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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사도행전 2:1-13 함께 인사해볼까요? “허물을 덮어주고 사랑으로 구하며 삽시다!” (잠 17:9)

서론: 당신의 언어 온도는 몇 도 입니까?

여러분, 요즘 '당근' 좀 흔드시나요? 저는 최근 가스레인지와 침대를 저렴하게 구하려고 당근마켓을 자주 들여다보고 있습말니다. 그런데 그 앱에는 아주 독특한 시스템이 하나 있죠. 바로 '매너 온도'입니다.
좋은 물건이 싸게 나왔을 때, 우리는 물건만 보지 않습니다. 판매자의 온도도 봅니다. 46.5도에 가까운 뜨거운 온도는 친절하고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증거죠. 보통 시작이 36.5도인데, 저는 아직 열심히 올리는 중입니다.
우리의 실제 '언어의 온도'는 어떨까요? 나의 말 한마디가 분위기를 '싸하게' 만들지는 않습니까? 혹은 나의 말이 차가운 얼음장 같아서 누군가의 마음에 생채기를 내고 있지는 않나요? 아니면 반대로 진심 어린 따뜻한 말로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주고 계십니까?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는 속담처럼, 말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하는 엄청난 힘이 있습니다. 특히 요즘은 입으로 하는 말뿐만 아니라, 손가락으로 치는 문자, SNS 댓글까지 합치면 우리는 하루에도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양의 언어를 쏟아내며 살아갑니다.
그래서인지 요즘 들어 말을 참 조심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은 말이라도 누군가에게는 용기가 되지만, 누군가에게는 씻을 수 없는 상처가 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나중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우리가 뱉은 말 때문에 가장 크게 혼날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사도행전 2장은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다룹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전심으로 기도하던 120명의 성도에게 성령님이 임하셨습니다. 급하고 강한 바람 소리가 들리고,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성령이 충만하게 임했을 때 나타난 가장 첫 번째 변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말'이었습니다.
성령이 임하자 그들의 혀가 풀리고, 새로운 언어로 하나님의 일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왜 성령님은 우리의 '말'을 가장 먼저 터치하시는지, 그리고 우리의 언어가 어떻게 바뀌어야 하는지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본론 1: 혼잡했던 언어를 회복하여 소통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제자들은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알아들을 수 없는 신비한 소리가 아니었습니다. 당시 세계 각국에서 예루살렘으로 모여든 사람들이 "어? 저거 우리 고향 말인데?" 하며 또렷하게 알아들을 수 있는 언어였습니다.
과거 창세기 11장의 바벨탑 사건을 기억하십니까? 인간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높아지려 할 때, 하나님은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을 흩으셨습니다. 말이 통하지 않으니 소통이 끊기고, 오해가 생기고, 결국 분열과 갈등이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이 죄가 가져온 '불통의 저주'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이 임하시자 놀라운 반전이 일어납니다. 거기 모임 사람들이 각각 다른 언어로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곳에 있던 모두가 통하기 시작합니다. 혼잡했던 언어가 회복되어 '소통’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 성령님은 단절된 관계를 연결하는 영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약 전쟁터에서 아군끼리 무전기가 고장 나서 소통이 안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서로를 적으로 오해하고 공격하거나, 고립되어 죽게 될 것입니다. 바벨탑 이후의 인류는 마치 고장 난 무전기를 든 군인들과 같았습니다. 하지만 오순절 날, 성령님이 오셔서 고장난 무전기를 고치시고, 끊어졌던 신호를 다시 연결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소통하게 하셔서, "아, 저 사람이 내 적이 아니라 형제였구나!"라고 깨닫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은 우리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성령님께서 우리의 죄를 보게 하셔야 합니다.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되는 은혜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성령님은 우리를 예수님과 연결시키십니다! 죄 용서하심과 영원한 생명을 우리에게 적용시키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유엔 통계에 따르면 세계 언어는 크게 분류해도 80여 가지가 넘고, 소수 언어까지 합치면 셀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성령 안에서는 이 모든 장벽이 무너집니다. 이제 누구든지 마음 문을 열면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성령을 통해 그 은혜의 복음으로 연결된 사람들은 이제 진정으로 하나님과 소통하며,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게 됩니다.
