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기가 너무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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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아내 사래는 아이를 낳지 못하였다. 그에게는 하갈이라고 하는 이집트 사람 여종이 있었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주님께서 나에게 아이를 가지지 못하게 하시니, 당신은 나의 여종과 동침하십시오. 하갈의 몸을 빌려서, 집안의 대를 이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아브람은 사래의 말을 따랐다.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기의 여종 이집트 사람 하갈을 데려다가 자기 남편 아브람에게 아내로 준 때는,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서 살아온 지 십 년이 지난 뒤이다.
아브람이 하갈과 동침하니, 하갈이 임신하였다. 하갈은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자기의 여주인을 깔보았다.
사래가 아브람에게 말하였다. “내가 받는 이 고통은, 당신이 책임을 지셔야 합니다. 나의 종을 당신 품에 안겨 주었더니, 그 종이 자기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나를 멸시합니다. 주님께서 당신과 나 사이를 판단하여 주시면 좋겠습니다.”
아브람이 사래에게 말하였다. “여보, 당신의 종이니,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않소? 당신이 좋을 대로 그에게 하기 바라오.” 사래가 하갈을 학대하니, 하갈이 사래 앞에서 도망하였다.
주님의 천사가 사막에 있는 샘 곁에서 하갈을 만났다. 그 샘은 수르로 가는 길 옆에 있다.
천사가 물었다. “사래의 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길이냐?” 하갈이 대답하였다. “나의 여주인 사래에게서 도망하여 나오는 길입니다.”
주님의 천사가 그에게 말하였다. “너의 여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복종하면서 살아라.”
기다림이 힘든 세대
기다림이 힘든 세대
오늘 수련회 첫날을 시작하면서 우리가 어떤 말씀을 나누면 좋을까 많은 고민을 했어요. 우리가 아브람의 이야기를 계속 나누고 있었는데, 아브람의 모습을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계속 발견하게 되는 것 같아요.
사회를 연구하는 사회학자들이 분석하기를 우리 세대는 “기다림이 힘든 세대” 라고 해요.
그 증거로 몇가지 예를 드는 것이, 요즘은 책을 읽는 것을 어려워하는 친구들이 많이 있다고 해요. 그 이유는 내용이 너무 길기 때문이에요. 영상은 어떤가요? 영상도 너무 길면 집중력있게 보지 못하죠.
그래서 우리가 애용하는게 뭐죠? 릴스, 숏츠, 틱톡 같은 것들이에요. 짧게 핵심만 전달해주는 거죠.
그 외에도 AI가 활성화 되면서 우리가운데 바뀐게 있는데, 절대 기다리지 않는다는거에요.
궁금한게 있으면 바로 검색하면 돼요.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아요. 일단 검색해서 시원해보이는 답이 나와야해요.
이게 일상속에서도 그 모습이 보이는데, 오래 무언가에 집중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오늘같이 긴~ 시간 말씀을 듣는 것처럼 말이에요.
그렇지만 오늘은 하나님께서 마음껏 준비하신 은혜를 부어주실거라 믿기 때문에 안되던 집중도 될거라 믿어요.
우리는 이처럼 기다리는 게 어색한 세대에요. 그렇다보니까 당장 답이 안나오면 빠르게 다른 선택지를 찾는게 익숙한 삶을 살고 있죠.
우리의 신앙의 모습도 그래요.
좀 처럼 하나님을 기다리지 않아요. 하나님에 대한 수많은 답들을 들으면서도 우리는 절대 그 답을 기다리지는 않아요. 기다리기엔 내가 너무 급하거든요. 금방 다른 선택지를 찾고는 하죠.
공부, 관계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기다리기보단 다른 선택지를 찾아요.
오늘 아브람의 모습이 우리의 이런 모습과 너무 닮아있어요.
약속은 있지만 너무 길다.
약속은 있지만 너무 길다.
우리 저번주의 아브람의 불평을 들었어요. 하나님이 약속하시지만, 여전히 이뤄지지 않아서 답답함에 내 종 엘리에셀이나 대를 이어도 만족한다고 말했었죠.
