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지 못한 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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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상 13:8-15
삼상 13:8-15
오늘은 ‘기다리지 못한 왕’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전하겠습니다. 여러분 삼일간 평안하셨습니까? 감사합니다. 우리 옆에 있는 지체와 이렇게 한번 인사합시다. “괜찮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십니다” 여러분 우리가 삶의 상황과 형편은 다 다를거에요. 지금 우리의 삶에, 어떤 문제가 생겼을 수 있습니다. 어려움이 닥쳤을 수 있습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괜찮습니다. 하나님 살아계십니다. 너무 조급해 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조급해서 잘못 선택하지 말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택에 집중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살다보면 조급함이라는 것이 생길 때를 경험하곤 합니다. 눈 앞에 있는 상황과 현실이 너무 커보이는거죠, 그래서 그것을 막 해결하려고 전전긍긍하다가, 실수를 하기도 하고요, 잘못된 선택을 하기도 할 때가 있습니다. 여러분 조급할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요? 한걸음 조금 더 뒤에 떨어져서, 그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가 올해 결혼 7년차 입니다. 여러분들에 비해서는 터무니 없는 초보 가장이지요. 또 두 아이를 키우는 부모이기도 합니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처음 가보는 길이니 서툰 부분도 참 많습니다.
유은이가 어렸을 때 그런적이 있습니다. 보통 아이를 키우면 1년이 될 때까지 너무나 많은 변화과정이 있습니다. 100일까지는요 아이들이 태어나고 세상에 적응해야 하니깐 밤에 제대로 잠을 안잡니다. 이제 4-5개월 정도가 되면, 신체가 자라고 힘도 생겨서, 아이들이 뒤집기를 합니다. 그 다음 단계가 뭐에요? 보통 6개월이 지나면요, 아이들이 뒤집고 엎드려서 바둥바둥대다가 이제 조금 빠른 아이들은 기어다니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유은이가 이제 기어 다닐 때가 된 것 같은데, 전혀 기질 않는거에요. 그냥 앉아있기만 하고요, 처음에는 그랬죠 좀 시간이 필요한가보다 시간이 지나면 기어가겠지,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애가 길 생각이 없는거에요. 늘 앉아서 방바닥만 쓸고 다닙니다. 첫째이고 다 처음이잖아요. 그러니깐 제 안에 불안함이 있는거에요. 조급함이 생기는거죠. 얘가 왜 안 기지? 어디 신체에 문제가 있나? 어디가 불편한가? 이게 정상인가? 오만가지 생각이 드는거에요. 뭐 아기가 아플때도 마찬가지죠. 머리에 온갖 생각이 다듭니다. 저는 항상 뭘 생각하냐면요, 어떤 문제가 생기면 최악을 생각합니다. 그래서 최악만은 가지 말아야겠다라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데 유은이는요, 그냥 방바닥 쓸고만 다니다가 걷기 시작했어요. 물론 정말로 문제가 있는 경우가 있을 수도 있지만, 하지만 그렇지 않아도요 나의 계획대로 되지 않은, 내 생각과 다른 현실 앞에서, 통제할 수 없다고 느끼는 상황 가운데서 마음 속에 조급한 마음이 드는거죠. 이게 간단한 예이지만요, 우리의 일상에 얼마나 이런 일들이 많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조급한 마음은 어떨 때 보통 들까요? 그것은 더 이상 상황을 통제할 수 없다고 느낄 때 찾아옵니다. 뭔가를 열심히 준비했는데요, 결과는 내 손을 벗어나 있는것 같은거에요. 기다리라고 하는데, 그 기다림이 언제까지인지를 알 수 없을 때, 상황은 점점 더 악화되어 가는데, 뚜렷한 해결책은 없는, 이럴 때, 우리 마음 속에 이런 생각들이 올라와요, “이대로 가만히 있으면 안될 것 같은데” “뭐라도 해야 되는 거 아닌가” 조급함은 이렇게 시작해요.
