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격분

사도행전 강해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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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의 격분

본문: 사도행전 17장 16-18절

찬송: 323장 부름받아 나선 이몸

말씀의 문을 열며

오늘 우리가 마주한 본문의 배경인 아테네는 당대 최고의 도시였습니다. 눈을 돌리는 곳마다 웅장한 파르테논 신전이 서 있었고, 거리마다 아름다운 대리석 조각상들이 즐비했습니다. 오늘날로 치면 뉴욕의 마천루나 파리의 화려한 거리와 같은, 인류 문명의 정점이었습니다. 아마 우리도그곳에 여행을 갔다면, 그 압도적인 풍경과 예술성에 감탄하며 기념사진을 찍느라 바빴을지도 모릅니다. "야, 참 대단하다" 하며 그 웅장함에 기가 죽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 화려한 도시 한복판에 선 바울의 심정을 아주 격렬하고도 독특한 단어로 묘사합니다. 16절입니다. "바울이 아덴에서 그들을 기다리다가 그 성에 우상이 가득한 것을 보고 마음에 격분하여."
남들은 아름답다며 즐기는 그 풍경 속에서, 바울은 도리어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고통을 느꼈습니다. 헬라의 철학과 예술이 꽃피운 그곳에서 바울은 숨이 막히는 영적 질식을 경험했습니다. 도대체 무엇이 그의 영혼을 이토록 뒤흔들었을까요? 바울의 이 격렬한 반응은 오늘 세상 문화에 젖어 무뎌진 우리의 영혼을 비추는 거울이 되어, 우리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게 합니다.

거룩한 격분의 정체: 살리기 위한 사랑의 비명

본문에 사용된 '격분(파록쉬노)'이라는 단어는 의학적으로 '발작'이나 '경기'를 일으킬 정도의 극심한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내 뜻대로 되지 않아 짜증을 내는 단순한 분노가 아닙니다. 최초로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70인역 성경을 보면, 이 단어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 앞에 절할 때 느끼셨던(신 9:17), 그 찢어지는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즉, 바울의 격분은 인간적인 혈기가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죄를 향해 느끼시는 '거룩한 통증'이었습니다. 사랑하면 분노합니다. 사랑하는 대상이 망가지는 것을 볼 때, 차분하게 뒷짐 지고 있을 수 있는 사랑은 없습니다. 점잖은 충고는 타인에게나 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하는데, 문득 제 어린 시절의 아찔했던 기억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제가 아주 어릴 적, 어머니 손을 잡고 시골에서 목포 시장으로 나간 적이 있습니다. 어린 제 눈에 목포 시내의 번화한 시장통이 얼마나 신기했겠습니까? 사람 구경, 물건 구경에 정신이 팔려, 그만 바로 옆이 차가 쌩쌩 달리는 찻길인지도 모르고 여동생 손을 잡고 멍하니 도로 쪽으로 발을 내딛고 말았습니다.
그 찰나의 순간, 등 뒤에서 "악!" 하는 비명 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군가 제 뒷덜미와 동생의 팔을 거칠게 낚아채서 인도로 내동댕이쳤습니다. 바로 저희 어머니였습니다. 어머니는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져서 시장이 떠나가라 소리를 지르며 저와 동생을 야단치셨습니다. 얼마나 무섭게 화를 내시든지,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볼 정도였습니다. 어린 마음에 저는 그게 너무 서럽고 겁이 났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시간이 흘러 제가 부모가 되고 보니 그때 어머니의 마음을 알겠습니다. 그때 어머니가 내신 그 화는 미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당신의 목숨보다 귀한 자식이 죽음의 길로 들어서는 것을 보고 터져 나온, 가장 다급하고 진실한 '사랑의 비명'이었습니다. 점잖게 타이를 시간이 없었기에, 어머니는 온몸으로 격분하며 거칠게 저희를 살리신 것입니다. 만약 그때 어머니가 교양을 지키느라 조용히 계셨다면, 저는 오늘 이 자리에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바울이 느낀 '격분'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고귀하게 지으신 인간이, 생명 없는 돌덩이와 쇠붙이 우상에게 절하며 영혼이 죽어가는 꼴을 보았을 때, 바울의 영이 비명을 지른 것입니다. "안 돼! 거기로 가면 죽어!”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내 영혼이 병들고 있는데, 내 자녀가 세상 우상에 빠져 있는데도 마음이 평안하다면, 그것이야말로 영적인 죽음입니다. 바울의 격분은 아테네를 향한 정죄가 아니라, 죽어가는 한 영혼을 향한 '사랑의 안타까움'이었습니다.

