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인플레이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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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가에 대한 두려움
물가에 대한 두려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은 종이가 아닙니다. 돈은 신뢰를 담은 약속입니다. 내가 지폐를 내밀면, 그 종이 자체가 귀해서가 아니라 “이걸 다른 사람도 받아줄 것”이라는 사회의 신뢰가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돈은 세 가지 일을 합니다. 거래를 가능하게 하고, 가격을 매겨 비교하게 하고, 오늘의 노동을 내일로 옮겨 저장하게 합니다.
그런데 돈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한 가지 균형을 기억해야 합니다. 돈의 양과 물건의 양입니다. 돈이 실제 생산보다 더 빠르게 늘어나고, 그 돈이 시장에서 실제로 쓰이기 시작하면, 같은 물건을 두고 더 많은 돈이 몰리면서 전반적인 가격이 오릅니다. 반대로 생산과 공급이 넉넉해지면 가격은 내려갈 가능성이 커집니다. 결국 물가는 숫자가 아니라, 돈과 물건의 균형, 그리고 그 뒤에 있는 신뢰의 상태를 말해 줍니다.
여기서 우리 삶에 큰 파문을 만드는 상징이 있습니다. 금은 불안할 때 사람들이 붙드는 ‘신뢰의 자산’처럼 움직이고, 석유는 물류와 생산의 원가를 흔드는 ‘생활의 혈관’이라 가격이 오르면 장바구니 전체를 밀어 올립니다. 그리고 세계의 공용어 같은 화폐가 달러인데, 국제무역과 원자재 거래의 중심에 있으니 달러 가치의 변화는 멀리서도 우리 생활비에 파도처럼 닿습니다.
오늘 본문 열왕기하 6–7장은, 이 원리가 극단으로 치달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 줍니다. 한 도시가 포위되자 공급이 끊기고, 시장이 무너지고, 나귀 머리와 비둘기 똥 같은 것에까지 값이 매겨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포위 한가운데서 이렇게 선포하십니다. “내일 이맘때.” 오늘 우리는 이 이야기 속에서, 돈의 폭풍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 나라의 재정 원리를 붙들어 보겠습니다.
포위된 도시의 물가
포위된 도시의 물가
본문: 열왕기하 6:24–7:2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방금 나눈 것처럼 돈은 신뢰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은 공기처럼 보이지 않다가, 위기 때 가장 먼저 깨집니다. 오늘 본문은 그 신뢰가 붕괴될 때 “시장”이 아니라 “사람”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1) 포위가 시작되면, 먼저 가격이 죽고 다음에 마음이 죽습니다 (6:24–25)
1) 포위가 시작되면, 먼저 가격이 죽고 다음에 마음이 죽습니다 (6:24–25)
“그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의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쌌더니.”
포위는 칼을 휘두르기 전에 길을 끊습니다. 길이 끊기면 곡식이 끊기고, 곡식이 끊기면 가격이 비명을 지릅니다.
그래서 성경은 충격적인 가격표를 우리 앞에 내밉니다.
나귀 머리, 비둘기 똥 같은 것에까지 값이 매겨집니다.
성도 여러분, 이 장면은 경제학으로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공급이 막히고, 공포가 퍼지고, 사람들은 “내일 더 비싸질 것”이라 믿으며 더 움켜쥐고—그 순간 가격은 폭등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보여 주려는 핵심은 그보다 더 깊습니다.
물가의 폭등은 단지 돈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붕괴입니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고, 내일을 믿지 못하고, 마침내 하나님도 신뢰하지 못하게 되는 상태.
인플레이션의 가장 무서운 칼날은 지갑을 베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잘라내는 것입니다.
2) 위기가 깊어지면, 돈보다 먼저 윤리가 무너집니다 (6:26–30)
2) 위기가 깊어지면, 돈보다 먼저 윤리가 무너집니다 (6:26–30)
왕이 성벽 위를 지나갈 때 한 여인이 부르짖습니다.
그 절규의 내용은 너무 비참해서 우리가 쉽게 입에 담을 수조차 없습니다.
기근은 배고픔만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경계를 허물어 버립니다.
여기서 우리는 ‘성경적 재정 원리’의 첫 단추를 다시 꿰게 됩니다.
재정은 단지 관리 기술이 아닙니다. 재정은 마음의 방향입니다.
돈이 부족할 때 드러나는 것은 “계좌”가 아니라 “심장”입니다.