하나님께선 그런 아브람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네 뱃속’에서 낳은 아들을 통해 하나님의 꿈을 이루겠다고 하셨어요.
아브람도 그 사실을 믿었죠.
근데 문제는 약속의 시간이 너무~! 길었다는거에요. 3절에 보니까 하나님이 약속을 해주시고 그 약속을 기다린지가 10년이나 지나있었다고 해요.
아브람 입장에서는 답답할 만도 하죠? 약속은 하시고 말씀은 해주시는데, 도대체가 그 약속이 진짜 이뤄지기는 하는건지 10년동안 아무런 변화가 없으니 답답한거죠.
아내 사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내 태를 닫으신 것 같으니 다른 방법으로 약속을 이루시려고 하는게 아니겠냐 라고 아브람에게 말해요.
아브람도 듣다보니 틀린 말은 아닌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아내의 말을 듣는 것을 보게돼요.
우리가 믿음을 가지가 살아갈 때 가장 흔들리고 어려운 시간이 언제냐면 믿음이 좋고 뜨거울 때가 아니에요.
하나님의 약속을 기대하면서 붙잡고 뜨겁게 나아가다가 아무것도 바뀌지 않은 현실이 오래도록 이어질때,
내가 신앙이 정말 흔들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뢰가 없어질때는 엄청 상황이 힘들고 어려울 때가 아니라 말씀과는 상관없는 하루하루가 끊임없이 이어질때 흔들리고 어렵단말이에요.
하나님을 안믿는게 아니라 믿는데! 하나님의 약속이 나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시니까 답답한 거라는거에요.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기다렸던 이 기다림이 내가 생각한 것 보다 너무 오래 기다렸다는게 문제라는거죠.
제가 처음 예수님을 만나고 말씀들이 정말 다 믿어지고 했을 때, 정말 곧 있으면 이 말씀대로 이뤄질 것 같은 기대감에 하루하루를 보냈었어요.
음악 사역에 대한 꿈을 품고 마음맞는 친구들과 문화사역팀을 꾸리고 시작하기도 하고 한참 사업을 하고 있을때라서 사업하면서 일하러가고 이때는 교회에서 지낼때라 매주 교회 청소하고 주보만들고 프린트하고 주중예배, 주일 예배 이후 모임 빠지는거 없이 다 참여하고 진짜 에이스다 싶을 정도로 열심히 했단 말이에요.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데, 가장 좋은 것 주신다는데, 나를 향한 꿈이 있으시다는데 얼마나 설레요.
그때 제 생각에는 막 사업도 번창하고 하고 있는 문화사역팀도 있었는데, 사역팀도 잘될 것 같고 그럴 것 같았단 말이에요.
그렇게 한 1년을 보냈나? 아무것도 바뀌는게 없는거에요. 바뀌는 건 커녕 아무리봐도 내 기대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거죠.
호기롭게 시작한 사역팀은 어느 순간보니 흐지부지되고 흩어져버렸고, 사업도 자리는 잡혔는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업만 하고있는 내 모습을 보고 있는거에요.
1년정도 지나고 보니까 그냥 사업만 시작한 청년1이 되어있을 뿐 내가 바뀐게 아무것도 없는거죠.
이쯤되니 뜨거웠던 마음보다는 실패감, 정체감, 우울감, 답답한 마음들이 막 찾아오더라구요.
하나님의 약속이고, 말씀이고 뭐고 내가 뭘해야할지조차 모르겠는거에요.
진짜 말씀대로 이루시는 건 맞는지.. 의심도 들고, 교회에서 하던 모든게 부담스럽고 싫어지고 하는거죠.
우리 어린이부부터 신앙생활 한 친구들 다 이런 시기 보내고 있잖아요?
친구따라 온 친구들, 교회온지 얼마안된 친구들은 그나마 나아, 아직 생소하거든
어린이부때까진 말씀대로 하나님이 다 해주실 것 같고, 말씀도 잘 믿고 이랬는데 중학교 올라오니까 어때요?
