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샬롬

이병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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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강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의 부르심에는 두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는 구원의 부르심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던 우리를 세상으로부터 부르셔서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고 영생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시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신분의 변화입니다. 원래는 아니었는데, 하나님의 아들딸이 된 것입니다.
두 번째는 바로 사명자 또는 사역자로의 부르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영적인 전투를 하는 사명자로 부르시는 부르심입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하면, 인생 목적의 변화입니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내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며 살아왔지만, 이제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종으로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전에는 자기 뜻을 따라 사는 인생이었지만, 이제는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부르심은 따로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동시에 이루어지는 겁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 그리스도인, 성도로 부르실 때는, 그냥 부르시는 게 아니라 부르시는 순간 바로 사명을 주십니다. ‘너는 이제 이것을 하며 살아라.’라고 하십니다.
그런데 사명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그때 그 순간 무엇을 하게 하시고 나중에 또 다른 사명을 주실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인생의 사명이라는 큰 목적도 있지만, 순간순간 해야 할 사명을 계속 주십니다. 그러니까 쉽게 얘기해서 ‘이제 네 맘대로 살지 말고 내가 너에게 알려주는 대로 살아라.’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살 때 우리는 행복해집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그다음에 형편없이 살며 예배도 빠지고 성경도 안 읽고 기도도 안 하고 전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다면, 또한 잘못도 저지르고 죄도 범한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면 그런 죄악 된 삶을 버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아름다운 삶을 살기 위해 애쓰며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실수할 때도 있는데, 그렇게 실수로 잘못을 저질렀다고 해서 하나님의 자녀인 것이 바로 취소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은 아닙니다. 부끄러운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영광에 걸맞은 삶을 살 책임이 있습니다. 그것이 사명과 사역으로의 부르심이며, 이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향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나는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싫고, 내 맘대로 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아닐 것입니다. 자기가 연약해서 하나님의 뜻대로 제대로 살지 못한다면 겉으로는 그리스도인지만 실제로는 안 믿는 사람과 똑같은 비참한 삶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며 사람들의 마음을 돌이켜 주님께로 인도할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하나님이 부르실 때, 그 부르심을 받은 종들은 한결같이 ‘저는 못 합니다.’라고 극구 거절하는 것을 봅니다. 자기는 못 한다는 겁니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잘 알기 때문에 자기는 못 한다고 한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1.본문의 배경
오늘 본문의 배경은 이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너무나 사랑하시는데, 잘못 나가면 그냥 두시겠습니까? 그래서 사랑하시기 때문에 징계해서 바꾸시기 위하여 주변 민족들을 사용하셔서 치십니다. 때려서라도 변화되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워지니까 이스라엘이 드디어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도와 달라고 외칩니다. 자기 마음대로 막 하니까, 하나님이 어떤 민족을 보내셔서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하나님, 살려 주십시오.”라고 하고, 그러니까 하나님이 누군가를 보내서 구원해 주시는데, 그 사람들을 가리켜 ‘사사’라고 불렀습니다. 재판관의 역할도 하고, 군사적으로는 장군의 역할도 하며, 또 왕의 역할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얼마 못 가고 또 죄를 짓습니다. 그러면 또 다른 민족이 와서 다시 괴로움을 당합니다. 그러면 또 “도와주세요” 외치고, 그러면 또 하나님이 누구를 보내서 다시 구해 주십니다. 이런 일이 사사기에 12번 나오는데, 아마도 전부 다 기록한 것이 아닐 겁니다. 다 기록했으면 아마 수십 번 그렇게 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사명과 비전을 붙들지 않으니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것이 사명으로 이어지지 않는 성도나 교회는 계속해서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여러분, ‘내 신앙생활이 어떤 때는 행복하고 좋은데 왜 어떤 때는 안 좋은가? 왜 이렇게 좋았다 나빴다 하나? 혹시 이렇게 느끼십니까? 그렇다면 반드시 자신의 사명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신의 삶을 점검해 보시기 바랍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서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의 사명이 없고 비전이 없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교회는 그 자리를 지킬 수 없고, 계속 올라갔다 내려갔다를 반복하게 됩니다. 계속 힘들고 피곤하고 불안하며 염려와 걱정으로 가득 차게 되어 있습니다. 그게 바로 사사기의 역사이고, 사사기를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교훈입니다.
2.기드온을 부르시는 하나님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불순종하던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데 미디안이라는 민족이 동원됩니다. 원래 미디안은 이스라엘과 이복형제지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하는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이스마엘을 낳고 아내 사라를 통해 이삭을 낳았는데, 이삭과 이스마엘만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사라가 죽은 후 그두라라는 후처를 통해서 여섯 아들을 낳습니다. 그중 하나가 미디안입니다.
