, 하나님과 독대(獨對)하는 자리입니다.
광야는 정체성을 만드는 곳이 아닙니다. 광야는 내가 진짜 누구인지, 나의 **'정체성이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예수님은 이곳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닙니다. 이미 아들이셨습니다. 광야는 그 아들 됨을 어떻게 살아낼 것인지를 결정하는 현장이었습니다.
[본론 2: 40이라는 시간 - 증명이 아닌 빚어짐의 시간]
[본론 2: 40이라는 시간 - 증명이 아닌 빚어짐의 시간]
예수님은 그곳에서 40일을 보내셨습니다. 성경에서 '40'이라는 숫자는 매우 독특한 의미를 가집니다. 노아의 홍수 40일, 모세의 시내산 40일, 이스라엘의 광야 40년. 이 시간들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내 실력을 뽐내는 시간이 아닙니다. 내 자아가 깨어지고, 불순물이 제거되며, 철저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어지는 연단의 시간'**입니다.
우리는 조급합니다. "하나님, 빨리 이 터널을 지나게 해주세요. 빨리 결과를 주세요." 하지만 하나님은 '속도'보다 '방향'을, '결과'보다 '그릇'을 중요하게 여기십니다. 예수님조차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이 40일의 멈춤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겪고 있는 기다림의 시간, 그 40의 시간을 헛되다 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지금 여러분을 낭비하고 계신 것이 아니라, 가장 단단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빚고 계신 것입니다.
[본론 3: 사탄의 전략 - "네가 만일..."]
[본론 3: 사탄의 전략 - "네가 만일..."]
40일의 금식 후, 가장 약해진 예수님께 사탄이 다가옵니다. 그리고 던지는 첫마디가 무엇입니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이 말의 뉘앙스를 원어적으로, 그리고 문맥적으로 살펴보면 아주 교묘합니다. 이것은 "너 진짜 아들 맞아?"라는 의심이 아닙니다. 헬라어 문법을 보면 이것은 오히려 **'조건적 도발'**에 가깝습니다. "그래, 너 하나님의 아들 맞지. 그런데 아들의 꼴이 이게 뭐냐? 굶어 죽어가고 있잖아. 아들이라면 능력 좀 써봐. 돌을 떡으로 만들어봐. 뛰어내려봐. 네가 아들인 걸 스스로 증명해 봐!"
사탄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부정한 것이 아닙니다. 사탄은 **'정체성의 증명 방식'**을 왜곡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가난하면 안 돼."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고난받으면 안 돼." "능력으로, 성과로, 기적으로 네가 누구인지 증명해 내!"
이것이 오늘날 청년 여러분이 매일 듣는 세상의 소리 아닙니까? "네가 하나님의 자녀라며? 그런데 왜 취업은 못 해?" "네가 기도하는 사람이라며? 그런데 왜 네 삶은 그 모양이야?"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결과로 증명해. 스펙으로 증명해. 연봉으로 증명해. 그래야 너를 인정해 줄게."
[본론 4: 증명(Proof) vs 증거(Witness)]
[본론 4: 증명(Proof) vs 증거(Witness)]
사탄의 요구는 일관됩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고, 성전에서 뛰어내리고, 나에게 절해서라도 영광을 얻어라. 즉, **"네 가치를 능력으로 증명하라(Prove yourself)"**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예수님의 대응을 보십시오. 예수님은 능력이 있으셨습니다. 돌을 떡으로 만들 수 있으셨고, 뛰어내려도 다치지 않을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단 한 번도 기적을 사용하여 자신을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책 : 삶의 영성
예수님이 ‘너는 내 사랑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으신 직후에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네가 사랑받는 자임을 증명해 봐라” “뭔가 보여줘라””이 돌을 빵이 되게 해라, 유명해져라” “성전에서 뛰어내려라, 그러면 너의 명성이 자자해질 것이다.” “권력을 잡으라. 그러면 진짜 영향력이 생길 것이다.” “너는 영향력을 원하지 않느냐? 그래서 세상에 온 게 아니냐?”
그러자 예수님께서 단호하게 말슴하셨다. “아니, 나는 아무것도 입증할 필요가 없다.” “나는 이미 사랑받는자다.”