또 어떨 때 이 조급함이 강화가 되냐, 그 기다림의 시간이, 손해 보는 시간처럼 느껴질 때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다 움직이고 저 멀리 가고 있는 것 같은데, 나만 멈춰 있는 것 같고, 지금 당장 결정하지 않으면, 기회를 놓칠 것 같은 불안이 밀려올 때, 우리는 그 상황을 기다리기 보다는요, 조급한 마음에 실수나 잘못된 결정을 하게 될 때가 있는거에요.
이 사람들의 조급한 마음을 마케팅이나, 사기꾼들이 많이 이용해 먹습니다. 여러분 요즘 두쫀쿠 라고 아세요? 두바이쫀득쿠키라고요, 이게 대한민국에 정말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찹살떡같은 작은 한 덩이 하나가 가격이 6천원 7천원합니다. 여러분들 같으면 사먹겠습니까? 그런데요 이게 맛있다고 소문난 집은요, 사람들이 이 추운데 줄을 서서 기다립니다. 오후 1시에 나온다 그러면 몇시간 전부터 줄을 서서 기다려요. 그거 사먹으려고요.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행에 참 민감하지요, 이게 만들기가 참 어려워서 쉽게 말하면 한정판인거에요. 물론 정말 그게 맛있어서 사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또 어떤 마음이 있어요, 다른 사람들은 다 하는데, 다만 뒤쳐지는 것 같은, 그런 조급함이 자리잡고 있지 않겠습니까. 홈쇼핑도 똑같습니다. 그런거죠. 마지막 특가 할인입니다. 이 가격 절대로 안옵니다. 오늘까지만 팝니다. 이런게 뭐냐면 사람들의 조급함을 이용하는 마케팅입니다.
이게 안좋은 쪽으로 활용되는게 뭐냐면 바로 사기입니다. 사람들의 조급함을 이용하는거죠. 보이스피싱범이 그런거에요. 자녀들인척 하고, 무슨 급한 일이 생겼다. 신변에 문제가 생겼다 하면서, 부모들을 속이는겁니다. 조급한 부모들은 뭐 할꺼없이 자식들 살리고자 큰 돈을 막 입금하는거에요. 여러분 이런 현실 가운데 조급함이 누구나 다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 가운데 어떻게 선택하고 행동하는게 과연 지혜로운 것일까요? 어떻게 이 조급함 이라는 마음 앞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게 되는 이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사무엘 상 13장에는요, 사울 왕이 등장합니다. 사울 왕은 백성들이 그토록 원했던 인간 왕이었습니다. 눈에 보이는 왕이었습니다. 백성들의 조급함을 해결해줄 것 같은 왕이에요. 지난 주에 보면요, 이제 사무엘 선지자는 한발짝 뒤로 물러섭니다. 통치권이 사무엘에게서 공식적으로 사울 왕에게 넘어갑니다. 사울 왕은 우리가 보았듯, 처음에는 꽤 괜찮은 왕이었습니다. 암몬 족속이 길르앗 야베스에 쳐들어왔을 때,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영이 임하고, 그는 군대를 모읍니다. 그리고 모압 족속을 무찔러서 길르앗 야베스 사람들을 구해줘요. 그런데 아쉽게도, 사울 왕의 전생애 걸쳐서 이보다 더 잘할 때가 없다고 여길 정도로, 처음이 그의 인생에 가장 좋았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 13장 1절에 보면 이렇게 시작해요. 그가 왕이 되었을 때 40세였다. 그런데 이스라엘을 다스린지 몇년이 지났다? 2년이 지났다. 2년이면 사실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니지요. 왕이 된지 2년밖에 안됐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생기냐면요, 블레셋 족속과 전쟁이 벌어지게 됩니다. 그런데 이 전쟁의 상황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요나단이 기브아에 주둔한 블레셋 수비대를 선제 공격했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본진에서 전면전을 위해 몰려옵니다. 5절에 보면요 그들의 군대 규모를 설명합니다.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았다” 2절에 보면요, 이스라엘 군대의 규모가 나옵니다. 