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1 수요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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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nesis 12:1–4 NKRV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칠십오 세였더라
오늘 본문은 많은 성도들이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본토 친척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 본문을 읽으면서 이렇게 생각합니다.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는 그 엄청난 결단과 순종을 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감동하셔서 그에게 복을 주셨다. 그러니 우리도 복을 받으려면 무언가 대단한 것을 포기하고 바쳐야 한다."
그런데 정말 그렇습니까? 성경이 말하건 오히려 반대입니다. 아브람이 순종했기 때문에 복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를 복 있는 자로 먼저 부르셨기 때문에, 그가 순종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순종이 복의 조건이 아니라, 순종은 복 받은 자의 마땅한 반응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가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 배경: 아브람은 누구였는가

오늘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아브람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살펴 보겠습니다. 창세기 11장 마지막 부분을 보면, 아브람은 갈대아 우르 출신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오늘날 이라크 남부 지역에 해당하며, 당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지 중 하나였습니다. 고고학적 발굴에 따르면 우르는 달의 신 "난나"를 섬기는 아주 큰 신전이 있었던 도시였습니다. 이 말은 아브람은 우상숭배 문화 한가운데서 자라난 사람인 것입니다.
여호수아 24장 2절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Joshua 24:2 NKRV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람의 집안은 우상 숭배자였습니다. 하나님을 알지도 못했고, 찾지도 않았던 사람입니다.
당시 갈대아 우르와 하란에는 수많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우상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수많은 사람 중에서, 아무런 자격도 조건도 없는 아브람을 지목하여 부르셨습니다. 왜 하필 아브람이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말해주지 않습니다. 아브람이 특별히 의로웠다거나, 다른 사람보다 뛰어났다는 기록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뜻대로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아브람에게 “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첫째, 떠남은 복을 받기 위함이 아니라 이미 복 받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가라", "떠나라"는 명령을 들을 때마다 부담감을 느낍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또 나에게서 무언가를 빼앗아 가시려나 보다', '하나님이 내 편안한 삶을 흔드시는구나'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어 원어의 뜻을 보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떠나라, 가라”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레크 레카 입니다. 여기서 '레크'는 "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뒤에 붙은 '레카'는 "너를 위하여"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지금 아브람에게 “아브람아, 너를 위해 떠나라”고 말씀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은 아브람을 고생시키려고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을 이용해 먹으려고 부르신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브람이 머물러 있는 그 하란 땅, 그 익숙한 자리가 아브람에게 좋을것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곳을 떠나는 것이 아브람에게 유익하고, 행복하고, 복된 길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 2절을 보면
Genesis 12:2 NKRV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하나님은 "떠나면 복을 주겠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미 "너는 복이 될지라"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아브람은 이미 복의 존재로 선언되었습니다.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선택 안에서 이미 복 받은 자가 된 것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이 아브람을 선택하신 것 자체가 복이었습니다. 아브람이 무엇을 해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이 의로워서, 선해서, 뛰어나서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아브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것이 은혜입니다. 내가 무언가를 해서 복을 따내는 것이 아니라, 자격 없는 나를 하나님이 선택해 주신 것, 그것 자체가 이미 우리가 받은 최고의 복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가라"는 명령은 무엇입니까? 이것은 복을 받기 위한 조건이 아닙니다. 이것은 이미 복 받은 자가 마땅히 해야 할 행동입니다.
아브람이 떠나야 할 곳은 우상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가는 곳, 거짓 신들을 섬기는 곳, 영적 어둠의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가 우상의 땅에 계속 머물러 있을 수 없습니다. 복 받은 자는 그곳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가 복 받기 위해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미 복을 받았기 때문에 예배의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 착하게 살아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구원받았기 때문에 세상에서 구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순종이 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라, 복 받은 자만이, 비로서 참된 순종을 할 수 있다는 것이빈다.
Ephesians 1:3–4 NKRV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하나님은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기도 전에, 우리가 무엇을 하기도 전에, 하나님은 이미 우리를 사랑하셔서 택하셨습니다.
