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망하는 진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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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세상이 망하는 진짜 이유
[서론]
제가 아는 목사님중에 의정부에서 귀한 사역을 하시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은 주일마다 정성껏 무료급식을 하십니다.
그것뿐만 아니라 노인, 청년들 위한 복지센터도 운영하십니다.
심지어 갈 곳없는 청년들에게 일자리도 만들어주시려고 식당도 차린 분입니다.
참 많은 일을 하시는 분입니다.
그 분이 들려주신 이야기중에 제가 가장 감동받은 부분이 있습니다.
그분의 교회는 좁은 골목에 위치해 있습니다.
원래 그곳이 술집이 많고 어두운 거리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목사님이 오셔서 그 곳을 완전히 환한 골목으로 바꿔놓으셨습니다.
어떻게 했냐면 그 골목길의 술집을 인수하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 불을 밤 새도록 켜놓으신 겁니다.
전기세 생각하면 그렇게 못합니다.
어둡고 침침하던 곳이 환해졌으니 동네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 하겠습니까?
이렇게 동네의 변화를 만들어가는 교회가 제가 꿈꾸고 함께 세워나기길 원하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우리가 만날 사람도 그런 사람입니다.
한 사람의 변화가 공동체의 운명을 바꿉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이 이 시대에 찾으시는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인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본론1]
오늘 말씀은 신비로운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갑자기 세 사람이 아브라함을 찾아옵니다.
그들중 2명은 천사이고, 한 분은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정성을 다해 그들을 대접합니다.
그 후 식사를 마친 그들은 소돔을 향해 길을 떠납니다.
아브라함은 예의를 갖춰 그들을 배웅하러 나섭니다.
그때 하나님은 길을 멈추시고 아브라함에게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17절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앞으로 하려고 하는 일을, 어찌 아브라함에게 숨기랴?””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계획을 밝히십니다.
뒷 내용을 보면 하나님의 계획은 소돔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소돔이 행한 큰 죄악으로 인해 고통받는 자들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도시를 심판하시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 계획을 굳이 아브라함에게 공유 하시려는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소돔을 심판하는데 무슨 도움이 되겠습니까?
그 답은 이어지는 18-19절에 나오는 축복 선언에 담겨 있습니다.
18-19절입니다.
아브라함은 반드시 크고 강한 나라를 이룰 것이며, 땅 위에 있는 나라마다, 그로 말미암아 복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아브라함을 선택한 것은, 그가 자식들과 자손을 잘 가르쳐서, 나에게 순종하게 하고, 옳고 바른 일을 하도록 가르치라는 뜻에서 한 것이다. 그의 자손이 아브라함에게 배운 대로 하면, 나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대로 다 이루어 주겠다."
왜 하나님은 계획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갑자기 축복을 선포하신 것일까요?
마치 문맥이 끊기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이것은 아브라함의 존재 이유를 다시 확인시켜 주시는 중요한 장면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선택하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아브라함을 단순히 복을 받는 대상으로 부르신게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파트너로 부르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을 통해 옳고 바른 일을 하려는 것입니다.
단순히 자기만 잘 되게 하는 게 하나님이 주신 복이 아닙니다.
복의 통로가 되어 다른 나라들도 복을 받게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으로 세상을 살리라는 것이 그들에게 주어진 제사장의 사명인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선민사상에 빠져 하나님이 믿는 자들만 잘되게 하실 거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믿었더니 가정과 회사가 만사형통하고 성공했다고 간증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 주변을 둘러보니 대부분 힘들고 어렵게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를 통해 우리 주변도 복을 받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어두운 곳이 환해지는 것이 우리의 제사장적 사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파트너로 부르신 것입니다.
[본론2]
그렇다면 이 순간 아브라함이 해야할 제사장의 사명은 무엇일까요?
심판받을 소돔을 향해 기도하는 일입니다.
놀랍게도 하나님은 소돔을 심판하시기 전에 아브라함을 기도의 자리로 초청하신 것입니다.
23-25절입니다.
“아브라함이 주님께 가까이 가서 아뢰었다. "주님께서 의인을 기어이 악인과 함께 쓸어 버리시렵니까? 그 성 안에 의인이 쉰 명이 있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주님께서는 그 성을 기어이 쓸어 버리시렵니까? 의인 쉰 명을 보시고서도, 그 성을 용서하지 않으시렵니까? 그처럼 의인을 악인과 함께 죽게 하시는 것은,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닙니다. 의인을 악인과 똑같이 보시는 것도, 주님께서 하실 일이 아닌 줄 압니다.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께서는 공정하게 판단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따집니다.
의인이 그 땅에도 있을텐데 어떻게 그들을 악인들과 함께 심판하냐며 따집니다.
하나님이 옳지 않고, 공정하지 않다는 말입니다.
와~실수 투성이던 아브라함이 언제 이렇게 의로운 사람이 되었을까요?
심지어 그는 하나님과 딜을 하려고 합니다.
50명부터 시작합니다.
50명의 의인이 있으면 소돔 성을 용서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그후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내려갑니다.
자신이 티끌과 재밖에 안되는 존재라며 자신을 낮추며 끝까지 물러서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딜을 하는 듯한 아브라함의 이런 기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왜 이런 과정들을 성경에 기록해 놓은 것일까요?
처음부터 10명이라고 하면 되는데 왜 6번이나 숫자를 줄여간 것일까요?
여기서 알수 있는 것은 아브라함이 끈질기게 기도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공의를 근거로 그들의 생존 가능성을 높여가고 있습니다.
어떻게든 소돔 사람들을 살려내려는 것입니다.
