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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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 냉소적인 현실 비판자가 아닌, 하나님의 꿈을 꾸는 거룩한 비전가로 주의 이름을 부르라!
본문: 사도행전 2:14-21
1. 서론: 냉소적인 모습 (3분)
1. 서론: 냉소적인 모습 (3분)
“하나님은 당신을 무조건 사랑하세요. 나도 한번 그래볼게요!”
요즘 세대를 관통하는 정서가 저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냐면, 안타깝게도 '냉소(Cynicism)'라고 생각합니다. 뉴스를 보며 "헬조선"이라 한탄하고, 치솟는 집값을 보며 "이번 생은 망했다"라고 스스로를 비하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현실의 문제점을 기가 막히게 아주 잘 찾아냅니다. 친구들과 모이면 직장의 모순, 사회의 부조리, 교회의 문제점에 대해 밤새 토로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나요? 맞습니다. 저와 여러분은 이전 세대보다 똑똑합니다. 분석적입니다. 잘못된 것을 짚어내는 날카로운 이성을 가지고 평론가처럼 있습니다.
오늘 말씀 본문의 배경이 되는 오순절 날,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임재를 본 사람들의 분위기도 이와 비슷했습니다. 120명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방언으로 하나님의 일들을 말하자, 그것을 본 사람들은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비아냥거렸습니다. "저것들 낮술 먹고 취한 거 아니냐?"라며 조롱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을 설명할 길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눈앞에서 기적을 보고도, 그것을 분석하고 비판하고 깎아내리기 바빴습니다.
그런데 그때, 베드로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충만한 그는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하나님의 말씀을 인용하며, 성령이 임하면 어떤 놀라운 변화가 일어나는지 당당하게 선포합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비판과 냉소로 가득 찬 우리의 눈이, 하나님의 꿈을 보는 '비전의 눈'으로 바뀌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본론 1: 성령은 '평론가'를 '감독'으로 바꾼다 (7분)
2. 본론 1: 성령은 '평론가'를 '감독'으로 바꾼다 (7분)
베드로는 요엘서 2장 28절을 인용하며 이렇게 선포합니다. 사도행전 2장 17절 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여기서 우리는 조금 한부분을 집중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로 환상을 보는 것입니다.
특별히 젊은이들이 '환상(Vision)'을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환상은 일반적으로 현실에 없는 것을 있는 것처럼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즉, 현실에는 없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환상을 무엇이라고 표현하냐면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현재 또는 미래에 벌어질 하나님의 역사와 관련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이 현실에서 이루어질 것을 보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 '젊은이(청년)'들에게 환상을 본다고 했을까요?
청년기는 인생에서 가장 비판적이고, 회의적이며, 혈기가 왕성한 시기입니다. 이상은 높은데 현실이 따라주지 않으니 불만이 많습니다. 그래서 청년들이 현실을 바라보는 프레임은 수저 계급론처럼, 부모의 경제력이 본인의 미래를 결정한다고 인식하고, 노력해도 안된다, 이번생은 망했다. 헬조선이다 라는 용어가 청년들의 지배적인 세계관이 되었습니다. 단순한 비관을 넘은 체념적인 모습이기에 마음이 아픕니다.
성경에도 그런 대표적인 청년이 나옵니다. 바로 예수님의 제자 '나다나엘'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전 예수님을 만난 친구 빌립이 예수님을 한번 만나보라고, 우리를 구원하실 분이 오셨다고 전합니다. 그러나 그는 대뜸 이렇게 말합니다.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그는 바로 냉소적인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죠. "우리 학교에서 뭐가 나오겠어?", "내 스펙으로 뭐가 되겠어?", “교회에서 뭘 할 수 있겠어?” 라며 시작도 전에 냉소적으로 판단합니다.
