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영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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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6:21–29
“마침 기회가 좋은 날이 왔으니 곧 헤롯이 자기 생일에 대신들과 천부장들과 갈릴리의 귀인들로 더불어 잔치할새 헤로디아의 딸이 친히 들어와 춤을 추어 헤롯과 그와 함께 앉은 자들을 기쁘게 한지라 왕이 그 소녀에게 이르되 무엇이든지 네가 원하는 것을 내게 구하라 내가 주리라 하고 또 맹세하기를 무엇이든지 네가 내게 구하면 내 나라의 절반까지라도 주리라 하거늘 그가 나가서 그 어머니에게 말하되 내가 무엇을 구하리이까 그 어머니가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구하라 하니 그가 곧 왕에게 급히 들어가 구하여 이르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얹어 곧 내게 주기를 원하옵나이다 하니 왕이 심히 근심하나 자기가 맹세한 것과 그 앉은 자들로 인하여 그를 거절할 수 없는지라 왕이 곧 시위병 하나를 보내어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 명하니 그 사람이 나가 옥에서 요한을 목 베어 그 머리를 소반에 얹어다가 소녀에게 주니 소녀가 이것을 그 어머니에게 주니라 요한의 제자들이 듣고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니라”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게 영향을 받고, 또 누군가에게는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갑니다. 사람은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유기적으로 살고 있기에 어떤 누구에게도 영향을 주지도 않고, 받지도 않는 삶을 산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만큼 어리석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는 알게 모르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수많은 영향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 세상에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한 사람의 영향력”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존재인지 깨달으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복된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본문의 단락이 시작되는 14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나타내시며, 본격적으로 사역을 시작하시자 예수님에 대한 소문이 퍼져나가기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 병을 고치시고, 능력을 행하신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예수님에 대해서 사람들이 세례 요한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엘리야가 내려온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옛 선지자 중 하나와 같이 선지자가 나타난 것이라고 말하였습니다. 이러한 소문은 헤롯에게도 들리게 되는데, 헤롯은 이 소문을 들으면서 중요한 말을 합니다. “내가 목을 벤 요한 그가 살아났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은 자연스럽게 세례 요한이 죽임당하게 된 장면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이 장면 속에서 중요한 인물이 몇 사람이 나옵니다. 첫 번째 인물은 ‘세례 요한’입니다. 세례 요한은 잘 아는 것처럼, 주님의 길의 길을 예비하는 자였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도 당시에 예수님 못지않은 유명 인사였습니다. 백성들은 세례 요한을 메시아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백성들의 생각을 알게 된 요한은 자신이 누군지를 분명하게 선포합니다. 나는 그저 메시아가 오는 길을 예비하는 사람일 뿐이고, 나보다 더 위대한 이가 오시는데, 나는 그 분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진짜 메시아이신 예수님이 세례 요한에게 오셨을 때, 어떻게 내가 주님께 세례를 줄 수 있냐면서 황송해했습니다. 그리고 자기를 따르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로 가는 것도 붙잡지 않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이런 세례요한이 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그 이유는 헤롯과 헤로디아의 결혼에 대해서 공개적으로 비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헤롯과 헤로디아의 결혼은 자신들의 정치적 입지와 명예를 더 확고히 하기 위한 수단으로 헤롯은 헤로디아의 가문이 필요했고, 헤로디아는 헤롯의 정치적 야욕과 입지를 이용하기 위한 상호 필요의 의한 결혼이었습니다. 더군다나 헤로디아의 첫 남편인 빌립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재혼이었기에 사회적으로도 비난받는 일이었습니다. 이러한 모습을 본 세례 요한은 이복동생의 아내를 취하는 것이 옳지 않고 공개적으로 비난했고, 그의 말을 지지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헤로디아는 자신의 결혼을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계속 자유롭게 놔두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고, 헤롯 자신도 자신을 비난하는 세례 요한을 그냥 두는 게 편하지 않았기에 자신들을 위해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그런데 헤로디아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는 것으로는 성에 차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을 두 눈으로 확인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헤롯은 세례 요한을 죽이는 것에 반대했습니다. 20절의 말씀을 보면, 헤롯이 생각하기에 세례 요한은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습니다. 비록 자신을 비난했던 사람이었지만, 그의 말을 들을 때에 크게 번민하면서도 달갑게 들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에는 어떤 대화가 오고 갔는지, 어떤 상황이었는지 자세하게 기록하지 않아서 알 수 없지만, 옥에 갇혀 있는 그 상황에서도 세례 요한은 헤롯에게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헤롯은 요즘 표현으로 그런 세례 요한의 선한 영향력에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본문에는 말도 안 되는 영향력을 끼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얼마나 무서운 영향력을 끼쳤는지 소름이 끼칠 정도였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헤로디아입니다.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둔 걸로는 성에 차지 않았던 헤로디아에게 세례 요한을 죽이기 딱 좋은 날이 찾아왔습니다. 그날은 헤롯의 생일이었습니다. 헤롯은 자신의 생일에 고관대작들을 모두 초청해서 성대하게 잔치를 열었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잔치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얼마나 필수요소가 되었으면 사자성어로 고정해 놨을까요? 바로 “음주가무”입니다. 잔칫날에 술과 노래가 빠지면 잔치에 흥이 오르지 않습니다. 헤롯과 고위 관료들도 술잔을 들이키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면서 왁자지껄하게 떠들어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잔치의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때, 화려한 조명을 받으며 아름다운 소녀가 매력적인 춤을 추면서 연회장으로 들어왔습니다. 그 소녀는 바로 헤로디아의 딸이었습니다. 성경에서는 헤로디아의 딸이라고만 기록되어 있지만, 유대 역사를 통해서 그 이름이 ‘살로메’라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살로메는 헤로디아의 딸이지만, 헤롯의 딸은 아닙니다. 전 남편인 빌립이 살로메의 친아빠입니다. 헤로디아가 재혼하면서 데리고 온 의붓딸이었습니다.
