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우물물 말고 이 우물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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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말씀에서 예수님과 제자들이 갈릴리로 가는 길에 사마리아에 들렀고, 예수님은 우물가에 물을 길으러 온 사무리아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사마리아 여인은 어떻게 유대인인 당신이 사마리아인인 나에게 물을 달라고 하는 것이냐고 묻는데,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10절에서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너에게 주었으리라”
여기서 “생수”는 문자적으로 고여있는 물이 아니라, 흐르고 있는 신선한 물을 의미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생수”라는 것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하십니다. 14절에 의하면 이 생수는 신자로 하여금 영생에 이르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어떤 대가를 지불하고 받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에 10절에서는 “선물”이라고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생수”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입니까? 여기서 예수님이 주시려고 하는 생수는 일차적으로 “생명”을 의미합니다. 말씀과 성령을 통해 예수님은 자신을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예레미야 2장과 17장에서 하나님은 스스로를 생수의 근원이 되시는 분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이 생수를 주시는 분으로, 생수의 근원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고, 성령을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하나님 자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대답에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야곱을 비교합니다.
사실 요한복음에서 예수님과 야곱을 비교하는 표현은 이미 앞에서 언급된 것입니다. 요한복음 1장 51절에서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고 말하며, 창세기 28장에 나오는 벧엘에서 야곱의 환상을 연상하게 하고 있습니다. 새 이스라엘로서 예수님의 정체성을 밝혀 주는 표현입니다.
하지만 11절과 12절에서의 사마리아 여인의 반응을 볼 때, 그녀는 예수님을 야곱보다 크다고 생각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적인 생수를 말씀하시는 예수님과 달리, 여인은 계속해서 문자적인 생수를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여인의 영적인 무지함은 결국 오늘 본문 마지막에 예수님이 그녀의 아픔을 건드리시면서 점차 깨어지게 되긴 합니다.
14절에서 예수님은 “목마름”에 대해 말씀하시는데, 이 목마름은 영적 필요를 뜻하는 다른 말씀들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를 들어, 시편 42편 2절에서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라고 말하는 것이나, 시편 63편 1절에서 “하나님이여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라 내가 간절히 주를 찾되 물이 없어 마르고 황폐한 땅에서 내 영혼이 주를 갈망하며 내 육체가 주를 앙모하나이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주시는 성령과 말씀을 통해 사람들의 영적 필요가 충족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목마른 자의 갈증을 풀어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요한복음 6장과 7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런 은혜를 주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이 몸소 목마른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래서 14절의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은 결국 신자의 내면에 역사하시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님은 예수님의 말씀으로 역사하십니다.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통해, 신자를 영생의 길로 인도하시는 예수님의 은혜와 능력에 대해 오늘 본문이 이야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16절 이후로도 대화가 이어지는데, 이 대화의 주제는 “여인의 남편”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이 대화는 얼핏 보면 바로 앞의 생수에 관한 주제와 관련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예수님께서는 생수와 여인의 영적 필요를 연결하고 계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본문을 예수님께서 이혼 경력이 많은, 즉 남자가 많았던 문란한 여인의 부도덕성을 지적하는 것이라고 착각하고 오해합니다. 하지만 어제 새벽 들었다시피 이런 해석은 당시의 유대문화와 맞지 않는 해석입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이혼의 주도권은 남편에게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여인은 오히려 남편에게 이혼을 여러 번 당한, 버림받은 존재로 보아야 합니다.
신명기 24장 1절에서 이혼에 관한 법이 나옵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 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아내에게 수치되는 일을 발견하면 이혼 증서를 써 주어 이혼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샴마이라는 학파가 있었는데, 이들은 이것을 엄격히 적용하여 여인이 간음을 하였을 경우, 이혼할 수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반면 힐렐이라는 학파는 다양한 종류의 문제를 이혼 사유로 해석하며, 여인에게 자그마한 꼬투리라도 잡으면, 남편이 쉽게 이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내가 그릇을 깨뜨려도 이혼 사유로 인정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의 비참한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 보셨습니다. 남편을 불러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남편이 없다고 사마리아 여인이 말합니다. 남편이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자도 네 남편이 아니니 너의 말이 맞다고 예수님이 답해 주십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버림받은 비참한 상황을 아시고, 그 상처를 건드리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영생하는 물을 주시기 전에, 먼저 그녀의 상처를 치유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녀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시기 전에, 그녀의 가장 은밀한 상처, 가장 의지했던 부분을 다루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남편에게 버림받은 상처와 아픔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에게 손가락질 당하는 수치가 있었습니다. 이혼당한 여인인데 여전히 남자를 의지해야 하는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여인의 이런 고통을 드러내셔서, 그녀를 치유하시고, 생수를 주기 원하셨던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은 말씀으로 우리의 영적 필요를 채워주시는 분이라고 말합니다.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영적 양분을 얻습니다. 그래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하는 것은 성도된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힘과 지혜와 능력과 은혜가 말씀의 통로를 통해 그리스도인인 우리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스스로 말씀을 지키며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으로 우리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십니다.
영적 목마름으로 허덕이는 그리스도인은 제대로 그리스도인다운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목마른 자에게 성령을 주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성령 충만한 삶을 살게 하십니다. 이런 성령 충만을 통해 우리는 말씀을 지키며 살아갈 수 있게 됩니다.
물론 예수님 그 분이 우리가 합당한 삶을 살아가도록 생수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말씀과 성령으로 우리의 영적 필요를 채워 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성도된 우리는 예수님으로 살고, 예수님 때문에 자라갈 수 있습니다.
이 예수님은 사람들의 상처를 치유하는 분이십니다.
육체의 상처에 치료가 필요하듯, 내면의 상처도 치유가 필요합니다. 내면의 아픔을 가지고서는 제대로 된 영적 성숙에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처럼 상처난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에 직면하게 하시고, 그 아픔을 치유해 주십니다.
내면의 상처 가운데 수치가 있을 때 예수님은 우리를 감싸 안아 주십니다. 사람들은 손가락질하지만, 예수님은 여인에게 손 내밀어 주셨습니다. 사람들은 비웃었지만, 예수님은 먼저 다가가셔서 예수님 안에서 자존감을 갖게 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은 연약함을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사마리아 여인은 남자를 의지하지 않으면 도무지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였습니다. 그래서 여인은 남자에게 버림 받으면서도 계속해서 남자를 필요로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런 연약한 인생에게 다가가셔서 남자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로 살게 하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이 주시는 생수를 소유하고 있습니까?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를 새롭게 하시고 영적으로 자라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삶에서 누리고 있습니까? 정말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씀을 듣고 읽고 묵상함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가 우리에게 충만한지 한 번 되돌아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혹시 어려움 가운데 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를 치유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수치를 감싸 안아주시는 분이십니다. 나의 연약함을 품어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 사람들은 나를 비난하고, 손가락질하고, 비웃는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손 내미시며 우리가 세상의 어떤 것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라는 생수로 살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결국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삶이 예수님이라는 생수로 가득차서, 영원토록 목마르지 않게 하시는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