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에는 하리라

주일오후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0 ratings
· 7 views
Notes
Transcript

제목: 후에는 하리라

본문: 요한복음 13장 36-38절

찬송: 280장 천부여 의지 없어서

말씀의 문을 열며

지난 2주간 우리는 요한복음 13장 21-35절 의 말씀을 통해 깊은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1부에서는 가룟 유다의 배신이라는 어두운 밤에도 하나님의 영광이 시작됨을 보았고, 2부에서는 그 어둠을 이기는 유일한 힘이 '서로 사랑하는 것'임을 확인했습니다. 오늘 우리는 이 시리즈의 마지막 시간으로, 수제자 베드로의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베드로는 예수님께 아주 비장한 각오로 장담합니다. "주여, 내가 지금은 어찌하여 따를 수 없나이까? 주를 위하여 내 목숨을 버리겠나이다."(37절)
이 말은 거짓말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의 뜨거운 진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결과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 호언장담이 무색하게도, 불과 몇 시간 뒤 닭이 울 때 그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며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도대체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왜 그의 진심은 실패로 끝났을까요?
오늘 우리는 베드로의 실패와 예수님의 약속을 통해, 우리 신앙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넘어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설 힘을 얻고자 합니다.

내 열심이 앞서면 넘어집니다

베드로의 실패 원인은 주님을 향한 '열정'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순서'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36절에서 아주 중요한 말씀을 하십니다. "내가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여기서 '지금(Now)''후에(Afterward)'라는 단어가 중요합니다. 베드로는 "주님, 저는 준비됐습니다. 지금 당장 제 목숨을 바쳐서라도 주님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나섰습니다. 듣기에는 참 훌륭하고 충성스러운 말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영적인 질서를 거스르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고, 나의 열심보다 중요한 것은 주님의 인도하심입니다.
'따른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앞서가시는 분의 뒤를 밟는 것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지금 자기가 앞장서서 예수님을 보호하겠다고 합니다. 마치 수영을 전혀 못 하는 사람이 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겠다고 무작정 뛰어드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구원은커녕 둘 다 죽게 됩니다. 구원할 능력이 없는 상태에서의 무모한 열심은 도리어 화를 부를 뿐입니다.
구원은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목숨을 버려서 얻어내는 훈장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죄인인 우리를 위해 먼저 목숨을 버리셔야만, 비로소 우리가 생명을 얻고 그 힘으로 주님을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구원자가 되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의 교만이자 가장 큰 착각입니다.
명절에 시골집에 온 어린 손주 녀석을 한번 생각해 봅니다. 할아버지가 무거운 쌀가마니를 지게에 지고 일어나려는데, 다섯 살배기 손자가 와서 지게 작대기를 붙잡고 떼를 씁니다. "할아버지 힘드니까 내가 질게! 나 힘세! 유치원에서 힘 제일 세단 말이야!" 땀을 뻘뻘 흘리며 매달리는 손자의 마음은 얼마나 기특하고 예쁩니까? 그게 손자의 거짓 없는 '진심'입니다.
하지만 지혜로운 할아버지는 절대 그 짐을 손자에게 맡기지 않습니다. 이것은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시해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손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그 무거운 짐을 아이가 지는 순간, 허리가 부러지고 평생을 다칠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손자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웃으면서 말합니다. "아니다. 지금은 안 돼. 이 무거운 건 할아비가 지고 갈 테니, 너는 내 뒤만 졸졸 따라오거라. 나중에 네가 더 크면, 그때는 거들 수 있을 게다."
지금 베드로의 모습이 딱 이렇습니다. 십자가라는 인류 구원의 무거운 짐은 베드로가 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만이 홀로 지실 수 있는 무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자기 힘을 과신하며 그 짐을 지겠다고 나선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내가 교회를 일으키겠습니다", "내가 다 책임지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귀한 마음이지만, 조심해야 합니다. 내 힘으로 하겠다는 열심은 위기가 닥치면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내 의지가 주님의 은혜보다 앞서면 반드시 탈이 납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닭 울음소리 앞에서, 그 작은 여종의 질문 앞에서 무력하게 쓰러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실패의 끝이 다릅니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실패할 것을 이미 다 알고 계셨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38b절) 얼마나 뼈아픈 예언입니까? 하지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경고보다 먼저 주신 약속입니다. 36절 끝부분을 다시 보십시오. "후에는 따라오리라."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야, 지금 네 힘으로는 안 된다. 너는 반드시 넘어질 것이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내가 십자가를 지고 너를 위해 길을 닦아 놓으면, 성령이 임한 후에는 너도 나를 따라올 수 있게 될 것이다. 너의 실패가 너의 끝이 아니다."
여기서 우리는 가룟 유다와 베드로의 결정적인 차이를 발견합니다. 두 사람 다 예수님을 배반했고 실패했습니다. 죄의 무게로 따지자면 둘 다 예수님의 가슴에 대못을 박은 큰 죄인입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결말하늘과 땅 차이입니다. 그 차이가 어디서 왔을까요?
가룟 유다는 실패한 순간, 자기 자신에게 몰입했습니다. '내가 어떻게 이런 짓을!' 하며 땅을 치고 후회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자기 죄책감에 갇혀버렸습니다. 후회는 '내가 왜 그랬을까' 하며 나를 바라보는 것이고, 회개는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며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유다는 끝내 자기 시선을 자기 죄에 고정한 채, 자기 인생의 주인이 되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적인 길, 자기 길을 갔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실패하면 후회는 합니다. 그러나 후회만으로는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반면 베드로는 실패한 순간, 통곡하며 주님의 말씀을 기억했습니다. 닭이 울 때, 그는 "닭 울기 전에 부인하리라" 하셨던 예수님의 말씀을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주님이 찾아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시며 손 내미실 때, 염치없지만 그 손을 다시 꽉 붙잡았습니다. 유다는 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무너졌지만, 베드로는 죄의 무게보다 더 큰 주님의 자비에 기대어 일어섰습니다. 내 의지와 자존심이 완전히 꺾인 그 자리에서, 그는 주님을 다시 영접했습니다.
이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주님, 저는 안 됩니다. 저는 실패했습니다. 그래서 주님이 필요합니다." 하고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 결과 베드로는 주님의 약속대로 "후에는 따라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그는 훗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하기까지 주님을 따르는 진짜 제자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베드로에게 닭 울음소리는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너는 끝났다"는 사형 선고가 아니었습니다. 잠든 영혼을 깨우는 새벽 알람이었습니다. "네 힘으로는 안 된다고 했지? 이제 너의 의지로 버티던 힘을 다 빼라. 그리고 내 등에 업혀라."라고 부르시는 은혜의 신호였습니다. 하나님은 때로 우리의 실패를 사용하셔서 우리 힘을 빼십니다. 내 힘이 빠져야 주님의 능력이 들어올 공간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말씀의 문을 닫으며

