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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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
기도
하나님, 세상 속에 살다가 수요기도회 자리에 나아왔습니다. 맡겨주신 자리에서 주님의 뜻대로 살았어야 했는데 주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고 제 이익과 욕심만 따라 살아왔던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그러나 주님 오늘도 나를 품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나아왔습니다.
상한 심령 위로해주시고, 지친 마음을 회복시켜 주옵소서. 주님께서 주시는 새 힘을 받아 하늘의 소망을 가지고 살아가는 담대한 주의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오늘 기도회를 통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가르쳐주시고, 새 힘을 주시고 치유해주시고 주님 앞에서 성장하는 그리스도인 되게 하옵소서. 이 예배 가운데 함께 하여 주옵소서.
1. 찬송가
1. 찬송가
찬송가 9장 찬양하시겠습니다.
2. 대표기도
2. 대표기도
예배를 위해 최상분 권사님 대표기도하시겠습니다.
(설교자석 자리에 앉기)
3. 성경봉독
3. 성경봉독
오늘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 말씀은 창세기 1:6-8 말씀입니다.
4. 설교
4. 설교
종교개혁자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낮추시어 인간의 한계에 자신을 조정하셨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나타내실 때마다 눈높이를 맞추어서 계시하십니다. 하나님의 배려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에 문자 자체로 하나님을 이해하기란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문자 안에 갇혀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다’라고 말할 때 조심해야할 것은 그것은 하나님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렇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하나님의 발 뒷꿈치정도도 못 될겁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아무리 자신의 모든 것을 알려줘봤자 인간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이성이 하나님의 이성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감히 하나님의 지혜에 범접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마치 강아지가 인간의 생각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개미가 인간을 이해하려는 것과 같습니다. 강아지는 자신의 사고 속에서 인간을 바라봅니다. 물론 인간과 교감할 수 있고, 인간의 말도 알아듣고 하지만
인간처럼 말할 수 없고, 인간과 언어를 가지고 대화할 수는 없습니다. 인간의 언어를 사용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강아지가 인간의 언어를 사용한다면 그것은 비로소 강아지가 아니라 인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강아지의 수준에 맞춰서 교육을 시키고 알려줄 수 있는 것만 알려줍니다. 그러나 아무리 교육하고 훈련하더라도 인간의 세계와 인간의 사고방식과 인간의 언어를 가질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인간도 하나님의 세계를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고, 하나님의 언어를 다 알 수 없습니다. 인간끼리도 서로 언어가 다르고 소통이 다른데 어떻게 뛰어나신 하나님의 언어를 감히 이해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하나님은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서 내려오십니다. 하나님의 언어를 사용하지 않으시고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십니다. 인간의 언어와 문화와 지식 수준에 맞추어서 하나님은 그 인간의 언어를 사용하셔서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인간의 지식에 맞추어서 가르쳐 주십니다.
이것이 곧 성육신입니다. 인간의 몸으로 오신 하나님입니다. 인간의 삶에 들어오시고, 인간의 형편에 찾아오시고, 인간들이 쓰는 언어와 인간들이 먹는 밥을 먹으면서, 인간들이 당하는 고통을 함께 당하시면서 함께 살아가시는 것입니다. 가장 좋은 시청각자료이자 눈높이 교육입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읽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의 배려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창세기를 보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버려야 합니다. 인간의 언어를 통해 하나님을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가르쳐주신 것만 알 수 있고, 계시하신 것만 볼 수 있습니다. 마치 강아지가 인간의 교육된 명령만 알아들을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기록하시면서 인간의 지식수준과 이성을 살피시고 배려하시며 기록하셨습니다. 글도 몰랐던 무지한 사람들, 지식도 없는 원시시대 사람들, 과학이라는 것 자체가 없는 시대 사람들에게 창조에 대해서 가르쳐준다면 그것은 굉장히 곤혹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도 무언가를 가르칠 때 가장 어려운 것이 어린 아이들에게 단어를 설명하는 일입니다. 어른들이 쓰는 용어들을 아이들에게 풀어서 잘 설명하는 사람이 정말 실력자입니다. 저도 아들들이 머리가 자라면서 자꾸 저한테 어려운 걸 물어봅니다.
그럼 저는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 풀어서 설명하고, 예를 들기도 하고 하는데요. 그래도 저에겐 검색기능이 있습니다. AI시대에 AI를 잘 활용해야죠. 설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설교도 어려운 용어들을 사용하고, 신학적이고, 이론적인 말을 한다면 아무도 들으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고, 은혜가 되는 설교를 해야 듣는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그러니 성경도 하나님께서 작정하고 자신의 이성과 지식을 발휘하여 쓰셨다면 인간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 웹툰도 있습니다.