이들은 원래 강한 민족이 아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강해졌습니다. 새로운 병기를 가지기 시작해서 강해졌는데, 그 새로운 병기가 바로 낙타였습니다. 그들의 낙타는 이스라엘이 타던 나귀 같은 것과는 비교도 안 되게 강한 무기였습니다.
미디안이 낙타를 타고 물밀듯이 쳐들어와서 이스라엘이 농사지은 것을 다 빼앗아 가버립니다. 그러니 살 수가 없습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너무 괴롭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였습니다. 타작해 놓으면 몰려와서 다 가져가 버리니까 굶어 죽게 된 겁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울부짖습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등장하는 인물이 기드온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십니다.
기드온은 이스라엘이 비참한 상태에 빠진 것은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셨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나오던 출애굽 때는 기적이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기적이 없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이 자신들을 싫어하여 버리신 것이 틀림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 이 내용을 가만히 잘 보십시오. 이게 바로 우리가 하는 말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원하는 것을 놓고 기도합니다. 원하는 것이 있고 바라는 게 있는데, 기도했지만 그 일이 안 됐습니다. 그러면 뭐라고 합니까? “주님께서 함께하시면 어찌하여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또 삶에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면 이렇게 또 이야기하지 않습니까? “이렇게 약속해 주셨는데 그 약속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하나님께서 마치 자기들을 버리신 것 같은 이 상황이 하나님의 잘못입니까? 누구의 잘못입니까? 사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명령을 불순종하고 반역했기 때문이 아닙니까?
하나님이 언제 ‘너희들이 아무렇게나 살아도 좋다. 불순종해도 나는 무조건 복을 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까? “너희가 순종하면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불순종하면 들어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을 것이다.”라고 분명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저주에 대한 건 쏙 빼고 “하나님이 이렇게 다 주신다고 하셨고 이적도 베푸셨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어디로 갔습니까?”라고 불평하니, 자기의 잘못은 모르고 불평만 하는 꼴이 아니겠습니까? 하나님이 자기들을 버리고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다고 하며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라고 합니다.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솔직히 일은 자기가 저질러 놓고서 그 결과가 좋지 못하면 “하나님, 어떻게 이러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며 원망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신게 아닙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의 불신앙과 우상이 그분의 능력을 막고 있는 것이고, 이제 기드온이 해야 할 일은 바로 이 불신앙과 우상을 제거하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바로 이 일을 위해 기드온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너에게 있는 그 힘을 가지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해라. 내가 친히 너를 보낸다.”라고 하십니다. 이게 무슨 말씀입니까? ‘자꾸 다른 데에서 도움이 안 오나 하지 말고 지금 네가 가지고 있는 힘으로 가서 구원하라.’ 말씀하십니다.
자기 힘으로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난관에 봉착했을 때, 자기가 생각하는 이상은 아주 높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못할 때 때, 사람은 자꾸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됩니다. ‘혹시 누군가 나타나 이 어려움을 해결해 주지는 않을까?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행복이 찾아와주지는 않을까?’ 막연하게 기대합니다. 이처럼 ‘누군가 나타나서 우리를 대신해서 싸워 주지는 않을까?’ 하며 막연하게 기대하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지금 미디안과 싸울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너다.”라고 하십니다. “이제는 막연한 기대를 버리고 너의 힘으로 미디언과 싸워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이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대로 나가서 싸우라는 것은 죽으라는 말이나 다름없지 않습니까? 지금 기드온과 이스라엘 백성은 미디안 사람들을 이길 힘이 없고 당할 수가 없어서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곡식을 해놓으면 다 빼앗깁니다. 힘이 있으면 왜 빼앗기겠습니까?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들이 두려워 숨어서 타작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밀은 타작마당에서 타작해야 하는데 포도주 틀에 숨어서 타작하는 상황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겁쟁이 기드온에게 “어느 누구의 도움도 받지 말고 스스로의 힘으로 미디안을 물리쳐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가장 경악스러운 것은 그러한 겁쟁이 기드온에게 “큰 용사요!”라고 하나님의 사자가 말했다는 겁니다. 성경을 가만히 보면, 하나님은 말이 안 되는 일을 하라고 시키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 같습니다. 이때 기드온이 어떻게 반응합니까? 당연히 자기는 그런 일을 할 수 없다고 대답합니다.
