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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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본문해설(시대적 절망 속에서 드리는 비장한 간구)
I. 본문해설(시대적 절망 속에서 드리는 비장한 간구)
1. [국제 정세와 유다의 타락]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하박국 선지자가 활동했던 시기는 대략 주전 7세기 말이다. 대략 요시아 왕의 죽음 이후부터 여호야김 왕의 통치 시대로 추정된다.
당시 국제정세는 앗수르가 몰락하고 신흥세력인 바벨론이 득세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한편 유다 내부에서는 끝 모를 신앙적 타락이 이어지고 있었다.
요시아 왕은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유다 백성들의 신앙을 진작시켰다. 그러나 그가 죽은 후에는 유다 백성이 다시 고질적인 우상 숭배에 빠지게 되었고 사회적으로는 불의가 만연했다.
하나님을 멀리 떠나 타락한 유다는 멸망의 길을 향하고 있었으며 바벨론은 호시탐탐 유다를 정복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2. [하박국의 두 가지 간구: 부흥과 긍휼]
이런 상황에서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면하고 두려움과 소망이 뒤섞인 비장한 기도를 드린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이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이것은 하박국 선지자가 이미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사실, 곧 당신께서 유다를 멸망시키시고, 또 그 가운데서 남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건지실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가운데 드리는 기도다.
그러면서 그는 하나님께 두 가지를 간구한다. 하나는 이 땅에 부흥이 임하게 해달라는 기도이고 또 하나는 하나님께서 긍휼을 베풀어 달라는 기도였다.
II. 부흥하게 하옵소서(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
II. 부흥하게 하옵소서(죽어가는 영혼을 살리는 생명의 역사).
1. [부흥의 본질: 주의 일이 확 살아나는 것]
여기서 “부흥하게 하옵소서”는 “확 살아나게 하소서”라는 의미를 가진 명령형 동사인데 원래 이것은 “살아있다.” 라는 의미를 가진 하야동사의 피엘형의 명령형이다.
이것은 사실상 “죽은 자처럼 되어버린 상태에 있는 어떤 것을 확 살아나게 하는 것”을 가리킨다.
그런데 여기서는 “부흥하게 하소서”의 목적어가 “주의 일”이다. 당시의 하박국 선지자가 보기에는 선택된 민족인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일하시는 하나님의 역사가 사라진 것 같았다.
그것은 마치 영적으로 깊은 잠에 빠져 사실상 죽은 자와 방불한 상태로 하나님을 대적하며 살아가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영적 상황과 유사하였다.
그래서 그렇게 마치 죽은 것과 같이 정지되어 있는 하나님의 구속 역사 곧 “주의 일”을 다시 확 살아나게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주의 일”로 번역된 히브리어 단어는 “파올카”인데 이 히브리어 단어는 “일, 사역, 역사” 등을 의미하는 단어인 명사 “포알”에 2인칭 남성 단수 접미사가 붙은 형태다.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의 일, 곧 당신께서 이스라엘을 선택하시고 계획하신 일을 “확 살아나게 하소서” 라고 하였는데 그 일은 어떻게 성취될 수 있을까?
그것은 하나님을 향하여 죽은 자처럼 무기력해진 백성들이 성령의 능력을 힘 입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이 충만한 생명력을 누리게 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것이 바로 부흥이다.
다시 말해서 “주의 일의 부흥”은 곧 하나님의 구속 사역의 부흥인데, 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영적인 각성과 성령의 충만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절망적 현실에서 부흥의 가능성을 보았다.
[가교] 우리는 성경본문을 통해 남아있는 유다 백성들이 정치적으로 신앙적으로 위기에 처한 가운데서 어떻게 하나님을 발견하고 다시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았는지를 살피고 그 깨달음을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자신과 교회에 적용하고자 한다.
A. 현실에 대한 인식(거룩한 임재와 영적 각성).
A. 현실에 대한 인식(거룩한 임재와 영적 각성).
1. [역사의 주관자를 향한 새로운 눈]-하박국이 겪은 혼란이 결국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안목의 변화였음을 규명함으로써, 청중이 고난을 대하는 신학적 태도를 정립하게 돕습니다.
첫째로, 먼저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합 3:2)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에 관한 어떤 소문을 듣고 그리도 놀랐는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하박국이 자신의 선지서를 시작할 때 그가 하나님 앞에 드린 질문과 응답에서 잘 나타나 있다.
하박국의 첫 번째 질문은 이것이었다. “하나님은 유다 백성들의 우상 숭배와 강포와 포악을 보시면서도 왜 악인들을 심판하지 않으십니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역사상 가장 사악한 나라인 바벨론을 일으켜서 유다나라를 심판하시겠다는 것이었다.
하박국 선지자는 충격을 받으면서 두 번째 질문을 하나님께 올린다. “바벨론은 더 나쁜 나라인데 어째서 그들을 들어서 유다를 심판하십니까?”
이에 대한 하나님의 답변은 바벨론은 단지 타락한 유다를 징계하기 위한 도구일 뿐 그들도 교만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이런 혼란 속에서도 오직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 곧 주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게 된다는 것이었다.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리라.”(합 2:4 하)
그들은 눈에 보이는 정치적 상황에 휘둘리지 않고 오직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살 것이란 뜻이다.
여기에 있는 성경 본문 2절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 곧 신명이다.
“여호와”라는 신명은 하나님의 가장 고유한 신명으로서 가장 거룩한 이름이다.
이는 하나님께 자신의 존재를 피조물에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심을 보여준다. 이 거룩한 이름은 오직 후일의 이스라엘에게만 계시되었다(출 6:3).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굳게 믿었다. 지금 현실은 비록 선이 악을 이기고, 믿음으로 사는 자가 교만한 자들에게 짓밟히고 있으나 하나님의 부흥의 때에는 공의로우신 하나님이 반드시 그들을 정의롭게 다루시리라는 사실을 말이다.
특히 하나님께서 “의인은 믿음,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하신 말씀은 모순된 현실을 보며 잠시 회의에 빠졌던 하박국 선지자에게 가슴 벅찬 신학적 깨달음을 선사하였다.
왜냐하면, 그러한 현실의 모순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하나님의 일은 그분의 말씀대로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타락한 유다 백성들과 교만한 바벨론에 대한 모든 심판이 완결될 때 하나님의 위대한 비전이 실현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
이 구절은 하박국서 전체 중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비전을 보여주는 구절이다.
이는 곧 하나님의 일은 거룩하고 우주적 부흥과 함께 일어날 것인데 선지자는 그러한 부흥을 구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과 세상 만방의 질서가 제대로 잡히게 하는 동력이 부흥인데 이로써 하나님께서 직접 역사에 개입하셔서 언약백성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하박국 선지자의 정확한 현실 인식을 보게 된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합 3:2상).
처음에 하박국 선지자는 유다 나라 안에서 광포와패역, 죄악과 율법 준수의 해이, 정의가 시행되지 않는 현실에 대해 혼란스러워하였다.
더욱이 하박국 선지자가 긴 시간 이것 때문에 하나님 앞에 외치며 부르짖었지만 모순된 현실은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아니하였다.
심지어 유다 조정에서는 조정에는 이미 바벨론 쪽에 붙어서 자신의 부귀와 영달을 구하는 인사들까지 넘쳐났다.
그런 하나님 나라의 원수들의 번영과 득세를 보며 선지자는 현실 속에서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에 동의할 수 없었다.
심정적으로는 그나마 이렇게 큰 소리로 부르짖고 있었을 것이다. “하나님, 이 말도 안 되는 개차반 같은 현실 속에 당신이 계시기는 하시는 것입니까?”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과의 거듭된 대화 속에서 권선징악의 단순한 이분법적 사고 구조를 갖고 있던 자신의 역사를 바라보는 인식에 있어서 커다란 변화와 확장을 경험하게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공의를 허물거나 배반하시지 않으신 채 범죄한 유다와 바벨론을 멸망시키시고 그 가운데 남은 유다 백성들을 영적으로 새롭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이러한 주의 일의 전개 과정을 통해서 하박국 선지자는 모순된 역사의 현실을 뛰어넘는 중요한 사실을 발견하였다.
즉 거룩하신 하나님께서 살아계셔서 역사 속에서 정의를 실현하신다는 사실과 그 과정을 통해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이 세상의 물이 바다를 덮음과 같게 하실 것이란 사실이다(합 2:14).
이를 위해 부흥을 구하기 전 선지자는 먼저 거룩하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을 포함한 유다 나라의 현실을 새롭게 인식한다.
그것은 부흥이 일어나기 전에 항상 따라오는 거룩하신 하나님으로부터 말미암은 영적 각성이었다.
그리하여 선지자와 유다 백성들이 평범한 시기에는 전혀 보지 못하던 사실들에 대해서 새롭고 놀라운 영적 깨달음을 얻게 되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서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은 자신의 감각을 사용할 뿐 하나님의 특별한 도움이 필요 없다.
그러나 그렇게 감각적으로 보이는 것들이 하나님 앞에 어떤 신령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지를 아는 것은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파악할 수 없다.
하박국 선지자가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라고 했을 때 그를 놀라게 한 소문이라는 것은 곧 범죄한 유다가 바벨론에게 멸망당할 것이란 사실이었다.
또한 당시에는 그렇게 강성해 보이는 바벨론도 그들의 교만과 죄악 때문에 결국은 하나님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예언적 사실을 가리킨다.
이것이 바로 모든 크고 작은 부흥이 일어나기 직전에 반드시 발생하는 신자들의 영적 각성이다.
영적으로 잠자던 신자들은 그것을 통해서 신앙적 상태에 대한 새로운 자기 인식에 도달하게 된다.
2. [임종 앞의 권사님이 경험한 빛의 조명]
내가 내수동교회 고등부 전도사로 사역할 때 일이었다. 그때 나는 2년 가까이 매주 토요일마다 교회 예배당에서 홀로 철야 기도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기도를 많이 하시던 한 연로한 권사님이 계셨다. 그분은 주일마다 교회의 발코니에서 나의 두 손을 꼭 붙잡고 늘 말씀하셨다. “전도사님, 교회를 위하여 기도 많이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인사를 마치고 돌아가실 때에는 가끔 검은 비닐봉지를 내 손에 들려주셨다. 거기에는 돼지고기나 소고기, 두부나 나물 같은 반찬거리들이 담겨 있었다. 전도사인 내가 너무 가난하고 초라해 보였던 모양이다.
그 후 여러 해가 지나 내가 열린 교회를 개척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때였다. 권사님은 어느 날 수요 저녁 예배 시간에 오셨다. 또 다시 소고기 한 근을 비닐봉지에 담아 가지고 말이다.
예배가 끝나고 교인들을 떠나보낸 후 권사님은 자기가 본 환상을 이야기하시기 시작했다.
어느 날 환상 속에 어두운 커튼이 드리워진 방 안에 홀로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는데 그분 자신이 보기에는 깨끗한 방처럼 보이더라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검은색의 두툼한 커튼이 확 젖혀지자 말할 수 없는 눈부신 빛이 방 안으로 확 들어왔는데 공기 중에는 수많은 불결한 먼지들이 너무나 가득해서 자신도 모르게 입을 틀어막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나서 자신의 의복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얀 세마포였다.
그런데 자신이 입은 그 하얀 옷이 군데군데 더러운 얼룩들이 묻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슬퍼하며 안절부대하다가 환상에서 깨어났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권사님이 말했다. “전도사님, 제가 이렇게 더러운 먼지와 얼룩 같은 죄가 얼마나 많은지를 이제야 깨달았습니다. 그 후로 제 기도 제목이 바뀌었습니다. 정결한 마음을 주시옵소서.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옵소서” 라고 말입니다.
그것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권사님을 마지막으로, 뵌 날이었다. 불과 몇 달 후 그분은 하늘나라로 가셨다.
나는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권사님을 깨끗한 영혼으로 당신 곁으로 부르시기 위해 임종을 앞두고 거룩한 영적 각성을 주신 것이었다고 말이다.
3. [이용도 목사의 폐병을 뚫고 터져 나온 불]-‘영적 각성’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이용도 목사의 처절한 기도와 성령 체험이라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으로 연결하여 청중이 본문의 의미를 ‘눈으로 보듯’ 느끼게 합니다.
한국 교회의 역사에서 이용도 목사(1901-1933)는 이러한 사실에 대한 중요한 증인들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황해도 금천에서 출생하였으며, 어려서부터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자랐다.
그는 일제강점기에 조선 청년으로서 민족의 아픔을 깊이 공감하여 3.1운동에 적극 가담하고 옥고를 치렀고 이후에도 여러 번 투옥되었다.