정글이잖아 양육강식, 싸움 잘하는 애들, 인기 많은 애들, 성적 좋은 애들이 최고고 나머지는 친구1, 친구 2345 이런 느낌이잖아요.
하나님의 말씀 그런게 어딨어요. 그냥 분위기 봐가면서 따라가야지
고등학생되면 더해요. 이 등급같은게 더 뚜렸해져, 공부할 애, 예체능 가는애, 이도저도 아닌 애, 인생 포기한 것 같은 애 등등
말씀 믿고 가기엔 너무 현실이 만만하지 않은 것 같단 말이죠.
플랜비는 고생만 더한다.
플랜비는 고생만 더한다.
이렇게 기다림이 길어지고 지쳐도 우리가 믿음은 있잖아.
그럼 어떻게 하냐면 하나님을 안믿는 것 아냐. 근데 하나님이 아니어도 내가 할 수 있는 걸 찾아요.
오늘 아브람과 사래의 선택이 딱 그런거에요.
사래가 하나님께서 자기 태를 닫으신 것 같으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이쪽으로 이뤄지는 건 아닌거 같은 거에요.
그래서 한 선택이 뭐냐면 2절에 보니
“내 여종”에게 들어가라고 해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우리 역사 공부하다보면 ‘씨받이’라는 표현을 들어봤나요?
요즘으로 표현하면 ‘대리모’라는 내가 아이를 낳을 수 없으니 다른 여자의 자궁을 빌리는거에요. 그래서 대신 임신하게 하고, 낳은 아이를 내 아이로 기르는 거죠.
고대 근동뿐만 아니라 옛날에 많은 사회문화에서는 대를 잇는 것이 어려울 때, 정부인이 아닌 또 다른 아내를 두거나 그게 아니면 이렇게 아내가 내어준 종을 통해 아들을 낳는 문화가 있었어요.
사래는 이렇게 생각한 것 같아요. “아 하나님이 나에게는 아이를 안 주시니 종을 통해 아들을 주시려나 보다 라고 말이에요.”
당시 시대로 비춰봤을때, 비도덕적이거나 크게 문제가 되는 일도 아니고, 어딘가에서는 충분히 일어날법한 일이니까 마다할 이유도 없는거죠.
도덕적으로 크게 문제될 것도 없고 이렇게 한다고 해서 누가 나를 뭐라하지도 않아요.
그리고 가장 기대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 빠르고 확실한 선택지에요. 안할 이유가 없는거죠.
그래서 사래가 제안을 하고 아브람은 어떻게 하죠? 아브람도 그 말에 동의 해요.
창세기 처음의 아담과 하와처럼 사래가 제안할 때, 아브람은 하나님께 질문하지 않아요. 그저 사래의 말이 합리적이니까 동의하고 그대로 실행하는거죠.
그 결과 사래의 여종 하갈이 임신하게 돼요. 그럼 이제 일이 잘 풀렸네요? 하나님의 약속대로 자손도 생겼겠다. 이제는 축복만 남았어요.
그런가요? 여기서부터 우리의 현실적인 대안이 얼마나 어리석은 대안인지를 보게 돼요.
사래의 말대로 여종인 하갈이 임신하고 나자 여종인 하갈은 주인의 자식을 밴 사람이 되었다는 것 만으로 아이를 갖지 못했던 사래를 무시해요.
성경에는 뭐라고 기록되어 있냐면 ‘멸시’했다 라고 기록해요. 멸시는 어떤 의미냐면 거들떠도 보지 않고 무시하는 것을 말해요.
사래는 분명히 하갈의 주인인데, 하갈이 이제 사래를 종처럼 보면서 주인행세를 하고 있다는거에요.
사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얼마나 미치겠어요. 자기의 위치가 위협받고, 자식도 못가지는데 종에게 멸시당하고 너무 괴로운 거에요.
그래서 사래는 아브람을 찾아갑니다. 당신의 아이를 밴 나의 종 하갈이 나를 저렇게 멸시하니 아브람 당신이 이 문제를 해결하고 책임지라고 말해요.