혹시 오늘 예배 드리면서도 "오늘 예배드리고 기도해야 하나님이 우리 가정에 복 주시겠지?", "내가 이 정도 정성을 보여야 우리 자녀를 지켜주시겠지?" 하는 마음이 있으시다면 그 마음을 바꾸셔야 합니다. 우리는 복을 받아내기 위해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선택받았다는 그 놀라운 복을 이미 받았기에,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해서, 그 부르심이 너무 감격스러워서 이 자리에 와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순종은 억지로 하는 '의무'가 아니라. 복 받은 자가 그 복을 깨달아 감사하는 자연스러운 행동입니다.

둘째, 복 받은 자가 떠나야 할 것은 정체성이다

그렇다면 아브람이 실제로 떠난 것은 무엇이었습니까? 본문 1절을 보면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되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아브람은 장소를 떠났습니다. 익숙한 땅을 떠났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났고,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물리적인 이동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요구하신 것은 단순한 지리적 이동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지금 네가 서 있는 자리는 진짜 네 자리가 아니다."
고대 사회에서 '아버지의 집'이라는 것은 오늘날과는 의미가 다릅니다. 그것은 한 개인의 생존 그 자체였습니다. 아버지가 믿는 신이 나의 신이 되고, 아버지가 가진 직업이 나의 직업이 되고, 아버지의 울타리가 나를 지켜주는 법적 보호권이었습니다. 고대 근동 사회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은 그가 어디 출신인지, 어느 가문에 속해 있는지, 누구의 아들인지에 의해 결정되었습니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는 우상을 섬기는 사람이었습니다.
Joshua 24:2 NKRV
여호수아가 모든 백성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옛적에 너희의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버지, 나홀의 아버지 데라가 강 저쪽에 거주하여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아브람이 아버지의 집을 떠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으로 집을 나온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신앙, 세계관, 가치관을 떠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데라의 아들'이라는 정체성에서 끄집어내어, '하나님의 자녀'이자 '열방의 아비'라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바꾸고 싶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가라"의 의미입니다. 우상의 땅에서, 아버지의 영향 아래에서, 옛 정체성 안에서 살던 아브람이 이제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이동하라는 것입니다. 복 받은 자는 이전에 매여 있던 가치관을 떠나,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새로운 정체성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떠나지 못하는 '아버지의 집'이 있지는 않으십니까? "돈이 있어야 내 노후가 안전하지." "그래도 자식이 성공해야 내 인생이 증명되는 거지." "내가 가진 이 직함과 명함이 곧 나 자신이지." 이것들이 바로 우리가 떠나야 할 갈대아 우르이고, 하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는 여전히 세상이 주는 안전장치를 더 신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받은 우리는 이미 복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서.
2 Corinthians 5:17 NKRV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옛 정체성 안에 머물러 있을 때가 있습니다. 이미 복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우상의 땅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어떤 분에게는 그것이 "하나님 없이도 내 계획대로 살 수 있다"고 믿는 교만의 자리일 수 있습니다. 반대로 어떤 분에게는 "나는 가진 것도 없고, 나이도 많고, 이 정도밖에 안 돼"라며 세상의 기준에 갇혀 있는 패배감의 자리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말씀하십니다. "떠나라!",”가라” 세상이 우리에게 붙여준 이름표를 떼어 버리시길 바랍니다. '누구의 엄마', '어느 회사의 직책', '실패한 가장'... 이런 정체성을 떠나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붙여주신 새로운 명찰을 가슴에 다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복을 받은 자다." "나는 하나님이 선택한 거룩한 백성이다."
정체성이 바뀌어야 삶의 방향이 바뀝니다. 내가 누구인지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지가 보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목적지보다 인도자가 중요하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 당황스러운 상황이 발생합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시면서, 정작 '어디로' 가야 할지는 말씀해 주지 않으신 것입니다.
1절 끝부분을 보십시오.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보여 준 땅'이 아닙니다. 앞으로 '보여 줄 땅'입니다. 목적지가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를 입력하지 않고 무작정 운전대를 잡으라는 것과 같습니다. 얼마나 불안합니까? 얼마나 답답합니까?
히브리서 11장 8절은 이 상황을 이렇게 묘사합니다.
Hebrews 11:8 NKRV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아브람은 갈 곳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나아갔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우리는 늘 계획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올해는 무엇을 할지, 자녀는 어느 대학을 보내야 할지, 노후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까지 앞날의 그림이 그려져야 마음이 놓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분명해야 출발하고, 앞에 어떤 결과가 기다리는지 보여야 그제서야 움직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길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해하고, 결과가 확실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도 쉽게 머뭇거리게 됩니다.