거듭되는 옥고와 모진 고문으로 결국 이용도 목사는 폐병을 얻게 되었고 그것은 일생 동안 그를 괴롭혔다. 결국 후일 그는 그 지병 때문에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그는 당시 감리교 협성신학교에 입학했으나, 학내 분규를 일으킨 죄로 퇴학 당했다가 후에 복학하여 졸업을 하였다.
그는 교단으로부터 1928년 강원도 통천 지역 선교를 담당하기로 하고 통천교회에 담임 전도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그때는 이미 이용도 전도사는 폐결핵 3기의 몸으로 의사로부터 더 이상 살 가망이 없다는 사형 선고를 받은 상황이었다.
더욱이 통천교회에서의 이용도 목사의 목회는 무기력하지 짝이 없었다. 그가 열심히 설교를 준비해서 말씀을 전해도 성도들은 냉담하게 듣거나 졸기까지 하였다.
이용도 목사는 자신의 설교가 사람들을 전혀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에 깊은 자괴감에 시달렸다. 그는 당시 일기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다.
“나는 설교할 재료가 다 말랐다. 기도는 막히고 가슴은 답답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목회에 있어서 더 이상 뒤로 물러설 곳이 없다고 판단한 이용도 목사는 1929년 12월 24일 죽음을 각오하고 산으로 기도하러 올라갔다.
그 산은 통천 고을의 뒷산 중턱에 있는 바윗굴이었다. 당시 그 고장 사람들은 그 산을 악마가 나오는 산이라고 하여 두려워했다.
그러나 이용도 목사는 자신이 마귀도 이기지 못한다면, 목회도 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단히 각오를 하고 밤마다 그곳으로 산기도를 하러 갔다.
그는 살을 에이는 모진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솜바지와 저고리를 입고 담요 한 장을 뒤집어쓴 채, 눈이 쌓인 산속에서 밤새도록 기도했다.
이러한 철저한 기도와 헌신 때문에 이용도 목사의 지병이었던 폐결핵은 더욱 악화되었다.
당시 그의 기도에는 어떤 여유나 느긋함도 없었다. 그의 기도는 이었고 죽음을 각오한 간절한 것이었다. “주여, 나에게 힘을 주옵소서. 나를 만나 주옵소서.”
이용도 목사가 처절한 부르짖음으로 밤새 울부짖고 나면 그가 기도하던 자리에는 하얀 눈 위에 붉은 선혈이 낭자하였다.
이처럼 끈질긴 산기도가 이어진 지 9일째 되던 날 정확히 1930년 1월 1일 새벽에 이용도 목사는 극적으로 하나님을 만나게 된다.
그날도 여느 때처럼 산에서 밤새도록 기도하고, 내려와서 통촌교회에서 새벽 기도회를 인도하는 중이었다.
그때 그는 갑자기 머리에서부터 뜨거운 불덩어리 같은 기운이 쏟아져 내리는 것을 느꼈다.
이용도 목사가 1930년 2월 26일 일기에서 적었던 그때의 일을 변종호(1905-1984)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자신의 책 『이용도 목사 전기』에서 그때 일을 다음과 같이 인용하여 서술하였다.
“그날 새벽 기도 때였다. 강단에 엎드려 기도하던 중에 갑자기 이상한 힘에 사로잡혔다. 전신이 불덩어리처럼 달아오르며 혀가 꼬부라지고 이상한 말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강단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 불이다. 불이다. 이 가슴에 불이 붙는다. 주여. 이 불을 끄지 마옵소서”
이용도 목사는 강단을 치며 통곡하다가 다시 웃으며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의 입에서는 권세 있는 말씀이 폭포수처럼 쏟아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함께 있던 교인들도 모두 거꾸러져 통회하며 죄를 자복하기 시작했다.
아침 식사 시간이 훨씬 지났으나 교인들 중 아무도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날 친구 박특서(1902-1950)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용도 목사는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그날 새벽 기도회 때부터 기도회에 줄이 잡혔습니다. 불이 붙었습니다. 강단 위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서 아침을 굶고 낮 예배까지 인도하였습니다. 성신이 충만하여 밥을 먹을 생각도 잊었습니다.”
이용도 목사가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분의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기 전까지 그는 자신이 제법 의인인 것처럼 스스로 의식하였다.
왜냐하면, 이용도 목사 자신이 조선을 위해 독립운동을 하다가 감옥을 여러 번 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날 밤 산기도 후에 성령을 받자 그의 조명하심으로 말미암아 자기 마음 안에 많은 명예욕과 영웅심리.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들로 가득 차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이용도는 영적으로 깊이 각성하고 난 다음에 자신을 가리켜 “껍데기만 목사요. 속은 썩은 송장이다... 나는 사기꾼이다” 라고 하였다.
그날 밤 산기도와 교회 강단에서의 성령 체험을 통해 이용도 목사에게는 죄에 대한 놀라운 인식이 생겼다.
그것은 우리 민족의 죄를 바라보는 시각이었다. 이전에 그는 항상 모든 문제를 일제의 압제나 타락한 사회 그리고 무기력한 조선교회의 탓이라고 주장을 하였다.
그러나 거룩한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성령을 체험하자 이용도에게는 비로소 하나님의 시각에서 그 모든 문제를 정확히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의 놀라운 변화가 일어났다.
그는 말했다. “조선교회가 타락한 것은 바로 나 때문이고 우리 민족이 멸망한 것도 나의 죄 때문이다.”
그것은 그의 역사 인식에 대한 놀라운 전환이었다. 이용도 목사는 이제껏 민족이 겪는 고통을 남의 탓으로 돌렸는데 자신이 바로 나라를 그렇게 만든 원흉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리하여 이후로 자신과 민족의 죄 사이에 있는 연대성을 굳게 확신하면서 민족의 아픔을 자신의 죄책으로 끌어안고 통곡하며 목회하게 되었다.
역사에 대한 이용도 목사의 이러한 사고의 거룩한 전환은 그 후에 이어진 수많은 부흥 집회에서 청중들이 민족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동일시하며 하나님 앞에 회개하게 만든 커다란 원동력이 되었다.
하나님을 새롭게 만난 이용도 목사는 이제껏 자신이 쏟아놓은 수많은 설교들이 단지 자신의 알량한 죽은 지식 속에서 나온 생명 없는 것들이었음을 깨달았다.
그리고 이용도 목사는 자신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 박아 욕보인 위선자임을 깨닫게 되었다.
이용도 목사는 하나님과의 특별한 만남을 통해서 자신을 새롭게 보게 되었다. 비참한 절망 속에 있는 인간의 문제는 단지 차가운 논리로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오직 살아 계신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의 붉은 피와 충만한 부활 생명에 의해서만 해결될 수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체험했던 것이다.
4. [자기중심적 관점에서의 탈피]
우리는 어떠한가? 모든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평온한 때에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지 않는다.
또한 시련과 역경을 만나면 그렇기 때문에 너무 쉽게 환경 탓, 타인의 탓만 하지 않는가?
신앙생활에 있어서 핑계거리를 찾는 것은 가장 최악의 길이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끊임없는 책임의 회피만 있을 뿐 진지한 자기 반성과 철저한 회개가 없기 때문이다.
기껏해야 영적인 죽음과 절망, 하나님에 대한 원망들 뿐이니, 이것들 외에 어떠한 선한 것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면 결국 자기중심의 교만한 관점은 조금도 변화되지 않은 채 마치 자신이 하나님의 위치에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해석하게 된다.
그렇게 생각이 제자리를 맴도는 동안에는 하나님의 말씀이 좌우에 날선 검이 되어서 그의 심령을 깊이 찌르고 폐부를 쫓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생각해 보라. 썩은 송장의 냄새가 나는 죽은 설교자의 심령에서 어찌 살아 있는 생명 있는 설교가 나올 수 있겠는가?
거지같이 목회하는 사람치고 그 마음이 진짜 철저하도록 가난하여져서 하나님을 찾는 사람은 없다.
그는 언제나 산더미 같은 핑계거리와 거짓 구실을 찾기에 골몰한다. 단 한 번도 자신의 죄 때문에 절망하면서 마음이 무너지는 법이 없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심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과 접촉하는 달콤함과 부드러움을 추호도 느낄 수 없다.
한마디로 말해서 철저히 육에 속한 사람으로 살아가는데 그의 목회를 통하여 어찌 죽은 영혼이 살아날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중구난방으로 흩어진 우리의 마음의 번뇌를 거두고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모으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죄 없이 형벌을 받으시고 매달리신 피곤한 십자가를 바라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생명의 근원이시며 나의 죄는 사망의 근원임을 생각하자.
거룩한 부흥을 주시기 전에 하나님은 먼저 한 사람 혹은 소수의 사람을 영적으로 각성하게 하시어 자신의 현실을 바로 보게 하신다.
하나님을 만나고 영적으로 각성한 그들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시각으로 현실을 인식하게 된다. 그것은 육적 사고방식에서 영적 사고방식으로의 전환이다.
당시 하박국 선지자가 그랬다. 맨 처음에 그는 혼란스러워했다.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합 1:2).
그때 하박국 선지자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 악인들이 번성하는 것과 정의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현실에 대한 불만을 솔직히 하나님께 털어놓는다.
그것은 율법과 정의가 사라지고 악인이 번성하는 현실에 대한 탄식이었다. “이러므로 율법이 해이하고 정의가 전혀 시행되지 못하오니, 이는 악인이 의인은 에워쌌으므로 정의가 굽게 행하여 짐이니이다.”(합 1:4).
그러나 결국 하박국 선지자는 이 캄캄한 역사의 밤중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을 다루고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다시 말해서 하박국 선지자는 영적으로 각성하여 현실에 대해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해석을 갖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 하박국 선지자는 그 유명한 고백을 남긴다.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우리가 먼저 구해야 할 것은 눈에 보이는 세상의 번영과 육체의 성공이 아니다. 우리의 신령한 안목이 열리기를 간절히 그리고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주께서 우리를 영적 무감각의 상태에서 건져내 주셔야 한다.
다시 말해서 거룩하고 신령한 것들에 대해서 맹인된 것과 하나님에 대하여 무감각해진 것으로부터 우리를 구출해 주셔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똑같은 현실을 두고서도 타락한 이스라엘과 교만한 이방 백성들과는 전혀 다른 시각에서 그것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우리는 다음과 같은 중간 결론에 이르게 된다.
“위대한 부흥이 찬란한 태양빛이라면 하나님은 그 일이 있기 전 인간의 마음에 거룩하고 영적인 각성의 먼 동이 트게 하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스스로 부흥을 주도하시되 거룩한 각성을 통하여 당신의 마음을 갖고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들로 하여금 그 일에 동참하게 하신다.
그렇기 때문에 눈에 보이는 현실이 아무리 절망적이어도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있는 한 결코 좌절하지 않는다.
이에 대해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자신의 책 『구속 사역의 역사』 513- 514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로부터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상의 수많은 거대한 박해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지금까지 자신의 교회를 지켜오셨으며 또한 앞으로도 영원히 지켜나가실 것인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신실하게 교회를 지키신다면 그분의 지체가 된 신자들 또한 모든 세상의 박해와 고난으로부터 지켜주시지 않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엄중한 현실이 가로막아도 우리는 낙심하지 말자. 오히려 그러한 상황을 통해 거룩한 부흥을 갈망하면서 하나님께 매달리자.
심판을 앞두고 있는 도성 한 가운데는 잠든 교회가 있으며 그 교회의 강단에는 아직 거룩한 각성을 경험하지 못한 눈먼 설교자가 있다.
아아. 우리가 형식적으로 드리는 기도와 그리스도의 보혈의 영향을 받지 않은 설교는 이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가?
하나님은 영적으로 맹인이 된 우리가 신령한 세계에 대해 눈을 뜨기를 바라시는데 우리는 여전히 세속적 번영과 성공만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가?
누가 우리의 이렇듯 비참한 영혼의 처지를 깨달아 하나님의 마음으로 기도할 것인가? 누가 잠자는 교회를 깨우고 눈먼 신자들을 다시 보게 해주시기를 간구할 것인가?
누가 우리들 자신과 조국 교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보면서 사랑하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열렬히 하나님께 기도할 것인가?
기도하자. 먼저 나의 눈을 열어서 내 영혼의 가난함과 헐벗음을 보여주시도록 간구하자. 그리고 우리 모두가 정확하게 우리 자신과 교회의 영적인 현실을 직시하자.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에 박힌 못과 같이 되어 버린 그분의 마음의 아픈 기도 제목들을 위해 그분과 동일한 아픔을 가지고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은 선하고 자비로우시니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이다.
