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19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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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적 선교?
성공적 선교?
오늘이 이제 일본선교 기도회 마지막 날인데요, 다가오는 선교일정을 바라보면서 혹시 여러분들은 어떤 마음을 갖고 계신가요? 두려운 마음이 있으신가요? 아니면 기대감이 있으신가요? 어쩌면 그 마음들은 모두 선교의 결과를 놓고서 어떠한 목표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겨나는 마음들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선교의 결과에 대해 어떤 생각과 마음을 가지는 것이 우리에게 바람직한 태도인 것일지를 오늘 말씀을 보면서 살펴보고 준비했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어떤 장면인지 아시나요? 바로 바울이 아덴, 즉 아테네라는 곳에서 선교활동을 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아테네는 아마 모르시는 분은 없으실 것 같아요. 바로 그리스의 수도이자 역사적으로는 종교와 철학의 중심지 역할을 했던 동네입니다.
여러분들 학생때 서양사를 배우셨나요? 한번 그 기억을 돌이켜보시면, 보통 첫단원에서 아테네 이야기가 나옵니다. 폴리스 도시국가 뭐 이런 이야기들을 하게 될거에요. 그만큼 이 아테네라는 곳은 고대 사회에서 어느정도 중심지 역할을 하던 곳이었다는 것을 잘 아실겁니다.
그런데 그런 곳에서 바울이 복음을 선포하는거에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면서 약간 세계관 충돌? 의 느낌을 받았습니다. 왜그러냐면, 보통 우리가 성경 말씀에서 보는 것들은 워낙 옛날 이야기다보니, 거의 성경에서만 확인할 수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잖아요.
그런데 오늘 말씀 같은 경우는 달라요. 서양사에서, 특히 서양철학에서 이 무대가 아주 잘 등장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오늘 말씀에도 보면, 등장하는 이름이 있습니다. 에피쿠로스, 스토아 학파가 바로 그들이죠.
조금 따분한 이야기가 될 수 있지만, 서양 철학을 이야기하면 이들은 보통 빠지지 않고 등장을 합니다. 간단하게 설명을 해드리자면, 에피쿠로스 학파는 뭐하는 사람들이냐,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쾌락이라는 것이 막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느낌의 쾌락은 아니구요, 나름대로 마음의 평안한 상태. 고요하고 평온한 것을 그들은 쾌락이라고 하는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걸 아타락시아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그것을 추구했죠.
스토아 학파는 뭐하는 사람들이냐, 이성적인 질서와 도덕을 중시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도덕이라는 가치를 따라 사는 삶을 추구했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나름 서양고대철학의 대표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오늘 본문에서 바울과 논쟁을 하게 된 것입니다. 서양고대철학과 복음의 대결이라니. 뭔가 가슴이 웅장해지는 대결이 펼쳐지는 것이죠.
개인적으로 저는 이 장면을 보면서, 바울이 하나님의 복음으로 저 철학자들을 묵사발을 내주기를 기대했습니다. 약간 이런 느낌이죠. 혹시 코에이 삼국지나 역전재판 같은 게임들 해보신적 있나요? 거기 보면 논리로 말싸움을 하는 것을 마치 격투게임하듯이 막 서로 치고받고 이런 느낌으로 만들어놨거든요.
이제 본문에서 바울이 에피쿠로스와 스토아 철학자들과 쟁론하면서 막아낼 수 없는 복음의 필살기로 그들을 완전히 K.O. 이기는 그런 게임같은 장면을 기대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실제로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바울과 쟁론하던 그들은 바울이 전하는 예수와 부활의 내용들이 전혀 어디서 듣도보도 못한 이야기이다보니 새로웠던 거에요.
뭐 당연히 철학자들이니 새로운 이야기와 주장을 듣는 것이 재미가 있었을겁니다.