그의 열심으로 하나님의 마음을 계속 움직합니다.
하나님의 의도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기도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은 분명 그 땅에 남아있는 조카 롯을 염두해 두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결국 성 전체를 구하려는 그의 마음은 그가 어떤 사명을 가졌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도 바로 이런 기도에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도 악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악한 사람들이라고해서 무조건 심판받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시길 원하십니다.
요즘 전쟁과 기후위기, 가난과 질병 등으로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관심과 기도입니다.
우리 주변에도 죄악으로 인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을 향해 우리가 해야할 가장 첫번째 일은 관심을 갖고 기도하는 일입니다.
그것이 이 땅의 복의 통로, 제사장으로 부르신 우리의 사명입니다.
또한가지 알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것은 놀랍게도 악인들 때문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오히려 의인들이 없어 심판받는 것입니다.
왜 하필 10명일까요?
10명은 당시 공동체의 최소단위입니다.
의로운 공동체 하나만 있어도 소망이 있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 땅을 변화시킬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50명에서 10명으로 줄수록 역설적으로 한 명의 의인의 가치는 증가합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 땅에는 그런 의인조차 없었던 것입니다.
그만큼 사회가 전체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기 때문입니다.
변화될 가능성이 없는 곳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망하는 것은 악인이 많아져서가 아닙니다.
소수의 의인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는 그 소수가 되어야 하는 사명이 주어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원리는 어찌보면 불공평해 보입니다.
의인 몇명때문에 악인들이 심판받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과연 정의로운 것일까요?
의인은 의인대로 구해주시고, 악인은 악인대로 심판받는 게 더 정의로워 보입니다.
하지만 이 불공평해 보이는 원리가 바로 우리가 구원받은 이유입니다.
십자가를 생각해보십시오.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그리스도께서 심판받아 마땅한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한분의 의인으로 말미암아 온 인류가 살길을 얻었습니다.
이만큼 불공평한 정의가 어디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정의는 사랑의 반대말이 아닌 사랑의 다른 이름일 뿐입니다.
[본론3]
그런 점에서 우리는 오늘 아브라함의 기도를 다시 해석해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을 돌아봐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정의로워서 하나님이 주저하신 것일까요?
아브라함이 너무 끈질기게 씨름해서 하나님이 어쩔수 없이 10명까지 물러선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물러서신 것은 하나님의 마음이 심판이 아닌 구원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이런 하나님의 아픈 마음을 알아주기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제시한 숫자가 줄어들수록 드러나는 것은 아브라함의 끈기나 정의가 아닙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더 건지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절절한 자비의 마음입니다.
분명 아브라함은 하나님과 씨름하는 과정에서 깨달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얼마나 의인 한 사람을 찾고 계시는지 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이 소돔을 위해 기도하는 ‘의인’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이런 점에서 우리의 기도와 신앙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는 얼마나 주님의 마음과 동떨어져 있는지 고민해봐야 합니다.
우리는 매번 자신과 가족들의 안위만을 위해 하나님께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이가 어릴 때는 매번 부모에게 달라는 요구만 합니다.
그런데 아이가 철이 들면 부모의 마음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신앙의 성숙도 마찬가지입니다.
신앙의 연수가 오래되었다면, 이제는 내 필요를 넘어 하나님의 시선이 머무는 곳으로 우리의 기도의
지평이 넓어져야 합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를 이 시대의 아브라함으로 부르셨습니다.
우리 주변의 어둠을 보고 혀를 차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 불을 밝히는 사람으로 부르셨습니다.
그들을 향해 무릎꿇고 기도하는 한 명의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긍휼이 있는 곳을 향해 우리의 시선을 두어야 합니다.
고통받는 이웃들, 소외된 자들, 그리고 죄악으로 무너져가는 세상을 위해 중보기도 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복을 주신 진짜 이유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불을 밝힐 때, 어두운 세상 속 소돔은 다시 빛나기 시작할 것입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맺겠습니다.
제가 설교를 시작하며 말씀드렸던 의정부의 그 좁은 골목길을 다시 떠올려 보십시오.
술집이 가득하고, 어둠이 짙게 깔렸던 그곳이 어떻게 밝아졌습니까?
누군가 그 골목을 정죄하며 지나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며 밤새도록 교회 불을 켜두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만난 아브라함도 그렇습니다.
그는 소돔을 심판하시기 위해 향하시는 하나님을 보며 가만있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발걸음을 기도로 붙들었습니다.
하나님께 단 열명만 있어도 그 도시를 살려달라고 매달렸습니다.
그가 붙들었던 것은 소돔의 가능성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그 도시를 살리고 싶어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입니다.
그러나 결국 소돔은 멸망했습니다.
의인 열명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의인 열 명이 없어 소돔처럼 타버릴 이 세상을 위해 단 한분 완전한 의인이신 예수님을 보내주셨습니다.
그 분의 거룩한 불공평 덕분에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 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할 일은 분명합니다.
나와 내 가족의 안위만 구하던 어린 아이의 기도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우리 주변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마음과 시선이 있는 곳을 바라봐야 합니다.
그곳을 향해 중보기도의 손을 들어야 합니다.
내가 있는 곳에서부터 한 사람의 의인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어두운 곳에 불을 켜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이웃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작은 나눔과 섬김이 의인의 삶입니다.
그 삶에 하나님의 소망과 부르심이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작지만 우리의 사명은 작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숫자를 보지 않으시고, 의인 열명을 찾으십니다.
우리 교회가 이 곳의 소망의 불빛이 되면 좋겠습니다.
그런 우리가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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