여러분, 가정과 직장, 그리고 우리 공동체에 막힌 담이 있습니까? 성령을 구하십시오. 그 사람을 보고 답답해하거나 미워하는 대신,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비판과 조롱이 아닌, 이해와 용납의 언어가 시작될 때 불통의 벽은 무너질 것입니다. 우리 모두 단절된 관계를 다시 연결하는 '소통의 사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본론 2: 나를 말하게 하시는 주인은 성령님이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소통을 위해 말하기보다,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위해 말할 때가 많습니다. 제나 히츠(Zena Hitz)는 그의 책 <찬란하고 무용한 공부>에서 이렇게 뼈아픈 진단을 합니다. “우리가 말하는 것은 어떤 이득을 얻기 위해서다. 우리는 편안함을 느끼기 위해, 불안을 다독이기 위해, 우리를 둘러싼 권력과 지위의 싸움에서 어떠한 역할을 해내기 위해 말한다. 우리가 어떤 진실을 소통하려는 목적으로 말하는 일은 드물다. 이렇게 우리의 말은 청자를 폄훼하고 도구화하며 그의 존엄을 부정한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독사의 자들아 너희는 악하니 어떻게 선한 말을 할 수 있느냐 이는 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마 12:34)고 하셨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자신의 탐욕으로 가득차 있었고, 로마로부터 얻은 기득권을 놓치기 싫었습니다. 예수로 인해 그 유익을 못 얻을까봐 예수님을 보고 귀신의 힘을 빌려 치유하고 기적을 행한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를 볼 때, 사람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한다는 것을 또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언어가 하나였다는 바벨탑 사건은 독재적인 성격을 보여줍니다. 독재자를 영어로 'Dictator'라고 하죠. 'Dict'는 말하다는 뜻입니다. 즉, 혼자 말하는 사람이 독재자입니다. 내 생각, 내 세계가 전부인 줄 알고 남의 이야기는 듣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혹시 내 입술이 "내가 주인이야!"라고 외치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사람의 언어는 어떻게 달라질까요? 본문 4절은 아주 중요한 변화를 보여줍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이전까지 제자들은 말 주인이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욱하는 성격대로 실언을 했고, 두려움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내 감정, 내 기분이 혀의 주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령 세례를 받은 후, 그들의 입술 주인이 바뀌었습니다. 성령님이 말하게 하시는 대로 말하게 된 것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에 성령이 가득 차자, 입에서는 자연스럽게 '하나님의 큰 일',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이 터져 나왔습니다.
그들의 언어는 각각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언어였지만, 그들의 말은 예수님의 복음 우리를 죄의 구원하신 자,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고, 영원한 생명을 베푸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선포했던 것입니다.
주인이 바뀌면 말의 영향력도 바뀝니다. 우리가 맘에 들은 사람들에게 어떻게 말할까요? 그 사람을 위해 사랑의 말을 합니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말을 조심합니다. 사랑의 말을 합니다. 그 사람이 마음에 들어차 있기 때문에 그사람에 대한 말을 하고 단점은 하나도 말하지 않고, 칭찬하고 좋은 말들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선물을 줄때 말하는 것도, “오다 주웠다!” 말했는데 뭡니까? 말은 조금 퉁명스러울지라도 그 말의 영향력은 다릅니다. 아 나를 진정으로 생각해주는구나! 이처럼 우리 가운데 성령님이 주인이되시면, 우리의 마음에 에수님으로 가득하게 하십니다. 성령님이 주인이 되어서 하는 말을 그분의 사랑과 기쁨 감사로 넘치는 마음으로 말하게 하십니다. 성령이 없는 말은 분열, 비판, 조롱, 불평을 만들어내지만, 성령의 언어는 위로, 용납, 이해, 용서, 생명을 만들어냅니다.
지금 여러분의 입술은 누가 잡고 있습니까? 화가 날 때 쏟아내는 말, 습관적인 뒷담화와 불평... 아직도 내 자아가 주인 노릇 하고 있다면, 회개합시다. "주님, 내 입술의 주권이 주님께 있음을 인정합니다. 나를 말하게 하시는 성령님을 주인으로 모십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본론 3: 우리의 말은 현실을 형성합니다.

그럼 말이란 도대체 무엇일까요? 말은 단순히 생각을 표현하는 수단을 넘어, 현실을 창조하고 형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를 알려주십니다. 그런데 우리도 일상에서 말이 육신이 되는 사건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자, 여러분 한번 일어나 보시겠습니까? (잠시 후) 이제 다시 앉아주세요. 방금 보십시오. 제가 뱉은 말이 공중에서 사라지지 않고, 여러분의 몸을 움직였습니다. 말이 현실을 만든 것입니다. 이것을 '수행적 언어'라고 합니다. 우리의 말은요 하나님을 닮아서 현실을 창조하고 형성하는 힘이 있습니다. 예전에 우리가 티비 프로그램에서 말의 힘이라고 해가지고 밥을 두개를 준비해서 하나는 칭찬의 말, 하나는 나쁜말 이렇게 나누어서 해주고 그 결과를 보여주었습니다. 칭찬과 좋은 말을 해준 음식은 좋은 곰팡이가 되고 잘썩지 않았는데, 나쁜 말을 한 음식은 금방 썩어버리고 더러운 곰팡이와 냄새가 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처럼 말은 현실을 형성합니다.
