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3 새벽기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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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288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사랑의 주님 오늘도 저희를 깨워 이 새벽 주님 앞에 나오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하루의 시작을 세상의 소리가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열기 원합니다.
분주한 생각과 세상의 염려는 내려놓고, 이새벽 우리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께만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말씀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게 하시고
기도 가운데 다시 힘을 얻게 하셔서, 오늘 하루도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드립니다. 헌금과 함께 드리는 소원과 감사의 고백을 받아 주시고 주님의 뜻 안에서 가장 선한 길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2 우리가 세상에서 특별히 너희에 대하여 하나님의 거룩함과 진실함으로 행하되 육체의 지혜로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은혜로 행함은 우리 양심이 증언하는 바니 이것이 우리의 자랑이라
13 오직 너희가 읽고 아는 것 외에 우리가 다른 것을 쓰지 아니하노니 너희가 완전히 알기를 내가 바라는 것은
14 너희가 우리를 부분적으로 알았으나 우리 주 예수의 날에는 너희가 우리의 자랑이 되고 우리가 너희의 자랑이 되는 그것이라
15 내가 이 확신을 가지고 너희로 두 번 은혜를 얻게 하기 위하여 먼저 너희에게 이르렀다가
16 너희를 지나 마게도냐로 갔다가 다시 마게도냐에서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도움으로 유대로 가기를 계획하였으니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21 우리를 너희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굳건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기름을 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Ⅰ. 도입 – 왜 우리는 자주 흔들리는가
Ⅰ. 도입 – 왜 우리는 자주 흔들리는가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자주 흔들립니다.
어제는 분명히 결단했습니다. 말씀을 붙들고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기도도 했고, 마음도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나면 마음이 다시 내려앉아 있습니다.
상황 하나에 흔들리고, 사람의 말 한마디에 마음이 무너지고, 내가 세운 계획 하나가 틀어지면 믿음까지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이게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오늘 본문에서 사도 바울도 이와 비슷한 상황 한가운데 서 있었습니다.
Ⅱ. 본문의 배경 –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Ⅱ. 본문의 배경 –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바울은 2차 선교여행 중에 고린도에 도착하여 약 1년 반 동안 머물며 교회를 세웠습니다.
고린도는 항구도시로, 동서양의 무역이 교차하는 번화한 상업도시였습니다.
그만큼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함께 있었고, 그로인해 도덕적으로도 매우 혼란스러운 곳이었습니다.
바울은 이곳에서 복음을 전하고,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하는 공동체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고린도를 떠난 후, 교회 안에 여러 문제가 생겼습니다. 분쟁이 일어났고, 심지어 바울의 사도권에 도전하는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래서 어제 나눈대로 사도바울의 삶이 고난가운데 있다는 것을 빌미로 하나님의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기도 하였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고린도를 다시 방문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처음 계획은 마게도냐를 거쳐 고린도로 간 뒤, 다시 마게도냐로 돌아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계획을 변경했습니다.
그 계획을 변경한 이유를 본문 23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23 내가 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언하시게 하노니 내가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려 함이라
바울이 계획을 변경한 이유는 고린도 교회를 더 배려하기 위한 결정이었습니다. 바울이 방문했을 때 교회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라면, 그 만남이 서로에게 아픔이 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후서 2:1에서는 근심 가운데 만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먼저 편지를 보내 문제를 정리하고, 그 후에 방문하기로 계획을 수정한 것입니다.
그러나 고린도교회의 일부 사람들은 이것을 다르게 보았습니다.
"바울은 말만 하고 지키지 않는 사람이다." "예 했다가 아니오 하는 변덕스러운 사람이다." 그래서 "신뢰할 수 없다." 고 목소리를 냈습니다.
심지어 바울을 반대하는 무리는 이것을 빌미로 바울의 사도권을 부정하기까지 하였습니다.
바울이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닙니다. 게으르거나 무책임해서 그런 것도 아닙니다.