다합치면 몇명이에요? 3천명입니다. 블레셋은요 병거만 삼만이래요. 병거가 뭐에요? 전차에요 탱크 같은거에요. 그것만 3만 입니다. 이스라엘 군대의 숫자의 10배가 넘는 전차가 있는거에요. 여러분 이게 상대가 됩니까?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에요? 객관적인 지표를 절대로 불가능입니다. 반드시 이스라엘은 패배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요 상황은 더 악화되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은 누가 몰랐을까요. 모여 있는 군인들이 다 알았겠지요. 6절 7절 보세요. 그나마 모여있던 군인들도 어쨌대요? 다 숨어 버립니다.. 굴속으로 숨고 바위 틈으로 웅덩이로 어떤 사람들은 요단강 건너 탈영까지 합니다. 여러분 지금 이숫자라도 유지해야 0.1%의 확률이라도 올라가지 않겠습니까? 그리고 이 모든 책임자로 사울 왕이 서있습니다. 8절 보십시오. 사울은 사무엘이 정한 기한대로 이레 동안을 기다렸는데, 사무엘이 오지 않았다. 여러분 사무엘이 약속했던 것 같아요, 일주일 안에 오겠다. 그런데 7일이 지나도 와요 안와요? 안옵니다. 점점 더 군대는 흩어지고 있습니다. 눈 앞에 적들은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 상황입니다. 사울 왕의 조급함이 이미 턱끝까지 차올랐습니다.
그는 결국 이 조급함 앞에 자기 판단으로 인하여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고 맙니다. 이 조급함의 선택은 결국은 그의 통치 전체를 무너뜨리는 첫 균열의 시작이 됩니다. 이 모습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요? 바로 불순종하는 많은 이유가 있지만, 우리는 조급함의 유혹 앞에 넘어진다는거에요. 사울 왕이 그 일주일의 시간 동안 그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었을까요? 사무엘이 분명히 기다리라했습니다. 제사는 왕의 소관이 아닙니다. 그가 사무엘을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는 것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기다리면서 백성들이 흩어지죠. 눈앞에 군대는 오죠. 승률은 희박할정도로 더 낮아지죠. 그는 뭐가 더 크게 보인거에요? 하나님보다 눈 앞에 있는 무너져 가는 현실이 더 커보인거죠. 내가 이 무너지는 것을 조금이라도 더 막기 위해서는, 불순종이라도 내가 뭐라도 해야겠는거에요. 말씀을 순종할 것이냐, 조급함의 유혹 속에 불순종하여 내 멋대로 할거냐. 이 두 가지의 기로 속에서 그는 불순종을 택합니다.
여러분들이라면 이 상황에 어떻게 하실래요? 기다리실래요? 사울처럼 하실래요? 여러분 저는 이 사울 왕의 조급함을 이해합니다. 이해하지 못한 분들 계셔요? 이해하지 않습니까. 이 정도 상황이 되면 누구라도 흔들리지 않겠어요? 하지만 오늘 본문은 말합니다. 조급함이 이해된다고 해서, 순종이 면제되는 것이 아니라는거에요. 이 말씀은 사울을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말씀이 아니에요, 모든 사람들의 인생의 위기가 여기에 있다는거에요. 우리가 눈 앞에 당장의 전쟁은 아니지만요 여러가지 문제들이 있습니다. 경제적 위기, 관계의 위기, 진로의 위기, 자녀의 위기, 건강의 위기 그 앞에서 상황이 점점 나빠지는 것 같은 거죠. 나름대로 기도도 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했는데요, 아무런 진척도 없고 변화도 없고, 더 상황은 나빠지는 것 같은 그런 상황 가운데 놓일 때가 있는거에요. 그때 우리 안에서 똑같이 사울 왕과 같은 마음이 찾아와요, “이제는 내가 뭔가 해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가만히 있다가 진짜 더 나빠지지 않을까?” 여러분 이 질문이 위험한 이유는요, 내가 하나님 떠나고 싶은게 아니라요, 하나님 없이 내 손으로 해결해 보려는 그 마음이 안에 숨어있기 때문입니다. 위기 앞에서 우리가 가장 점검해 보아야할 것은요, 상황이 아닙니다. 바로 내 마음의 속도입니다.