그런데요, 성경에는 말로 현실을 뒤바꾼 극명한 예들이 있습니다. 아비가일과 나발의 이야기입니다. 사무엘상 25장에서 어리석은 나발은 도움을 요청하는 다윗에게 모욕과 험한 말로 대하였습니다. 분노한 다윗은 나발의 집안을 몰살 하기로 하였습니다. 나발은 말 한마디로 가정을 위기에 몰아넣었습니다. 반면, 그의 아내 아비가일은 지혜롭고 선한 말로 다윗의 분노를 잠재우고, 그들을 친절하게 대접하여 가정을 구했습니다. 두 사람의 말로 나타난 두가지 현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한 누가복음 23장에서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옆에 함께 달린 두 강도 중 한 강도가 예수님께 말한 장면이 나타납니다. 그는 평생 죄를 지었으나, 죽기 직전 아무 죄도 없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보고 "나를 기억하소서"라는 믿음의 말을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부활하심으로, 그 말은 현실이 되었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던 것처럼,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사역을 보고도 바알세불 귀신의 사역이라고 악한 말로 성령을 훼방하였습니다. 그런 모습은 심판을 자초하는 일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우물 안 개구리'처럼 내가 속한 좁은 세계가 전부인 양 불평과 원망의 말을 쏟아내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이런 말들을 많이 합니다! “아, 교회라면서 왜 이런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이렇게 해야지! 그런 모습은 믿음 없는 모습이야! 쟤는 왜 그러냐?” 자신의 생각으로 공동체를 판단하고 정죄하는 말들을 합니다. 섬기는사역을 할 때도, “그렇게 되면 좋겠지! 하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걸? 아마 안될 거야”, “왜 우리는 이렇게 밖에 못하는 거야? 쟤 때문에 우리가 제대로 할 수 없어.” 문제와 어려움으로 매번 불가능을 이야기하며 남을 탓하는 말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일들을 점점 포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과 길을 가시다가, 날때부터 맹인된 사람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도 그 맹인을 보면서 이렇게 질문하죠? "저 맹인은 누구의 죄 때문에 저렇게 된 것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자신의 죄입니까?" 제자들은 생각은 '심판의 언어'를 생각했습니다. 누구 때문에 저렇게 되었나? 지적과 판단과 정죄를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함이라" 예수님은 '생명의 언어'로 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맹인의 눈을 뜨게하셔서, 그의 현실을 바꾸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 보내신 성령으로 우리의 현실이 바뀌었습니다. 그분의 말씀으로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우리의 현실이 바뀌어 영원한 생명의 길을 걸어가는 자들로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4절의 말씀처럼 '성령이 하게 하시는 말'을 해야 합니다. 비판하기보다는 이어주는 말, 깎아내리기보다는 일으켜 세우는 말, 혐오 대신 친절한 말을 안된다는 말이 아니라 못하겠다는 말이아니라 한번 해보겠다 도전하겠다!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신다는 말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은 여러분의 몫이지만, 그 말은 반드시 여러분의 현실이 될 것입니다.

결론: 성령의 언어로 세상을 살리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순절 다락방의 성령의 불은 가장 먼저 제자들의 '입술'을 태우고 새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우리에게도 거룩하게 구별된 입술을 원하십니다. 불통의 저주를 끊고 소통의 언어로 말하기를 원하십니다.
나를 말하게 하시는 주인은 내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님이십니다. 유대인 탈무드는 말하기 전 세 문으로 통과시키라고 합니다.
그것은 진실한 말인가?
그것은 꼭 필요한 말인가?
그것은 친절한 말인가?
말을 회복하기 위해 먼저 '침묵의 세례', 즉 기도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비판과 조롱, 분열의 말은 멈추고, 성령님이 주시는 위로와 격려, 생명의 언어로 채우십시오.
여러분의 생명의 입술로 바뀔 때, 세상 가운데서 하나님의 사랑을 소통하며 영원한 나라를 소망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성령의 언어로 여러분의 삶과 공동체를 따뜻하게 살려내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단찬양 없음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오늘 성령의 불로 우리의 입술을 새롭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제는 내가 주인이 되어 내뱉는 상처의 언어를 멈추고, 성령님이 주인이 되셔서 말씀하시는 생명의 언어를 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말이 닿는 곳마다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게 하시고, 세상에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따뜻한 소통의 도구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함께 주여 크게 부르짖고 통성으로 기도합시다!
마무리 기도
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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