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의 능력

주현절 후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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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십자가의 능력

본문: 고린도전서 1장 10-18절

찬송: 415장 십자가 그늘 아래

말씀의 문을 열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난 한 주간 정말 추웠습니다. 갑작스럽게 몰아친 매서운 한파와 온 세상을 하얗게 뒤덮은 눈발을 보며, 겨울의 위력을 실감한 한 주였습니다. 옷깃을 아무리 여며도 파고드는 찬바람 때문에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 유난히 바쁘셨을 줄 압니다. 이렇게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는 계절이 되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따뜻한 아랫목과 온기 가득한 이불 속을 그리워하게 됩니다.
어린 시절, 지금처럼 난방시설이 좋지 않던 그 시절의 겨울밤을 기억하십니까? 웃풍이 센 방에서 어머니는 늘 장롱 깊숙한 곳에서 두툼하고 묵직한 솜이불을 꺼내어 우리 남매들을 덮어주셨습니다. 처음 차가운 이불 속으로 발을 쑥 집어넣을 때는 그 한기에 몸이 절로 움츠러들지만, 이내 형제들과 살을 맞대고 그 묵직한 이불 아래 나란히 누워 있으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서로의 체온이 이불 안에 고이면서 어느새 방 안의 추위는 까마득히 잊히고, 천국 같은 온기가 온몸을 감싸 안던 그 평안한 순간 말입니다.
그 이불 안이 그토록 따뜻했던 비결은 단순히 솜이 두꺼워서만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의 이불’ 아래 서로의 체온을 나누며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 이불 속에서 다툼이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내가 더 춥다"고, "이건 내 몫이다"라고 고집하며 이불귀를 내 쪽으로 세게 잡아당기기 시작하면, 그 순간 온기는 깨어집니다. 내가 더 덮으려고 이불을 당기는 그 찰나에 내 옆의 형제는 찬바람에 노출되어 추위에 떨게 됩니다. 서로 더 많이 차지하려고 이불을 잡아당기다 못해 천이 찢어지기라도 하면, 그 안에는 더 이상 아무런 온기도 남지 않게 됩니다.
오늘 사도 바울이 마주한 고린도 교회의 모습이 바로 이와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라는 거대한 솜이불을 덮고 시작한 공동체였지만, 어느덧 그들은 서로 이불을 자기 쪽으로 잡아당기며 찢어버리고 있었습니다. 밖은 여전히 영하의 추위인데, 이불마저 찢어버린 채 서로를 탓하며 떨고 있는 이 안타까운 모습은 오늘 이 시대의 많은 교회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이 ‘찢겨진 이불’과 같은 현실 앞에서, 어떻게 다시 그 따뜻한 십자가의 온기를 회복할 수 있을지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왜 우리의 이불은 찢어졌는가?

오늘 본문 10절에서 바울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곡하게 권면합니다.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여기서 ‘분쟁’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스킴스마타(σχίσματα)'**입니다. 이는 단순히 의견이 조금 다른 정도를 말하는 게 아닙니다. 이 단어의 본래 의미는 **'천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제 기능을 상실한 상태'**를 뜻합니다. 즉, 하나님이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덮어주신 은혜의 이불인간의 자존심과 욕심에 의해 찢겨 나가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비극적인 상태를 말합니다.
왜 이런 비극이 고귀한 교회 안에서 일어났을까요? 12절을 보면 고린도 교인들은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속했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위대한 영적 지도자들을 존경하고 따르는 척하지만, 실상은 그 사람들의 이름을 빌려 **'나의 우월함'**을 증명하려 했던 것입니다. "내가 따르는 선생이 더 지혜로우니, 그를 따르는 나도 너보다 수준 높은 신앙인이다”라는 교만이 그들 사이에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파고들었습니다.
당시 고린도 사회는 누가 더 논리적인가, 누가 더 세련되게 군중을 휘어잡는가를 따지며 지적 서열을 매기는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습성이 교회로 그대로 들어왔습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닮아가는 경건의 연습이 아니라, 누가 더 신학적으로 깊은지, 누구의 방식이 더 옳은지를 겨루는 **‘지적 자랑’**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내가 더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상대방을 깎아내리고 이불을 내 쪽으로 세게 잡아당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지식은 뜨거워졌을지 모르고 논리는 정교해졌을지 모르나, 정작 공동체의 온도는 급격히 식어갔습니다.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형제를 밀어내는 순간, 우리 공동체의 이불은 여지없이 찢어집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슴이 차갑고 시린 이유는, 십자가라는 거대한 은혜의 이불이 아니라 '나의 옳음'이라는 얇고 날카로운 홑이불을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모든 자랑이 멈추는 자리

