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128 새벽기도회
Notes
Transcript
주님을 찬송합니다. 찬송가 183장 입니다.
신앙고백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장사한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이 새벽에도 저희를 개워 주님 앞으로 나오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며 세상의 일보다 기도로 주님을 찾게 하심이 주님의 은혜임을 고백합니다.
오늘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우리의 힘과 생각만으로는 알 수 없사오니 이 새벽에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향하게 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말 한마디, 선택하나, 만남 하나 속에서도 주님의 뜻을 분멸하며 살아가게 하시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도 주님과 동행하는 하루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또한 지치지 않게 하시고, 조급하지 않게 하시어서 상황과 환경에 흔들리기보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중심을 지키게 하여 주옵소서.
이시간 드려지는 일천번제 헌금과 감사헌금을 기쁘게 받아 주옵소서.
드린 손길의 간절한 소원과 감사의 고백을 주님께서 아시오니, 주님의 때에, 주임의 방법으로 응답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3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이 있으니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7 돌에 써서 새긴 죽게 하는 율법 조문의 직분도 영광이 있어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의 얼굴의 없어질 영광 때문에도 그 얼굴을 주목하지 못하였거든
8 하물며 영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있지 아니하겠느냐
9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
10 영광되었던 것이 더 큰 영광으로 말미암아 이에 영광될 것이 없으나
11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1. 본문의 배경: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는가?
1. 본문의 배경: 바울은 왜 이런 말을 했는가?
잘 아시는 것 처럼 고린도 교회는 바울이 직접 세운 교회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떠난 후, 일부 유대주의적 성향의 교사들이 고린도에 들어왔습니다. 이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추천서를 가지고 있었고, 이것을 자신들의 권위로 내세웠습니다. 그리고 바울을 향해 “바울은 정식 추천서도 없는 사람이라며 바울이 정말 사도인지 어떻게 믿을 수 있냐며 비난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1절에서 바울이 이렇게 선포하는 것입니다.
1 우리가 다시 자천하기를 시작하겠느냐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추천서는 매우 중요했습니다. 여행자가 다른 도시에 갈 때, 신뢰할 만한 사람의 추천서가 있으면 환대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이 관행이 초대교회에도 적용되어, 순회 교사들이 다른 교회를 방문할 때 추천서를 가지고 다니곤 하였습니다.
바울의 반대자들은 이것을 빌미로 바울을 공격하였습니다.
2. 바울의 놀라운 답변: "너희가 나의 추천서다" (1-3절)
2. 바울의 놀라운 답변: "너희가 나의 추천서다" (1-3절)
바울은 이 비난에 바울 자신에게도 추천서가 있다고 2절에 선포합니다. 다만 그것은 종이에 쓴 것이 아니었습니다.
2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바울은 추천서의 의미 자체를 새롭게 정의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추천서는 고린도 교인들의 변화된 삶 자체임을 선포한 것입니다.
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 그들의 공동체가 형성되고 사랑 안에서 자라가는 것, 이 모든 것이 바울의 사역의 진정성을 증명하는 살아있는 증거였습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되었습니다.
2. 우리에게 필요한 추천장은 여러분 자신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착해지면 우리가 여러분 가운데서 선한 일을 베풀었다는 것을 누구나 보고 알게 될 것입니다.
종이에 쓴 추천서는 위조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변화된 삶은 위조될 수 없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달라진 삶이 바울 사역의 가장 확실한 증거가 된 것 입니다.
3. 그리스도의 편지 (3절)
3. 그리스도의 편지 (3절)
그리고 바울은 더 나아가 3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단순히 "나의 추천서"라고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그리스도의 편지"라고 불렀습니다.
편지의 역할은 보내는 사람의 마음과 뜻을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고린도 교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보내신 편지라는 것입니다.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마음과 뜻이 세상에 전달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이 편지는 어떻게 쓰인것입니까? 바울은 두 가지 대조를 통해 설명합니다.
첫째,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입니다.
일반 편지는 먹(잉크)으로 씁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편지인 성도들은 성령 하나님으로 쓰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직접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우리를 변화시키시는 것입니다.
둘째,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입니다.
구약시대 시내산에서 모세가 하나님께 받은 십계명은 돌판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집니다.
이것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이미 이전에 선포되었던 예언입니다.
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또한 에스겔 36장 26절의 약속이기도 합니다.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그러기에, 우리 또한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직접 쓰신 편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성경을 읽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의 삶을 읽습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 우리가 어려움을 대하는 태도, 우리가 이웃을 사랑하는 방식을 통해 그리스도를 읽게 되는 것입니다.
4. 새 언약의 일꾼 (4-6절)
4. 새 언약의 일꾼 (4-6절)
그렇다면 이처럼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게 하는 것입니까?
바울의 뛰어난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그리스도를 새기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에 대한 확신을 말하면서도 5절에 이렇게 고백합니다.
5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자랑하지 않습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변화가 바울 자신의 능력이나 설교 때문이 아님을 분명히 고백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6절에 이렇게 선포합니다.
6 그가 또한 우리를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하게 하셨으니 율법 조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여기서 바울은 "율법 조문"(γράμμα, 그람마)과 "영"(πνεῦμα, 프뉴마)을 대조합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대조입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라는 말은 율법 자체가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고 선포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율법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준을 보여주지만, 그 기준에 도달할 능력을 주지는 못한다는 것입니다.