상황이 바뀌었고, 고린도 교회의 형편을 더 깊이 고려하다 보니 그 길이 가장 선한 길이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았습니다.
Ⅲ. 사람의 말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17절)
Ⅲ. 사람의 말은 언제든 흔들릴 수 있다 (17절)
바울은 이 오해 앞에서 본문 17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17 이렇게 계획할 때에 어찌 경솔히 하였으리요 혹 계획하기를 육체를 따라 계획하여 예 예 하면서 아니라 아니라 하는 일이 내게 있겠느냐
바울은 자신이 가볍게 약속했다가 쉽게 번복하는 사람이 아니며, 계획이 변경된 것이 바울 자신의 편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고린도 교회를 위한 행동임을 선포합니다.
사람의 계획은 언제든 바뀔 수 있습니다. 아무리 신실한 사람도, 아무리 믿음 있는 사람도, 처음 세운 계획을 끝까지 고수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우리가 유한한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계획이 바뀌는 상황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바울에게는 자신의 계획보다 하나님의 뜻이 더 중요했고, 자신의 체면보다 성도를 살리는 것이 더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계획이 틀어져 사람들이 오해를 하고 비방하여도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Ⅳ. 우리가 흔들릴 때 생기는 가장 큰 오해
Ⅳ. 우리가 흔들릴 때 생기는 가장 큰 오해
그런데 우리는 흔히 내 상황이 흔들리면 하나님도 흔들리신 것처럼 느낍니다.
"내 계획대로 안 되면 '하나님의 뜻이 바뀌었나?' 싶고, 열심히 기도했는데 응답이 없으면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셨나?' 의심합니다.
심지어 믿음대로 살려고 발버둥 쳤는데 결과가 안 좋으면,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건 아닐까?' 걱정도 됩니다.
결국 우리는 나도 모르게 "나도 약속을 못 지키니, 하나님도 약속을 못 지키실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합니다.
그래서 신앙은 느낌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감정, 내 기분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믿음으로 하는 것입니다.
Ⅴ. 사람의 흔들림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다르다 (18절)
Ⅴ. 사람의 흔들림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다르다 (18절)
그래서 바울은 18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18 하나님은 미쁘시니라 우리가 너희에게 한 말은 예 하고 아니라 함이 없노라
"미쁘시다"는 말은 '신실한', '믿을 수 있는', '신뢰할 만한'이라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바울은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시고, 믿을 수 있는 분이시며, 약속을 반드시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계획은 바뀔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절대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이 전한 복음, 바울이 선포한 하나님의 약속은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 약속의 근거는 바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신실하신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Ⅵ. 예수 안에서 '예'가 되었다 (19-20절)
Ⅵ. 예수 안에서 '예'가 되었다 (19-20절)
그래서 바울은 본문 19-20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19 우리 곧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로 말미암아 너희 가운데 전파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으니 그에게는 예만 되었느니라
20 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되느니라
예수 그리스도는 예 하고 아니라 함이 되지 아니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단순한 동의가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하지 않는 확실한 진리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였습니다.
“나와 실루아노와 디모데가 여러분에게 전파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예 했다가 아니오 하지 않고 언제나 예 라는 신실한 응답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미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 됩니다. 바울은 이것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멘 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아멘의 뜻은 잘 아시는 것처럼 “그것에 동의 합니다”, “확실합니다”,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믿습니다”입니다.
그러기에 신실하신 하나님이 '예'라고 말씀하시면, 우리는 '아멘'으로 응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동의하고, 그 약속을 신뢰하며, 그 약속이 이루어질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멘은 단순히 사람의 의지나 결심이 아닙니다.
"내가 해보겠습니다", "내가 노력하겠습니다" 라는 다짐이 아닙니다.