B. 부흥에 대한 소망(하늘의 소낙비를 기다리는 농부)
B. 부흥에 대한 소망(하늘의 소낙비를 기다리는 농부)
1. [단 하나의 목적, 하나님 나라의 회복]
둘째로, 부흥에 대한 소망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절망적인 이스라엘 영적인 상태를 바라보면서 말한다.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합 3:2).
여기서 “주의 일”은 직역하면, “당신의 일”이다. “일”은 단수다.
이것은 세 가지 점에서 특별하다. 첫째로는, 그에게 “주의 일”은 단 한 가지였다. 수많은 일이 있지만 그것들이 궁극적으로 수렴하는 하나의 일이 있다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다.
둘째로는 그런 부흥을 기대할 수 없는 절망적 현실 속에서 그것을 위해 믿음으로 간절히 기도할 마음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리고 셋째로는 그 부흥의 내용이 이스라엘의 번영이나 성공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부흥이었다는 것이다.
하박국 선지자가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해달라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주의 일”이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곧 주의 말씀을 통해 예고하신 하나님의 일이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역사 속에 개입하셔서 심판하심으로써 회개하지 않는 유다백성과 교만한 이방 민족들을 모두 다 쓸어버리시고 하나님의 하나님 되심이 역사 속에 드러나게 되는 그 일이 부흥하게 해달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부흥은 일시에 많은 사람들이 죄에 대해 회개하고 강력한 성령의 임재를 집단적으로 경험하는 것이다.
따라서 주의 일의 부흥은 구속의 역사의 부흥이며, 이는 곧 주의 백성들의 심령에 일어나는 영적 부흥을 통해 현실적으로 나타나게 된다.
2. [죽은 예배와 기도를 깨우는 갈망]-본문이 말하는 ‘주의 일의 부흥’이 오늘날 우리의 ‘예배와 기도’의 회복과 직결된다는 논리적 흐름을 선명하게 제시하여 청중의 집중력을 유지시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나 자신의 양심을 향해서 씻지 못하고 있는 커다란 두 가지 커다란 죄가 있다.
하나는 부흥이 없는 날에 최선을 다하지 않는 것이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스스로 하나님을 알고자 하지 않는다. 우리는 최선을 다해 전도하지 않는다.
그래서 수없이 많은 예배를 드려도 매일 같은 사람들이 특별할 것 없는, 감격도 사라진 예배를 자기들끼리만 드린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예배를 드리면서 살아왔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이 하나님 없이 드린 헛된 예배인지 조차도 모른다.
또 하나는 우리가 부흥을 위해 최선을 다해 기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죽은 자들이 모여서 죽은 자들의 설교를 드리며 죽은 예배를 드린다.
그렇게 죽음으로 가득 찬 예배를 드린 교인들에게 무지와 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하다.
그래서 우리는 죽어 가는 사람들에게 절실한 마음으로 전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생명에 대한 사랑과 열망이 없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하고 있는 영적 죽음과는 비교되지 않는 영혼의 행복한 상태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자신의 영혼이 얼마나 비참한 상태에 있는지 어떻게 그러한 현실을 타개해야 할지 가슴을 치며 몸부림치지 않는 것이다.
참으로 추수의 기쁨을 누리기 원한다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려야 한다. 더욱이 그가 천수답을 경작하는 농부라면 서럽도록 하늘이 푸르른 날에는 소낙비가 내리기를 갈망해야 한다.
왜냐하면, 천수답은 하늘이 제때에 비를 내리지 않는다면 결코 가을의 곡식을 추수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하박국 선지자는 그 부흥이 수년에 이르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유다 나라가 주전 586년에 망하고 바벨론 포로 생활이 70년 동안 계속될 것을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다급한 기도다.
하나님의 통치가 사라진 세상에서 단 하루라도 그분의 이름이 모욕을 받는 수치의 세월을 보내고 싶지 않다는 하박국 선지자의 다급한 영혼의 열망을 보여주는 것이다.
아아, 우리의 영혼이 얼마나 깊이 잠들어 있는가? 우리 자신이 벌거벗은 영적인 수치를 부끄러워할 줄 모르고 죽은 자처럼 살아있는 것 때문에 애통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겉으로 예수를 믿어도 삶의 거룩한 열매가 없는데도 어쩌면 그렇게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명랑하게 살 수 있는가?
우리가 기도를 하면서 통곡해 본 때가 언제인가? 예배의 감격에 빠져 눈물로 손수건을 훔친 때가 언제였는가?
설교자인 나 자신이 말로 다할 수 없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모르는 죄인들 때문에 피를 토할 것 같은 슬픔에 울먹이며 설교를 이어가지 못한 때가 언제인가?
이러한 현실은 모두 우리의 심령과 교회에 하나님의 부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뚜렷한 증거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3. [새클빌 부흥과 조롱하던 자의 최후]
1781년 6월에서 1786년 10월에 있었던 캐나다의 새클빌 지역의 부흥은 이런 사실에 대한 웅변적인 증거다.
먼저 당시 정치적, 사회적 상황을 잠깐 살펴보자. 첫째로는 그때 캐나다는 매우 혼란스러운 무법천지였다. 미국 본토에서 독립을 반대하고 영국 왕실에 충성하던 많은 사람들이 대거 캐나다의 대서양 연안으로 이주해 왔다.
둘째로는 당시 대부분의 캐나다 주민들은 복잡한 정치적 상황 속에서 자신들의 국가적 정체성에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러한 가운데 주민들은 육체적으로만이 아니라 정신적으로 힘들어 하고 있었다.
셋째로는 미국 동부와 달리 캐나다는 개척지에 불과했고 정부의 행정력과 경찰력이 미치지 못하는 지역이 대부분이었다.
넷째로는 많은 사람들이 독한 술인 럼주를 과다하게 소비하고 있었다. 또한 정식 학교나 교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다수의 주민들이 문맹이었고 그의 자녀들 또한 체계적으로 교육을 받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캐나다의 노바스코사 암허스트에서 메소디스트들의 신앙 공동체를 이끌고 있던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새크빌 부흥 운동의 중심에 있었던 윌리엄 블랙(1760-1834)이다.
그는 한 지역에 붙박혀 있었다기보다는 말을 타고 인근 지역을 돌면서 복음을 전하던 일종의 순회 설교자였다.
1781년경 당시 20대 초반이던 청년 설교자 윌리엄 블랙은 매우 거칠고 복음에 적대적인 무리들이 많이 살고 있었던 지역에서 복음 사역을 하고 있었다.
그는 1781년 9월에서 10월경 찰스 딕슨(1731-1817)이라는 성도의 집에서 집회를 가졌다.
그곳은 윌리엄 블랙이 거주하던 동네로부터 약 15km 정도 떨어진 뉴브런즈윅 새크빌이라는 곳이었고 집주인인 딕슨은 성공한 농부이자 상인이었으며 집안 판사와 뉴브런즈윅 입법의회 의원을 역임한 그 지방의 유력한 인사였다.
그의 집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편안하게 집회할 수 있을 정도로 아주 커다란 대저택이었다. 윌리엄 블랙 목사가 에스겔 18장 31절 “너희는 너희가 범죄한 모든 죄악을 버리고 마음과 영을 새롭게 할지어다. 이스라엘 족속아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라는 말씀을 가지고 “회개의 긴급성과 지체하는 자아의 위험성” 이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하였다.
당시 거기에 모였던 청중의 숫자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최소한 수십 명에서 많게는 100명 정도 되었을 것으로 추산된다.
그 당시 윌리엄 블랙은 목사 안수를 받지도 않은 전도자의 신분이었다. 그러나 그때 집회에서 강력한 성령의 임재로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께 회심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반역하는 무리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러한 신앙적이고 영적인 분위기에 반감을 가진 일단의 무뢰한들로서 부흥 집회를 방해하기 위해 집회 장소에 난입했다.
역사적 사실에 근거하여 매튜 리치(1803-1883)가 1839년에 쓴 『윌리엄 블랙 목사의 생애』에 따르면 그때 무뢰한들의 우두머리인 한 젊은이가 윌리엄 블랙이 심판에 대한 설교를 하는 중에 갑자기 자리에 일어났다.
그리고는 회중석에서 회개하며 신음하는 자들의 소리를 우스꽝스럽게 흉내 내며 비웃었다.
또한 거의 같은 방식으로 설교자의 심판에 대한 경고를 비웃듯이 조롱 섞인 어조로 똑같이 설교자를 흉내 내며 설교를 방해했다.
그런데 그가 설교자의 말을 가로막고 서서 조롱을 퍼붓던 바로 그 순간 갑자기 그의 얼굴색이 변하더니, 입과 코에서 엄청난 양의 피를 쏟기 시작했다.
그는 즉시 집회 장소 바닥에 쓰러졌고 그 현장에서 즉사했다. 그러자 함께 따라 함께 따라했던 무뢰한들은 즉시 조롱을 멈추고 침묵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극도의 공포와 엄숙함을 느꼈다. 그것은 두려운 경외심의 산물이었다.
그 사람들 중 대부분은 그 후에 윌리엄 블랙에게 찾아와 용서를 빌었고 회심하였다.
그날 부흥 집회에서 그 놀라운 부흥이 있고 나서 그들의 마음에는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일상적으로 만연했던 욕설과 만취 등으로 말미암아 어지럽던 개척지의 마을들이 순식간에 그곳을 덮친 경외로 인하여 어떤 엄숙함이 마을 전체를 뒤덮었다.
매튜 리치는 그날의 토혈 사건을 두고『윌리엄 블랙 목사의 생애』제 67 쪽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이 두려운 사건은 현장에 있던 모든 이들의 마음속에 엄숙한 각인을 남겼고 조롱했던 자들을 침묵시켰다.”
또한 이 부분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일시적인 감정적 흥분으로 그치지 않았다. 그것은 분명한 회개에 뒤따르는 윤리적 열매로 나타났다.
첫째로는 회심한 사람들이 자신의 과부와 죄를 바로잡는 일이 일어났다. 서로 미워하던 사람들이 서로를 찾아가 용서를 빌었고 남의 물건을 훔쳤거나 불법적으로 피해를 준 사람들이 물건을 되돌려주거나 금전적으로 배상하였다.
둘째로는 지역의 유리한 인사들이 사회를 통제하고 다스리는 데 있어서 절제, 정직, 근면과 같은 복음주의적 가치관을 합법적으로 도입하게 되었는데 여기에는 찰스 딕슨 같은 경건한 신자들의 공로가 컸다.
셋째로는 이 부흥 집회 이후로 37명의 회심자로 구성된 감리교속회가 조직되었다. 이는 새크빌 역사상 최초의 조직적이고 자발적인 평신도들의 영적 공동체였다. 이는 훗날 새크빌이 캐나다 동부 감리교의 중심지로 성장하는 발판이 되었다.
거룩한 부흥의 나타남은 사람들을 향해 양면성을 갖는다. 그것은 마치 성경에 나오는 심판 날로서의 여호와의 날이 갖는 이중적 개념과도 같다.
즉 그 심판 날에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의지하는 성도들에게는 놀라운 위로와 기쁨이 주어지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에게는 당신의 엄위와 심판을 동시에 보여주신다.
부흥은 이러한 작용을 통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분이 살아계시고 자유로우신 분이시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당신을 배역하는 자들에게는 그분이 엄위로우시고 두려우신 분이심을 보여준다.
4. [침몰하는 배와 같은 한국 교회의 위기]
조국 교회가 영적으로 죽은 자와 방불한 지금이야말로 우리에게 그러한 부흥이 너무나 절실하게 필요하지 아니한가?
오늘이야말로 이러한 일이 일어나야 할 때가 아닌가? 여전히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교만한 자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지금이야말로 그들이 영광스럽게 나타나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엎드려 벌벌 떨며 가슴이 아프기까지 애국하는 일이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영적 어둠 속에서 부흥의 새벽을 기다리며 울던 자들에게는 그분께서 자비의 손으로 그들의 뺨에 흐르는 눈물을 씻어주시는 위로가 필요한 때가 아닌가?
아아, 우리는 얼마나 이 패역한 세대의 한탄스러운 현실을 고치는 데 있어서 무기력한가?
지금 이 시간에도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이름이 사람들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그분의 영광이 교회에서 떠난 것같이 보이지 않는가?
그리하여 영적으로 마른 뼈들같이 침체된 영혼들이 마치 자신들의 영혼의 최후의 순간을 앞두고 거친 숨을 내쉬는 것과 같은 때에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나?
우리가 자신의 죄 때문에 회심의 영광을 잃어버린 교회를 위해 여전히 하나님을 조롱하는 이 세상 불신자들의 영혼을 위해 울어본 것이 언제였는가?