격분을 넘어 십자가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예수

이 거룩한 격분 앞에서 우리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봅시다. 과연 우리에게는 이 사랑의 통증이 있습니까?
솔직히 고백하자면, 우리는 바울처럼 거룩하게 분노하기보다, 세상의 우상을 은근히 부러워할 때가 더 많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진 성공, 돈, 안락함을 보며 "나도 저것을 가졌더라면" 하고 한숨 쉬지 않습니까? 자녀가 신앙생활을 게을리하는 것에는 관대하면서도, 좋은 직장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에는 잠을 못 이룹니다. 우리의 근심과 걱정의 뿌리를 캐보면, 그 끝에는 항상 '세상'이라는 우상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만들었던 그 우상 숭배의 자리에, 실은 우리 자신이 서 있는 것입니다. 엄밀히 말해 우리는 격분의 주체가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를 받아 마땅한 죄인들입니다.
그러나 성도 여러분, 바로 이 절망적인 지점에서 복음의 놀라운 은혜가 선포됩니다.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 성전을 보시며 격분하셨고, 우상에 눈먼 자들을 향해 탄식하셨습니다. 하지만 주님은 그 의로운 분노로 우리를 심판하고 끝내지 않으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그 격분의 대가를 주님이 친히 감당하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분은, 우상을 쫓다가 영적인 죽음의 도로로 뛰어든 우리를 밀쳐 내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달려오는 진노의 수레바퀴 아래로 당신의 몸을 던지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거룩한 격분''무한한 사랑'이 만나는 곳입니다. 죄에 대해서는 불같이 진노하시지만, 그 진노를 죄인인 우리에게 쏟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아들에게 쏟으신 사건. 이 놀라운 대속의 사랑이 오늘 저와 여러분을 살렸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우리가 당해야 할 영원한 격분의 고통을 홀로 감내하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바울이 아테네 사람들을 저주하고 떠난 것이 아니라, 다시 그 시장터로 들어가 '예수와 부활'을 전할 수 있었던 힘이 여기에 있습니다. 그 자신이 먼저 십자가의 사랑으로 구원받았기에,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그 사랑 때문에, 나도 이 영혼들을 포기할 수 없다"는 고백이 터져 나온 것입니다. 바울의 격분은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십자가 사랑에 빚진 자가 낼 수 있는 '복음의 용기'였습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의 마음을 가장 크게 흔드는 것은 무엇입니까?자존심이 상하거나 금전적인 손해를 볼 때는 밤잠을 설치며 분노하면서도, 정작 내 영혼이 하나님과 멀어지고 내 사랑하는 가족이 우상에 빠져 있는 것에는 무감각하지 않습니까? 우리진정으로 두려워해야 할 것은 세상에서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 없는 성공입니다.
아테네의 화려한 겉모습에 속지 마십시오. 그 이면에 있는 영적 황폐함을 볼 수 있는 눈을 떠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무뎌진 감각을 깨워야 합니다. '좋은 게 좋은 거지'라는 식의 미지근한 태도로는 나 자신도, 내 가족도 지킬 수 없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자식을 살리기 위해 체면을 버리고 소리치셨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우리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던 것처럼, 이제 우리도 죄와 우상을 향해 거룩한 격분을 품어야 합니다. 내 영혼을 갉아먹는 게으름과 타협을 향해 "안 돼!"라고 외치십시오. 그리고 그 치열한 사랑의 마음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붙드십시오.
세상이 줄 수 없는 이 거룩한 사랑의 격분이 우리 심장에 회복될 때, 우리의 영혼이 살고, 우리의 가정이 사는 역사가 일어날 줄 믿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의 삶에 충만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화려한 아테네의 우상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죽어가는 영혼들을 보며 가슴을 쳤던 바울의 그 뜨거운 심장을 말씀을 통해 마주합니다.
주님, 이 시간 우리의 무뎌진 마음을 회개합니다. 우리는 세상의 우상을 보며 분노하기보다, 오히려 그것을 갖지 못해 안달하며 부러워했습니다. 자녀들이 세상에서 뒤쳐질까 봐 전전긍긍하면서도, 정작 그 영혼이 주님을 떠나 말라가는 것에는 무관심했던 우리의 완악함을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우리 안에 거룩한 격분을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사랑의 반대말은 무관심이라 하셨사오니, 이제는 나 자신의 영적 나태함과 죄악을 향해 "안 된다"고 소리칠 수 있는 사랑의 야성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더 이상 세상의 화려함에 속지 않게 하시고, 그 이면에 있는 영적 목마름을 보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서 모든 진노를 받아내신 예수님의 그 피 끓는 사랑을 힘입어, 이제는 죄와 싸우며 생명을 선택하는 참된 성도의 길을 걷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고 생명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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