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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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 요한복음 1:45-49(신약 144쪽)
설교제목 : 예수님은 우리를 잘 아십니다.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오늘 성경의 이야기는 나다나엘이 예수님과 만나는 장면을 보여줍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나다나엘이 만난 예수님 또한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예수님은 어떤 분일까요? 오늘은 이에 관한 얘기를 나누려 합니다.
봄이 시작될 무렵, 무화과나무의 잎사귀가 풍성해지던 때였습니다. 갈릴리의 가나라는 마을에는 나다나엘이라는 한 청년이 있었습니다. 그는 정직하고 경건한 사람입니다. 당시 하나님께 신실한 사람들은 주로 무화과나무에 가서 기도하며 그곳에서 회당에서 들은 성경말씀을 묵상하곤 했습니다. 그날도 나다나엘은 언제나처럼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주 그곳에서 기도하곤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화과 나무는 특별했습니다. 그것은 단순한 과일 나무 이상이었습니다. 성경은 무화과 나무가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다고 약속하신 땅에서 자라게 될 나무 중 하나로 기록합니다. 또한 성경은 포로된 이스라엘 백성이 구원받은 모습을 무화과 나무에서 쉬는 것으로 묘사합니다. 그리하여 무화과 나무는 하나님의 약속과 구원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 더욱이 무화과 나무는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것에 감사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했습니다.
한편 저 멀리서 한 남자가 나다나엘을 향해서 달려옵니다. 그는 나다나엘의 가까운 친구 빌립입니다. 그 역시도 나다나엘처럼 신실한 사람이었고 성경말씀에 진심인 사람이었습니다. 빌립은 어느 날 성경이 예언하고 있는 그 메시아를 만났습니다. 그분은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었습니다. 빌립은 곧장 이 소식을 나다나엘에게 전하기 위해 급하게 달려온 것입니다.
빌립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그가 세례 요한의 제자였거나 그의 가르침 받았을 수도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의 첫 제자들은 본래 세례 요한의 제자였던 안드레와 요한입니다. 빌립은 안드레와 요한과 가까운 사이였고 안드레와 요한이 예수님의 제자가 된 이후에 예수님의 부르심에 곧 바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이는 빌립이 세례 요한을 통해 또는 그와 가까운 안드레와 요한을 통해서 예수님과 관한 충분한 정보를 접했을 말해줍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에게 다가와 약간은 흥분된 어조로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를 만났다. 그분은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시다’ 달려오느라 아직 숨을 고르지도 못하고 쏟아낸 말에 빌립의 들뜬 기분이 느껴집니다. 그러나 나다나엘은 ‘나사렛’이라는 말을 듣는 순간에 미간을 찌푸립니다. 그리고 다시 냉소적으로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나’
성경 어디에도 나사렛에서 메시아가 나신다는 예언은 없습니다. 성경은 베들레헴과 같은 다윗의 고향에서 메시아 오실 것을 예언했습니다. 더욱이 메시아가 오신다면 다윗의 혈동을 이어서 왕가의 후손으로 오실 것을 당시 사람들은 기대했습니다. 인구가 약 200명 정도 사는 작은 시골마을에 이름도 잘 알려지지 않은 나사렛에서 메시아와 같은 특별한 존재가 나올 것을 어느 누구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빌립은 확신에 찬 어조로 나다나엘에게 말합니다. ‘와서 보라’ 빌립이 이렇게까지 말하자 나다나엘도 호기심이 생겼습니다. 정말 그가 메시아인지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나다나엘은 빌립을 따라 예수께서 계신 곳으로 갔습니다. 만약 그가 진짜 메시아라면 나다나엘은 오랫 동안 기다려왔던 분을 만나는 것이고요. 반드시 그분을 위해 남은 평생을 다 바칠 것을 다짐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는 영적인 측면에서 뿐만 아니라 정치적인 측면에서도 이스라엘을 구원할 존재로 여겨졌습니다. 당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로마 제국의 식민지배를 받던 때였습니다. 이와 같은 식민 지배의 역사는 오래 계속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왕국이던 시절 나라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기원전 586년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때로부터 기원후가 시작이 되니까요. 약 600년 이상을 이스라엘 백성들은 포로로 또는 식민지배 상태에 머물러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중간에 약 100년 정도의 독립기간을 가지지만 그로부터 오랫동안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게 됩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의 오심은 그들을 식민지배하고 있는 세력으로부터 구원을 받게 됨을 기대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메시아의 오심은 해방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되는 복된 날입니다. 또 이 일에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참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마치 우리가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을 했던 것처럼요.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메시아와 함께 나라를 재건하는 일은 그들이 평생을 바쳐도 아깝지 않다고 생각한 순고한 사명입니다.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의 곁에는 일찍이 제자가 된 안드레와 요한과 베드로가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찾아온 나다나엘을 보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다.’ 이 말을 듣고 나다나엘은 어떻게 자신을 아는지를 묻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네가 무화과 나무 아래에 있을 때 보았다’ 이에 나다나엘은 깜짝 놀라며 답합니다. ‘선생님,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
어쩌면 이 장면이 다소 뜬금없다고 느껴지실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과 나다나엘이 뜻 모를 선문답을 하는 것같이 느껴지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이런 의미가 숨겨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에게 하신 말씀은 사실 이런 겁니다. ‘내가 너를 잘 안다, 너의 은밀한 것까지도 안다’라는 뜻입니다.