아브람은 어떻게 하냐면 하갈은 네 여종이니까 아내 사래가 좋을 대로 하라고 해요. 그래서 사래가 어떻게 하냐면 종 하갈을 괴롭히는거에요. 그렇게 하갈은 사래를 피해 도망치게 되는 아픔을 겪어요.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 않은 방법은 지금 할 때는 가장 좋은 선택같아도 결과를 보면 다시 처음 상황으로 돌아가듯 쳇바퀴도는 상황이거나 더 악화되는 것을 보게 돼요.
제가 예수님도 모르던 학생시절에 그런게 진짜 많았단 말이에요. 친구관계에서 틀어질때 가장 흔한 방법이 뭔줄 알아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잖아요. 무리지어서 관계가 틀어진 그 친구를 따돌리는거에요.
그게 너무 편하고 일반적이야. 아무도 그거에 대해서 크게 문제 삼지 않아 왜? 나만 아니면 되거든
그래서 무리지어서 친구를 괴롭히는거죠.
내가 괴롭힘당하는 위치에는 있으면 안되니까 괴롭히는 무리에 껴서 그 친구를 무시하는 자리에 서는게 가장 쉬워요.
우리 더글로리나 이런 소재의 드라마나 영화보면 알겠지만 문제는 뭔 줄 알아요?
그 대상이 ‘나’일 때 문제야
중학생 때는 그렇게 찌질하게 살다가 춤을 추면서 아이러니하게 인기가 많아지다 보니 주변에 힘좀 쓰는 친구들이 많아졌어요.
그럼 찌질할 때 따돌림도 당해보고, 괴롭힘도 당해봤으니 안할 법도 하잖아요? 아니야 더 해
사래처럼 겪어봤으니까 더 악랄하게 하는게 사람의 본성이에요.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고 사랑이 없다면, 이게 전혀 문제될 게 아닌 걸로 보이거든요. 그래서 더하면 더 했지 안하지 않아요.
이런 방법은 관계가 더 악화되고, 내가 더 분노가 가득한 사람이 되게 하지 절대 친구관계를 완만하고 좋게 만들지는 않아요.
내가 당한대로 값는게 우리가 지내는 생활속에서 당연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게 상황을 바꾸고 더 낫게 만들지는 않는단 말이에요.
친구관계 뿐만이 아니에요. 우리의 최대 관심사, ‘성적’은 어떨까?
하나님 믿는 다고 성적이 오르는 건 아니잖아요. 라고 말하고 시험기간인데 예배 시간에 학원가야지 하는 것을 많이 봐요.
이전 사역지에서도, 이전전 사역지에서도, 심지어 대학다니는 청년들도 그런 말을 하는 걸 보는데,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항상 질문하는게 하나님 믿는거랑 니 성적 오르는 거랑 뭔 상관이야
나도 중고등학생때 공부 안하고 놀다가 꼴통학교라고 불리는 곳에 가서 열심히 춤추고 놀았고, 대학도 어찌저찌 갔는데 거기서도 옆에 앉아계신 아저씨들이랑 신나게 놀았기 때문에 확신하는데, 하나님 믿는 거랑 성적이랑은 상관이 없어
성적은 그냥 내가 준비한 만큼 나오는거야
그럼 우리는 왜 이렇게 성적을 높이기위해 예배까지 포기할 만큼 학원에 가야한다고 생각할까?
‘조급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이 시간을 예배에 쓰면 그만큼 뒤쳐지지 않을까? 그런 불안함이 계속 생기니까 마음이 급해지니까 그렇게 되는거에요.
하지만 그렇게 여러분이 시간을 태우고, 방향성 없이 ‘성적’이라는 것에만 목매고 있다면, 여러분은 끊임없이 쳇바퀴돌듯 성적이 올라도, 그 다음 단계를 향해 달리기만 해야하는 우울함에 쌓일거에요.
성적이 오르는 것, 물론 그 지혜와 실력을 쌓아가게 도우시는게 하나님이신 건 맞지
근데,
진짜 하나님 믿는게 나의 성적에 영향을 미치는 건 이런거에요.