창조에 대한 웹툰인데요. 태초에 창세기 저자에게 하나님이 창세기를 기록하게 하십니다. 어려운 과학적 이론들을 막 설명하면서 열거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받아쓰는 창세기 저자가 하나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한마디 하십니다. ‘받아 적어라,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렇게 했다는 겁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생각과 하나님의 세계를 인간에게 다 보여준다한들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창세기를 기록하실 때도 인간의 지식과 눈높이에 맞춰서 허용하시고, 배려하셨습니다. 당시의 세계관과 문화를 그대로 활용하시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설명하셨습니다.
옛날 히브리 사람들의 우주관은 이러했습니다. 땅이 있고요. 땅 아래에는 스올 즉 지하세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밑에는 땅을 받치는 기둥이 있습니다. 그리고 땅 양끝에는 산이 있는데요. 이 산이 기둥이 됩니다. 하늘을 받치는 기둥이 됩니다.
하늘은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둥근 천장즉 궁창을 ‘라키아’라고 하는데요. 이 라키아의 원형인 ‘라카’는 금속판을 말합니다. 망치로 쇳덩어리를 두들겨서 펼친 것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시 사람들의 세계관에는 하늘이 망치로 때려서 만든 딱딱한 판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생각하는 당시 사람들의 사고를 다 허용하시고, 존중해주시며 창세기를 기록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배려를 우리가 뭐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러한 배려 속에서 하나님은 어떻게 만들었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만들었는지를 말씀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과학은 ‘어떻게’를 말하지만 성경은 ‘왜’를 말합니다. 신앙의 힘은 ‘왜’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무엇으로 만들어졌는가?에 있지 않고 신앙의 힘은 ‘우리는 왜 만들어졌는가?’에 있습니다. 이유와 목적에 신앙의 정체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로완 윌리엄스는 말했습니다. “나는 우주에서 내 위치를 이해하려면 창세기를 본다”라고 했습니다. 신앙은 언제나 우리의 정체성을 알려주는 힘입니다. 창세기를 볼 때에도 우리는 내 정체성이 무엇인지, 나는 누구인지, 나는 왜 살아가는지를 찾아가는 과정이 우리 삶의 신앙의 여정입니다.
과학은 왜를 설명하지 않습니다. 과학적인 분석과 데이터를 말하지만 왜 그러한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저 현상과 증거를 밝힐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왜’를 말씀하십니다. 내가 왜 살아가는지, 내가 왜 창조되었는지를 말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리고 평평하고 딱딱한 하늘에는 해와 달과 별이 달려있습니다. 그 밖에는 물로 감싸져있습니다. 당시에는 이러한 우주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버리지 않으시고 인간의 문화와 지식을 활용하시며 성령의 영감으로 성경을 기록하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하늘을 창조하셨을까요?
제가 좋아하는 시인 윤동주가 있습니다. 앞으로 종종 얘기할텐데요. 제가 시인에 대해 많이 아는 사람은 없지만 가장 좋아하는 시인이 윤동주입니다. 저는 윤동주를 거의 신앙의 선배님으로 생각하고, 순교자, 목사님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동주의 청소년 시절에 지은 시를 보면 순교자적인 정신이 가득합니다. ‘십자가’라는 시만 보더라도 ‘모가지를 드리우겠습니다’라고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표현들이 나옵니다. 팔복과 태초의 아침과 성경에 관한 여러가지 시를 모티브로한 시들이 많습니다.
윤동주는 ‘하늘’이라는 단어를 말할 때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시인입니다. 윤동주의 시집 제목도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입니다. 동주 영화도 4번정도 봤습니다. 윤동주의 시를 보면 오늘 읽은 본문의 궁창인 ‘창공’이라는 시도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잘 알고 있는 시인 서시에 보면요.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이라는 유명한 서시의 첫 절이 있습니다. 이 문장은 아마 모든 사람들이 다 알고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여기서도 ‘하늘’이 나옵니다. 윤동주는 말합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여기서 하늘을 우러러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저는 이것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성경구절들이 있습니다.