이 도시는 먹을 것이 줄어든 만큼, 사랑이 줄어들고, 신뢰가 줄어들고, 서로를 향한 책임이 줄어듭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은 재정을 통해 우리를 벌주려 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재정을 통해 우리의 우상을 드러내십니다.
“네가 정말 의지하는 것이 무엇이냐?”
“네 평안은 어디에 묶여 있느냐?”
포위된 사마리아는 말합니다.
“우리의 평안은 하나님이 아니라, 공급망이었다.”
그리고 그 공급망이 끊기자, 도시는 속절없이 무너집니다.
3) 왕의 반응: 통곡은 하지만 회개는 못하는 사람의 경제 (6:31–33)
3) 왕의 반응: 통곡은 하지만 회개는 못하는 사람의 경제 (6:31–33)
왕이 옷을 찢습니다. 겉옷 안에 굵은 베옷을 입고 있습니다.
종교적 외형은 있습니다. 슬픔의 표정도 있습니다.
그런데 왕이 하는 말은 이렇습니다.
“내가 오늘 엘리사의 머리를 그 몸에 붙여 두면 하나님이 내게 벌을 내리실 것이다.”
고통의 화살이 하나님께로 날아가지 못하고, 하나님의 사람에게 꽂힙니다.
여기서 성경은 위기 속 인간의 오래된 습관을 보여 줍니다.
회개 대신 책임 전가, 기도 대신 분노, 신뢰 대신 희생양.
성도 여러분, 이것이 위기 속 ‘비성경적 재정 반응’입니다.
힘들수록 사람은 더 움켜쥐고, 더 공격하고, 더 계산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움켜쥘수록 마음은 더 가난해집니다.
돈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신뢰가 메말라서 가난해집니다.
4) 엘리사의 선언: “내일 이맘때”는 경제 예측이 아니라 복음 선포입니다 (7:1)
4) 엘리사의 선언: “내일 이맘때”는 경제 예측이 아니라 복음 선포입니다 (7:1)
그때 엘리사가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리라.”
성도 여러분, 이것은 물가 전망 보고서가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주권 선언입니다.
포위는 말합니다. “길이 없다.”
시장 공포는 말합니다. “내일은 더 비싸질 것이다.”
사람의 계산은 말합니다. “끝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일.”
하나님은 ‘막힌 시간’을 여실 수 있는 분입니다.
여기서 성경적 재정 원리의 중심이 다시 섭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청지기입니다.
청지기란 무엇입니까?
내가 세상의 주권을 쥐고 있다는 착각을 내려놓고,
하나님이 공급의 주인이시며 내일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적 재정 원리는 결국 이것입니다.
돈의 문제는 통제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다.
“내가 다 쥐고 있어야 산다”는 불신에서
“하나님이 내일을 여신다”는 믿음으로 옮겨 가는 것.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재정의 영성입니다.
5) 불신의 한마디: “하늘에 창을 낸들” (7:2)
5) 불신의 한마디: “하늘에 창을 낸들” (7:2)
그런데 왕의 고관이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이 말은 지식의 부족이 아닙니다.
이 말은 신뢰의 붕괴입니다.
현실이 너무 단단해 보여서, 말씀을 믿을 자리가 사라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여기서 오늘 우리의 질문이 태어납니다.
인플레이션의 시대, 불확실성의 시대에
우리는 어떤 말을 더 자주 하고 있습니까?
“그럴 리 없어.”
“이 세상은 원래 그래.”
“믿음은 믿음이고, 돈은 돈이지.”
그러나 엘리사는 말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
말씀이 경제를 무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말씀은 경제 위에 의미의 뿌리를 내린다는 뜻입니다.
돈이 신뢰의 약속이라면, 복음은 더 깊은 약속입니다.
인플레이션이 “무엇이 너를 지킬 수 있느냐” 묻는다면,
복음은 조용히 대답합니다.
“내일은 네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다.”
왕이 그의 손에 의지하였던 그의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그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가 말한 대로라
장관은 하나님의 말씀을 불신했고, 그 불신이 그대로 그에게 심판이 되어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때 그는 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다음 단락으로 연결되는 짧은 다리 문장)
(다음 단락으로 연결되는 짧은 다리 문장)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은 아직 결론을 보여 주지 않습니다.
다만, 포위 한가운데서 하나님이 이미 말씀으로 “내일”을 여셨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음 장면에서 우리는 놀라운 방식으로 그 말씀이 성취되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이 자리에서 먼저 붙듭시다.
재정은 기술이기 전에 신앙이고, 예산은 계산이기 전에 예배입니다.
포위 속에서도 하나님은 “내일 이맘때”를 말씀하십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