우리는 왜 이토록 이불을 내 쪽으로 당기는 일에 집착할까요? 그 뿌리에는 우리 마음 깊은 곳에 '자기 중심성'이라는 교만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은 끊임없이 표적을 구했습니다. 신앙을 통해 내 병이 낫고, 사업이 번창하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성공을 손에 쥐는 것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믿었습니다. 헬라인들은 지혜를 구했습니다. 남들보다 더 많이 깨닫고 세상을 관통하는 이치를 소유하여 지적 우월감을 느끼는 것을 구원이라 여겼습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서도 이런 안타까운 이야기들이 종종 들려오곤 합니다. "우리 애가 신앙생활 잘해서 명문대에 갔다"는 것이 우리의 표적이 되고, "나는 이 교회의 개척 멤버로서 누구보다 교회를 잘 안다"는 것이 우리의 지혜가 됩니다. 학벌, 재산, 자녀의 성공, 심지어는 교회 내에서의 직분과 경력까지도 우리는 십자가보다 더 신뢰하는 이불로 삼으려 합니다. 하지만 여러분, 이런 '나의 조건'으로 만든 이불은 결코 영혼의 추위를 막아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그것은 형제를 차갑게 정죄하고 편을 가르는 가시 돋친 돗자리가 될 뿐입니다.
사도 바울은 17절에서 단호하게 선언합니다.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나의 지능과 경험을 자랑하는 순간, 십자가는 그 설 자리를 잃고 맙니다. 십자가는 세상의 눈으로 볼 때 가장 미련한 것이자 수치스러운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자기의 생명을 보존하려 애쓰지만, 십자가는 자기를 죽여 남을 살리는 역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제 정직하게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의 온기만으로는 이 차가운 세상을 단 1분도 견딜 수 없는 가련한 존재들입니다. 내가 이불을 당기면 당길수록 내 옆의 지체는 추위에 떨게 되고, 나 또한 결국 찢어진 이불 사이로 들어오는 찬바람에 영적인 감기에 걸릴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직면해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 나의 모든 지혜와 표적이 완전히 무력해지는 경험 없이는, 우리는 결코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내 잘난 맛에 사는 우리를 죽이고, 오직 은혜로만 사는 새로운 존재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합니다.