그런 우리를 아시면서도 하나님은 왜 아브람에게 지도를 주지 않으신 것입니까? 만약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목적지를 미리 알려주셨다면, 아브람은 하나님보다 그 목적지를 더 사랑하고 의지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가나안 땅'이라는 목표만을 향해 달려가길 원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매 순간 하나님과 눈을 맞추며 걷는 '동행자'가 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네게 보여 줄 땅." 이 말씀에서 핵심은 "땅"이 아니라 "내가"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보여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인도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에게 필요한 것은 목적지에 대한 정보가 아니었습니다.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몰라도, 누가 이끄시는지 알면 충분했습니다.
이것이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지도를 주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을 내미시는 분입니다. 어디로 가는지가 중요한 게 아닙니다. 누구와 함께 가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다윗이 두려워하지 않은 이유는 다윗이 가는 골짜기가 안전해서가 아닙니다.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목적지가 확실해서가 아니라, 인도자가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새해가 밝았지만, 여전히 앞이 보이지 않아 막막해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경기는 어렵고, 자녀들의 앞길은 불투명하고, 건강은 예전 같지 않습니다. "도대체 어디로 가야 합니까?"라고 묻고 싶으신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상세한 계획표 대신, "나만 믿고 따라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도 괜찮은 이유는, 우리를 부르신 그분이 실수하지 않으시는 전능자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인생의 항로가 어디로 튈지 모르는 럭비공 같아 보여도, 그 공을 쥐고 계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면 걱정할 이유가 없습니다.
가장 안전한 길은 내가 아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길입니다. 목적지가 보이지 않을 때가, 역설적으로 하나님 손을 가장 꽉 잡을 수 있는 은혜의 때임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아브람의 응답: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그리고 오늘 본문 마지막절인 4절에서 아브람의 응답을 아주 담백하게 기록합니다.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 갔고." 히브리어 본문에서 이 문장은 매우 단순합니다. 복잡한 설명이 없습니다. 망설임에 대한 기록도 없습니다. 질문도, 협상도, 조건도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은 말씀하셨고, 아브람은 갔습니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나이가 75세였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은퇴하고 안정을 누려야 할 나이입니다. 그는 이미 하란에 정착해 있었고, 재산도 있었고, 가족도 있었습니다.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나이를 핑계 삼지 않았습니다. 상황을 계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믿음이 무엇인지 보게 됩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알고 움직이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을 신뢰하고 움직이는 것입니다. 믿음은 결과가 보장될 때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결과를 주관하시는 분을 신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아브람은 어디로 가는지 몰랐지만, 누가 인도하시는지 알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붙들어야 할 결론입니다. 복 받은 자의 발걸음은 지도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결론: 우리에게 주시는 "가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이 아브람에게 하신 "가라"는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집니다.
오늘 이 예배의 자리에 오신 성도님들은 이미 하나님의 특별한 선택을 받은, 복의 주인공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면 이제 그 복을 받은 자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옥죄고 있던 세상의 가치관, 익숙한 안주함, "나는 안 돼"라고 말하는 낡은 정체성의 하란을 떠나야 합니다. 어디로 갈지 몰라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우리와 동행하시는 하나님이 곧 우리의 길이요, 우리의 목적지가 되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한주동안, 세상의 혼란스러운 소리가 아니라 나를 가장 복된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의 복을 받은 성도답게 살아가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 아브람을 부르신 말씀이 우리에게도 임하고 있음을 믿습니다. 우리를 먼저 택하시고, 부르시고, 복 주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이 복이 조건 없는 은혜임을 깨닫게 하시고, 복 받은 자답게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의 정체성 안에 머물러 있는 우리를 불러 주셔서,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정체성으로 살아가게 하여 주셔서, 이전에 매여 있던 가치관에서 벗어나 주님이 주시는 정체성 안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앞길이 보이지 않아 두려울 때, 목적지보다 인도자가 중요함을 기억하게 하시고, 길 되신 예수님을 굳게 붙잡게 하옵소서. 그래서 아브람처럼 주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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