윤동주는 철저한 기독신앙인이었기 때문에 저는 이 ‘하늘을 우러러’라는 표현이 곧 성경에서 가지고 온 표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여러 군데에서 나오는데요. 먼저는 창세기 15:5
5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이르시되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실 때 하나님께서 사용하십니다. 아브라함이 자식이 없어서 믿음의 약속을 잊지 못한다고 말합니다. 나는 상속자가 없어서 그 뜻을 이루지 못한다며 자존감도 낮아지고 한숨을 쉬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아브람은 자신의 종인 엘리에셀에게 내 모든 재산과 후계자의 자리를 주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환상 중에 임하셔서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네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라고 확신의 말씀을 주십니다. 아브람이 믿음이 좋아서 하나님께서 이끌고 가신 것 아닙니다. 아브람은 믿음이 없습니다. 넘어지고, 불신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부족한 아브람을 하나님은 이끄시고, 믿음을 주시고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어 내십니다.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부족하고 잘 따라오지 못하는 아브람을 향해서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믿음이 없을 때, 하나님 아버지는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기 힘들 때, 하나님의 약속이 희미해져갈 때, 내가 할 수 있을까, 라는 의심이 들고 지쳐갈 때 하늘을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그 때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을 보여주시고, 하늘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보여주십니다.
19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매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니
예수께서도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셨습니다. 많은 무리가 예수께로 나아왔습니다. 며칠동안 말씀을 듣고 사역을 따라다니다보니 지치고 배가 고팠습니다. 그런 무리를 예수께서는 불쌍히 여기셨다고 나옵니다. 불쌍히 여기셔서 무리에게 먹을 것을 주십니다. 그때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 감사 기도를 드리시고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 떡 다섯개를 나누십니다.
빵을 달라고 하는 제자들과 사람들 가운데 예수께서는 땅만 보지 않으시고, 빵만 만들어내지 않으시고, 이것이 어디로부터 오는 것인지를 먼저 잊지 않고 생각하며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많은 무리를 먹이시는 하나님의 하늘의 양식이 어디서부터 오는지 내가 왜 이 일을 행하는지 잊지 않으시고 하늘을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태도입니다.
55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및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그리고 마지막으로 스데반도 하늘을 우러릅니다. 유대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원자이다 라고 말하자 돌에 맞습니다. 순교의 상황입니다. 돌에 맞아가는 그 순간 속에서, 피를 흘리는 그 순간 속에서 스데반은 하늘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우편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봅니다.
스데반은 땅의 핍박 속에서 하늘을 바라보며 유일한 소망을 바라봅니다. 땅의 것들은 자신을 죽이고, 땅에서는 박해를 받지만 자신은 하늘을 소망하며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며 하늘을 향해 가는 자임을 증명합니다. 인간에게서 나타날 수 있는 가장 숭고한 죽음 곧 순교입니다.
이처럼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자들은 현실이 너무나 어려운 상황에 있는 자들입니다. 아브라함처럼 자식도 생기지 않고, 현실적인 소망이 없는 상황입니다. 스데반처럼 사람들이 돌로 자신을 쳐서 죽이는 상황입니다. 예수께서도 먹을 것이 없는 무리들이 앞에 서 있는 상황입니다. 불쌍히 여기시는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서 이들이 하는 것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게 하십니다. 믿음이 없을 때, 불안할 때, 현실이 암담하고 불쌍할 때, 핍박이 있을 때 하나님은 ‘하늘을 우러러’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우리의 신앙은 하늘을 보는 신앙입니다. 땅을 바라보는 신앙이 아니라 하늘을 우러르는 신앙입니다.
천국을 소망하는 자들은 하늘을 우러릅니다. 천국에 가고 싶어하는 사람은 현실이 너무 힘들고 지긋지긋한 사람들입니다. 신앙이 있더라도 살만하고 먹고 살만하면 천국을 소망하지 않습니다. 그냥 나중에 자연스럽게 갈 곳이라고 생각하고, 지금 빨리 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삶이 만족스럽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말로 천국이 있다고 믿고, 천국을 소망하는 자는 삶의 문제가 너무 힘겹고, 살고싶지 않은 사람들의 입에서 천국 가고 싶다고 말합니다.
하늘은 물과 물 사이에 있다.
오늘 말씀을 다시 보면요. 6절과 7절에 물 가운데에 궁창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을 위 아래로 나눕니다. 궁창을 하늘이라고 쉽게 바꿔 말하겠습니다. 하늘 위아래로 물이 있습니다. 원래 물이 있었는데 그 사이로 궁창 곧 하늘을 만드십니다. 사실 물은 생명의 필수이지만 두려움과 죽음의 대상의 의미가 큽니다.