오히려 우리조차 그 마른 뼈들 중에 하나가 그들과 함께 운명 같은 영혼의 깊은 잠을 자면서 이 세상의 정욕과 즐거움으로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도망가지 않았는가?
아아, 이것이 나의 껍데기뿐인 목회였다. 이것이 바로 내가 교회를 섬김 방식이었으니 그것을 어찌 섬김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죽어있는 영혼들에게 아무런 도움도 되지 않았던 나의 피상적인 목회 때문에 그렇지 않았더라면 부흥을 경험하고 하나님을 새롭게 만나서 하늘에 충만한 생명을 누렸을 수 많은 사람들이 그 소중한 기회들을 잃었다.
이제라도 목회자인 나는 돌이켜야 한다. 나의 목회에, 여러분들과 함께 목회 목양의 현장에 하나님의 충만한 임재와 사랑, 자비와 긍휼이 물 붙듯 부어지도록 회개하며 기도하여야 한다.
그리고 성도인 여러분들도 돌이켜 회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교회와 목회자를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 죄를 회개하여야 한다.
나아가서 죄와 타협하며 태만하게 신앙생활한 것에 대해 깊이 통회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다시 서야 한다.
그리고 참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우리 스스로가 하늘을 가르고 임하는 거룩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나기 위한 부싯돌이 되기를 갈망하여야 한다.
오늘날처럼 서럽도록 하늘이 부르는 날에는 부흥의 소낙비가 필요하다.
그런 부흥을 내려주시도록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엎드려 빌어야 한다.
그럴 수 없다면 그리 할 수 없는 우리 자신의 메마르고 비참한 영적 상태를 기억하며 우리 자신의 영원히 그러한 상태 때문에 울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간절히 기도한다면,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얼굴을 다시 우리에게로 향하여 주사 죽은 자처럼 되어 버린 우리의 영혼을 살려 주실 것이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그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스스로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찾으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사하고 그들의 땅을 고칠지라
그렇다. 이것은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이다. 우리는 마땅히 악한 길에서 떠나 마음이 겸비해져서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찾아야 한다. 마치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한 것 같이 그렇게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
조금이라도 목숨이 붙어있는 자는 반드시 스스로 살기를 원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생명의 본성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안에서 꺼져 가고 있는 하나님의 생명력을 붙들라.
우리가 맨 처음 예수님을 믿을 때 그 첫사랑을 기억하자.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마음으로 그리스도만을 온전히 사랑할 때가 때를 기억하자.
그때 우리의 간절한 소원은 오직 하나였다. 하나님의 이름이 우리와 이웃들 때문에 영광을 받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그렇지 못한 세상과 교회 안의 불신자들을 위해 우리는 목 놓아 울었다.
그런 간절한 기도들은 수많은 사연을 담고 있었어도 해결책은 단 하나였으니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 안에 친히 강림하시는 부흥이었다.
하박국 선지자는 수년 동안이라도 기다릴 요랑으로 부흥을 강구했으나, 우리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왜냐하면, 교회와 우리의 영혼의 상태가 곧 폭풍 속에서 바다에 기울어져서 침몰하고 있는 배와 같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의 시선을 하나의 초점으로 모으자. 오직 하나님을 향하게 하자. 그리고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말미암아 흩어졌던 마음의 눈을 하늘을 향하여 들자.
그리고는 오직 메마르고 척박한 땅에 부흥의 소낙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께로 향하자. 무릎을 꿇고 간절히 기도하자.
하나님이 싫어하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무엇이든지 모두 내어버리겠다. 라는 각오로 거짓 없는 진실함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구하자.
그리고 온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간절히 기도로 매달리자. 하나님은 반드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실 것이며 너무 늦지 않은 시간에 부흥을 내려주실 것이라.
C. 진노 중에 구하는 긍휼(심판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비).
C. 진노 중에 구하는 긍휼(심판을 이기는 하나님의 자비).
1. [심판 속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의 사랑]
셋째로 하나님의 긍휼을 간구하여야 한다. 하박국 선지자는 말한다. “...이 수년 내에 나타내소서.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합 3:2 하)
이미 하나님의 심판은 확정되었다. 반역하던 이스라엘 백성들과 교만한 이방 민족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심판을 통해서 당신의 원수들에게 재앙을 내리시고 남아있는 당신의 친구들에게는 자비를 베푸시기로 약속하셨다.
그래서 하박국 선지자는 다가올 하나님의 심판을 결코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비록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들이 주의 심판으로 멸망을 당할 것이나 그 황폐하게 된 땅에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가 물같이 흐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남은 자를 건지시고 보호하셔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공동체가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사실과 여전히 유다 백성들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긍휼을 베푸심으로써 보여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박국 선지자는 다가올 미래의 그 감격을 믿음으로 선취적으로 경험하면서 감탄한다. 그것이 바로 그 유명한 하박국의 노래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를 나의 높은 곳으로 다니게 하시리로다 이 노래는 지휘하는 사람을 위하여 내 수금에 맞춘 것이니라
2. [평양 깡패 이기풍의 회심과 긍휼]-‘긍휼’이라는 신학적 용어를 이기풍이라는 극적인 인물의 변화 과정에 녹여냄으로써, 나 같은 죄인도 변화될 수 있다는 소망과 감동을 주고 기도의 자리로 나아가게 하는 동기를 부여합니다.
한국 교회사에서 이기풍은 이러한 사실에 대한 살아있는 증인이다. 그는 평양 출신으로서 기독교를 박해하던 전형적인 깡패이자 불량배였다. 그는 성격이 급하고 힘이 장사여서 평양 시내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였다.
특히 그는 서양 종교인 기독교에 대해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 평양에서 선교 활동을 했던 새뮤얼 마펫 선교사에게 돌을 던져 그의 턱에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를 남기기도 하였다.
당시 조선을 둘러싼 동북아의 정치 상황은 다음과 같았다. 조선에서는 동학운동이 일어나고 정부는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청나라에 파병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청나라 군대가 조선 땅에 들어오자마자 일본도 이미 양국 간에 체결되어 있었던 텐진조약을 근거로 대규모 군대를 인천으로 상륙시켰다.
그리고 이러한 청일간의 대치는 1894년 7월 25일에서 1895년 4월 10일 17일 사이에 있었던 청일전쟁의 발발로 이어졌다.
이때 이기풍은 청일전쟁의 전란을 피해 평양을 떠나서 원산으로 피난을 가게 되었다. 낯선 곳으로 피난을 온 그는 그곳 원산에서 인간으로서 가장 밑바닥 생활을 하면서 인생의 근원적인 불행과 비참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결국 원산에서 일본군 전신주 가설 공사장에 노동자 등으로 일하면서 간신히 입에 풀칠이나 하면서 살았다.
이기풍은 자기 인생에서 가장 험악한 현실을 경험하면서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한계와 허물을 느끼던 중에 하나님은 그의 마음에 회심을 준비하고 계셨다.
원산거리를 힘없이 배회하던 이기풍은 당시 거리에서 노방전도를 하고 있던 미국 북장로교의 파송 선교사인 윌리엄 스왈런(1866-1954)을 만나게 되었다.
스왈런 선교사는 며칠째 먹지도 못하고 거지꼴을 하고 있는 이기풍을 보며 한없이 긍휼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그리하여 선교사는 그에게 복음을 전하며 전도지 한 장과 함께 약간의 돈을 쥐어주었다.
그 돈은 당시 이기풍이 그날 한 끼 식사와 잠자리를 해결할 정도의 많지 않은 액수였지만 그에게는 너무나 반가운 선물이었다.
그는 평소 서양 선교사들이 조선을 빼앗으러 온 나쁜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위기에 처했을 때 선교사로부터 뜻밖의 친절과 긍휼히 여김을 받고 내심 놀라게 되었다.
저녁에 숙소로 돌아온 이기풍은 선교사가 준 전도지를 읽어보려고 했었고 바로 그 상태에서 잠깐 잠이 들었다가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더 이상 잠을 이루지 못하고 뒤척이던 이기풍은 비몽사몽 간의 환상을 보게 되었다.
갑자기 방안 전체가 형언할 수 없고 눈부신 빛으로 가득 찼는데 그 빛이 너무 강렬하여 눈을 뜨기조차 힘들었다.
그런 기이한 빛 한가운데서 위엄이 있으면서도 자비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기풍아. 기풍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나의 복음을 전할 사람이다.”
이기풍은 두려움에 질린 채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러자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마치 사도행전에서 사울이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장면과 흡사한 광경이 벌어진 것이었다.
이기풍은 그 자리에 고꾸라져 버렸다. 그리고는 자기가 이제껏 박해했던 예수가 살아계신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에 경악하였다.
이 놀라운 체험을 한 직후에 나타난 이기풍의 반응은 철저한 자기 죄의 자복과 주 예수께 대한 완전한 굴복이었다.
결국 그는 스스로 하나님께 고백하게 되었다. “하나님 저는 죽을 죄인입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십시오.”
철저한 회개와 눈물의 기도로 그 밤을 보내고 아침이 되자마자 그는 당시 원산에 있던 선교사들을 찾아가서 그간의 자신이 지은 죄들을 고백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평양으로 돌아가서 새뮤얼 마펫 선교사를 찾아갔다.
새뮤얼 마펫 선교사를 만난 이기풍은 그의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간청하였다. 내가 당신에게 돌을 던졌던 이기풍입니다. 나를 용서해 주시고 당신이 믿는 예수를 나도 믿게 도와주십시오.
마펫 선교사는 그를 기쁨으로 용서하고 세례를 주었다. 이후 그의 조사(전도사)가 되어 복음을 전했다.
그 후 1907년 평양신학교 1회 졸업생으로서 같은 해 9월 조선 예수교 장로 한국인 최초로 목사 안수를 받았다.
3. [제주 선교의 개척과 뱀 신을 이긴 권능]
이기풍은 안수를 받음과 동시에 독노회 파송, 제주도 선교사로 자원하여 선교사로 파송되었다. 그리하여 1908년 2월경 제주도에 도착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상 숭배에 빠져있던 제주도민의 극심한 박해 때문에 머물 곳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성벽 밑이나 산속의 동굴에 우거하며 기도로 밤을 새울 때가 많았다.
1908년 봄에서 여름 사이 어느 날 그가 산속 동굴에서 간절히 기도하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기둥처럼 굵고 커다란 구렁이가 나타나 혀를 낼름거리며 이기풍 목사를 위협하였다.
당시나 지금이나 제주도에서는 거대한 뱀을 토템으로 모시며 제사하는 습관이 강하게 남아 있었다.
이기풍 목사는 두려워하는 대신 뱀을 노려보며 외쳤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오니 이 더러운 귀신아 물러가라.”
뱀은 물러갔고 이기풍 목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제주도민들 사이에선 이러한 소문이 돌았다. “예수교 목사가 우리가 두려워하는 뱀 신을 이겼다.”
1902년 이기풍은 새뮤얼 마펫 선교사의 중매로 당시 기독교 집안의 처녀로서 조선 최초의 여성 교육기관인 정신여학교(현재 정신여자고등학교) 제1회 졸업생인 윤함애(1875-1950)와 결혼하여 제주도 선교에 동역하였다.
제주도에서 남편을 도와 사역하면서 그녀는 신문물을 접했던 여성으로서 제주도 여성교육에 힘썼다.
그리하여 윤함애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교회 선교사에서 선교사의 어머니로 추앙을 받고 있다.
1908년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되었을 때 첫 번째로 회심자를 얻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김재훈이라는 사람이었다.
김재훈은 당시 제주 감영의 지방 관리인 아전 출신으로서 그 지방의 유력한 인사였다. 처음에는 기독교를 반대하여 이기풍 목사를 심히 박해하고자 하였으나 나중에는 그에게 세례를 받고 제주도 최초의 세례 교인이 되었다.
당시 비교적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김재원의 집안에 큰 어려움이 있었으니 그의 아들이 불치병의 일종인 괴질에 걸린 것이었다.
아버지 김재원은 용하다는 무당들을 불러 큰 굿을 여러 번 하고 우상에게 비는 데 많은 재물을 허비하였다.
결국 김재원은 생각하게 되었다. “무당도 못 고치고 우리의 신인 뱀도 아들을 못 살리는데 동굴에서 그 큰 뱀을 쫓아낸 목사라면 혹시 내 아들을 살릴 수 있지 않을까?”
그러고는 이기풍 목사를 찾아갔다. 그가 김재원의 집에 들어섰을 때 그 집안은 어두운 죽음의 그림자가 가득했다.