므낫세 지파가 땅은 아주 넓습니다. 요단강 동쪽에도 있고 서쪽에도 있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자기 집안이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집안이라고 합니다. 또한 자기는 이스라엘 중에서 가장 힘도 없고 사람도 없는 집안에 속한 보잘것없는 자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합니다. 자기는 절대로 큰 용사가 아니라는 겁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를 큰 용사라고 부르시며 나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서 구원하라 하십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뭐라고 말합니까? ‘당연히 우리 하나님을 믿으면 다 된다. 우리 믿음으로 불가능한 게 없다.’라고 믿습니다. '하나님만 믿으면 다 된다.'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 하나 가지고 나갔는데 그 믿음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믿음 하나를 가지고 나갔는데 하나님이 역사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무엇이라고 대답하십니까?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하시니라” (16절)
“지금 이기고 지는 것은 기드온 네가 상관할 바가 아니다.”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기드온의 말에 따르냐 따르지 않느냐는 그의 책임이 아니라는 겁니다. 단지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순종하기만 하면 됩니다. 사용되기만 하면 됩니다. 그 외에 모든 것은 기드온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나가서 한 사람도 싸우자고 설득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시키시는 대로 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을 할 때 우리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되는 걸까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아무리 하나님이 명하신 일이고 함께하시는 일이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에도 불구하고 어떤 때는 거의 멸망을 눈앞에 둔 것처럼 아주 절망적인 순간이 되기도 합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최선을 다하여 싸워고 나아가야 합니다.
그렇다면 내 힘으로 싸우는 것과 하나님의 힘으로 싸우는 것에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시는 힘으로 싸울 때는 상황와 문제 자체는 힘들어도 미래에 대한 염려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집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 하나님이 선한 뜻으로 분명히 뭔가를 하실 것이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나는 그저 순종하며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사용될 뿐입니다. 물론 최선은 다해야 하지만, 두려움은 없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일이라고 스트레스가 없거나 다 잘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더 힘들 수도 있고, 때로는 망하기 직전까지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는 평안이 있습니다. 이미 결론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주 세부적인 일에서는 실수도 할 수 있고 시행착오를 겪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기드온은 지금 이 말씀을 하신 분이 주님이시라는 표징을 보여 달라는 겁니다. 그리고 표징을 구하기 전에 집에 가서 예물을 가지고 오겠다고 합니다. 그는 자기를 찾아와 말씀하시는 이분이 누구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분명히 신적인 존재인 것 같은데 정말 하나님인지 알 수 없습니다.
구약 성경에는 하나님이 정말로 임하신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자 즉 천사가 온 것인지가 애매하게 기록한 부분이 많은데, 여기도 그중 하나입니다. 왜냐하면 어디서는 하나님이 말씀하셨다고 되어 있고, 또 어디서는 여호와의 사자 즉 천사가 이야기했다고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분명히 보이는 사람의 모습으로 천사가 나타난 것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입니다. 그러나 사람으로 찾아왔기 때문에 기드온은 이분의 말씀과 현실 사이에 엄청난 간격이 있습니다.
이분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굉장합니다. 이 사람은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뭔가 신적인 존재이며 하나님이 보내신 존재가 틀림없습니다. 무장하고 있는 것도 아니고 병사를 거느리고 온 것도 아닌데, 뭔가 권위가 느껴집니다. 막대기 하나만 들고 있는 여행객일 뿐인데, 권위가 느껴지는 겁니다.
그리고 지금 엄청난 말을 하는데, 그 말씀과 현실 사이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그 차이를 극복할 수 없으니까, 정말로 주님 되심을 보여 달라고 표징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면서 기드온은 집에 가셔 예물을 가지고 오겠다고 하는데, 왜 그는 갑자기 예물을 가져오겠다고 하는 겁니까? 아마도 빈손으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고 뭔가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성경을 죽 읽어 보면 정말 이 사람 기드온은 우리보다 그렇게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별로 믿음이 그렇게 훌륭하다고 할 수 없는 사람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 하나님께 자기가 드려야겠다는 마음이 생긴 겁니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19절)
여기 이것을 잘 보십시오. 이 음식의 양을 보면 한 사람이 먹기에는 너무 많은 양입니다. 어떻게 염소 한 마리를 한 사람이 그 자리에서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또 가루 한 에바라는 것은 큰 통을 가득 채울 수 있는 양인데, 그렇게 많은 양의 밀가루로 만든 빵을 어떻게 한 사람이 다 먹을 수 있겠습니까? 국을 담아 온 양푼(그릇)도 큰 사이즈였을 텐데, 단순히 한 사람을 위한 식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양이 많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는 이렇게 많이 준비한 걸까요? 아마도 기드온은 이 위기 상황에서 하나님이 군사를 모집한다고 생각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자기가 할 수 있는 힘을 다해서 하나님께 바친 겁니다.
