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 외에 자랑할 것이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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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갈라디아서는 바울 서신 중에 가장 이른 시기에 쓰여진 서신으로 봅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복음이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강력하고 간결하게 논증하는 서신입니다.
자주 들어서 아시다시피, 갈라디아에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선포되었고, 예수를 구주로 믿는 예수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이 예수 공동체는 아주 새로운 것이어서 아직까지 안정을 이루지는 못하고 있었지요. 그들이 믿는 것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흔들리는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무엇을 믿는지 바닥 기초를 시작하여, 왜 믿는지 또한 어떻게 믿는지와 같은 기둥과 벽과 지붕을 세우는 일들이 아직까지는 엉성하게 구조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느낌은 있지만 뼈대가 없습니다. 그래서, 외부에서 어떤 다른 자극이 주어지면 너무나 쉽게 흔들리고 무너져 버리는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갈라디아 예수 공동체의 기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그 십자가를 기초로 한 신앙이 기둥과 벽과 지붕으로 안정적인 신앙의 집으로 세워지지 않았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에게 예루살렘에서 어떤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으로서 예수님의 아버지인 하나님에 대해서 정통한 사람들입니다. 당시의 시대적 정황으로볼 때에 유대인들은 신앙적으로 다른 이방인들에 비해서 우대받는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8일만에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가지고 자란 유대인들은 비록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복음의 기초를 듣기는 하였지만, 여전히 자신의 종교적 기득권을 포기할 수는 없었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자신의 기득권을 포기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 기득권이 가져다주는 권력과 편이가 있는데 어떻게 그것을 쉽게 내려놓을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서도 그렇고 보통 사람들이 말하는 것도 그렇고, 사람이 쉽게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돈과 권력 아닙니까?
유대계 그리스도인들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의 기초에는 동의하지만, 그들의 기득권을 유지해주던 할례와 율법준수는 포기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할례와 율법준수는 유대인들이 태어날 때부터 해왔던 것이므로, 모든 이방인들에 비해서 가장 유리한 지위를 보장하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갈라디아 예수 공동체에 찾아와서 강권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니 잘 하였다. 그러나, 너희에게 구원을 위하여 부족한 것이 있으니 할례를 받고 율법을 준수하여라.
사실 예수를 믿은 자에게 할례와 율법준수가 무슨 문제가 되겠습니까? 그냥 오케이 까짓고 할례 좀 받지, 그래, 맞아 예수님도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완성하러 오셨다고 하니까 율법을 지키면 되지. 그렇게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어쩌면, 우리가 늘 듣고 있듯이, 예수를 구주로 믿었다고 끝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었으면 그에 걸맞게 삶이 변화되어야 하겠지요. 그것이 성화이고, 그 성화를 구약적 용어로 설명하면 율법준수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할례와 율법준수를 권면하는 것 자체가 나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할례와 율법준수라는 도구를 통해서 육체의 자랑을 삼으려는 것입니다.

“육체로 자랑하려 함이라”라는 표현은 자기가 한 일, 혹은 자기의 혈통을 자랑하고자 한다는 의미입니다.
결국 하나님이 하신 일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들이 한 일을 자랑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본주의를 심각하게 싫어합니다만, 가장 인본주의적인 것은 자기가 한 일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내가 평생에 이룬 일을 자랑하고, 나의 혈통이 무엇이라고 자랑하고, 그렇게 하나님이 하신 일이 아니라 내가 한 것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엘에이에 있는 라티노분들 중에서 스페니쉬를 잘 못하는 분들말고 그들의 자녀로서 영어도 잘하고 스페니쉬도 잘하는 분들이 한국 사람을 싫어하고 때로는 함부로 대하는 경우가 있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이 라티노 분들을 무시하고 함부로 대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라티노 분들보다 더 나은 것이 무엇입니까?
자기 자랑은 결국 자기를 높이고자 하는 태도에서 나옵니다. 나는 대접 받을 자격이 있어. 나는 사람들로부터 인정받을 자격이 있어. 나는 다름 사람들과 달라. 제가 이런 것들을 좋은 말로 표현했지만, 성경은 이런 태도를 “교만함”이라고 표현합니다.
그들의 미혹을 받아 갈라디아 예수 공동체 안에 차별이 발생하기 시작했습니다. 서로 믿음 안에서 한 형제 자매됨을 잃어 버리고 다시 세상처럼 그 공동체 안에서 차별이 생기기 시작한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어른이 있고 젊은 이가 있어 서로 존경하고 사랑하는 일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그것은 분명히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 서로 섬기고 함께 성장하는 그런 건강한 위계질서가 아니라, 그 안에 차별과 통제과 권위주의가 자리잡은 것이 문제가 된 것입니다.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들은 결국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자기를 섬기라는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합니다.

흔히 목사들에게 이렇게 권면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사람을 무서워하지 말고 하나님을 무서워하시고, 사람에게 휘둘리지 마시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하시지요.
반은 맞고 반은 틀립니다.
사람의 입맛에 맞고 귀에 듣기 편한 말만 하지 말고, 그들의 입에 쓰고 귀에 듣기 싫은 말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라고 할 때는 맞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을 무시하라고 한다면 틀린 말이지요.
어쨌든 여기서 좋은 의미를 취하여 자기를 자랑하고 자기를 섬기라고 요구하는 말은 무시하고,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바울은 이렇게 선포하는 것으로 갈라디아서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갈라디아서 6:14 “14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이 구절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한 마디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 자랑을 모두 십자가에 못박았다는 것입니다. 이전에 사람들 앞에서 자기를 높이고자 내세웠던 세상의 모든 것들을 버렸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세상의 가치관으로 살지 않겠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그는 오직 자랑할 것이 자기가 행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행하신 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라고 선언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의 나된 것은 주의 은혜라. 내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가 된 것은 나의 행위가 아니라,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된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세상을 이기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정말 자랑할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뿐입니다.
자기의 할례와 율법준수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 동안 이루어온 업적과 섬김이 모두 무시받아도 좋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모든 것으로 인하여 주님을 높이고 사람들을 주께 인도하기보다 자기를 높이고 자기에게로 사람들을 모으는 교만한 일을 멈추는 것입니다.
때로 목에는 금으로 번쩍거리는 십자가를 걸고 다니기도 하면서, 그것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인양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차에도 걸고 목에도 걸고. 그렇게 십자가를 걸고 다니면서, 겸손하게 섬김의 삶을 살기 보다는 세상의 가치관으로 교만하게 살아간다면 그것은 외식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하던 모습과 똑같은 것입니다.
육체의 할례를 받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할례를 받아야 합니다.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 자기 목소리를 십자가 아래에 낮추는 것(없애는 것이 아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새사람이 되어서 새로운 인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올해 그 십자가를 자랑하면서, 복음의 능력으로 우리 마음이 겸손해져서, 지체들을 예수님처럼 존경하고 사랑하게 되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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