이기풍 목사는 병든 아이의 머리에 손을 얹고 간절히 기도하였다. “하나님, 이 아이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 가정이 주를 알게 하옵소서.”
기도가 끝날 무렵 죽은 듯 누워있던 아이가 눈을 뜨고 정신을 차리더니, 물을 찾기 시작하였다. 곧이어 아이가 일어나 앉게 되는 기적이 일어났고 며칠 안으로 완전히 건강함을 회복하였다.
이 일이 있고 나서 김재원은 온 집안에 있는 모든 우상을 태워버렸으며 모든 식구와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이 일을 계기로 김재원은 자신의 집의 안채와 사랑방을 예배처로 제공했고 이것이 바로 제주 최초 교회인 성내교회의 시작이다.
그 후 김재원은 평신도 지도자인 영수가 되어 성내교회를 섬겼을 뿐만 아니라 이기풍 목사가 굶주림과 박해로 고통을 받을 때 성심으로 섬기며 복음 사역을 위한 든든한 방패막이가 되어 주었다.
이 모든 사건을 통해 우리가 깨닫게 되는 사실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부흥을 통해 한편으로는 당신의 엄위와 진노를 뚜렷하게 보여주신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당신을 찾고 돌아오는 죄인들에게 커다란 자비와 공유를 베푸신다는 사실이다.
부흥이 없는 날에도 우리는 마땅히 행하여야 할 본분을 다 할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거나 할 일을 다 했다고 자기 만족에 빠져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살아계셔서 언제나 교회와 당신의 자녀들을 위하여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실 수 있다.
하나님은 동토의 땅과 같이 얼어붙은 심령에 생명을 불어넣으시고 굳게 닫힌 성문과 같은 선교적 성황을 놀랍게 변화시키신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만나서 자기들의 죄를 깨닫고 중생하게 하시는 역사를 일으키신다.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를 보라. 그때는 이스라엘은 타락하고 이방 나라들은 교만해 질 대로 교만해진 때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박국 선지자는 부흥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물이 바다 덮음같이 세상에 가득하게 되는 비전을 가졌다(합 2:14).
그리고 비록 눈에 보이는 이스라엘은 거룩하신 하나님의 심판을 당해서 이스라엘이 훼파되고 무화과, 포도 열매가 없어질 것이며 먹을 것이 없고 양과 소가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하박국 선지자는 그런 심판을 통해서 마침내 드러나는 하나님의 의로운 통치로 인하여 가슴이 터지도록 기뻐할 것을 예언한다.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
하나님은 살아계시다. 충만한 생명이시다. 그리하여 당신을 멀리 떠나 어둡게 드리워진 죽음의 그림자를 우리의 영혼과 교회에서 걷어내시고 은혜의 생명수가 충만히 흐르게 하신다.
당신의 얼굴을 간절히 찾는 자가 있으면 그의 기도를 통해서 얼마든지 그러한 부흥이 일어나게 해주신다.
역사의 어두운 밤, 어두운 한밤중을 지나면서 잃어버린 영혼들과 교회를 진심으로 사랑하여 자신의 부흥을 위한 기도에 바쳤던 사람들은 마침내 하나님의 긍휼을 보게 될 것이다.
우리가 이 소망을 붙들고 있는 한 어떠한 현실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도 우리는 좌절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 모든 비참을 하나님의 은총이 이길 것이기 때문이다.
III. 적용과 결론(다시 피 묻은 십자가 아래로)
III. 적용과 결론(다시 피 묻은 십자가 아래로)
1. [조국 교회의 영적 파산과 애통함]
아아, 영적으로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은 조국의 교회를 보라.
목회의 꽃은 잃어버린 영혼들이 회심하고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한 회심의 소식은 가뭄에 잘 익은 콩을 보는 것처럼 드물지 않은가?
누가 이렇게 깊이 잠들어 있는 조국의 교회를 위해 울어줄 것인가? 누가 조국 교회를 운명처럼 깊은 잠에서 깨워 다시 일어나게 할 것인가?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신 하나님의 놀라운 임재의 영광을 보여주어, 그들로 하여금 이 세상에 가치 없는 것들을 기꺼이 내어 버리고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위하여 살게 할 것인가?
이 현실에서는 그 어떤 부흥의 조짐도 발견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의 가슴은 아프다. 부흥이 없어도 잘 살아가는 사람들과 영적으로 생명을 잃어버린 이 시대의 교회를 볼 때 우리의 마음은 무너져 내린다.
더욱 이러한 상황이 놀랍게 변화되리라는 낙관적인 전망의 징조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고 그러한 현실에 가슴 찌르며 아파하는 사람도 없다.
그래서 우리는 슬프다. 또 조국교회의 영적 현실에 대해 슬퍼할 사람이 없어서 슬프고 그 일을 위해 목놓아 울어줄 사람이 없어서 애통하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참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간절히 주를 찾는 사람이 없어서 우리의 심령은 파산 통보를 받은 자처럼 처절하다.
이런 조국의 현실에도 불구하고, 어디선가 무릎을 꿇고 홀로 흐느끼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2. [하나님의 위대한 약속과 마지막 호소]
이 말씀을 준비하는 내가 이 설교를 듣는 당신의 그 처음 사람이 되어주지 않아야 할 이유를 어디서 찾을 수 있는가?
우리는 너무나 많은 세월을 보냈다. 세상과 나를 위한 일에는 한없이 너그러웠고 하나님과 교회와 잃어버린 영혼을 위해서는 한없이 인색하였다.
지금은 춤추고 노래할 때가 아니라 가슴을 치고 애통해야 할 때다.
우리가 잃어버린 시간들을 생각해 보라. 만일 우리가 그 시간을 열렬한 기도와 헌신에 바쳤더라면 많은 영혼들이 충분히 하나님께로 돌이키게 할 수 있었을 텐데 우리의 게으름과 태만으로 이 소중한 기회들을 잃어버렸다.
자, 우리 모두 다시금 피 묻은 십자가 아래로 돌아가자! 비참한 상태에 있는 자신의 영혼을 위해 가슴을 치자.
그리고는 하나님 앞에 엎드려 스스로 자신을 위해 울 수 없는 영혼들을 위하여 폭포수 같은 눈물을 흘리자.
오래된 가뭄으로 땅이 갈라진 것 같은 우리의 목회 현장에, 삶의 현장에 부흥의 소낙비가 내리도록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간절히 구하자.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자비와 긍휼을 베푸시는 분이시니 우리의 기도가 그분께 올라가는 향훈이 되도록 우리의 진심을 다해 부흥을 구하자.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주경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박국 3장 2절을 중심으로 한 설교를 **주경신학적(Exegetical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본문의 언어적 의미, 역사적 배경, 그리고 전후 문맥을 정밀하게 분석하여 저자의 원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설교를 위해 주경학적으로 반드시 짚어야 할 핵심 요소 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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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단어의 어원적 분석 (Lexical Study)
본문의 핵심 단어들을 히브리어 원문의 의미로 깊이 있게 파헤쳐야 합니다.
* **‘부흥하게 하옵소서’ (חַיֵּיהוּ, Chayyehu):** 설교문에도 언급되었듯, ‘하야’(살다) 동사의 피엘(Piel, 강조형) 명령형입니다. 이는 단순히 ‘성장’이나 ‘번창’이 아니라, **‘죽어가는 것을 다시 살려내다’, ‘생명을 보존하다’**라는 강력한 의미를 가집니다. 즉, 부흥은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 사역임을 주석적으로 확증해야 합니다.
* **‘주의 일’ (פָּעֳלְךָ, Po'alka):** 여기서 ‘일’은 하박국 1장 5절에서 하나님이 “내가 한 일을 행할 것이라”고 하셨던 그 ‘일’과 연결됩니다. 이는 유다를 향한 징계(바벨론 침공)와 그 이후의 구원을 포괄하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를 뜻합니다.
* **‘긍휼’ (רַחֵם, Racham):** 이 단어는 어머니의 ‘태(womb)’를 뜻하는 ‘레헴’에서 유래했습니다. 진노 중에 구하는 긍휼은 **모성애적 자비, 즉 끊을 수 없는 언약적 사랑**에 근거한 호소임을 밝혀야 합니다.
### 2. 역사적 상황과 선지자의 심경 (Historical Context)
하박국이 이 기도를 드릴 때의 구체적인 정황을 이해해야 합니다.
* **바벨론이라는 도구:** 하나님께서 유다의 죄를 심판하시기 위해 더 악한 바벨론을 도구로 쓰시겠다는 응답(1-2장)을 들은 직후입니다.
* **선지자의 수용:** 하박국은 처음엔 항거(1장)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을 수용하고, 그 심판의 과정(수년 내에) 속에서 백성이 완전히 전멸하지 않기를 바라는 **중보적 태도**로 변화되었습니다. 이 심경의 변화 과정을 주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3. 문맥적 위치: 1-2장의 ‘응답’으로서의 3장
* **질문에서 찬양으로:** 하박국서는 ‘어찌하여’(1:2)라는 질문으로 시작해 ‘즐거워하며 기뻐하리로다’(3:18)라는 찬양으로 끝납니다. 3장 2절은 그 전환점입니다.
* **소문을 듣고 놀람:** 여기서 ‘소문’(보고)은 1-2장에서 하나님이 들려주신 심판과 구원의 계획을 뜻합니다. 하나님의 위엄과 공의를 깨달았을 때 오는 **‘거룩한 두려움’(Awe)**이 기도의 동기임을 문맥적으로 짚어야 합니다.
### 4. 시적 구조와 장르 (Literary Genre)
* **신현(Theophany)의 노래:** 하박국 3장은 시편과 유사한 시적 구조를 가집니다. 3장 2절은 이어지는 3~15절의 ‘하나님의 강림하심’에 대한 서론적 간구입니다.
* **시기오놋(Shigionoth):** 3장 1절에 명시된 이 용어는 정열적이고 격정적인 노래 형식을 뜻합니다. 이는 2절의 간구가 차분한 기도가 아니라 **폭발하는 감정과 비장함이 담긴 노래**였음을 시사합니다.
### 5. ‘수년 내에’ (בְּקֶרֶב שָׁנִים, Beqereb Shanim)의 신학적 의미
* **기다림의 시간:** 직역하면 ‘해들(years)의 한복판에’입니다. 이는 약속된 심판이 시작되어 끝날 때까지의 **고통스러운 과정의 시간**을 의미합니다.
* **주해적 포인트:** 하박국은 심판을 면케 해달라는 것이 아니라, 그 고통스러운 심판의 시간 ‘한복판’에서 하나님의 생명 사역을 나타내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는 **‘고난을 통과하는 부흥’**이라는 중요한 신학적 지점을 제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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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및 제언]**
주경신학적 관점에서 이 설교를 준비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부흥’을 현대적 ‘교회 성장’의 개념으로 오해하지 않도록 경계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주해를 통해 부흥은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Wrath)의 과정 속에서도 언약 백성을 긍휼(Mercy)히 여기셔서 생명을 보존(Revive)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역사”**임을 명확히 정립해야 합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박국 3:2을 중심으로 한 설교를 **성경신학적(Biblical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이 본문이 성경 전체의 거대한 이야기(창조-타락-구속-새창조) 속에서 어떤 위치에 있으며, ‘하나님의 나라’와 ‘언약’이라는 주제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는지를 파악하는 것입니다.
성경신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고찰해야 할 핵심 요소 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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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출애굽 전통의 재현 (Theophany and the Second Exodus)
성경신학에서 하박국 3장은 '시내산 현현'과 '출애굽'의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사용합니다.
* **신학적 배경:** 하박국은 2절에서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라고 고백한 뒤, 3~15절에서 과거 출애굽 때 산들을 진동시키며 오셨던 하나님의 위엄을 묘사합니다.
* **포인트:** 하박국이 구하는 부흥은 단순히 교회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 **과거 출애굽의 구원 역사를 지금 이 바벨론 심판이라는 위기 속에서 다시 한번 재현(Second Exodus)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은 반복적으로 자기 백성을 '강한 손'으로 건져내시는 분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 2. 진노와 긍휼의 언약적 긴장 (Covenantal Tension)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거룩함(진노)과 신실함(긍휼)이 어떻게 공존하는지를 추적합니다.
* **언약의 신실함:** 하나님은 언약을 어긴 백성에게 진노하시지만(심판), 동시에 언약의 파트너로서 그들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긍휼).
* **포인트:** 이 간구는 시내산 언약에서 모세가 백성의 죄를 두고 중보하며 하나님의 자비로운 성품(출 34:6-7)에 호소했던 전통을 잇고 있습니다. **부흥은 인간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함’(Hesed)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임을 강조해야 합니다.
