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듭남이 궁금해요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12 views
Notes
Transcript
  오늘 본문부터 시작되는 예수님과 니고데모의 대화에는 요한복음의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인 “영생”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영생이며, 그 영생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소개하는데, 오늘 말씀을 통해서 “거듭남”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는 “유대인의 지도자”였는데, 이 말은 그가 산헤드린 공의회의 일원이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산헤드린은 예수님 당시 유대 사회의 종교적, 행정적 문제를 결정하던 최고 의결 기구였습니다. 이런 중요한 기구의 일원인 니고데모는 누구보다 율법을 잘 알고 있었고, 신앙생활에 있어서도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낄 이유가 거의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자면, 오랜 신앙 경력과 지식을 갖춘 모범적인 성도였다는 것입니다.
  그런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2절 말씀은 니고데모가 예수님을 찾아온 시간을 “밤”이라고 말합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니고데모가 “밤”에 찾아온 것을 근거로 그가 사람들의 이목을 두려워해 몰래 찾아온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유대의 관원으로서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지고 있었던 니고데모는 드러내놓고 예수님을 만나기를 꺼렸을 것이라 생각한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다수의 학자들은 본문에 나오는 밤이 니고데모의 영적 상태를 상징한다고 해석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밤”은 자주 상징적으로 영적 어두움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빛이신 예수님과 어둠에 있는 니고데모의 모습을 대조하고 있다고 본 것입니다. 실제로 니고데모는 예수님을 선생으로 존중하고, 표적을 통해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사실까지는 인정하지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영생과 하나님 나라의 의미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요한복음은 니고데모가 왜 밤에 찾아온 것인지 정확하게 말해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니고데모가 빛이신 예수님 앞에 서 있었지만, 그 빛을 아직 온전히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도 니고데모는 다른 바리새인들처럼 예수님을 시험하거나 공격하기 위해 온 것이 아니라, 진지한 질문을 가지고, 답을 얻기 위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런 니고데모의 모습을 칭찬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대화를 시작하자마자 니고데모에게 어려운 말씀을 던지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이 말씀은 니고데모의 종교적 확신을 뿌리째 흔드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미 하나님 나라에 가까이 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다른 말로 “너는 아직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한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신앙의 연륜, 지식, 직분이 하나님 나라의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거듭나다”라는 말은 단순히 “다시 태어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 단어는 “위로부터 태어나다”로 번역되는 것이 더 적절합니다. 왜냐하면 원어 “아노뗀”이 요한복음에서 모두 “위로부터”라는 뜻으로 사용되었고, 특히 31절에서 이 단어가 “위로부터”라는 의미로 번역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아노뗀”이라는 단어에 “다시”라는 의미도 있어서, 니고데모는 “다시 태어나다”를 뜻하는 줄 착각했습니다. 그래서 4절에서 니고데모가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사옵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사옵나이까”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는 모태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는 것으로 오해한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말씀하신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이야기였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남은 삶의 태도를 조금 고치는 문제가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더 열심히 하겠다는 결단의 문제도 아닙니다. 그것은 출발점 자체가 바뀌는 사건입니다. 인간의 노력으로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위로부터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지금 이 거듭남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권과 은혜로 이루어지는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 즉 하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은 곧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물과 성령이 무엇인지에 대해 여러 견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5절의 “물과 성령”에는 관사가 없고, 한 전치사로 묶여져 있기 때문에, 하나의 단일한 개념으로 보는 것이 적절합니다. 그러니까 물과 성령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곧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4장과 7장에서 물을 성령으로 보기 때문에 이렇게 해석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죄 씻음”을 동반합니다. 물이 사람을 정결하게 하듯이 성령님도 성도를 정결하게 하여 새롭게 태어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에스겔 36장 25-27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새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에스겔에 선포된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혈통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율법을 많이 아는 사람의 나라가 아닙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고 자동으로 들어가는 나라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앞에서는 니고데모와 같은 종교 지도자도, 아무 공로 없는 죄인도 동일한 출발선에 서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은 성령의 역사를 바람에 비유하십니다. 8절 말씀입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불면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소리가 들리고, 나뭇잎이 흔들리고, 공기의 흐름이 달라집니다.
  성령의 역사도 마찬가지 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볼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성령님께서 역사하신 자리에는 반드시 삶의 변화가 나타납니다. 죄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고, 하나님 앞에 서는 자세가 달라지며, 말씀과 기도를 향한 마음이 달라집니다. 만약 우리의 삶에 변화가 전혀 없다면, 내가 “믿는다”라고 말하는 그 말이 참된 것인지 스스로 점검해 보셔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니고데모는 신앙적으로 이미 충분히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 역시 위로부터 다시 태어나야 할 사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오랜 시간 신앙생활하고, 직분을 받아 섬기고, 또 은퇴할 때까지 주의 몸된 교회를 충성되이 감당해 오신 분들이 지금 이 자리에 계신 줄 압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이런 외형적인 조건을 보고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한 가지를 물으십니다.
  “너는 위로부터 태어났니?”, “성령으로 태어난 사람이니?”
  이 위로부터 태어난 것은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습니다. 나의 결단으로 이루는 성취도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은혜의 역사입니다.
  이렇게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난 사람에게는 반드시 흔적이 남습니다. 완벽해졌다는 흔적이 아닙니다. 여전히 연약하지만 하나님을 의지하게 되는 흔적입니다. 죄를 가볍게 여기지 않게 되고, 하나님 앞에 서는 태도가 달라지며, 말씀과 기도를 사모하는 마음이 생기는 변화입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우리 안에 살아 역사하고 계시다는 증거입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 각자의 신앙을 조용히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붙잡고 있는가? 내가 의지하는 것은 나의 열심인가? 나의 경력인가? 아니면 성령님의 역사인가?
  이 세상처럼 나의 어떠함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의 역사를 구하며, 성령님이 우리 가운데 계신 흔적이 우리 삶 가운데 분명히 드러나기를 바라며 살아가는 하나님 나라의 귀한 백성들 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