참되고 더 나은 이불, 예수 그리스도

이 절망적인 영적 위기 속에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를 비웃는 전혀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십니다. 그것이 바로 18절에 나오는 '뒤나미스 테우(δύναμις θεοῦ)’, 곧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세상의 능력은 정복하고 빼앗는 힘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은 내어주고 품어주는 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십니까? 그분은 온 우주의 영광을 옷 입으신, 지혜 그 자체이신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추위에 떠는 우리를 덮어주시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영광스러운 옷을 다 벗기시고, 벌거벗겨진 채 십자가의 수치를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불을 독점하려 서로를 할퀴는 우리를 징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자신의 몸이 찢기심으로 우리 모두를 덮어주실 거대한 사랑의 이불이 되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모아 자신의 세력을 과시하려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원수 된 우리를 위해 기꺼이 자신을 내어주신 화목제물이 되셨습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약속하는 십자가의 신비는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장차 우리에게 주실 저 눈부신 하늘나라의 완벽한 미래가, 오늘 십자가를 통하여 우리의 비참한 현실 속으로 뚫고 들어온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들어가게 될 하나님의 나라는 더 이상 추위도, 다툼도, 눈물도 없는 완벽한 평화의 도시입니다. 십자가는 바로 그 나라의 영원한 온기를 오늘 우리의 시린 가슴으로 실어 나르는 거룩한 통로입니다.
겨울밤, 밖은 영하의 혹한이지만 집안에 따뜻한 난로가 있으면 우리는 이미 그 집 안에서 봄을 누립니다. 십자가는 우리 인생 한복판에 놓인 **‘하늘의 난로’**입니다. 우리가 십자가 앞에 설 때, "너는 결코 정죄받지 않는다, 내가 너를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하나님의 확고한 미래의 약속이 오늘 우리를 포근하게 덮습니다. 이미 하늘의 온기가 나를 충분히 적시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이불을 내 쪽으로 당기며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음을 알게 됩니다. 십자가의 온기가 내 안에 가득 찰 때, 비로소 우리는 곁에 있는 형제의 시린 발을 볼 수 있는 마음의 여유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해 우리가 미래에 누릴 그 일치를 오늘 여기서 미리 맛보게 하십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우리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십자가의 능력은 내가 누구보다 더 거룩하고 유능함을 증명하는 힘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진정한 능력은 주님이 나를 위해 이미 모든 것을 내어주셨음을 믿고, 이제는 필사적으로 움켜쥐고 있던 이불귀를 조용히 놓아버리는 능력입니다. 내가 조금 춥고 손해를 보더라도, 내 곁에서 시린 숨을 내쉬는 형제에게 나의 이불을 슬며시 밀어주는 능력입니다.
우리는 한 아버지 아래,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엮인 하나의 이불을 덮고 자는 가족입니다. 십자가라는 거대한 은혜의 이불은 우리 모두의 허물과 상처를 덮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내가 죽어야 교회가 삽니다. 내가 이불을 양보하고 형제의 온기를 지켜줄 때, 비로소 우리 공동체에는 끊어졌던 사랑의 혈관이 다시 돌고 그리스도의 따스한 생기가 흐르기 시작할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일터와 가정에서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곁의 누군가에게 주님의 그 넉넉한 이불을 밀어주십시오. 우리가 그렇게 서로의 체온을 연약함 속에서 나눌 때, 세상은 우리 중앙교회를 보며 "저곳에 진정으로 우리를 살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있구나"라고 고백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완벽한 평화와 안식이, 십자가를 통해 오늘 여러분의 삶과 우리 교회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사랑과 은혜의 하나님,
오늘 선포된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 영혼을 감싸는 따뜻한 이불이 되게 하옵소서. 그동안 내가 옳다 주장하며 이불을 내 쪽으로만 잡아당기던 모든 교만을 십자가 앞에 내려놓습니다. 우리를 위해 기꺼이 찢기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며, 이제는 곁에 있는 형제의 시린 발을 먼저 외면하지 않고 주님의 온기를 나누는 화목의 통로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십자가의 참된 능력이 우리 중앙교회를 다시 온전하게 하실 줄 믿사오며,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헌금기도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우리를 주님의 거대한 사랑의 이불 아래 불러 모아 주시고, 세상을 이기는 십자가의 지혜를 통해 우리의 메마른 가슴을 뜨겁게 하시니 감사드립니다. 인간의 지혜를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기로 다짐하며 드리는 이 예물들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먼저 십일조로 하나님께 드린 [십일조 헌금자 이름] 성도님을 축복해 주옵소서. 이들이 나의 지혜와 노력을 자랑하기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하며 구별하여 드렸사오니, 하늘 창고의 평화를 이들의 삶에 부어주시고 생업의 모든 영역에서 풍성한 은혜의 온기를 누리게 하옵소서. 십자가 앞에 내 자존심을 내려놓고 주님만 의지하는 참된 예배자로 세워주옵소서.
또한 감사헌금을 드린 [감사헌금자 이름] 성도님의 마음을 받아주시고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드린 감사가 마중물이 되어 일상의 시린 순간마다 주님의 따스한 손길을 경험하게 하시고, 어떤 형편에서도 십자가 안에서 자족하며 감사의 제사를 드리는 성숙한 자녀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선교헌금으로 하나님 나라 확장에 동참한 [선교헌금자 이름] 성도님을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이 드린 정성이 세상이 미련하다 비웃는 십자가의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통로가 되게 하시고, 복음의 온기가 필요한 선교지의 틈바구니를 메우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게 하옵소서. 선교사님들에게 하나님의 약속된 미래를 오늘 미리 누리는 산 소망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주정헌금, 구역헌금, 성미, 그리고 여러 모습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섬기는 모든 봉사자를 축복하여 주옵소서. 이들의 수고가 찢어진 그물을 깁고 공동체의 찢긴 이불을 수선하는 하나님의 바느질이 되게 하시며,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의 한 몸을 이루는 기쁨이 충만하게 하옵소서.
하나님, 육신의 연약함과 질병으로 고통받는 성도들을 기억하여 주옵소서. 특별히 요양병원에 계신 김미자 권사님과 김곤엽 집사님, 그리고 모든 환우에게 십자가의 치유하시는 능력인 '뒤나미스'가 임하게 하옵소서. 고통의 찬바람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라는 두툼한 솜이불이 그들을 덮게 하시고, 필요한 모든 회복과 위로를 때를 따라 공급하여 주옵소서.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가 이번 한 주간 십자가의 능력을 삶으로 살게 하옵소서. 내 이불귀를 당기려던 욕심을 내려놓고 형제에게 온기를 밀어주는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며,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완벽한 평화가 오늘 우리의 삶과 교회 공동체 속에 뚫고 들어오는 은혜를 만끽하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덮으시고 진정한 하나 됨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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