여러분, 영화 '평론가(Critic)'와 '감독(Director)'의 차이를 아십니까? 평론가는 이미 만들어진 영화를 보며 먼저 단점부터 생각을 합니다. 이 영화의 좋은 점도 찾지만 나쁜점을 먼저 눈에 보이고 찾으려고 하는 것이 사람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평론가는 "조명이 별로다", "스토리가 진부하다"라고 분석하고 비판합니다. 그들은 문제를 찾아내는 전문가입니다. 하지만 평론가는 영화를 직접 만들지는 못합니다. 반면, 감독은 다릅니다. 감독은 아무것도 없는 백지상태에서, 머릿속에 있는 그림(Vision)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사람입니다. 남들이 "그게 되겠어?"라고 할 때, 감독은 큐 사인을 외치며 새로운 세상을 창조합니다.
성령이 임하신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환상 vision을 보는 것입니다. 맨날 남의 인생, 사회, 교회를 평가질만 하던 '방구석 평론가'의 인생을 끝내고, 내 인생 가운데서 하나님 나라를 주도적으로 만들어가는 '영적 감독'이 된다는 뜻입니다. 성령은 우리에게 현실을 뛰어넘는 환상 '거룩한 상상력(Vision)'을 주십니다. 어떤 거룩한 상상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이 어려운 현실 가운데서도 하나님은 새로운 일을 행하신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아 하나가 되게 하시고, 사랑과 선을 행하는 공동체를 이루신다. 어려움 가운데서도 반드시 희망은 있다. 예수를 믿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 죽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것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함께 살아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못하실 것이 없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우리에게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서 살아가게 하셨으니까요! 그리고 성령 하나님의 영을 받았기에 우리는 그 거룩한 상상을 보게하시고 하나님은 그것을 이루십니다.
청년의 때 우리는 고작 비판이나 합니다. 불평만 합니다. 비판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불평 쉽습니다. 하지만 대안을 제시하고,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꿈을 꾸는 것은 성령 받아 비전, 환상을 보는 청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소년이었을 때 다윗은 거룩한 상상을 하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군인들은 골리앗을 보고 "우린 다 죽었다"라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아무도 나서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소년 다윗은 달랐습니다. 그는 골리앗이라는 '현실의 벽', 자신의 힘없고 외소함 본 것이 아니라, 자신의 뒤에 계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보았습니다. 남들은 "저 거인은 너무 커서 이길 수 없다"고 분석할 때, 소년 다윗은 "저 거인은 내가 양들을 지키면서 죽인 사자와 곰과 같이 될 것이다"는 비전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여 나아가 골리앗을 쓰러뜨립니다. 이것이 환상을 보는 젊은이입니다.
저는 청년 여러분들이 서로 기쁨으로 감사로 예배드리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예배 후 믿음으로 일상의 삶을 예배로 드리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의 서로의 아픔과 슬픔을 나누고, 즐거운 일은 함께 나누며, 정말 서로 친밀하여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는 사랑이 있기를 봅니다. 회복되는 거룩한 상상을 합니다! 비전을 봅니다. 이루어질 소망을 봅니다. 우리가 진정한 회복을 서로 이루어, 막혔던 담을 서로 허물어, 같이 있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고, 서로의 실수와 허물로 인해 불편과 원망 답답함과 짜증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안타까움과 위로 사랑으로 덮어줄 수 있는 넉넉한 마음으로 다가가기 원합니다.
또한 자신의 개인의 상황과 환경에 지배받지 않고, 거룩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주권으로 역사하시는 구원의 여정에 올라타기를 소망합니다! 그 여정이 때로는 어렵고 답답하고 고민이 많을 지라도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시는 주님으로 인하여 위로와 소망을 주심으로 끝까지 여정을 함께하는 청년들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여러분의 입술에서 "이래서 안 돼, 저래서 안 돼"라는 비판적인 생각과 말을 거두십시오. 대신 성령을 구하십시오. 성령님이 임하시면 여러분의 눈이 열립니다. 비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자꾸 흙수저라는 현실을 바라보며 낙심하고 계십니까? 성령님이 임하시면, 나를 들어 쓰실 하나님의 계획이 보이기 시작할 거에요. 여전히 교회나 사회 그리고 개인과 나 자신에 대해서 냉소적인 비판자로 서 있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가슴 뛰는 비전가(Visionary)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 본론 2: 우리에게 주신 '치트키'가 있다.(7분)
3. 본론 2: 우리에게 주신 '치트키'가 있다.(7분)
우리는 이제 성령님이 임하심으로 가슴뛰는 비전가의 모습이 됩니다!