하나님이 “이는 내 사랑하는 자요, 내 기뻐하는 자”라고 선포하시자마자, 마귀는 “높은데서 뛰어내려라, 돌을 덕으로 만들어라”고 한다.
능력을 나타내야 네가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받고 사랑받을 것 아니냐고 묻는다.
하지만 주님은 그런 말씀을 안 하셨다. “나는 너한테 그렇게 증명할 이유가 하나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사랑받는 자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사탄에게 증명하지 않으셨습니다.
여기서 복음의 가장 중요한 핵심이 나옵니다. '증명'은 종(Slave)의 언어이고, '증거'는 아들(Son)의 언어이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종은 주인의 집에서 쫓겨나지 않기 위해 매일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합니다. 일을 잘해야 하고, 실수를 안 해야 하고, 성과를 내야 합니다. 증명하지 못하면 버려집니다. 이것이 세상의 법칙입니다. 하지만 아들은 다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아버지, 제가 이번 시험 100점 맞았으니 오늘 저녁밥 주시는 거죠?"라고 합니까? 아닙니다. 아들은 존재 자체로 사랑받습니다. 아들은 자기를 증명하기 위해 살지 않습니다. 그저 아버지의 사랑 안에 거하며 아버지의 성품을 닮아가는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아버지를 **'증거(Witness)'**할 뿐입니다.
예수님은 사탄에게 이렇게 선포하신 셈입니다. "나는 떡을 만들어 내 능력을 증명할 필요가 없다. 나는 말씀에 순종함으로 내 아버지를 신뢰함을 증거할 것이다." "나는 뛰어내려 사람들의 환호를 얻을 필요가 없다. 나는 묵묵히 십자가의 길을 감으로 아버지의 뜻을 증거할 것이다."
증명은 조건이지만, 증거는 관계입니다.사탄은 "네가 성공해야 하나님 아들이야"라고 속이지만, 예수님은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기에, 성공과 상관없이 하나님을 예배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결론: 증명의 감옥에서 나와 아들의 자유로]
[결론: 증명의 감옥에서 나와 아들의 자유로]
사랑하는 청년 여러분, 혹시 지금도 세상이 요구하는 증명의 감옥에 갇혀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이번에 합격하지 못하면 하나님께 영광이 안 될 거야." "내가 돈을 많이 벌지 못하면 나는 가치 없는 사람이야."
아닙니다. 제발 그 거짓말에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단 한 번도 여러분에게 "너의 자격을 증명하라"고 말씀하신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이 무엇을 하기도 전에, 여러분이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이미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딸이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승리하신 비결은 '능력'이 아니라 바로 이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돌을 떡으로 만들지 않으심으로, 떡보다 말씀이 중요함을 보이셨습니다. 화려한 기적 대신 십자가의 순종을 택하심으로, 진짜 승리가 무엇인지 보여주셨습니다.
이제 우리도 선택해야 합니다. 광야 같은 세상에서, 끊임없이 나를 증명하느라 불안해하며 종으로 살 것입니까? 아니면 이미 받은 사랑에 감격하여,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아들로 살 것입니까?
오늘 이 시간, 모든 '증명'의 짐을 내려놓으십시오. 비교하지 마십시오. 조급해하지 마십시오. 대신, 여러분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증거'**하십시오. 가난해도 비굴하지 않고, 실패해도 무너지지 않으며, 광야에서도 예배하는 그 모습 자체가, 세상이 흉내 낼 수 없는 가장 강력한 하나님의 자녀 됨의 증거가 될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가지고, 광야를 통과하며 정금같이 나아오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저는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왜 저는 계속 같은 죄에 다시금 빠지는 걸까요?
그러자 하나님이 대답하셨어요.
왜냐하면 너는 영적전쟁을 너의 힘으로 싸우려 하고 있기 때문이란다.
저는 다시 물었어요.
왜 제게서 이 싸움을 아직도 가져가지 않으셨나요?
그러자 하나님이 대답하셨어요.
만약 내가 그 산을 치워버리면 너는 절대로 오르는 법을 배우지 못하기 때문이야
나는 너에게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너를 정결하게 하고 있는 거란다.
마지막으로 저는 물었어요
제 실패들에 이젠 지치지 않으세요?
그러자 하나님이 말씀하셨어요.
내가 이미 그 모든 값을 지불했단다, 그래서 너는 더이상 그것들을 짊어지지 않아도 된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