그렇게 서로 토론을 하다가 아레오바고로 바울을 데려갑니다. 여기서 아레오바고는 다른 곳이 아니라 당시 아테네에서 사상이나 종교를 심문하고 평가하는 공적 기관이었습니다. 그러니까 공적 장소에서 더 많은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바울의 이 이야기들을 판단해보겠다는 것이었죠.
그리고 바울은 아레오바고에서 그들의 기대대로 제대로 복음의 정수를 설교합니다. ‘너희가 종교심이 많던데, 다니면서 보니까 알지 못하는 신을 위한 제단도 있더라. 너희가 말하는 그 알지 못하는 신을 내가 알려주겠다. 바로 하나님이신데, 그분은 세상을 지으시고 모든 것을 계획하셨다.
근데 하나님은 너희가 하듯이 우상숭배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신다. 지금까지는 알지 못했으니까 괜찮다고 하더라도, 이제는 회개하라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심판할 날을 계획하시고 그 아들 예수님을 죽음에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그 증거를 삼으셨다.’
그런데 바울이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니 어떤 이들이 바울을 조롱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그리스 세계관에서 육신은 부정한 것이었기 때문에, 부정한 것이 부활한다는 게 말이 안되었기 때문이죠.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바울에게서 떠나갔지만, 말씀은 몇 사람이 그의 이 설교를 통해 믿게 되었다고 기록을 합니다.
저는 말씀에 등장한 이 현실을 보면서 사실 많은 실망을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선포한 사람이 누굽니까. 당시 교회 전도에 있어서는 에이스와 같은 바울이었잖아요. 바울 정도면 그냥 다 논리로 이겨내고 그 곳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믿고 부흥이 일어나고 해야 될 것 같은데, 막상 펼쳐진 결과를 보면 어떤가요? 그냥 바울이 진 것 같잖아요.
실제적으로 기록만 보아도 어떤가요? 수치로 따져도, 아레오바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을텐데, 몇사람만 믿었으니 굳이 성공과 실패로 나누자면 실패라고 할 수 있겠죠.
그러면 우리는 궁금증이 생기는겁니다. 도대체 왜 하나님께서 바울의 아덴 선교를 이러한 실패의 현실로 만들어놓으신 것인가. 그리고 그것을 말씀에 이렇게 기록까지 하셨는가.
뭐가 문제였던걸까요? 부활을 이야기한 것이 잘못된 것일까요? 아니면 사실 바울의 말솜씨가 그렇게 좋지 못했던 것일까요? 말씀을 전하는 태도가 문제였던 것일까요?
사실 바울의 이번 아테네 선교는 우리가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것처럼 실패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말씀에 뭐라고 하던가요. 바울이 슬퍼했다거나 뭐 안타까워했다거나 이런 평가가 있던가요? 그렇지 않아요. 말씀은 바울의 아테네 선교에 대해 어떤 평가도 내리지 않습니다. 그저 그의 사역을 통해 몇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사실 자체만 전할 뿐이었습니다.
그럼 이건 무슨 의미일까요? 그냥 그거면 괜찮다는겁니다.
사실 여러분들도 아시겠지만, 모든 선교활동이라는 것이 엄청난 부흥의 결과를 담보하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심지어 예수님조차도 본인 고향에서 어떠셨나요? 믿는게 문제가 아니라 배척을 당하셨어요. 그리고 그나마 세워놓았던 열두제자는 어땠나요? 가장 결정적인 순간 예수님을 배반했어요.
예수님의 사역을 우리의 생각대로, 세상의 상식대로 평가하면 어떤 결과로 이야기하겠어요? 완전 실패죠.