잘 생각해봐요.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고 인생을 고민하고 기도하고 말씀앞에 씨름하는 친구들이 하루하루를 대충 살 수 있을까?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고 하루를 살아가는 친구들이 가지게 되는 건 비상한 머리가 아니라 내가 만나는 상황을 해석하고 대하는 ‘태도’에 있어요. 태도가 다르다는거에요.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시고,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면 나도 그걸 기대는 하지만 놀고 있는 건 진지한 태도는 아니야
하나님께서 나를 인도하시고 계시고 좋은 것을 주시기에 오늘 이 시간이 소중한거에요.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속에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은 오늘 허락해주신 자리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기에
하나님의 기준에서 끊임없이 최선을 다하는거에요. 예배가 없는 일상속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학생으로 부르셨어요.
학생이니까 놀지 말라는게 아니라 놀땐 놀더라도 적어도 우리는 공부할 때는 공부해야 해요. 어떻게? 최선을 다해서
그렇지만 먼저는 예배자 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우선이 되는거죠. 기도로 하루를 시작하고, 말씀을 읽으며 오늘 나에게 주시는 말씀이 어떤 건지 물으면서 하루를 시작하고 하루를 마무리하는 친구가 있다면
이런 친구가 하루하루를 대충 살겠냐는 거에요. 그렇게 하나님을 진지하게 믿고 사는 친구들을 하나님이 그냥 두시겠냐구요.
우리가 하나님을 안 믿는 것도 아니야. 믿긴 해 근데 하나님의 약속이라는게, 말씀이라는게 좀처럼 내 눈에 확! 하고 경험되질 않으니까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에 감정대로 결정하고 행동하면서
계속 불안해하고 조급해하고 답답해하고 있는거잖아요.
여러분이 잘못된 것 도 아니야 내 주변에 다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그렇지만 다 그렇게 한다고 그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가는 다른 문제란 말이에요.
친구들,
하나님이 없는 방법은 결국 이렇게 돌고 돌뿐이에요. 돈? 평생 개념밖에 안되는 돈만 벌려고 애쓰면서 젊은 시절 살다가 늙어서는 그 돈 다 병고치는데 쓰다 죽는게 사람이에요.
인기? 춤추면서 지역에서 저 모르는 애들이 거의 없었거든요? 지방이다보니 모이는 곳이 한 곳이라 가면 다 알아요. 근데 그것도 거품이야 3개월 지나면 잊혀요.
어떤 목표? 꿈?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이라는 방향성 없이 세워진 꿈은 결국 이뤄도 또 다른 꿈, 목표가 없으면 다시 방황하게 돼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하나님의 말씀을 방향삼아서 가는게 아니라면 결국 돌고 돌 뿐이에요.
제가 아까 뭐라고 했죠? 하나님의 말씀이 내 기대와는 다르게 흘러가니까 교회에서 하던게 그렇게 기뻤었는데, 점점 부담이 되었다고 했죠?
제가 선택한 방법은 뭐였을까요??
사업을 핑계로 ‘배울 수 있는’ 교회를 찾아 가자 였어요.
이 때 저는 작은 교회에 있었는데, 일만 하는 것 같고 너무 힘든거에요.
남들 다 큰 교회 가서 좋은 프로그램 하면서 훈련하면 좋다고 하는데 같이 꿈꾸던 사역팀도 망하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말고 큰교회 어디 하나 가서 조용히 예배나 드리면서 훈련있으면 훈련받고 그렇게 지내자
생각하고 20살부터 26살까지 가족같이 지내던 교회를 떠나는 거였어요.
문제 될거 없잖아요? 좋은 교회 가서 성장하고, 좋은 교회에서 누리기 위해 누구나 다 이동하잖아요.
문제될 건 없어. 그런데 저는 하나님께 묻는 척만 하고 이미 결정했지 선택을 묻고 말씀앞에 씨름하거나 엄청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거든
그렇게 큰 교회에 가서 제가 겪은 건 무엇인줄 알아요?