“지금 나는 하나님보다 상황을 더 크게 보고 있지 않는가?” “기다림의 시간이, 하나님의 뜻을 더 알아가는 시간이라기 보다, 남들보다 뒤쳐지는 손해처럼 느껴지고 있지는 않은가?” “하나님이 침묵하시는 것 같은 이 상황에도 하나님을 향한 신뢰보다는 내 안에 불안함과 조급함이 커지고 있지 않은가?” 여러분은 어떠세요? 조급함이 느껴질 때요, 그 자체를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나 다 가지고 있기 때문이에요. 조급한 마음은요, 믿음이 없다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우리의 믿음이 시험대에 올랐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마음이 들 때 우리의 태도입니다. 그 조급함이 나를 움직이게 할 것인가, 아니면 그 마음을 가지고 다시 하나님 앞에 서게 할 것인가. 여러분 남은 한주, 위기 속에서 마음이 급해질 때마다, 이렇게 기도해보세요. “하나님 상황보다 제 마음의 속도가 늦어지기를 원합니다” “하나님 조급함으로 결정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머물고 순종할 수 있도록 붙들어주세요” 이런 우리의 삶이 되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두번째는요, 사울 왕으 조급함은요 마음속에서 끝나지 않았다는거에요. 조급한 마음은 반드시 행동으로 나타납니다. 그리고 그행동은 대개 말씀의 자리를 침범하는 행동입니다. 본문 9절을 같이 읽어볼까요. 사무엘상 13:9 “사울이 이르되 번제와 화목제물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여 번제를 드렸더니” 이 장면이 참 흥미롭습니다. 사울 왕이 하나님 떠난거 아니에요. 오히려 하나님께 제사합니다. 그토록 급해도요 조급해도요, 하나님께 제사하는거 빼먹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 제사가 문제였다는게 아이러니합니다. 사울 왕은 제사를 빼먹지 않고 제사를 드렸는데, 바로 그게 문제였다는거죠.
왜요? 지금 사울이 드린 제사는, 하나님이 정하신 방식과 질서를 무시한 제사였기 때문입니다. 사울은 사무엘 선지자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조급함은 늘 이렇게 말해요. “내용은 맞잖아” “이거 하나님을 위한 거잖아” “지금 상황이 너무 급하잖아” 사울도 똑같은 논리를 폅니다. 아니 백성들이 흩어지고 있잖아요, 블레셋은 이미 진을 쳤잖아요. 아니 사무엘 당신이 오지 않았잖아요. 그래서 12절에 그래요. “내가 부득이하여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 말 너무 익숙한 말 아닙니까?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그렇게 만들었습니다” “원래 그러려고 했던 건 아닙니다” 조급함은요 늘 불순종을 ‘불가피한 선택’ ‘어쩔 수 없는 선택’으로 포장합니다. 그리고 그 포장의 핵심은 책임 전가입니다. 사울은 지금 어쩔 수 없는 현실, 상황에 책임을 돌립니다. 흩어진 백성들에게 책임을 돌립니다. 마침내 사무엘에게까지 책임을 돌립니다. 사무엘은 단호히 이야기 합니다. 13절에 “왕이 망령되이 행하였도다”
여러분 조급함은요, 예배를 없애지 않습니다. 기도를 없애지 않습니다. 대신 예배를 수단으로 바꿉니다. 기도를 수단으로 바꿉니다. 예배가 기도가 하나님을 만나는 자리가 아니라, 그분과 진짜 사귐을 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상황을 내 문제를 통제하기 위한 장치로 만들어버립니다. 말씀을 듣기보다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보다요, 내 결정을 정당화 하는 도구로 사용하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도 똑같습니다. 조급해져보셨죠. 조급하면요,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 귀로 안듣는다는게 아니라, 이미 마음 속에 다 정해놓고,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그래놓고 내 뜻을 정당하기 위해 말씀을 이용합니다. 기도도 짧게 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원하는 바가 정확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만 해주면 되는거에요. 겉으로는 신앙처럼 보이지요, 믿음처럼 보이지요. 그런데요 실제로는 내 판단이 왕좌에 앉아 있는 상태입니다.