그것을 마음속으로 보기를 원할 것에요! 가슴 뛰는 비전가가 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현실의 벽에 부딪치면, 그 마음이 우리는 다시 꺽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은 약합니다. 참 어렵습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는 치트키가 있습니다!
여러분 혹시 쇼미더머니 하면 뭐가 떠오르시나요? 이렇게 이야기 하면, 좀 젊은 친구들은 TV프로그램을 떠올릴 것이고, 저 처럼 나이 있는 친구들은 스타크래프트를 떠올릴 것입니다! 왜냐하면 스타크래프트의 치트키가 바로 쇼미더 머니이기 때문입니다! 스타크래프트는 전략 RTS 게임입니다. 내 병력을 많이 뽑고 컨트로를 해서 적군을 섬멸하는 게임입니다. 그 게임에서는 자원을 빨리 더 많이 채취해야 승리합니다. 그런데 싱글게임에서는 초반부터 치트키를 쓸 수 있습니다! 초보자들을 위해서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바로 영어로 쇼미더 머니를 치면 됩니다! 어떤 이들은 8대 1 컴퓨터랑 대결할 때, 엄청씁니다! 그러면 당연히 이기죠! 자원이 초반부터 많으면 이길 수 있습니다.
다시 베드로가 말한 요엘 선지자를 통한 하나님의 말씀 사도행전 2장 18-20절 에서 말세인 그 때 모든 땅에서 예언과 또 종말의 전조가 나타납니다. 곧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리고 그 전조가 피와 불과 연기가 일어난다고 합니다. 무엇이 상상되어지시나요? 자연재해 혹은 전쟁입니다. 만약 내가 전쟁이나 재해 한 가운데 서 있다면 어떨까? 라고 했을 때, 절망과 비관, 비판만 생각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성령이 임하여 환상을 본 청년들은 그럼에도 비전을 선포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요? 치트키를 쓰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요엘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중요한 약속을 선포합니다. 21절을 다 같이 읽어볼까요?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이게 바로 치트키입니다.
그 전 구절인 20절에서도 요엘 선지자가 예언한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 또한 심판의 날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입니다. 그날에는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될 것입니다. 어둡고 무서운 이 무시무시한 심판 앞에서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때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치트키가 바로 "주의 이름"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서도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진흙탕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우울증의 늪, 관계의 파탄, 감당할 수 없는 빚... 우리는 혼자 해결하려다 더 깊이 빠져듭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강력한 긴급 호출 번호를 주셨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바로 "주여!"라는 이름입니다. 그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습니다. 그리고 베드로의 설교 마지막 부분에서 이름의 주인이 누구인지 명확히 밝힙니다. 사도행전 2:36 입니다! 시작!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우리가 내가 십자가의 못 박은 예수입니다. 나의 죄 여러분의 죄를 이 세상의 모든 죄를 다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그 죄값을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그의 의가 인류의 죄보다 더 크기에,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높이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의 능력은 우리를 죄와 사망의 현실에서 구원하시기에 충분하고도 넘칩니다.
베드로 자신도 이 이름의 능력을 체험한 사람입니다.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은 치유 사역을 행하셨습니다. 제자들에게 능력을 나누어주시며,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게 하셨고, 병든자를 고치도록 하셨습니다. 또한 마태복음 14장에서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에게 믿음으로 나아가자 그는 물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내 그가 물 위를 걷다가 바람을 보고 무서워 물에 빠져들어 갈 때, 그는 외쳤습니다.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그 짧은 외침, 그 간절한 부르짖음으로 예수님은 그를 건져 주셨습니다.
아까 쇼미더머니 말씀드렸죠! 다시 TV프로그램 쇼미더머니를 말씀드리죠. 우리 모두 잘아는 그프로그램에서 우승자 비와이를 잘 알것입니다! 거기서 비와이는 사실 치트키를 썼어요! 뭐죠? 그 자기 자랑과 상대방의 비방 욕설이 난무하는 그 프로그램에서 주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기도를 했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 그가 결승 1라운드에 DayDay를 부르기 전, 그의 수록곡 The Time Goes On 의 부분을 부릅니다.