아멘은 하나님의 의지에 나를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미 결정하신 뜻, 하나님이 이미 약속하신 말씀, 하나님이 이미 이루신 구원에 나를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멘은 "제가 하겠습니다"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또, 하나님이 하십니다, 하나님이 하실 것입니다"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멘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우리의 고백인 것이고 이처럼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고백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Ⅶ. 약속은 왜 이렇게 더뎌 보이는가
Ⅶ. 약속은 왜 이렇게 더뎌 보이는가
그렇다면 "그렇게 확정된 약속이라면, 왜 지금 바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인가?
하나님의 약속이 더디게 보이는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잊으셨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때에, 가장 좋은 방법으로, 가장 완전하게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 때를 기다리시는 것임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약속을 받고 25년을 기다려야 했고, 그 사이 실수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꿈을 보여주셨지만 그 꿈이 이루어지기 까지 13년 동안 노예와 죄수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다윗은 어린 나이에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 15년 넘게 광야에서 도망자로 살았습니다.
이처럼 흔들리기도 했고, 넘어지기도 했으며 억울한 고통을 겪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약속을 끝까지 지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상황때문에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람들이 느끼기에 기다림은 있었지만, 취소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면 그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22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Ⅸ. 성령의 인침과 보증 – 하나님은 중간에 멈추지 않으신다 (22절)
Ⅸ. 성령의 인침과 보증 – 하나님은 중간에 멈추지 않으신다 (22절)
22 그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우리 마음에 성령을 주셨느니라
인을 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과 봉인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대세계에서 왕의 인장을 찍는 행위는 두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이 인장이 찍힌 물건은 왕의 것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두번째는 보호의 의미입니다. 왕의 도장이 찍힌 문서는 그누구도 함부로 뜯을 수 없습니다. 왕의 것이기 때문에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성령으로 인치셨다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유권의 도장을 찍으셨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해 “이 사람은 내 것이다. 누구도 이 사람을 빼앗을 수 없고, 누구도 이 사람을 함부로 할 수 없다." 는 확실한 선포입니다.
또 “보증" 으로 번역된 원어의 뜻은, '계약금', '선금', '담보'라는 뜻 입니다.
집을 살 때 계약금을 건다는 것은, "나머지 금액도 반드시 치르겠다"는 약속의 표시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시며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너에게 주는 계약금이다. 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 내가 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
그러기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포기하고 싶을 때도,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들려 의심 할 때도, 성령 하나님께서 여전히 우리 안에 계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신 것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를 끝까지 책임지시겠다는 보증이 되는 것입니다.
Ⅹ.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들 고백
Ⅹ. 오늘 새벽, 우리가 붙들 고백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흔들립니다. 마음도 흔들리고, 감정도 흔들리고, 때로는 믿음도 흔들리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우리 안에 의심이 생깁니다.
어제의 결단이 오늘 무너지기도 하고, 그렇게 뜨거웠던 마음이 한순간에 식기도 합니다. 그래서 기쁨과 평안이 사라지고, 염려와 걱정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럴때 기억해야 할 것은,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내 감정이 흔들릴 때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대로 있습니다. 내 믿음이 약해질 때도 하나님의 손은 여전히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내가 넘어져도 성령님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다시 세우신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래서 이새벽, 이렇게 고백 하시길 바랍니다.
"주님, 저는 흔들리지만, 주님은 흔들리지 않으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기에 중요한 것은 내가 흔들릴때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온전히 붙드는 것입니다.
오늘 하루, 상황이 흔들려도 하나님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마음이 흔들려도 반드시 이뤄질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
그러면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굳건히 세워주실 것입니다.
이 믿음으로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시길 주의 이름으로 소망합니다.
기도
신실하신 주님 저희는 자주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임을 고백합니다.
어제의 결단이 오늘 무너지고, 뜨거웠던 마음이 쉽게 식어버립니다.
그러나 오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으시는 분이시고, 상황이 변해도 주님의 약속은 변하지 않음을 다시금 깨달았으니
오늘 하루 내 감정이 아니라, 주의 말씀 위에 서게 하시고, 내 생각이 아니라 주님의 신실하심을 의지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안에 성령으로 인치시고 끝까지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의지하여
흔들리는 세상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을 붙들고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