여러분 조급함이 들어오면요, 우리는 하나님께 묻지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 통보를 합니다. “이렇게 하겠습니다.” “이렇게 하는게 최선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는 이미 핑계거리까지 다 만들어놔요, 어쩔 수 없었습니다. 상황이 너무 급했습니다. 한번만 이해해주세요. 신앙에 있어서 위험한 순간은요, 예배를 하지 않을 때가 아닙니다. 기도하지 않을 때가 아닙니다. 기도하면서, 예배하면서 그분의 뜻을 건너뛸 때입니다. 오늘 이 본문은 우리에게 질문합니다. “당신은 하나님의 뜻을 묻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미 정해 놓은 결정을 합리화 하고 있습니까? “당신은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전에 움직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예배가 기도가 나의 뜻을 멈추게 하는 자리가 아니라, 나의 뜻을 밀어붙이게 만드는 자리가 되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조급함이 느껴질 때, 그것은 당장 결정해야 되는 신호가 아닙니다. 잠시 멈춰야 할 신호입니다. 우리의 삶에 이런 상황 가운데서, 잠시 멈출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바랍니다. 멈추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 14절에서는 이 사울의 행동 이후 사무엘 선지자가 이야기 합니다. “왕의 나라가 길지 못할 것이다” 이 말은 즉각적인 폐위 선고가 아닙니다. 여전히 사울은 왕이었고, 여전히 군대가 있었고, 전쟁을 치룰 겁니다. 그러나 이미 끝난 왕입니다. 겉모습은 그대로인데, 하나님의 손에서는 이미 떠난 왕이었습니다. 그는 단 한번의 조급한 선택으로 진짜 왕을 세우신 하나님의 목적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였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왕의 모습은요,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위기 가운데 빠른 결단과 결정 최선의 방법을 찾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 하나님 앞에 조급함을 이겨내고 기다릴 줄 아는 사람을 찾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는 끝까지 자기 힘으로 왕의 자리를 지키려다가 비참하게 죽은 인생으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기다리지 못하는 인생은, 늘 자기의 힘으로 내 능력으로 자신의 것을 지키려는 사람입니다. 혼자 버티다가 인생을 마무리했습니다.
어떤 왕이 정말로 세상을 구원할까요? 어떤 왕이 우리의 인생을 이 위기와 조급함 앞에서 구원할까요? 어떤 모습이 이 조급함 앞에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일까요? 바로 참된 왕이신 우리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닮아가야 할 분은 오직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은요. 늘 조급함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분이셨습니다. 성급한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다릴줄 아셨고요, 인내하실 줄 아셨고, 그 뜻에 순종할 수 있는 분이셨습니다.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 40일간 광야에서 금식하며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돌을 떡덩이가 되어 만들어 먹어라. 얼마나 배고픔이라는 그 조급함 앞에서도, 그는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합니다. 예수님이 가는 곳마다 놀라운 기적이 일어날 때에, 사람들이 얼마나 환호하며,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셨을 때에, 예수님을 왕삼고자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그 속에서도, 다시금 하나님의 뜻을 듣기 위하여 조용히 기도하러 올라가십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 이제 곧 나를 팔아버릴 그 제자가, 나를 잡아갈 그 군사들이, 내가 져야 할 그 진노의 잔인 십자가가 눈 앞에 왔을 때에도, 그는 자신의 뜻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이라면 내가 기꺼이 순종하겠다 아버지께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를 지시면서 그 눈 앞에 조롱하는 군인과 사람들 앞에서, 조급함으로 자신의 능력을 증명하는 모습이 아니라,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결국 그런 인생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인생이요, 세상을 구원할 왕이요, 우리가 닮아가야 하며, 따라가야 할 참된 믿음의 삶이 아니겠습니까?
