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기로 오신 예수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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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본문: 이사야 9:2-7(구약 978쪽)
설교제목: 아기로 오신 예수님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반갑습니다.
주님의 한량없는 은혜가 늘 충만하시길 축복합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이번 주에는 성탄일이 있습니다. 이 땅에 아기로 오신 예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며 기념하는 날이지요. 그런데 예수께서 아기로 이 세상에 오신다는 것은 이미 예수님이 오시기 약 700년 전에 있었던 예언에서 비롯됩니다. 그 예언이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성경 이야기입니다. 이 예언이 담고 있는 역사적인 이야기는 이러합니다.
기원전 8세기 지금으로부터 약 27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남쪽 왕국에는 무거운 침묵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는 전령들이 전한 소식 때문입니다. 그 소식에 따르면, 이스라엘의 북쪽 왕국이 아람과 손을 잡았고 그들이 군사를 이끌로 남쪽 왕국의 수도인 예루살렘을 치려고 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두 개의 나라가 연합해서 한 개의 나라를 공격하는 상황입니다. 아무래도 1대1도 아니고 2대1인 상황은 매우 불리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남쪽 왕국의 왕은 아하스입니다. 그는 이 상황에 어찌할바를 모르며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계속해서 신하들과 대책회의를 하지만 마땅히 좋은 대안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 무렵 하나님은 이사야 예언자를 통해 아하스 왕에게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그 대략은 이러합니다. ‘결코 두려워할 것이 없으며,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혹시라도 이것이 의심스럽다면 확실한 표징을 보여줄 것이니 무엇이든지 청하라고 합니다. 아하스 왕은 어떻게 자신이 하나님을 시험할 수 있겠냐며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사실 아하스 왕의 속내는 이러했습니다. 하나님보다 더 확실한 도움이 필요하다. 그리고 그 무렵에 아하스가 이 문제를 놓고 계속 고민하다가 도달하게 된 해결책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 당시 급성장하고 있던 앗수르 제국과 손을 잡는 것입니다. 앗수르 제국은 이스라엘 북쪽 왕국과 아람보다 더 북쪽에 위치한 나라입니다. 위치상으로도 그렇지만 분명 두 세력을 견제하기에 충분한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마도 이스라엘 남쪽 왕국이 앗수르 제국과 손을 잡을 수 있다면 당면한 위기상황은 극복될 것입니다.
그래서 아하스 왕은 겉으로는 이사야 예언자의 말에 겸손하게 반응하듯 했지만요. 실은 하나님을 믿기보다는 앗수르 제국을 더 믿고 있었습니다. 더 정확하게는 앗수르 제국만이 그들을 위기에서 구원해 줄 것으로 알았습니다. 그리하여 앗수르 제국에 조공을 바치고 그들이 믿는 신을 위한 제단도 예루살렘 성전에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아하스 왕의 바람처럼 앗수르 제국이 이스라엘의 북쪽 왕국과 아람의 연합군을 공격하여서 그들을 멸망시켜 버렸습니다. 이로써 아하스 왕의 근심과 걱정은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얼마나 지나지 않아서 자진해서 호랑이 굴에 들어간 꼴이 되고 말았습니다. 왜냐하면, 날이 갈수록 앗수르 제국은 아하스에게 더 많은 것들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이스라엘의 남쪽 왕국은 앗수르 제국의 속국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이와 같은 어두운 시기에 이사야 예언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 말씀인데요. 이사야 9장 2~7절을 다시금 같이 읽습니다.
이사야 9:2-7(구약 978쪽)
2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
3 주께서 이 나라를 창성하게 하시며 그 즐거움을
더하게 하셨으므로 추수하는 즐거움과 탈취물을 나눌
때의 즐거움 같이 그들이 주 앞에서 즐거워하오니
4 이는 그들이 무겁게 멘 멍에와 그들의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주께서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5 어지러이 싸우는 군인들의 신과 피 묻은 겉옷이
불에 섶 같이 살라지리니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7 그 정사와 평강의 더함이 무궁하며 또 다윗의 왕좌와
그의 나라에 군림하여 그 나라를 굳게 세우고
지금 이후로 영원히 정의와 공의로 그것을 보존하실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라
요약하면 이러 것입니다. 아하스 왕의 어리석은 선택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흑암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들 가운데 빛을 보내셔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한 아기를 통해 이뤄질 일입니다. 그 아기를 통해 세상의 압제자들은 사라지고 평화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를 메시아 곧 구원자로 불렀습니다. 그리고 그가 약 700년이 지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우리가 경배하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런데 제가 이 메시아 예언을 살피면서 이상하게 여긴 구절이 있습니다. 6절인데요. 제가 다시 읽습니다.
이사야 9:6(구약 978쪽)
6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메시아가 ‘아기’로 온다는 것이 이상하다 여겨졌습니다. 아기가 세상을 구원한 존재로 보이지는 않는데 말입니다. 더욱이 이 아기에게 ‘정사 메었다’라고 말하는데요. 이는 통치자들이 어깨에 두르는 띠를 말하는 것으로 통치권과 지배력을 상징합니다. 잘 생각해 보세요. 아기에 무슨 힘과 권세가 있을까요? 또 어떻게 아기가 세상을 구원한 존재처럼 보일까요? 도무지 이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 그림입니다. 마치 근육이 단단하게 붙은 아기를 그려놓은 것처럼 어색하고 잘 납득되지 않는 그림입니다.
사실 여기에는 이러한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 일 곧 구원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 이뤄지는 것임을 말해줍니다. 또한 하나님의 계획은 인간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앞서 아하스 왕의 모습처럼 인간적인 생각에서는 힘쎈 나라에 붙어서 안전을 도모하는 것이 더 좋은 계획이고 좋은 선택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이 구원을 가져다 주지 못함을 말씀하십니다. 구원은 인간의 능력 밖에 있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인간의 방식과는 대조를 이루는 하나님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가령, 성경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 다윗이라는 소년이 거인 장수 골리앗을 이기게 하십니다. 또 불임이던 한나를 통해 사무엘이 태어나고요. 그 사무엘을 통해 다윗이 왕으로 세워집니다. 우리의 생각에는 불가능하거나 할 수 없다고 여겨지는 지점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심지어 예수님도 가장 낮고 천한 곳으로 임하셔서 세상의 구원자가 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계획과 뜻은 우리의 상식과 생각을 초월하여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십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을 통해 깨닫게 됩니다. 우리의 구원이 바로 여기에 있음을 말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 우리는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일하시는 놀라우신 하나님의 섭리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매년 우리는 아기 예수님의 탄생과 이 땅에 오심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건을 잊지 않고 기억함으로 우리의 구원이 무엇에서 비롯되었는지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강력하고 힘있는 어떤 것도 우리를 구원하지 못합니다. 단지 아기로 오신 그 분만이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보다 정확하게는 그 아기를 보내신 하나님만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바라건대, 성탄을 맞이하면서 아기로 오신 예수님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이를 통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을 노래함으로 주께 감사하는 성탄일을 맞이하시길 간절히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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