### 3.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의 구속사적 연결 (Habakkuk 2:4 to Romans 1:17)
성경신학은 한 구절이 이후 성경 저자들에게 어떻게 인용되고 완성되는지를 봅니다.
* **신학적 맥락:** 하박국 3:2의 기도는 2:4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는 말씀에 근거한 반응입니다.
* **포인트:** 사도 바울은 이 말씀을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인용하여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구원받음'을 선포합니다. 따라서 하박국이 구하는 부흥은 **인간의 율법적 행위가 끝난 절망의 자리에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믿음)을 붙듦으로 얻게 되는 생명(부흥)**의 역사입니다.
### 4. 십자가: 진노와 긍휼의 궁극적 만남
성경신학의 모든 화살표는 예수 그리스도를 향합니다.
* **그리스도 중심적 해석:** 하박국이 부르짖은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는 기도는 **골고다 언덕의 십자가**에서 완벽하게 응답됩니다.
* **포인트:** 하나님은 우리 죄에 대한 '진노'를 아들 예수께 쏟으셨고, 그로 인해 우리에게는 '긍휼'을 베푸셨습니다. **부흥의 가장 강력한 실체는 십자가 복음이 다시 살아나는 것**이며, 3장 2절은 그 십자가의 역사를 내다보는 구약의 전주곡임을 설명해야 합니다.
### 5. 만물의 회복과 영광의 비전 (Habakkuk 2:14)
성경신학은 종말론적 완성(Consummation)을 향합니다.
* **하나님 나라의 완성:** 하박국 2:14 "물이 바다를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함이니라"는 비전은 요한계시록의 새 하늘과 새 땅의 모습과 연결됩니다.
* **포인트:** 하박국이 구하는 부흥은 국지적인 회복을 넘어 **온 세상이 창조주의 영광으로 가득 차게 되는 ‘우주적 부흥’**을 향하고 있습니다. 현재의 고난(바벨론 심판)은 이 영광스러운 목적지를 향해 가는 징계의 과정임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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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를 위한 성경신학적 요약]**
하박국 3:2 설교는 단순히 "우리 교회 부흥시켜 주소서"라는 기복적 메시지를 넘어, **“창세 전부터 계획된 하나님의 구원 사역(주의 일)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신실하게 이어져 왔으며, 진노와 긍휼이 교차하는 십자가를 통과하여, 어떻게 만국을 새롭게 하는 영광으로 완성될 것인가?”**를 선포하는 거대 담론의 장이 되어야 합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박국 3:2 설교를 **역사신학적(Historical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교회의 긴 역사 속에서 ‘부흥’과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교리가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믿음의 선배들이 위기의 때마다 이 본문을 어떻게 붙들고 씨름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역사신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고찰해야 할 핵심 요소 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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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부흥에 관한 신학적 정의의 변천 (Revival vs. Revivalism)
역사신학은 ‘부흥’이라는 개념이 시대에 따라 어떻게 이해되었는지 추적합니다.
* **청교도와 조나단 에드워즈:** 부흥을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Special Providence)**이자 ‘하나님의 비상한 사역’으로 보았습니다. 즉, 부흥은 인간이 기획할 수 없는 주권적인 선물입니다.
* **찰스 피니 이후:** 19세기 근대 부흥 운동(Revivalism)은 적절한 수단을 사용하면 부흥을 ‘촉진’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 **포인트:** 설교자는 역사신학적 검토를 통해, 하박국이 구한 부흥이 인간의 ‘조작’이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하야(살려내심)’에 근거한 **전통적/개혁주의적 부흥론**에 서 있음을 명확히 해야 합니다.
### 2. ‘영적 각성(Spiritual Awakening)’의 역사적 패턴
교회사에 나타난 대부흥 운동에는 공통된 역사적 패턴이 있습니다.
* **절망과 타락:** 부흥은 항상 교회가 가장 타락하고 사회가 어두울 때(하박국의 시대와 같은) 일어났습니다.
* **말씀의 재발견과 각성:** 설교문에 언급된 윌리엄 블랙이나 이용도 목사의 사례처럼, 부흥은 항상 **개인의 철저한 ‘자기 인식’과 ‘죄의 자복’**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포인트:** 역사신학은 부흥이 단순히 감정적 흥분이 아니라, 지성이 말씀으로 깨어나고(각성), 정서가 하나님을 향하며, 의지가 삶을 바꾸는(회개) **전인격적 역사**였음을 증명합니다.
### 3. 공적 회개(Public Confession)의 교회사적 의미
설교문에서 평양 대부흥이나 새클빌 부흥의 사례는 ‘공적 회개’를 비중 있게 다룹니다.
* **역사적 전례:** 초대 교회부터 종교개혁 시기, 그리고 1907년 평양에 이르기까지, 공동체적 부흥은 항상 은밀한 죄가 빛 가운데로 드러나는 공적 고백을 동반했습니다.
* **포인트:** 역사신학적으로 볼 때, 공적 회개는 단순히 부끄러움을 무릅쓰는 행위가 아니라, **사탄의 통치 영역(어둠)에 있던 것들을 하나님의 통치 영역(빛)으로 옮겨오는 ‘영적 승리’**의 선포입니다.
### 4. 고난과 심판에 대한 신학적 해석(Theodicy in History)
하박국은 ‘진노(심판)’ 중에 ‘긍휼’을 구합니다. 역사신학은 교회가 환난을 어떻게 해석해 왔는지 다룹니다.
* **징계로서의 고난:** 아우구스티누스나 칼빈은 교회의 고난을 하나님의 유기(버림)가 아니라 **‘정화를 위한 징계’**로 보았습니다.
* **포인트:** 이기풍 목사가 청일전쟁이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것처럼, 역사신학은 **‘국가적 심판’이 오히려 ‘개인과 공동체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거친 손길(Mercy in Judgment)**이 될 수 있음을 역설합니다.
### 5. 신비주의와 복음주의적 영성의 균형
설교문에 등장하는 이용도 목사의 영성은 역사신학적으로 ‘신비주의적 요소’와 ‘복음주의적 열정’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습니다.
* **신비주의적 전통:** 사막 교부들로부터 내려오는 내면의 성찰과 하나님과의 합일(Union)을 추구하는 영성입니다.
* **포인트:** 역사신학적 관점은 이용도 목사의 사례를 단순히 ‘이상한 체험’으로 치부하지 않고, **교회가 형식주의에 빠졌을 때 하나님께서 생동감 있는 ‘체험적 신앙’을 통해 어떻게 정통 교리에 생명을 불어넣으시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장치로 이해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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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를 위한 역사신학적 요약]**
하박국 3:2 설교를 역사신학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부흥은 박물관의 박제가 아니라, 교회가 위기를 만날 때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실한 이름(여호와)’을 위해 반복해 오신 살아있는 역사”**임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에드워즈, 블랙, 이용도, 이기풍과 같은 역사적 증인들을 소환하여, **“오늘 우리의 위기도 하나님의 부흥이 시작될 수 있는 역사적 조건”**임을 청중에게 확신시켜야 합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박국 3:2 설교를 **조직신학적(Systematic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본문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동과 인간의 기도를 기독교의 핵심 교리 체계(신론, 인간론, 성령론, 은총론 등) 안에서 논리적으로 정립하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적 관점에서 깊이 있게 고찰해야 할 핵심 요소 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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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신론: 하나님의 공의(Wrath)와 사랑(Mercy)의 속성론
조직신학은 하나님의 성품이 어떻게 조화를 이루는지 다룹니다.
* **하나님의 단순성(Simplicity):** 하나님 안에서 공의와 사랑은 충돌하는 별개의 감정이 아니라, 하나의 거룩한 본질에서 나옵니다. 진노는 죄에 대한 거룩한 반응이며, 긍휼은 자기 백성을 향한 언약적 자비입니다.
* **포인트:** 하박국이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라고 기도한 것은, 하나님의 성품이 모순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이 집행되는 방식 속에서 그분의 자비로운 성품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기를 호소**한 것입니다. 부흥은 하나님의 이 두 속성이 역사 속에서 완벽하게 조우하는 사건입니다.
### 2. 인간론 및 죄론: 인간의 전적 부패와 영적 무능력
설교문에서 "죽은 자처럼 되어버린 상태"를 언급한 것은 조직신학의 인간론과 연결됩니다.
* **전적 부패(Total Depravity):** 타락한 인간은 스스로를 살릴 능력이 전혀 없습니다. 영적으로 죽어 있기에 스스로 각성하거나 부흥을 일으킬 수 없습니다.
* **포인트:** 부흥이 '외부로부터(하나님으로부터)' 와야만 하는 이유는 인간의 **'영적 무능력'** 때문입니다. 설교문에 등장하는 권사님의 환상(빛이 비치니 먼지가 보임)은 인간이 하나님의 은혜 없이는 자신의 죄조차 인지할 수 없는 비참한 존재임을 조직신학적으로 규명해 줍니다.
### 3. 성령론: 성령의 조명(Illumination)과 비상한 사역
조직신학은 성령께서 어떻게 인간의 심령에 역사하시는지를 다룹니다.
* **조명 사역:** 이용도 목사나 이기풍 목사의 사례에서 보듯, 부흥의 시작은 성령의 강력한 조명입니다. 이는 지적인 이해를 넘어 존재를 뒤흔드는 **'영적 각성'**입니다.
* **포인트:** 성령님은 평소에도 일반적인 은혜를 베푸시지만, 부흥의 때에는 **'비상한 사역(Extraordinary Work)'**을 행하십니다. 설교자는 부흥이 인간의 감정적 조작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인간의 지성, 감정, 의지를 새롭게 창조하시는 단독 사역(Monergism)임을 조직신학적으로 변증해야 합니다.
### 4. 섭리론: 심판을 통한 보존(Preservation)의 경륜
하박국은 바벨론 침공이라는 ‘심판’의 상황 속에서 ‘부흥’을 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섭리론과 관련이 있습니다.
* **악의 도구적 사용:** 하나님은 바벨론이라는 악의 세력을 도구로 사용하시어 자기 백성을 징계하시지만, 그 목적은 멸절이 아니라 '정화'와 '보존'입니다.
* **포인트:** 조직신학적 섭리론에서 고난은 단순한 재앙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기 위한 **'거친 은혜'**입니다. "수년 내에(심판의 과정 중에) 나타내시옵소서"라는 기도는, 고난의 시간을 단축시켜 달라는 청원보다 **고난이라는 섭리의 도구를 통해 영적 생명이 보존되기를 구하는 신학적 신뢰**의 표현입니다.
### 5. 은총론 및 언약론: 긍휼의 신학적 근거
하나님이 진노 중에 긍휼을 베푸셔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조직신학은 묻습니다.
* **언약적 신실함:** 하나님이 긍휼을 베푸시는 근거는 인간의 불쌍한 처지가 아니라, 하나님 스스로 맺으신 **'언약(Covenant)'**에 있습니다. 아브라함, 다윗과 맺은 언약,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맺으실 새 언약이 그 근거입니다.
* **포인트:** 부흥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에게 베푸시는 **‘특별 은총(Special Grace)’**의 절정입니다. 하박국이 긍휼을 구한 것은 하나님의 '기분'을 돌리려 한 것이 아니라, **변치 않는 하나님의 언약적 약속에 호소**한 것임을 조직신학적으로 명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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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를 위한 조직신학적 요약]**
하박국 3:2 설교를 조직신학적으로 준비하는 것은 **"부흥은 하나님의 주권(신론)이 죄로 죽은 인간(인간론)에게 성령의 비상한 조명(성령론)을 통해 임하여, 언약적 긍휼(은총론)로 생명을 살려내시는 하나님의 섭리적 사건(섭리론)"**임을 논리적으로 선포하는 것입니다.
설교자는 이 교리적 뼈대를 가지고 이용도, 이기풍 목사의 간증을 해석할 때, 그것이 단순한 체험담을 넘어 **"하나님의 구원 교리가 역사 속에서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가"**를 증명하는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습니다.
위의 설교를 준비할 때 실천신학적 관점에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박국 3:2 설교를 **실천신학적(Practical Theology)** 관점에서 준비한다는 것은, 선포된 말씀이 어떻게 청중의 예배와 기도, 목회적 돌봄, 그리고 삶의 구체적인 현장에서 **‘변화된 실천(Praxis)’**으로 나타나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것입니다.
실천신학의 주요 분야를 중심으로 고려해야 할 5가지 핵심 사항을 정리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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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설교학(Homiletics)적 관점: ‘영적 박동’의 전달
실천신학적으로 설교는 단순한 정보 전달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를 매개하는 ‘사건’입니다.