그런데 정말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했나요? 그게 아닌건 우리가 모두 잘 알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자꾸 세상의 기준으로 우리의 사역에 대해 성공과 실패를 판단하고 구분하려고 한다는겁니다. 사람이 많이 와야 잘되는 것 같고, 그러다가 누군가 엄청난 회심을 경험하면 대박이 나는 거고. 전도지를 나눠주는데 잘 안받으면 뭔가 잘 안되는 것 같고. 이런 마음들이 우리 안에 지속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의 선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은 마지막 34절을 통해서 바울의 사역 가운데 몇 사람의 결실이 있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 더해 그 몇 사람의 이름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판단으로 그저 겨우 얻은 정도로 느껴지는 몇개의 결실을 가지고서도 하나님께서 아테네 땅에 큰 일을 이루실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언급된 디오누시오는 성경 말씀에는 등장하지는 않지만, 전승에 따르면, 이후 세워진 아테네 교회에서 주요한 역할을 감당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볼 수 있는 사실은 뭘까요. 결국 하나님은 세상의 상식과는 다르게 하나님의 크신 뜻대로 일하시고 역사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할 일본 땅이야말로 사실은 이러한 상식을 뛰어넘는 마음가짐이 너무나도 중요합니다.
여러분들도 아마 여러 매체를 통해서 보셨겠지만, 현재 일본의 청년세대는 무기력함에 많이 빠져있습니다. 일본에서는 이들을 유토리세대, 혹은 사토리 세대라는 신조어로 부릅니다. 주로 87년부터 04년생까지가 해당되는데요, 이 시기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라고 하죠, 거품경제가 꺼지고 장기불황이 시작된 시기입니다.
경제가 어렵다보니 취업도 안되고 현실적으로 많은 것들이 불투명해져버린 것이죠. 그러자 그 현실을 앞둔 청년들이 모든 것들을 포기하고 좌절해버리고 만 것이죠. 이 사토리세대는 우리나라의 N포세대와 비슷하다고도 할 수가 있겠네요.
이들이 현재 삶에서 느끼는 감정들은 어떤걸까요. 바로 실패로 인한 좌절입니다. 실제로 실패를 경험했거나, 앞으로의 삶에서 희망이 전혀 보이지가 않는 것이죠.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이 하루하루를 그저 버티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죠.
이런 상황에 처한 일본의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이 바로 복음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세상이 말하는 거짓된 현실과 상식에서 눈을 떼고, 소망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해야 한다는 것이죠.
당장 우리 눈 앞에 놓여있는 현실이 정말 좋아질 기미가 없고, 내가 당장 가진 것들은 별볼일 없을지라도, 그것은 세상이 말하는 상식에 불과할 뿐, 주님은 그 세상이 말하는 별게 아닌 것으로도 정말 놀랍게 일하시며 소망을 이루실 것이라는 이 복음을 우리는 선교를 통해서 그들에게 보여주고 나타내줘야 한다는 것이죠.
주님은 우리가 나아갈 일본 땅에 우리의 선교를 통해서, 우리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들을 통해서 새로운 희망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아무리 일본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고, 경제가 어렵고, 환경이 좋지 않는다 할지라도, 그 모든 예측과 상식을 뛰어넘는 주님의 놀라운 복음의 소망을 보이실 것입니다.
뿐만 아니죠. 우리가 그 놀라운 일들을 행하고 올때, 우리 안에 부어진 놀라운 복음의 소망이, 일본 땅에만 뿌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돌아온 이 한국 땅에도 마찬가지로 뿌려질 것입니다.
일본 땅에서야 우리가 전하러 온 자지만, 주님은 그 자리에서 전한 자를 충분히 사용하셔서 역사하시고, 전한 우리를 다시 우리 삶으로 보내셔서 그 선교의 경험들이 우리의 삶으로까지 이어지게 일하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선교대원들이 그것을 경험하셨으면 좋겠습니다. 행사를 잘 해서, 인원동원을 잘 해서, 눈에 보이는 무언가를 잘 해서 그것으로 은혜받는 것이 아니라, 그냥 선교의 자리 그 자체가, 놀랍게 상식을 뛰어넘어 소망을 보이시는 그 자리에서 나라는 존재가 함께하고 있다는 그 사실이 여러분들의 선교지와 삶에까지 이어지는 은혜가 되기를 소망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