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서 보라
Notes
Transcript
기도제목
기도제목
(1) 오늘도 힘주시고, 특별히 병중에 있는 성도님들, 주님 위로하여주시고, 온전히 치료하여 달라고
(2) 다음세대위해 기도합시다. 올한해 홀리몰리, 홀리아크, 홀리본 더 부흥되게 하시고,, 또 실기와 수능과 면접을 고3 재수, 3수친구들, 이번에 꼭 대학가서 청년부가서 신앙생활 잘하게 해달라고
(3) 선교를 위해 기도합시다.
(4) 마지막으로 청년대학부를 위해 기도합시다. 우리 청년들의 직장, 취업, 결혼을 위해 기도해주시고. 우리 청년부 부흥을 위해서
주님 오늘도 기도의 자리에 나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도 주님과의 깊은 만남이 있는 예배가 되게 하시고, 오늘도 주님 영광위해 살아가는 하루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찬송가 :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삼고
본문
본문
35 또 이튿날 요한이 자기 제자 중 두 사람과 함께 섰다가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7 두 제자가 그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거늘
38 예수께서 돌이켜 그 따르는 것을 보시고 물어 이르시되 무엇을 구하느냐 이르되 랍비여 어디 계시오니이까 하니 (랍비는 번역하면 선생이라)
39 예수께서 이르시되 와서 보라 그러므로 그들이 가서 계신 데를 보고 그 날 함께 거하니 때가 열 시쯤 되었더라
40 요한의 말을 듣고 예수를 따르는 두 사람 중의 하나는 시몬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라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2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43 이튿날 예수께서 갈릴리로 나가려 하시다가 빌립을 만나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44 빌립은 안드레와 베드로와 한 동네 벳새다 사람이라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들어가며
들어가며
여러분, 요즘 릴레이 경기 보신 적 있으세요? 400미터 릴레이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 언제인지 아세요? 바로 바통을 넘겨주는 그 찰나입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바통을 떨어뜨리면 끝이에요. 반대로, 바통만 잘 넘기면 개인 기록이 좀 부족해도 팀이 이길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2천 년 전,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릴레이가 시작되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복음이라는 바통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넘어가는 순간들이요.
1. 복음의 릴레이: 발견하고, 말하고, 데려오다
1. 복음의 릴레이: 발견하고, 말하고, 데려오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아주 재미있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누군가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분에 대해 말하고, 상대를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첫 번째 바통: 세례 요한에서 제자들에게
36 예수께서 거니심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36절,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걸 보고 외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여기서 '보다'라는 단어가 헬라어로 '엠블레포'입니다. 이건 그냥 쳐다보는 게 아니에요. 꿰뚫어보는 겁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겉모습이 아니라 본질을 보았습니다. '이분이 진짜 메시아다!' 그래서 외친 거예요.
그러자 요한의 제자 두 명이 예수님을 따라갑니다. 여기서 놀라운 건 세례 요한의 태도예요. 자기 제자들을 붙들지 않았습니다. "너희 어디 가? 나한테 배울 거 아직 많아!" 이러지 않았어요. 오히려 손가락으로 예수님을 가리키며 "저분이 진짜야, 저분께 가라"고 보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의 가치를 발견했기 때문에, 자기 제자들까지 기꺼이 보낼 수 있었습니다.
두 번째 바통: 안드레에서 베드로에게
41 그가 먼저 자기의 형제 시몬을 찾아 말하되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다 하고 (메시야는 번역하면 그리스도라)
41절을 보세요. 안드레가 제일 먼저 한 일이 뭐예요? 자기 형 시몬을 찾아간 겁니다. 그리고 말합니다. "우리가 메시아를 만났다!"
안드레는 성경에 많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설교도 베드로가 하고, 책도 베드로 이름으로 나오고, 순교할 때도 베드로가 더 유명하죠. 하지만 그 위대한 베드로 뒤에는 그를 예수님께 데려온 안드레가 있었습니다.
안드레는 뭘 발견했길래 형한테 달려간 걸까요? 금은보화보다 귀한 것을 발견한 겁니다. 평생 찾아 헤매던 메시아를 만난 거예요. 이건 혼자 간직할 수 없는 기쁨이었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 가장 사랑하는 형에게 먼저 달려가서 "형, 나 진짜 대단한 거 찾았어!"라고 말한 겁니다.
복음은 생면부지의 낯선 사람에게 외치는 확성기 소리이기 전에,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 진짜 좋은 거 찾았어"라고 말하는 기쁨의 공유입니다.
세 번째 바통: 빌립에서 나다나엘에게
45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 이르되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 요셉의 아들 나사렛 예수니라
45절, 빌립이 나다나엘을 찾아가서 말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한 그분, 선지자들이 예언한 그분을 우리가 만났다!"
그런데 나다나엘의 반응이 어때요? 46절,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46 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빌립이 이르되 와서 보라 하니라
나사렛은 당시에 정말 보잘것없는 시골 마을이었거든요. 나다나엘의 반응은 지극히 현실적이고 냉소적이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거기서 뭐가 나와? 그 동네가 뭐 있다고?"
2. 가장 강력한 전도: "와서 보라"
2. 가장 강력한 전도: "와서 보라"
자, 여기서 빌립의 반응을 주목하세요.
빌립은 나다나엘과 신학 논쟁을 하지 않았습니다. "아니, 구약을 봐, 미가서를 봐, 이사야를 봐..." 이러지 않았어요.
빌립이 한 말은 딱 세 글자입니다. "와서 보라."
Come and see.
여기서 '보라'는 헬라어로 '호라오'입니다. 이건 단순히 눈으로 보라는 게 아니에요. '경험하고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빌립은 "네 눈으로 직접 확인해봐, 그러면 알게 될 거야"라고 말한 겁니다.