나다나엘을 가리켜 참 이스라엘 사람이라고 또 간사한 것이 없는 사람이라고 한 것은요. 예수님께서 그의 내면을 잘 알고 계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더욱이 무화과 나무는 일종의 기도의 골방같은 곳입니다. 하나님께 은밀히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 곳이지요. 그래서 무화과 나무 아래서 보았다는 것은요. 예수님께서 나다나엘의 깊은 속내까지도 알고 계심을 뜻합니다.
나다나엘은 이를 통해 예수님이 참으로 성경이 증언하고 자신이 오랫동안 기다려온 메시아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하여 나다나엘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이스라엘을 다스릴 왕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요. 예수님은 우리를 너무나 잘 아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우리말 속담에 그런 말이 있습니다. ‘열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라는 말이요. 사람의 속은 이해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다는 이야기인데요. 달리 말하면 우리가 사람의 속을 이해하게 되면 그 사람을 깊이 이해하는 것이 됩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는 나다나엘의 겉모습뿐만 아니라 그의 내면과 더 깊은 속내까지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를 향해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사람이 언제 변화할까요? 자신의 마음을 깊이 알아주고 공감해주는 상대를 통해서 변화합니다.
중국의 유명한 고전 중에 삼국지가 있습니다. 그 이야기 중에 마음을 알아주는 것이 얼마나 큰 변화를 이루게 되는지 알게 해주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에 해당하는 유비는 한때 제갈량의 마음을 얻기 위해 ‘삼고초려’ 합니다. 이는 유비가 제갈량의 집을 직접 세 번이나 찾아간 것을 뜻합니다. 당시 유비는 황제의 숙부로 알려질만큼 세간에 명성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유비보다 나이도 어리고 명성도 없는 제갈량을 책사로 삼기 위해 유비는 무려 제갈량에게 세번이나 숙이고 들어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유비의 노력이 엄청난 결과가 되어서 돌아옵니다. 제갈량의 마음을 얻은 유비는요. 결코 자신의 능력으로 이룰 수 없었던 큰 세력을 일구게 됩니다. 그것이 제갈량의 ‘천하삼분지계’ 덕분인데요. 이는 당시 중국을 삼국시대로 이끌고 갔던 재갈량의 놀라운 계책입니다. 변변찮은 세력과 권세 없었던 유비였지만 쟁쟁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삼국의 한 축을 담당할 세력을 제갈량을 통해 얻게 됩니다.
이렇게 유능한 제갈량이었기 때문에 더 힘있는 세력에 붙었다면 아마 제갈량은 천하통일을 이룰 수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제갈량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유비를 위해서 비록 더 큰 뜻은 펼치지 못했지만, 최선을 다해 끝까지 목숨바쳐 재능을 발휘하였습니다. 유비가 제갈량에게서 얻은 마음은 이렇게 큰 가치를 만들어 냅니다.
이처럼 마음을 얻으면 놀라운 변화를 경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깊이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 마음을 속속들이 잘 아시는 분입니다. 그분께 온전히 나아감으로 우리는 변화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통해 우리의 실력으로 이룰 수 없는 새로운 삶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바라건대 오늘 이러한 주님을 만나시길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을 깊이 이해하시는 주님을 통해 우리의 한계를 넘어서는 멋진 삶을 이루시기를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