마치 율법은 거울처럼 우리의 죄를 비추어 보여줍니다. 그러나 거울이 얼굴에 묻은 더러운 것을 씻어주지 못하듯이, 율법은 우리의 죄를 씻어주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가 죄인임을, 하나님의 기준에 미치지 못함을, 심판 아래 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영은 살리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 새 생명을 주십니다.
율법이 요구하는 것을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외부에서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내부에서 변화시키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놀라운 은혜입니다.
5. 새 언약의 영광이 더 크다 (7-11절)
5. 새 언약의 영광이 더 크다 (7-11절)
또 7절부터 바울은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영광을 비교합니다. 그러면서 출애굽기 34장의 사건을 이야기 합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에서 광채가 났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광채를 두려워하여 모세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바울은 그 영광을 "죽게 하는 직분의 영광" 또는 "정죄의 직분의 영광"이라고 부릅니다. 율법은 영광스러웠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임재하셨을 때 우레와 번개, 하나님의 음성, 돌판에 새겨진 계명들 이 모든 것이 영광스러웠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9절에서 이렇게 비교합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더욱 영광이 넘치리라"
정죄하는 옛 언약도 영광이 있었다면, 의롭다 하는 새 언약은 얼마나 더 큰 영광이 있겠습니까?
다시말해 죽이는 직분도 영광이 있었다면, 살리는 직분은 얼마나 더 영광스럽겠습니까? 이 말입니다.
또 10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전에 영광 받은 것이 이 점에 있어서는 비할 수 없는 영광으로 말미암아 영광 될 것이 없으나"
해가 뜨면 별빛이 보이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별빛도 분명히 빛 입니다. 그러나 태양이 뜨면 별빛은 그 앞에서 사라집니다.
옛 언약의 영광이 별빛이라면, 새 언약의 영광은 태양빛입니다.
11절은 또 하나의 비교를 보여줍니다. "없어질 것도 영광으로 말미암았은즉 길이 있을 것은 더욱 영광 가운데 있느니라"
모세의 얼굴에 있던 영광은 점점 사라졌습니다. 일시적인 영광이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영광은 영원합니다.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주의 영광을 바라볼 때, 우리도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무엇을 붙잡고 가야 합니까?
먼저, 우리는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하루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은 우리 통해 그리스도를 읽게 됩니다.
그들이 성경을 펼치지 않아도, 우리의 삶이라는 편지를 읽는 것입니다.
사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얼마나 기도하는지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얼마나 성경을 보는지, 새벽기도회 나오는지 그런것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우리의 삶에 관심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사랑이 쓰여 있는지, 용서가 쓰여 있는지? 그것을 봅니다.
우리의 삶이 읽기 좋은 편지가 되기를 원합니다.
물론 우리가 완벽할 수는 없습니다. 편지에 오타가 있을 수도 있고, 번진 자국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람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계시구나”라는 메시지가 분명히 전달되어야 합니다.
둘째, 이 편지는 성령께서 쓰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의 노력으로 좋은 편지가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우리 마음판에 쓰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의 역할은 성령하나님께 우리 마음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굳은 마음, 완고한 마음을 버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일하실 수 있는 부드러운 마음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새벽에 "우리의 완고한 마음을 거두어 주시고, 우리의 마음판에 주님의 말씀을 새길 수 있게 부드러운 마음을 구하시길 바랍니다.
셋째, 새 언약의 영광 안에 살아갑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우리는 더 이상 율법 아래 있지 않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죄 아래 있지 않습니다. 두려움 아래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의 영광 안에 있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받은 자녀들입니다. 살리는 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죄감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어서 마음속에 “나는 자격이 없어, 하나님이 어떻게 나를 사용하시겠어?" 이런 생각에 사로잡혀 있다면. 오늘 말씀을 기억하심으로 그 사슬을 끊어버리시기를 바랍니다.
새 언약은 정죄가 아니라 의롭다 하심입니다. 죽임이 아니라 살림입니다. 일시적 영광이 아니라 영원한 영광입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스스로 만족할 것이 없다고 고백했습니다. 바울의 자격은 오직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자격과 능력, 우리의 쓰임받음, 이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옵니다. 우리는 그저 성령께서 쓰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면 되는 것입니다.
결론
결론
새벽을 깨우며 하나님 앞에 나온 성도 여러분, 오늘 하루가 시작됩니다. 오늘 하루 우리모두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세상에 보내집니다. 우리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우리를 통해 통해 그리스도를 읽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성령께서 쓰십니다. 우리의 능력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는 오늘 하루도 성령께 우리 마음을 열어드리면 됩니다. 그분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 일하실 것입니다.
돌판에 새겨진 율법은 정죄하지만, 마음에 새겨진 새 언약은 살립니다. 오늘 이 새벽, 우리 마음에 새 언약의 은혜가 더욱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오늘 하루, 우리의 삶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아름다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기도
사랑의 주님, 이 새벽에 말씀을 통해 저희가 그리스도의 편지임을 다시 한번 깨닫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저희의 삶이 주님을 증거하는 편지가 되게 하시고. 성령 하나님으로 저희 마음에 주의 뜻을 새겨 주시고, 저희의 말과 행동을 통해 그리스도의 사랑이 전해지게 하여주옵소서
그리하여 새 언약의 영광 안에서 살게 하시고, 정죄가 아닌 의롭다 하심의 은혜 안에서 담대히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오늘 하루, 저희가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주님의 기쁜 소식이 되어 우리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하늘에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이시간 말씀을 생각하며, 또한 병중에 있는 성도들과 특별히 사모님의 회복을 위해 다함께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