잔치의 분위기는 무르익었고, 그 분위기를 한껏 뛰어주며, 헤롯의 체면을 세워준 것은 훌륭한 춤사위를 보여준 살로메였습니다. 기분이 한껏 좋아진 헤롯은 훌륭한 춤으로 자신의 생일을 빛내준 살로메에게 네가 원하기만 한다면 이 나라의 절반이라도 너에게 떼어 주겠다고 호언장담하며 맹세했습니다. 헤롯의 이러한 이야기를 들은 살로메는 곧바로 자신의 어머니인 헤로디아에게 달려가서 헤롯에게 무엇을 요구하면 좋겠냐고 물어봅니다. 살로메의 말을 들은 헤로디아는 “이때다!” 싶었습니다. 자신이 그토록 죽이고 싶어 했던 세례 요한을 죽일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헤로디아는 살로메에게 무시무시한 말을 합니다. 헤롯에게 가서 세례 요한의 머리를 쟁반에 담아서 달라는 요구를 하라는 것입니다. 이게 엄마가 자기 딸에게 할 말인가요?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살로메는 헤롯에게 가서 그 말을 그대로 합니다. 살로메의 말을 들은 헤롯은 ‘아차’ 싶었습니다. 고위 관료 앞에서 호언장담하면서 말한걸, 번복할 수도 없고, 거룩한 사람인 세례 요한을 죽이는 것도 너무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헤롯이 심히 근심했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헤롯에게 세례 요한은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맹세한 말을 금방 번복한다면 고위 관료들에게 자신이 맹세한 말도 못 지키는 가벼운 사람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기에,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위해 세례 요한의 머리를 가져오라고 명령했습니다.
이 본문을 읽으면서 저는 ‘헤로디아가 얼마나 독한 엄마였을까? 평소에 얼마나 독한 모습으로 살아왔길래, 살로메도 이렇게 독한 딸로 성장했을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분명 살로메를 “소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보통 성인이 된 여자를 소녀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렇다는 건 이 사건 당시 살로메의 나이는 20세 이하의 청소년이었다는 겁니다. 꽃다운 소녀가 왕의 친위대로부터 세례 요한의 머리가 담긴 피가 가득한 쟁반을 자기 어머니 헤로디아에게 들고 갔다고 생각하니 너무 소름이 끼쳤습니다. 보통의 소녀라면 그런 건 쳐다보지도 못합니다. 그런 건 만지지도 못합니다. 죽은 사람의 머리가 놓여있는 쟁반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리는 게 당연한 모습 아닌가요? 그런데 살로메는 그걸 들고 어머니에게로 갔습니다. 살로메는 자신의 안위를 위해서라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기 위해서라면 그 어떤 권모술수라도 사용할 수 있었던 어머니 헤로디아를 보면서 자랐습니다. 그런 독한 엄마 밑에서 독한 딸이 나왔다는 것입니다.
11여선교회 헌신예배에서 왜 이렇게 무시무시한 본문을 가지고, 이렇게 무서운 설교를 하고 있을까요? 11여선교회 헌신예배에서 함께 나눌 말씀을 묵상하다 보니 이 본문으로 말씀을 나누면 좋겠다는 감동이 생겼습니다. 가정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자녀들의 엄마로 살아가는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선한 영향력을 나타내며 살아가는 11여선교회 회원분들의 삶이 너무 귀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선한 영향력을 통하여 자녀들의 삶이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되어야 한다고 기도하게 되었습니다. “자식은 부모의 거울”이라는 말이 괜히 나온 말이 아닙니다. 부모가 어떠한 삶의 모습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자식들도 같은 모습으로 따라오게 되기 때문입니다.
현재 전 세계 기독교 인구를 26억 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영향력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고, 26억 명이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 수많은 무리에서 12명을 택하셔서, 그들을 집중적으로 가르치셨습니다. 그 12명은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의 영향력을 받으면서 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체험한 제자들은 자신들을 변화시킨 예수님을 세상에 전하는 삶을 살아갔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에서 핍박을 견디며 살아가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세상과는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갔습니다. 세상은 그들에게 ‘그리스도인’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삶이 쉬워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이기며 살아가는 건 여전히 힘들었지만, 그들은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끼치며 살아갔고, 그 선한 영향력은 지금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왔습니다.
나 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선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고, 악한 영향력을 줄 수 있는 존재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내가 예수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가족에게, 나의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스도인으로서 선한 영향력을 미치며 살아갈 수 있다면, 그러한 삶이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진솔한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입니다. 오늘 헌신예배를 드리는 11여선교회와 온 성도가 예수님을 닮아가며, 우리의 모습에서 예수님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므로 우리 주변에 선한 영향력을 나타낼 수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세워져 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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