전도가 뭘까요? 내가 설명해서 상대방을 설득하는 게 전도가 아닙니다. 전도는 그 사람을 예수님이라는 '실체' 앞에 데려다 놓는 것까지입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의 편견을 깨려고 애쓰지 않았어요. 그냥 예수님 앞에 데려갔습니다.
3. 와서 보면, 그다음은 주님이 하신다
3. 와서 보면, 그다음은 주님이 하신다
47 예수께서 나다나엘이 자기에게 오는 것을 보시고 그를 가리켜 이르시되 보라 이는 참으로 이스라엘 사람이라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48 나다나엘이 이르되 어떻게 나를 아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보았노라
49 나다나엘이 대답하되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당신은 이스라엘의 임금이로소이다
5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51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
47절에서 51절을 보세요. 나다나엘이 왔습니다. 빌립이 데려왔어요. 그런데 그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보라, 이스라엘 사람이로다, 그 속에 간사한 것이 없도다."
여기서 예수님이 나다나엘을 '보신' 것, 이것도 '엠블레포'입니다. 꿰뚫어 보신 거예요. 42절에서 예수님이 베드로를 처음 만났을 때도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예수님은 현재의 어부 시몬이 아니라 미래의 '반석 베드로'를 보셨어요. 나다나엘도 마찬가지입니다. 겉모습이 아니라 그 영혼의 본질을 보신 겁니다.
나다나엘이 깜짝 놀라 묻습니다. "어떻게 저를 아십니까?"
예수님이 답하십니다. "빌립이 너를 부르기 전에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을 때 내가 보았노라."
무화과나무 아래는 당시 유대인들이 기도하고 묵상하던 장소였어요. 나다나엘이 혼자 하나님을 찾고 있을 때, 아무도 모르는 그 은밀한 자리에서, 예수님이 이미 그를 보고 계셨던 겁니다.
이 한 마디에 나다나엘의 모든 편견이 무너집니다.
"랍비여,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시요, 이스라엘의 왕이로소이다!"
영적인 눈이 열린 겁니다. '호라오'가 일어난 거예요. 단순히 눈으로 보는 것을 넘어서, 예수님이 누구신지 깨달은 겁니다.
그리고 51절에서 예수님이 약속하십니다.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여러분, 나다나엘의 편견을 깬 사람이 누구예요? 빌립이 아닙니다. 나다나엘의 영적인 눈을 여신 분이 누구예요? 빌립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직접 하셨습니다.
빌립이 한 일은 뭐예요? 그냥 "와서 봐"라고 말하고, 데려온 것뿐입니다.
나가며: 데려오면, 성령님이 하신다
나가며: 데려오면, 성령님이 하신다
여러분, 여기서 우리가 배워야 할 게 있습니다.
전도가 부담스러우신 분들 많으시죠? "내가 뭘 알아야 전도하지", "질문 받으면 어떡하지", "저 사람 설득할 자신이 없어"...
빌립을 보세요. 빌립은 신학을 논하지 않았습니다. 논쟁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와서 봐"라고 했어요.
우리가 할 일은 거기까지입니다. 발견하고, 말하고, 데려오는 것.
물론 데려와서 내버려두라는 말이 아닙니다. 성경은 환대를 말씀합니다. 따뜻하게 맞아주고, 관심 가져주고, 챙겨주는 것. 그건 우리 몫이에요.
하지만 그 사람의 마음을 여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시는 건 누구의 일입니까? 우리 일이 아닙니다. 성령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설교 말씀을 통해서, 교회의 따뜻한 분위기를 통해서, 성도님들의 말 한마디를 통해서, 그 영혼이 정착하게 하시는 건 성령님의 역사입니다.
우리는 그것을 믿고 데려오면 됩니다.
여러분의 '안드레'는 누구입니까? 여러분이 "와서 봐"라고 말해야 할 형제, 자매, 친구가 누구입니까?
한 사람을 떠올려 보세요.
베드로라는 위대한 사도 뒤에는 이름 없는 안드레가 있었습니다. 나다나엘이라는 참된 이스라엘 사람 뒤에는 "와서 보라"고 말한 빌립이 있었습니다.
복음의 바통은 2천 년을 달려 오늘 여러분에게까지 왔습니다. 누군가가 여러분에게 바통을 넘겨줬기 때문에 여러분이 여기 앉아 있는 겁니다.
이제 그 바통을 들고 있는 사람은 여러분입니다.
내가 발견한 예수, 금은보화보다 귀한 이 예수의 가치를 말하고, 데려오십시오. 그러면 그다음은 주님이 하실 겁니다.
오늘, 그 바통을 넘겨주세요.
"와서 보라."
기도하겠습니다.
주님, 우리가 당신을 찾기 전에 당신이 먼저 우리를 보고 계셨음을 감사드립니다. 무화과나무 아래 있던 나다나엘처럼, 우리의 은밀한 자리에서도 주님은 우리를 알고 계셨습니다. 이제 우리에게 바통을 쥐어주셨으니, 두려워하지 않고 "와서 보라"고 말할 용기를 주옵소서. 우리가 데려오면, 주님이 그들의 눈을 열어주실 줄 믿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V. 기도문
V. 기도문
하나님 우리가 교회에서 거짓된 가르침을 경계하게 하시고, 또 잘못된 신앙을 다른 사람에게 가르치는 자가 되지 않게하시고 오직 참된 복음을 겸손히 배우고자 하는 마음으로 가득채워 주시옵소서, 감사드리며 이 모든 말씀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Lord’s Prayers
Lord’s Prayers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대게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