6개원간 지독한 외로움, 아는 사람없으니 그냥 겉도는 거에요. 그렇다 보니 신앙의 방황 등 많은 씨름을 혼자 6개월 이상 했던 것 같아요. 감사한거죠. 짧은 시간이니까
그런데 제가 목회를 하면서 많은 친구들을 만나다보니까 생각보다 많은 친구들이 이렇게 하나님께 묻지않고 감정 따라 선택하고 쳇바퀴돌 듯이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아브람과 사래가 문제가 있는게 아니에요. 아브람과 사래도 우리처럼 사람이니까 이럴 수 밖에 없는거에요.
나도 그렇고 친구들도 그렇고 그래서 우리가 성경이 말한대로 ‘연약한 죄인’이라고 하는거에요.
하나님을 거부하고자 하는 ‘죄’가 기본적으로 깔려있는게 사람인지라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보다는 항상 ‘내 기준’에 가장 좋아보이는 것, ‘내 기준’에 가장 확실해 보이는 것을 선택하지만
결국 결론은 상황을 더 악화 시키거나 개선된 것 같지만 다시 그 자리인 쳇바퀴도는 것 같은 결론만 남긴다는거에요.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꿈이 빠진 선택은 결국 나를 방황하게 만들뿐이에요.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다.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약속은 확실하다. (우리를 살피시는 하나님)
하갈이 쫓겨나고 일이 가장 슬프게 마무리 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아요.
하갈은 “내가 여기에서 나를 보시는 하나님을 뵙고도, 이렇게 살아서, 겪은 일을 말할 수 있다니!” 하면서, 자기에게 말씀하신 주님을 “보시는 하나님” 이라고 이름지어서 불렀다.
하갈이 쫓겨나고 샘곁에 있을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을 찾아와서 하갈의 사정을 묻고 하갈에게 다시 아브람과 사래의 곁으로 돌아가 사래에게 순종하라고 말하세요.
그러면서 사래가 나을 아들 또한 하나님께서 축복해주실 것을 약속하시죠. 그리고 하갈을 통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이스마엘’이라고 지으라고 하시며 이스마엘 또한 큰 민족을 이루게 될 거라고 약속해주세요.
하갈은 이런 하나님을 만난 후에 고백이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이에요.
하갈이 이렇게 고백하는거에요.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내가 어떻게 내가 만나서 이렇게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다니” 라고 말하는거에요.
하갈은 어떤 입장이었을까요? 하갈입장에서는 억울했을거에요. 아이를 가지래서 가졌고, 아이를 가지고 우쭐한건 잘못했지만 그게 이렇게 쫓겨나서 죽음을 생각할 만큼 잘못된 건지 여러 마음이 있었을거에요.
우리로 얘기하면 “세상이 이런데 어떻게 해요?” 와 같은거에요.
학교에서 학원에서 심지어는 집안에서 공부에 대해 압박을 주고, 입시에 대해 계속 말해서 하는건데 저보고 어떻게 해요?
친구관계 안에서도 다들 이렇게 하래서 한거였을 뿐인데 왜 저는 이렇게 힘들어야 하죠? 도대체 어떻게 하죠?
신앙에서는 어떨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믿기도 하고 열심히 하기도 했는데 아무것도 바뀐게 없어요. 그래서 지금의 저한테는 말씀이 와닿지 않고, 들리지 않는 걸 어떻게 해요? 라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진짜 하나님이 찾아오신 상황은 어떤 상황이죠?
다 해봤는데, 더이상 바뀔 것이 없어 마음이 무너질때,
이런거에요.
공부하고 아무리 발버둥쳐도 꿈도 없고 방향도 없어 결국 불안한 마음이 멈추지 못하다 못해서 좌절감이 너무나 클 때,
친구관계를 이렇게 저렇게 다 해봤는데도 더이상 해결이 되지 않아서 우울함이 너무 커져있을 그때,
말씀을 믿었는데, 더이상 아무것도 바뀌지 않아 실망하고 실패한 듯한 마음이 밀려들어올 때,
이럴 때가 오히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살피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되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경험하고 만나는 때라는 거에요.