조급함이라는 그 유혹 앞에서도 예수님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는 믿음이 있기를 소망합니다. 나아가는 이유가 내 뜻을 관철시키고, 내 뜻을 합리화라녀는 주님을 도구화하는 신앙이 아니라, 정말로 조급함 가운데에서도, 조용히 하나님의 뜻을 물으며, 그분의 뜻이라면, 나의 뜻과 나의 생각과 다를지라도, 겸손히 순종하여,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 예수를 닮은 사람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 첫 번째 통성기도 인도 멘트 (말씀 반영)
🙏 첫 번째 통성기도 인도 멘트 (말씀 반영)
먼저, 오늘 들은 말씀을 붙들고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오늘 우리는 기다리지 못한 왕 사울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위기 앞에서 조급함의 유혹에 넘어가
하나님의 말씀을 기다리지 못하고
자기 판단으로 선택했던 사울의 모습을 통해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우리도 삶의 위기 앞에서
상황을 더 크게 보고
조급함으로 결정했던 순간들이 있었음을 고백합니다.
기도는 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묻기보다
내 결정을 정당화하려 했던 마음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조급함이 이해되는 순간에도
순종은 포기하지 않게 하시고,
상황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며
말씀 앞에 멈출 줄 아는 믿음을 우리에게 허락하여 주옵소서.
이 시간,
조급함으로 내려놓았던 순종을 다시 붙들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기다릴 줄 아는 사람으로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 이제 들은 말씀을 붙들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2️⃣ 교회를 위한 기도
2️⃣ 교회를 위한 기도
이제 두 번째로, 교회를 위해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이 공동체를 붙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특별히 몸의 연약함 가운데 있는 지체들,
가족의 아픔과 질병, 여러 어려움으로
마음이 무너져 있는 지체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친히 위로하시고, 회복과 평안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내일부터 있을 중고등부 수련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 시간을 통해 아이들의 마음에
세상의 조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묻는 믿음이 심어지게 하시고,
말씀과 성령으로 새로워지는 은혜의 시간이 되게 하옵소서.
섬기는 교사들과 사역자들에게도
영육 간의 강건함과 지혜를 더하여 주옵소서.
또한 교회의 사랑방과 선교팀을 위해 기도합니다.
모이는 모든 자리 위에 하나님의 뜻이 분명히 서게 하시고,
사람의 생각이나 조급한 열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순종하는 공동체 되게 하옵소서.
👉 이제 교회를 위해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통성기도)
3️⃣ 개인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
3️⃣ 개인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드리는 기도
마지막으로,
각자의 개인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에도
경제의 문제, 관계의 문제, 진로의 문제, 건강의 문제 등
각자의 전쟁 같은 상황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 문제 앞에서 조급함으로 선택하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을 기다리는 믿음으로 서게 하옵소서.
하나님,
내 뜻을 이루기 위해 주님을 찾는 신앙이 아니라,
주님의 뜻을 알기 위해 엎드리는 신앙이 되게 하옵소서.
내 생각과 달라도, 내 계획과 달라도
하나님의 뜻이라면 기꺼이 순종할 수 있는 믿음을 주옵소서.
👉 이제 각자의 기도 제목을 가지고 통성으로 기도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