이 정도 양이면 당시 대략 남자 10명 정도가 먹을 수 있는 양인데, 자기가 가진 것을 최대로 모아서 드릴 수 있는 최대를 가져온 겁니다. 물론 이것은 한 군대가 먹기에는 터무니없이 적은 양이지만, 기드온은 하나님의 일을 위해 자기가 가진 것을 다 가지고 나온 겁니다. 그는 최선의 것을 바친 것입니다.
게다가 이것은 기드온이 가지고 있던 최후의 음식이었을 것이 분명합니다. 자기가 먹으려고 자기 집을 위해서 숨겨 놓았던 것인데, 그것을 다 가지고 와서 지금 예물로 바치는 겁니다. 그러니까 이것은 ‘하나님, 내가 이걸 드릴 테니까, 나를 위해 뭘 좀 해주세요.’라는 거래가 아니라, 정말 하나님께 드리는 헌신이었습니다.
그는 비록 믿음이 그렇게 온전한 사람은 아니었지만, 그에게는 이런 헌신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가 먹으려고 숨겨 놓았던 것을 다 가지고 와서 하나님의 일을 위해 바칩니다.
사실 이것은 작은 믿음을 표시한 것인데, 놀랍게도 하나님이 응답하십니다.
기드온은 미디안과 전쟁하려면 당연히 음식이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자기가 가지고 있던 최선을 다해 바쳤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사람의 모습으로 온 하나님의 사자(천사)가 그것을 받아서 먹은 게 아니라, 하나님께 번제로 바칩니다. 음식들을 바위 위에 두라고 한 후 그 위에 국을 쏟으라고 하고는, 지팡이 끝을 제물에 대니까 불이 바위에서 나와 모두 태워버립니다. 놀라운 기적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기드온은 자신의 열악한 환경에서 최선을 다해 하나님께 드렸는데, 지금까지 기드온의 삶에서 부족했던 것, 죄악 되었던 것, 더러웠던 것을 전부 다 불로 태워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번제를 통해 그를 새 사람으로 만들어 쓰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천사가 갑자기 사라집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요즘 말로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습니다. 너무나 두려웠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함께하고 계셨지만 그것을 알아보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사자 즉 천사가 떠나자 갑자기 율법에서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는다고 되어 있는 것이 생각난 겁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하나님인지 아닌지 확실하지가 않으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봤으니 이제 죽게 되어 슬프다고 말하는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안심시키며 말씀하십니다.
모세의 율법에 따르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게 되어 있지만,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율법을 넘어서는 은혜를 지금 체험하게 해주신 것입니다. 기드온은 이때 자기가 정확히 하나님을 봤는지 천사를 봤는지 모르니까 자기가 하나님을 봤다고 생각했는데도 죽지 않으니까, 거기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살롬’이라고 짓습니다. 이것은 ‘주님은 평강(평화)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직접 제사장 역할을 하며 기드온이 바친 제물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을 때 기드온은 율법을 뛰어넘는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겁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셨으며, 하나님과 나 사이에 평강이 있다.’라는 것을 깨닫고 ‘여호와 살롬’을 외친 것입니다.
기드온에게는 백성이 고통에 빠진 것을 보며 아파하는 마음이 있었다는 겁니다. 그의 믿음은 온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파하는 마음, 안타까워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공통점은, 현실의 고통과 죄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아파하는 사람이라는 겁니다. 불평만 하거나 원망만 하지 않습니다. 현실을 아파합니다.
가끔 보면 정말 놀라운 일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는데, 자기가 처해 있는 자리에서 고민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하나님께 그것을 붙들고 기도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왜 기드온을 택하셨는가?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는 분명히 현실을 놓고 고민하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고민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하시는데 지금 우리 민족은 이렇게밖에 안 되고 있는가? 현실이 너무 심각한데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 이런 고민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는 상태는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민을 하고 있을 때 하나님이 그를 찾아와 주셨고, 그를 부르셨습니다. 그가 정말 잘한 것은, 그 부르심에 응답했다는 것입니다. 그는 몰래 타작하면서 피눈물을 흘렸고,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와서 그를 불렀습니다. 그 부르심을 받았을 때 그는 비록 부족한 믿음이었지만 반응했습니다. 순종했습니다.
현실을 보며 고민하고, 마음 아파하고, 그래서 그것을 주님께 들고 기도로 나아갈 수 있는 우리, 그런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놀라운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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