친구들, 이제 말씀을 같이 정리하면서 기도했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렇게 교회를 떠나고 다른 교회로 가서 새롭게 바뀐 나의 모습을 기대했지만 여전히 저는 방황하고 더 외로운 신앙생활을 해야하는 시간을 보낼 때, 저도 많이 어린 믿음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생각했어요.
내가 잘 못 선택해서.. 내가 이렇게 선택해서 하나님께서 나를 벌하시는 걸까?
그래서 내가 이렇게 고생하고 이렇게 방황하고 갈피를 못잡고, 우울하고, 실패감에 빠져있는걸까?
하고 생각하기도 했어요.
왜냐하면, 나도 나쁜 마음으로 한 것도 아니고, 하나님을 뜨겁게 믿고, 뜨겁게 기대하고, 사역팀을 함께 만들고 꿈꾼 것도, 사업을 한 이유도 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싶어서 한건데, 마음처럼 안되고 그래서 더 좋은 곳에서 배워보면 어떨까 하고 온건데, 왜 더 심해질까? 라고 생각하니
내가 뭔가 하나님 앞에 큰 잘못을 지어서 벌받는 건 아닐까? 믿음이 어린 제 수준에서는 이렇게 생각할 수 밖에 없었어요.
그런데 이렇게 좌절하고 실패감에 우울해 있을 때에도 제가 했던게 딱 한 가지가 있었어요.
그게 어떤거냐면 기분이야 어떻든, 예배드리는거, 그래도 말씀을 한장 이상 읽는거, 자기전에 답답해도 있는그대로 5분이라도 기도하는거
이렇게 그냥 하는거에요. 한 동안은 그래서 ‘잘못했어요’만 했던 것 같아요.
내가 잘못한게 많은 것 같아서 말이에요.
그러다가 어느 순간 예배를 드리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그 말씀이 다시금 저한테 왔던 순간이 있었어요.
여름수련회였었나 ‘사랑’이라는 주제로 했던 수련회로 기억하는데
그때 강사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뭐였냐면 “하나님은 당신의 모습이 어떠하든지 사랑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선택이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이 메시지였어요.
그 때 저는 이전에 경험했던 하나님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경험하게 됐어요. 이전에 경험한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이었다면, 이 때 경험한 하나님은 ‘내 모습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여전히 나를 기대하시고 나를 향해 큰 꿈을 꾸고 계시는 하나님’
그리고 내가 느끼지 못했지만 여전히 나를 살피고 계시는 그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게 되었어요.
하나님은 분명히 살아계시고, 말씀대로 친구들을 축복해주고 계세요.
그리고 여전히 친구들에게 말씀해주고 계시고, 우리가 느끼지 못하지만 여전히 우리의 모든 상황과 마음을 살피고 계신 분이세요.
저는 오늘 이 시간이 이런 하나님을 경험하게 되는 시간이 될 줄 믿고 기도하고 있어요.
친구들을 너무나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이렇게 말씀하실거에요.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네모습 그대로 사랑한다.”, “내가 여전히 너를 향한 큰 계획이 있단다.” 라고 말이에요.
오늘 이런 하나님을 느끼고 경험하게 되는 시간들이 되길 축복합니다.
기도가 어색하죠? 어떻게 해야할지 감이 안잡히나요? 괜찮아요. 오늘 찬양할 때 우리가 어떻게 했죠?
마음껏 표현해보는 걸 연습했어요. 뛰기도 하고, 소리치기도 하고, 두손을 들기도 하고 그렇게 찬양했어요.
찬양의 시간은 음악회나 공연이 아니에요.
우리가 아는 이 ‘기도’에 음악을 얹어서 하나님께 고백하는거에요.
찬양의 가사 하나하나를 고백하면서 ‘찬양을 통해’ 기도해보는거에요.
그리고 같이 기도할 때는 제가 이렇게 기도하자고 하는대로 계속 기도하는거에요. 그렇게 기도하다가 떠오르는게 있다면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기도해보는거에요.
그렇게 하나님 앞에 솔직한 마음으로 나아올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또 다른 은혜들을 느끼고 경험하는 시간이 될 줄 믿습니다.