* **설교자의 자기 인식:** 설교문 중 이용도 목사의 사례처럼, 설교자 자신이 먼저 “껍데기만 목사인” 자신의 영적 무기력함을 고백하는 **‘취약성(Vulnerability)의 노출’**이 필요합니다. 설교자가 먼저 하나님 앞에서 울 때 청중의 마음이 열립니다.
* **서사적 긴장과 해소:** 하박국의 절망적인 현실(바벨론 침공)과 이기풍, 이용도 목사의 극적인 간증을 교차시키며, 청중으로 하여금 **‘영적 위기감’과 ‘소망의 열망’** 사이의 긴장을 느끼게 하여 결단으로 유도해야 합니다.
### 2. 예배학 및 기도론적 관점: ‘자복과 통성기도’의 설계
이 설교의 종착역은 지식적 동의가 아니라 ‘부르짖는 기도’입니다.
* **기도의 환경 조성:** 설교문 말미의 “가슴을 치고 애통해야 할 때”라는 권면이 실제 실천으로 이어지도록, 설교 후 기도 시간을 **‘통성기도’와 ‘애통의 기도’**로 설계해야 합니다.
* **공적 회개의 가이드:** 새클빌 부흥이나 평양 부흥의 예처럼, 성도들이 자신의 은밀한 죄를 하나님 앞에(혹은 공동체 앞에) 자복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회개의 가이드를 제시해야 합니다. 이는 단순한 감정적 해소가 아니라 **‘영적 정화’의 예식**이 되어야 합니다.
### 3. 목회 돌봄(Pastoral Care)적 관점: ‘영적 탈진’에 대한 처방
성도들 중에는 “비 오기 전 농부”처럼 영적으로 탈진한 이들이 많습니다.
* **공감적 경청:** 실천신학적으로 이 설교는 성도들의 ‘영적 가뭄’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왜 기쁨이 없는가?"라고 묻기보다 **"우리는 지금 함께 울고 있다"**는 연대감을 주어야 합니다.
* **치유로서의 부흥:** 이기풍 목사가 인생의 밑바닥에서 하나님의 긍휼을 경험했듯, 부흥은 깨어진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목회적 돌봄’**임을 강조하여, 절망에 빠진 청중이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게 해야 합니다.
### 4. 기독교 교육학(Christian Education)적 관점: ‘영적 안목’의 훈련
부흥은 일시적 사건이 아니라 지속적인 ‘영적 성숙’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 **안목의 변화 교육:** 하박국이 현실을 다르게 보게 된 것처럼, 성도들이 고난과 사회적 모순을 **‘하나님의 구속사적 관점’**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야 합니다.
* **부흥의 유산 전수:** 이용도, 이기풍 목사와 같은 신앙 선배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 민족의 **‘영적 자서전’**을 교육하고, 그 신앙의 야성을 오늘날의 세대에게 어떻게 계승할 것인지 실천적인 과제를 주어야 합니다.
### 5. 선교 및 사회적 실천(Missional Practice)적 관점: ‘삶의 변화’라는 증거
부흥은 반드시 교회 담장을 넘는 윤리적 실천으로 증명되어야 합니다.
* **사회적 책임:** 윌리엄 블랙의 새클빌 부흥이 마을의 윤리적 변화(정직, 절제)를 가져왔고, 이기풍 목사가 제주도라는 소외된 지역으로 나아갔던 것처럼, **부흥의 에너지가 사회적 공의와 선교적 헌신**으로 흐르게 해야 합니다.
* **일터의 부흥:** 성도들이 주일 예배의 감격을 가지고 월요일의 삶터(일터, 학교)에서 어떻게 ‘긍휼을 베푸는 자’로 살 것인지 구체적인 행동 지침(Action Plan)을 제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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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천신학적 요약 질문]**
1. **전달:** 나는 이 설교를 통해 청중의 머리를 채우고 있는가, 아니면 그들의 **기도를 깨우고 있는가?**
2. **연결:** 이 설교의 간증들이 성도들의 **현재적 고통(가계 부채, 질병, 영적 침체)**과 실질적으로 연결되고 있는가?
3. **파송:** 예배가 끝난 후 성도들이 각자의 삶의 현장에서 **‘진노 중에도 긍휼을 베푸는 삶’**을 살기 위해 어떤 구체적인 결단을 했는가?
**결론적으로,** 실천신학적 준비는 설교가 끝난 후 성도들이 **“아, 부흥이 정말 필요하구나!”**라고 느끼는 것을 넘어, 실제로 **무릎을 꿇고 울기 시작하며, 삶의 현장에서 정직과 사랑을 실천하는 ‘부흥의 대리자’**가 되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위 설교를 위해 교양학문적 소양(도서관 십진 분류법을 기준)으로 무엇을 알아야 할까요?
하박국 3:2 설교는 성경의 텍스트를 넘어 **역사적 격변기, 인간의 실존적 위기, 사회적 정의와 심판, 그리고 질병과 회복** 등 방대한 인간사의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도서관 십진분류법(KDC/DDC) 기준에 따라 설교의 깊이를 더해줄 교양학문적 소양을 제안해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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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100] 철학 및 심리학 (Philosophy & Psychology)
* **종교 심리학 - ‘회심과 영적 체험’:** 이용도 목사와 이기풍 목사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하기 위해 윌리엄 제임스의 **『종교적 경험의 제현상』**과 같은 고전을 참고하십시오. 인간이 극한의 위기(폐결핵, 전란) 속에서 어떻게 절대자를 대면하고 인격이 재구조화되는지 심리학적으로 통찰할 수 있습니다.
* **실존주의 철학 - ‘한계 상황’:** 야스퍼스가 말한 **‘한계 상황(Grenzsituation)’** 개념은 하박국이 처한 절망적 현실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이 자신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죽음, 고통, 전쟁 앞에서 어떻게 신적 존재를 갈망하게 되는지 철학적으로 해설할 수 있습니다.
### 2. [300] 사회과학 (Social Sciences)
* **정치학 및 국제관계 - ‘패권의 교체와 전쟁’:** 하박국 당시 앗수르에서 바벨론으로 넘어가는 고대 근동의 패권 전쟁과, 이기풍 목사 배경인 청일전쟁(1894)의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십시오. **국제적 역학 관계 속에서 발생하는 ‘진노(전쟁)’**가 민중의 삶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사회과학적으로 분석할 때 설교의 현실감이 높아집니다.
* **사회 정의와 법학 - ‘불의한 사회와 공의’:** 하박국이 처음에 가졌던 의문(“왜 악인이 득세하는가?”)은 현대의 사회적 불평등과 부패의 문제와 직결됩니다. 정의론(예: 존 롤즈)의 관점에서 **공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을 풀어낸다면 청중의 공감을 얻기 쉽습니다.
### 3. [500] 기술과학 - 의학 (Applied Sciences - Medicine)
* **의학사 - ‘폐결핵의 역사와 통증’:** 이용도 목사가 앓았던 폐결핵(TB)이 1930년대 한국 사회에서 가졌던 의미를 이해하십시오. 당시 **‘사형 선고’와 다름없던 질병**의 고통을 의학적으로 이해할 때, 그가 산속에서 피를 토하며 기도했던 절박함이 단순한 수사가 아닌 처절한 실존이었음을 강조할 수 있습니다.
### 4. [600] 예술 (Arts)
* **음악학 - ‘찬송가와 시가(Poetry)’:** 하박국 3장은 “내 수금에 맞춘 것”이라는 음악적 지시로 끝납니다. 평양 대부흥 당시 600명이 부르짖던 **‘비탄의 화음’**이 음악적으로 어떤 에너지를 갖는지, 그리고 종교적 열광주의 속에서 음악이 감정을 어떻게 승화시키는지 예술적으로 접근해 보십시오.
### 5. [800] 문학 (Literature)
* **전기 문학 - ‘영웅의 여정과 회심록’:** 이기풍, 이용도 목사의 삶은 고전적인 전기 문학의 구조를 띱니다. **어거스티누스의 『고백록』**이나 톨스토이의 회심기를 참고하여, ‘방탕 혹은 절망’에서 ‘성자’로 변해가는 문학적 서사를 설교의 스토리텔링에 활용하십시오.
* **비극 문학 - ‘카타르시스’:** 하박국의 기도는 비극적 상황에서 드려지는 시입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공포와 연민을 통한 카타르시스(정화)’** 개념을 부흥과 연결한다면, 죄에 대한 통곡이 어떻게 영혼의 정화로 이어지는지 문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 6. [900] 역사 (History)
* **고대 근동사:** 바벨론(신바빌로니아)의 부흥과 유다의 멸망 과정을 다룬 역사 지식을 갖추십시오.
* **한국 근현대사:** 1900년대 초반의 평양 대부흥과 이용도 목사의 부흥 운동, 그리고 제주도 선교의 역사적 상황(토테미즘과 기독교의 충돌)을 **문화인류학적** 관점에서 이해하십시오. 제주도의 ‘뱀 신앙’과 이기풍 목사의 대결은 당시의 민속 신앙 지도가 있어야 생생하게 전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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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를 위한 교양 소양 팁]**
하박국 3:2은 **‘위기 속의 희망’**을 말합니다. 교양학습의 목적은 **"성경의 사건이 박제가 된 과거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겪는 전쟁, 질병, 사회적 부패 속에서도 동일하게 작동하는 원리"**임을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특히 **900번대(역사)**와 **100번대(심리학)**의 지식을 결합하여 "역사의 격변이 어떻게 한 개인의 내면을 뒤흔들고 부흥으로 이끄는가"를 보여준다면 매우 파워풀한 설교가 될 것입니다.
이 설교문을 듣는 청중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변화를 디모데후서 3장 15-17절 말씀을 근거로 답변해 주세요.
하박국 3:2 설교를 듣는 청중들에게 기대할 수 있는 변화를 **디모데후서 3장 15-17절**의 말씀(구원에 이르는 지혜, 교훈, 책망, 바르게 함, 의로 교육함, 온전함과 능력)을 근거로 규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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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구원에 이르는 지혜: ‘상황’ 너머 ‘주권’을 보는 안목의 변화 (15절)
>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 **기대되는 변화:** 청중은 바벨론 침공과 같은 압도적인 현실의 고난 앞에서 절망하던 태도를 버리고,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구속사적 섭리를 깨닫는 **‘신령한 지혜’**를 얻게 됩니다.
* **설교와의 연결:** 이기풍 깡패가 전란 속에서 예수를 만난 것처럼, 청중은 자신의 위기 상황이 오히려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가 됨을 깨닫고, 인간의 수단이 아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만이 유일한 살길임을 확신하게 됩니다.
### 2. 책망과 바르게 함: 영적 실상에 대한 자각과 철저한 회개 (16절)
>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 **기대되는 변화:** 청중은 성경의 빛 아래서 자신의 영적 실상을 직면하게 됩니다. 겉모습은 평안해 보였으나 실상은 먼지가 가득한 방과 같음을 자각(책망)하고, 삶의 구체적인 죄를 자복(바르게 함)하는 실제적 행동이 일어납니다.
* **설교와의 연결:** 권사님의 먼지 환상이나 이용도 목사의 "썩은 송장" 고백처럼, 청중은 영적 무감각의 잠에서 깨어나 죄를 애통해하며, 새클빌 부흥의 사례처럼 남에게 피해를 준 것을 배상하고 관계를 회복하는 **도덕적 갱신**을 경험하게 됩니다.
### 3. 의로 교육함: 진노 중에도 찬양하는 ‘언약적 인내’의 형성 (16절)
>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 **기대되는 변화:** 청중은 상황이 좋아져서 기뻐하는 수준을 넘어, 하나님의 성품 자체를 신뢰함으로 ‘의로운 성품’을 훈련받게 됩니다.
* **설교와의 연결:** 하박국이 "무화과 잎이 마르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즐거워했던 것처럼, 청중은 **‘진노(심판)’ 중에도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어떠한 환경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신앙의 견고함을 갖추게 됩니다.
### 4. 온전함과 선한 능력: 부흥의 ‘불쏘시개’로 서는 사명적 결단 (17절)
>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 **기대되는 변화:** 단순히 은혜를 받는 수혜자에 머물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고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온전한 사명자’**로 구비됩니다.
* **설교와의 연결:** 이기풍 목사가 척박한 제주도로 나아가 뱀 신을 굴복시키고 교회를 세웠던 것처럼, 청중은 이 시대의 영적 어둠 속에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라고 응답하며, **모든 선한 일(전도, 선교, 사랑의 실천)**을 행할 능력을 갖춘 ‘하나님의 사람’으로 세상에 파송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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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약적 결론]
디모데후서 3:15-17에 근거할 때, 이 설교를 듣는 청중은 **[지식적 각성 → 정서적 통회 → 의지적 갱신 → 사명적 파송]**의 과정을 겪게 됩니다.