사랑하는 중앙교회 성도 여러분,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수없이 결심하고 또 수없이 넘어집니다. "주님 뜻대로 살겠습니다"라고 찬송하고 문밖을 나서자마자, 작은 이익 때문에 욕심을 내고 사소한 말 한마디에 혈기를 부리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모습입니다.
혹시 과거의 실수나 반복되는 연약함 때문에 "나는 안 돼, 나는 자격이 없어"라고 낙심하고 계십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믿음은 내 의지로 완성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먼저 지신 주님이 우리를 붙들고 가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룟 유다처럼 자책하며 내 길로 가서는 안 됩니다. 넘어져도 주님 안에서 넘어져야 합니다. 닭 울음소리가 들릴 때, 즉 내 연약함이 드러날 때, 나의 무능함을 인정하고 주님의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지금은 내 힘으로 안 되지만, 주님이 붙들어 주시면 후에는 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이 우리를 살립니다.
실패한 자리까지 찾아오셔서 "후에는 따라오리라"고 약속해 주시는 그 주님의 손을 꼭 잡고, 다시 일어서는 저와 우리 중앙교회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거둠의 기도

참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
지난 3주간 요한복음 13장의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에 감사합니다. 배신의 밤에도 영광을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을 주시며, 넘어진 우리를 다시 일으켜 세우시는 주님의 그 크신 사랑 앞에 머리 숙입니다.
오늘 베드로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자화상을 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여, 주님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고도 세상의 작은 파도 앞에서 쉽게 무너지는 저희들입니다. 어린 손주가 할아버지의 짐을 지겠다고 떼를 쓰듯, 내 힘과 내 의지로 신앙생활을 하려 했던 교만을 이 시간 회개합니다.
주님, 우리가 가룟 유다의 길을 가지 않게 하옵소서. 실수하고 넘어질 때, 자책하거나 포기하며 주님을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오히려 그 실패의 자리에서 나의 무능함을 철저히 깨닫고, 십자가를 먼저 지신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옵소서.
"지금은 할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오리라"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습니다. 우리 중앙교회 성도님들 중 혹시라도 낙심한 영혼이 있다면 찾아가 주시고,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옵소서. 내 힘을 빼고 주님의 등에 업힐 때, 비로소 참된 제자의 길을 갈 수 있음을 깨닫게 하옵소서.
이제 세상으로 나아갑니다. 우리의 의지는 약하나 주님의 팔은 강하오니, 한 주간도 주님의 능력으로 승리하게 하옵소서. 우리를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 Media
See more
Related Sermons
See more
Earn an accredited degree from Redemption Seminary with Logo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