이 시간 내 모습 이대로라는 찬양을 고백할 건데, 내 모습 이대로라는 찬양 가사가 딱 우리를 향한 가사에요.
내 모습 이대로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이 고백을 진지하게 올려드리면서 우리 찬양해봅시다.
기도제목 1
우리 이 시간에 이렇게 고백하는 거에요.
주님, 내 모습 이대로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 제 모습 이대로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해주세요.
주님, 주님이 저를 사랑한다는 것을 더욱더 느낄 수 있게 해주세요.
이 3가지를 계속 고백해보는거에요.
그리고 고백하면서 떠오르는 내용들을 계속 기도하는거에요.
이번에는 이렇게 기도해보는 거에요.
주님, 주님을 사랑하지 못했던 저를 용서해주세요.
주님, 주님을 사랑하지 못하게 했던 많은 것을 이제는 끊어내게 해주세요.
주님, 이전 보다 더 성장하고 주님을 더 깊이 알아가게 해주세요.
그리고 다시한번 주님, 주님을 더욱 사랑하기 원합니다.
이렇게 고백할텐데, 정말 하나님이 나의 주님이시고, 아버지시라는 믿음의 고백을 담아서 이번에는 ‘주여’라고 함께 외치고 이어서 기도할게요.
우리 선생님들은 친구들 한 명 한 명 찾아가서 기도해주세요.
기도제목 2
아브람도 처음부터 믿음이 대단한 사람이 아니에요. 누구나 다 현실이 너무 커보이고, 하나님이 아무일도 하지 못하시는 것처럼 느끼는 때를 거치게 돼요.
오늘 우리 이 가사처럼 하나님께 고백해보기 원해요. 따라해봅시다.
주님, 주님의 약속을 붙잡고 가기 원합니다.
주님, 남들처럼 말고 주님 말씀대로 살기 원합니다.
주님, 저를 믿음의 사람으로 세워주세요. 저를 이끌어주세요.
이렇게 다시 한번 기도하면서 주님 앞에 나아가봅시다. 다시한번 주여한번 부르고 기도하겠습니다.
기도제목 3
우리 이 시간은 이렇게 변화되길 기대하면서 하나님께 구했으면 좋겠어요.
하나님의 꿈이, 예수님의 성품이, 성령님의 능력이 나의 삶속에도 나타나길 구하기 원합니다.
주님, 주님의 꿈을 품는 제가 되게 해주세요.
주님,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는 제가 되게 도와주세요.
마지막으로
주님, 성령께서 저를 이끌어주시고 변화되게 인도해주세요. 라고 우리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기도제목 4
친구들 주님은 친구들이 걷고 있는 길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고 함께 하고 계세요. 하나님은 단 한번도 우리를 떠난 적이 없으시고, 이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말씀하실거에요.
이 시간에는 이렇게 기도할거에요. 이번에는 구하는게 아니라 고백할거에요.
주님, 힘들고 지칠 때 가장 먼저 주님을 찾겠습니다.
주님, 언제나 저와 함께 하시는 줄 믿습니다.
주님, 항상 저를 인도해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께서 크신 팔로 우리를 덮으실 때 허락해주신 울타리가 있어요.
바로 이 교회 공동체를 친구들에게 주신 거에요. 가장 힘들 그 때, 외로울 그 때, 지치고 답답한 그 때, 언제나 서로를 위해 기도해주는 이 공동체가 하나님께서 허락해주신 크신 팔이에요.
우리 이번에는 동그랗게 만들고 서로를 위해 기도했으면 좋겠습니다.
옆 사람 손을 잡고 옆에 있는 친구들을 축복해주면서 기도할거에요.
어떻게 축복해줄거냐면,
주님, 이 친구(선생님)와 항상 함께 해주세요.
주님, 이 친구(선생님)를 주님께서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고 알게 해주세요.
주님,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을 따라 걸을 수 있도록 이 친구(선생님)를 인도해주세요.
이렇게 기도하면서 손을 잡은 옆 사람을 위해서 같이 기도합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