물로 심판하셨던 하나님, 심연을 생각하면 미지의 세계이자 공포의 대상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두려운 존재로서의 물을 나눠서 그 사이에 하늘을 만드십니다. 두려운 존재인 물을 비키라고 하시고 나눠서 하늘을 만드십니다. 물을 나누시고 하늘을 만드시는 하나님입니다.
두려운 물 가운데 하늘이라고 하는 공간을 만드셔서 그곳으로부터 창조세계의 터전을 만드십니다. 땅과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드시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태초에, 창조하실 때 하늘이라는 공간을 넓게 펼치셔서 공간을 만드시고 모든 생명들이 살아갈 공간을 만드십니다.
그곳이 에덴 동산이고, 천국이고, 태초의 세상입니다. 우리는 그곳에 있었던 자들이고 이제 다시 그곳으로 돌아갈 자들입니다. 다시 그곳을 회복할 자들입니다.
하늘은 곧 하나님이시자, 우리가 바라봐야할 곳, 그리고 마침내 우리가 돌아가야 할 자리입니다. 이 목적과 정체성을 잊지 마시고, 우리의 삶이 하늘을 기준삼고, 하늘을 바라보고, 하늘로 돌아가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하늘 곧 하나님을 기준 삼고, 하나님의 뜻을 기준 삼고, 하나님을 바라보고, 마침내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하늘에 속한 자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하나님, 우리 삶이 하늘을 바라보며, 하늘을 돌아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하늘에 속한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5. 찬송가 515장
5. 찬송가 515장
6. 교회소식
교회 소식 전하겠습니다. 이번 주일은 1,2부 예배와 오후찬양예배로 모입니다.
이번 주일 찬양예배는 청소년부 헌신예배 및 일본비전트립 보고예배로 모입니다.
삼척시찰회 신년예배 및 하례회가 내일 오전 11시 도계교회에서 있습니다.
장례가 있습니다. 최남진 성도님의 발인예배가 오전 8시에 삼척의료원 장례식장에서 있습니다. 교호에서는 7시 45분에 출발합니다.
7. 합심기도
이 시간에는 합심기도를 이어갑니다. 인도자가 3가지 기도제목을 드립니다. 앞의 화면에도 하나씩 기도제목을 보여드립니다. 이후 다같이 주여 부르고 반주에 맞추어 통성으로 기도하는 형식으로 진행합니다. 첫번째 기도드릴 제목은 환우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이시간 환우들을 위해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환우들 가운데 함께 하셔서 치료해주옵소서. 육체적 질병들 고쳐주시고, 여호와의 손으로 만지셔서 고치시고 치유하시고,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질병의 치료로 인하여 더욱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 하나님을 위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마음 가운데도 찾아가셔서 위로하시고, 평안하게 하셔서 두려움과 불안을 사라지고 정신적인 아픔과 마음의 어려움까지 하나님께서 치유하셔서 영과 몸이 모두 강건한 하나님의 자녀들 되게 하옵소서. 다같이 주여 한번 부르시고 기도하겠습니다.
두 번째는 항존직 선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사람의 생각이 아닌 하나님의 뜻과 교회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거룩한 축제가 되게 하소서. 성도를 온전하게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고 교회를 세우는 일꾼되게 하소서. 가정을 잘 다스리고 세상에서도 정직하여 성도들의 본이 되는 이들이 세워지게 하소서. 이 기도제목들 가지고 합심으로 주여 한 번 부르시고 기도하시겠습니다.
세번째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합니다. 대통령과 공직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분열과 갈등 대신 화합과 지혜로 나라를 다스리게 하소서. 정치, 경제, 사회 모든 영역이 회복되어 안정되게 하시며 든든히 서게 하소서. 한국 교회가 세상의 소금과 빛의 역할을 다하며, 진리로 거룩한 부흥을 이루게 하소서.
하나님, 우리 환우들을 살피셔서 회복하는 은혜가 있게 하옵소서. 질병으로 인하여 낙심하지 않게 하시고,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을 만나고 함께 하시는 하나님, 치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대통령과 공직자들이 하나님을 경외하며 정치와 경제와 국제 정세 속에서 어려움 당하지 않게 하시고, 견고히 서가는 나라 되게 하옵소서. 국제 정세속에서도 보호하셔서 평화로운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또한 나라 가운데 교회들을 인도하셔서 세상 속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이 땅에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 나라를 세워가는 데 쓰임 받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8. 주기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