청중들은 막연히 부흥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라, 성경의 말씀으로 온전하게 되어 **"진노 중에도 하나님의 긍휼을 실현해내는 실천적 부흥의 대리자"**로 변화될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약속한 '하나님의 사람'의 모습입니다.
설교문을 바탕으로 PPT 슬라이드를 제작해 주세요.
하박국 3장 2절 설교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를 위한 PPT 슬라이드 구성을 제안해 드립니다. 시각적 강렬함과 메시지의 선명도를 높이기 위해 **[이미지-핵심 문구-성경 구절]**의 조화를 중심으로 설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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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1: 타이틀]**
* **메인 제목:**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 **부제:** 절망의 시대에 피어나는 소망
* **이미지:** 어두운 폐허 위로 서서히 떠오르는 강렬한 태양(부흥의 여명)
* **텍스트:** 하박국 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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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2: 성경 본문]**
* **텍스트:** 하박국 3:2 (개역개정)
* "여호와여 내가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 "여호와여 주는 주의 일을 이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디자인:** 핵심 단어(부흥, 긍휼)에 금색 포인트 강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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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3: 시대적 배경]**
* **제목:** 하박국이 마주한 절망
* **내용:**
* 국외: 앗수르의 몰락과 바벨론의 급부상
* 국내: 요시야 왕 사후, 깊어진 우상 숭배와 불의
* **메시지:** "심판이 예고된 시대, 선지자는 기도를 선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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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4: 부흥의 정의]**
* **제목:** 부흥(Revive)이란 무엇인가?
* **내용:**
* **히브리어 '하야(חָיָה)':** 죽은 상태에서 확 살아나게 함
* **주의 일(포알):**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다시 생동하는 것
* **메시지:** "부흥은 인간의 기획이 아닌, 하나님의 생명 사역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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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5: 대지 A. 현실에 대한 인식]**
* **제목:** A. 현실에 대한 인식: 거룩한 영적 각성
* **내용:**
* "주께 대한 소문을 듣고 놀랐나이다"
* 상황 너머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발견함
* **이미지:** 어두운 방에 환한 빛이 들어와 먼지가 보이는 시각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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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6: 역사적 증언 (1) - 이용도 목사]**
* **제목:** 폐병의 고통을 뚫고 터져 나온 불
* **내용:**
* 1930년 1월 1일 통천 바윗굴의 산기도
* "껍데기만 목사요 속은 썩은 송장입니다!"
* 개인의 회개가 민족의 죄를 짊어지는 사명으로 변화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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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7: 대지 B. 부흥에 대한 소망]**
* **제목:** B. 부흥에 대한 소망: 하늘의 소낙비를 기다리며
* **내용:**
* "수년 내에 나타내시옵소서"
* 천수답 농부처럼 오직 하늘만 바라보는 갈망
* **이미지:** 갈라진 논바닥에서 하늘을 우러러보는 농부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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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8: 역사적 증언 (2) - 윌리엄 블랙]**
* **제목:** 캐나다 새클빌의 두려운 임재 (1781)
* **내용:**
* 조롱하던 청년의 죽음과 마을의 엄숙한 각성
* 부흥의 결과: 정직, 절제, 화해의 윤리적 열매
* **메시지:** "부흥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에 대한 두려운 증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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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9: 대지 C. 진노 중에 구하는 긍휼]**
* **제목:** C. 진노 중에 구하는 긍휼: 심판을 이기는 자비
* **내용:**
*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잊지 마옵소서"
* 비록 무화과나무 잎이 마를지라도 즐거워함 (합 3:17-19)
* **핵심 키워드:** **언약적 신실함(Covenantal Lo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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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10: 역사적 증언 (3) - 이기풍 목사]**
* **제목:** 평양의 깡패에서 제주의 사도로
* **내용:**
* 마펫 선교사에게 돌을 던졌던 자, 그리스도를 만나다
* 제주도의 뱀 신앙을 굴복시키고 성내교회를 개립함
* **메시지:** "가장 완악한 죄인에게도 하나님의 긍휼은 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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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11: 적용과 결론]**
* **제목:** 다시 피 묻은 십자가 아래로
* **내용:**
* 조국 교회의 영적 파산을 직시합시다
* 춤출 때가 아니라 가슴을 치고 울 때입니다
* **메시지:** "하나님의 아픈 기도 제목이 나의 기도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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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슬라이드 12: 마지막 시(詩)와 기도]**
* **메인 텍스트:** "부흥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전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울면서 그 일을 할 것입니다... 부흥의 소낙비를 내려 주시도록."
* **기도 제목:**
1. 나의 영적 무감각을 깨워 주소서.
2. 이 땅에 주의 일을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소서.
* **이미지:** 기도하며 눈물 흘리는 성도의 뒷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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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디자인 가이드:**
1. **배경:** 짙은 네이비 또는 차콜 그레이를 기본으로 하여 무게감을 유지하십시오.
2. **폰트:** 제목은 강한 **고딕체**(에스코어 드림 9), 본문은 정갈한 **명조체**(나눔명조)를 추천합니다.
3. **효과:** 역사적 사례가 등장할 때 흑백 사진을 세피아 톤으로 배치하면 역사신학적 무게감을 더할 수 있습니다.
설교문을 바탕으로 설교 나눔을 위한 질문지를 만들어 주세요.
하박국 3장 2절 설교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의 은혜를 깊이 새기고, 성도의 삶과 공동체 안에 구체적인 적용을 이끌어내기 위한 소그룹 나눔 질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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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나눔 질문지] 수년 내에 부흥하게 하옵소서
**본문: 하박국 3:2**
### 1. 마음 열기 (Icebreaker)
* 최근 나의 영적 상태를 한 단어나 문장으로 표현한다면 무엇입니까? (예: 메마른 논바닥, 잠자는 숲속의 공주, 폭풍 속의 배 등)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 2. 말씀 깊이 읽기 (Observation & Reflection)
**Q1. 설교에서 정의한 ‘부흥’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히브리어 ‘하야’의 의미를 중심으로)**
* 하박국 선지자가 ‘나의 일’이나 ‘이스라엘의 성공’이 아닌, ‘주의 일’이 부흥하기를 구했던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Q2. 설교 중 소개된 ‘어두운 방의 커튼이 젖혀지는 환상’을 기억해 봅시다.**
* 하나님이 빛을 비추실 때 비로소 공기 중의 먼지와 옷의 얼룩이 보였던 것처럼, 최근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새롭게 깨닫게 된 나의 ‘영적 실상’이나 ‘숨은 죄’가 있다면 무엇입니까?
**Q3. 이용도 목사님이나 이기풍 목사님의 간증 중 가장 큰 울림을 주었던 부분은 무엇인가요?**
* “껍데기만 목사요 속은 썩은 송장이다”라고 외쳤던 이용도 목사님의 고백이나, 깡패였던 이기풍 목사가 긍휼을 입고 변화된 이야기가 오늘 나에게 어떤 도전을 줍니까?
**Q4. 캐나다 새클빌 부흥의 사례처럼, 부흥은 ‘윤리적 열매(정직, 화해, 배상)’를 동반합니다.**
* 만약 오늘 우리 공동체에 이런 강력한 부흥이 임한다면, 우리 주변(가정, 일터, 교회)에서 가장 먼저 ‘바르게 고쳐져야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3. 삶의 적용 및 결단 (Application)
**Q5. 설교자는 “핑계 거리를 찾는 것은 최악의 길”이라고 경고했습니다.**
* 바빠서, 힘들어서, 환경 때문에...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지 못하는 ‘산더미 같은 핑계’는 무엇인가요? 이 핑계를 멈추고 ‘피 묻은 십자가’ 아래로 나가기 위해 오늘 내가 결단해야 할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Q6. ‘비 오기 전 천수답 농부’의 비유를 묵상해 봅시다.**
* 당장 부흥의 단비가 내리지 않아도, 내가 울면서 지켜내야 할 ‘기도의 자리’나 ‘사명의 현장’은 어디입니까? “부흥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전도할 것입니다”라는 시의 고백처럼, 내가 끝까지 신실하게 감당해야 할 일은 무엇인지 나누어 봅시다.
### 4. 함께 기도하기 (Prayer Points)
1. **영적 각성:** 내 영혼의 가난함과 헐벗음을 직시하게 하시고, 성령의 조명 아래 정결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2. **주의 일의 부흥:** 죽어가는 조국 교회와 우리의 예배 위에 하나님의 생명력을 부어주시고,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나타내 주소서.
3. **진노 중의 긍휼:** 우리 삶의 고난과 심판의 과정 중에도 하나님의 언약적 긍휼을 잊지 마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소서.
4. **사명자:** 이 시대의 부흥을 위한 ‘한 조각 구름’이 되어, 눈물로 기도의 철로를 놓는 사람이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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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자를 위한 팁]**
* 이 질문지는 지식 전달보다 **‘자기 정직성’**과 **‘부흥에 대한 갈망’**을 이끌어내는 데 목적이 있습니다.
* 특히 목회자나 리더들이 먼저 자신의 부족함을 솔직하게 고백할 때(Vulnerability), 성도들도 깊은 회개와 나눔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 마무리할 때 설교문의 마지막 시(詩)를 함께 낭독하며 기도로 들어가는 것도 매우 효과적입니다.
설교문을 빈 칸 빼고 1000글자로 요약 정리해 주세요.
하박국 3장 2절은 바벨론 침공이라는 엄중한 심판의 현실 앞에서 하나님의 구속 역사가 다시 살아나기를 구하는 선지자의 비장한 호소입니다. 주전 7세기 말 유다는 극심한 우상 숭배와 사회적 불의로 멸망의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더 악한 바벨론을 들어 유다를 치시겠다는 말씀을 듣고 충격에 빠졌으나, 곧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을 신뢰하며 부흥과 긍휼을 간구합니다.
본문에서 부흥은 히브리어 ‘하야’의 강조형으로, 죽은 상태에 있는 것을 다시 확 살아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는 인간의 기획이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사역이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충만한 생명력을 회복하는 사건입니다. 부흥은 먼저 현실에 대한 철저한 영적 인식에서 시작됩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을 대면할 때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비참한 영적 실상을 깨닫습니다. 환한 빛이 방에 들어와 숨은 먼지를 드러내듯, 성령의 조명은 우리의 은밀한 죄와 영적 무감을 폭로합니다. 이용도 목사가 산기도 중 성령을 체험하고 자신을 썩은 송장 같은 위선자로 고백하며 민족의 죄를 자신의 것으로 짊어진 사건은 부흥의 전형적인 서막을 보여줍니다.
부흥은 또한 부재한 하나님의 영광을 향한 다급한 소망입니다. 하박국은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받는 세월을 단 하루도 견딜 수 없어 “수년 내에” 주의 일을 나타내 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천수답 농부가 소낙비를 기다리듯, 우리도 형식적인 예배와 영적 죽음을 애통해하며 위로부터 임하는 비상한 간섭을 사모해야 합니다. 캐나다 새클빌 부흥에서 보듯, 하나님의 강림은 하나님을 조롱하던 자들을 굴복시키고 공동체에 정직과 화해라는 윤리적 열매를 맺게 합니다.
마지막으로 부흥은 심판 중에도 베푸시는 하나님의 언약적 긍휼에 대한 신뢰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정화하기 위해 진노하시지만, 그 목적은 보존과 회복입니다. 평양의 깡패였던 이기풍이 전쟁의 비참함 속에서 선교사의 친절을 통해 그리스도를 만난 것처럼, 부흥은 가장 완악한 자에게도 미치는 하나님의 자비로운 손길입니다. 하박국은 무화과 소출이 없는 심판의 자리에서도 구원의 하나님으로 인해 기뻐하는 믿음의 수준으로 나아갑니다.
결론적으로 오늘날 조국 교회와 우리의 영혼은 침몰하는 배와 같은 위기입니다. 이제는 춤추고 노래할 때가 아니라 피 묻은 십자가 아래서 가슴을 치며 애통해야 할 때입니다. 세상에 대한 욕망과 핑계를 멈추고 하나님의 얼굴을 간절히 구합시다. 서럽도록 푸른 가뭄의 날에도 울면서 기도의 자리를 지키는 한 사람이 되어 부흥의 철로를 놓을 때,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반드시 약속하신 생명의 소낙비를 이 땅에 내려주실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