“그 시간 속에서 기도로 나는 매일 손을 모으고 하늘로 부르짖어 의심 대신에 확신을 두려울 땐 담대함이 늘 나에게 머물도록 내가 나약한 내 자신을 의지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 당신을 의지하게 날 세우소서 나는 아직까진 너무도 미비하기에 그러나 미비한 만큼 창대 하다는 것을 믿지 언제나 지금은 먼 미래지만 오늘이 되겠지 언젠가 모든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아 내가 여태 지나온 거리 위 많은 발걸음이 나를 만들었고 하루 종일 빛나는 내 삶을 주신 주와 함께 내 한계를 부셔 버릴 그날을 아름답게 맞이 하기 위해서 바로 지금 여기에 서 있지 나는 내 삶은 바로 신이 만들 예술 작품의 Featuring 나의 불완전함을 사용하는 창조주의 Symphony 나로 인해서 쓰여지는 위대한 history 어쩌면 이 모든 건 내 이야기가 아닌 His story”
하나님의 역사에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사용하시는 영적 감독입니다. 그 영적 감독은 영감을 얻기 위해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자신의 힘으로 될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이야기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드러내는 삶을 만들어갈 힘을 주시는 분은, 저와 여러분을 구원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진정한 힘입니다.
여러분, 주의 이름을 부르짖는 기도, 기도는 점잖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죽을 것 같을 때,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체면 차리지 말고 주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예수님!" 하고 부르는 순간, 주님의 권능이 내 삶에 실현되기 시작합니다. 주의 이름은 살기 위해 부르는 것이며, 생명을 지키기 위해 부르는 것입니다. 이 주의 이름은 우리의 죄를 사할 뿐만 아니라, 엉켜버린 내 인생의 실타래를 푸는 유일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4. 결론: 오늘, 내 방에서 이름을 부르라 (3분)
4. 결론: 오늘, 내 방에서 이름을 부르라 (3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행복한 청년 여러분, 세상은 갈수록 혼란스러울 것이며, 비관적으로 흐를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는 자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선포하고 그것을 내 인생과 공동체에 실현시키는 자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우리는 두 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하심으로 비판의 안경을 벗고, 비전의 렌즈를 끼십시오.
내 현실과 세상, 교회의 어떤 부조리를 욕하는 데 에너지를 낭비하지 마십시오. 나다나엘처럼 "뭐 좋은 게 있겠어?"라고 냉소하지 마십시오. 성령님은 여러분에게 요셉의 꿈과 다윗의 용기를 주기를 원하십니다. 젊은이답게 주님이 부어주시는 성령으로 환상을 보십시오.
습관적으로 주의 이름 예수 그리스도를 부르십시오.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여러분은 누구를 먼저 찾습니까? 습관적으로 찾는 엄마입니까, 친구입니까? 가장 먼저 "주여!" 하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십시오. 그것이 성도이자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 능력 치트키입니다.
오늘 집에 돌아가서, 아무도 없는 방에서 조용히, 그러나 간절하게 주님의 이름을 불러보십시오. 그리고 내 입술의 불평을 멈추고, 하나님이 보여주실 내일의 비전을 기대하십시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는 약속이, 여러분의 청춘을 가장 빛나는 길로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
[함께 찬양합시다] 모든 민족에게 1절만 - 후렴 2번만(그날엔 주의 영이)
[함께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청년의 때에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하며 세상과 환경을 비판만 했던 우리의 냉소적인 태도를 회개합니다. 오늘 성령을 부어 주사, 우리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환상(비전)을 보게 하옵소서. 골리앗 같은 현실 앞에서도 주눅 들지 않는 다윗의 야성을 주시옵소서. 또한, 내 힘으로 안 될 때마다 사람을 찾기보다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믿음을 주시옵소서.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를 반드시 구원하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나아갑니다.
주여 한번 부르시고! 합심하여 통성으로 기도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