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개, 무너진 기초를 다시 세우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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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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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라 9장 1-8절
[서론: 성공의 정점에서 마주한 참담한 현실]
[서론: 성공의 정점에서 마주한 참담한 현실]
저희는 지난 시간 우리는 에스라와 2차 포로 귀환자들이 4개월간 1,400km가 넘는 대장정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무사히 도착한 감격적인 장면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감사 제사를 드리고, 가져온 막대한 예물을 성전 창고에 들였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성공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개혁을 위한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이 일 후에(1절)" 방백들이 에스라를 찾아와 충격적인 보고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이 이 땅 백성들에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그들의 딸을 맞이하여 아내와 며느리로 삼아 거룩한 자손이 그 지방 사람들과 서로 섞이게 하는데 방백들과 고관들이 이 죄에 더욱 으뜸이 되었다(1-2절)."
70년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목적이 무엇입니까?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다시 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지도자들부터 앞장서서 이방의 우상 숭배 문화를 받아들이고, 통혼을 통해 거룩한 정체성을 스스로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 참담한 소식 앞에서 에스라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오늘 우리는 에스라가 보여준 1절부터 8절까지의 반응을 통해, 죄를 대하는 참된 성도의 자세와 회복의 원리를 나누고자 합니다.
[대지 1: 회개는 죄를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1-4절)]
[대지 1: 회개는 죄를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1-4절)]
이 소식을 들은 에스라의 반응은 충격적이었습니다. 3절을 보십시오.
"내가 이 일을 듣고 속옷과 겉옷을 찢고 머리털과 수염을 뜯으며 기가 막혀 앉으니"
보통 겉옷을 찢는 것은 극한 슬픔의 표현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속옷까지 찢었고, 심지어 자신의 머리털과 수염을 쥐어뜯었습니다. 성경에서 머리털과 수염을 뜯는 행위는 극히 드문 일로, 이는 견딜 수 없는 수치심과 고통을 표현합니다.
사실 에스라는 억울할 수도 있습니다. 그는 이제 막 도착했습니다. 이 죄는 그가 오기 전에 이미 저질러진 일입니다. 그에게는 왕이 준 사법권이 있었기에 죄인들을 잡아다 처벌하면 그만이었습니다. 하지만 에스라는 그들을 비난하기 전에, 그 죄를 **'자신의 죄'**처럼 여겼습니다. 그는 공동체의 죄악을 자신의 몸에 새기듯 아파하며 주저앉았습니다.
[예수님의 모범: 우리의 질고를 지신 주님]
이 에스라의 모습에서 우리는 장차 오실 참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를 봅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죄인의 자리에 서셨고, 십자가 위에서는 온 인류의 죄를 뒤집어쓰셨습니다. 이사야 53장 4절은 말합니다.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남의 일로 보지 않으시고, 당신의 살을 찢으심(속옷과 겉옷을 찢듯)으로 그 죄값을 대신 치르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진정한 회개는 "저 사람이 잘못했습니다"라고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이 공동체의 죄가 곧 나의 죄입니다"라고 가슴을 치는 연대 책임에서 시작됩니다.
즉, 회개의 모습은 죄를 ‘나의 아픔’으로 끌어안는 것입니다.
[대지 2: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절)]
[대지 2: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4절)]
그렇게 에스라가 기가 막혀 앉아 있을 때, 누가 그에게로 모여들었습니까? 4절을 보십시오.
"이에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떠는 자가 사로잡혔던 이 사람들의 죄 때문에 다 내게로 모여오더라"
죄를 지은 방백들은 무감각했습니다. 그들은 죄를 짓고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엄위한지 아는 사람들, 즉 **'말씀 앞에 떠는 자들(Tremble at his word)'**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 죄가 가져올 하나님의 진노를 알았기에 에스라 곁으로 모여와 함께 울었습니다.
회복은 다수결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죄에 무감각한 다수가 아니라, 말씀 앞에서 죄를 죄로 인식하고 두려워할 줄 아는 소수의 **'떠는 자'**들을 통해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예수님의 말씀: 애통하는 자의 복]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마 5:4) 여기서 애통은 단순히 슬픈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와 세상의 죄악 때문에 가슴을 치며 우는 거룩한 슬픔입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을 보시며 우셨습니다(눅 19:41).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에서 축제를 즐겼지만, 예수님은 심판을 앞둔 성의 운명을 보시고 말씀 앞에 떠는 심정으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공이 아니라,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룩한 떨림'입니다.
[대지 3: 은혜의 '못'을 붙드십시오 (5-8절)]
[대지 3: 은혜의 '못'을 붙드십시오 (5-8절)]
저녁 제사 때까지 넋을 잃고 있던 에스라는, 마침내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손을 듭니다. 그리고 6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에스라는 죄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고 철저히 자복합니다. 그런데 8절을 보면 놀라운 반전의 고백이 나옵니다. "이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 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그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과 같게 하시고..."
에스라는 절망 중에도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했습니다.
"잠시 동안 은혜를 베푸사 얼마를 남겨두어 피하게 하신 우리를 ": 우리가 다 멸망당해도 싼 죄인들이지만, 하나님이 자비를 베푸셨서 남겨두셨다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게하셨고, 기도하고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과 함께 오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Nail/Peg)": 이것은 텐트를 고정하는 말뚝이나 벽에 박힌 견고한 못을 의미합니다. 자신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이 곳에 영적으로 무너진 곳을 바르게 세워 고정시키는 못이 되게 하신다는 것을 말합니다.
"조금 소생하게 하셨나이다": 죽어가던 공동체를 다시 세워주실 것을 기대하는 것이죠.
에스라가 회개할 수 있었던 힘은 자신의 의로움이 아니라, 남겨주신 은혜, 즉 우리를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처럼 붙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적용: 견고한 못이 되신 주님]
우리에게 이 '견고한 못'은 누구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의 죄는 하늘에 닿을 만큼 크지만, 십자가에 박히신 예수님께서 우리 영혼의 영원한 못이 되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죄로 인해 떠내려가지 않도록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단단히 고정해주시는 은혜의 못입니다. 탕자가 아버지께 돌아갈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재산 때문이 아니라, 아버지의 사랑(은혜)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결론 및 적용: 거룩한 떨림을 회복하십시오]
[결론 및 적용: 거룩한 떨림을 회복하십시오]
말씀을 맺겠습니다. 성도 여러분, 1,400km를 걸어온 에스라가 도착하자마자 마주한 것은 화려한 환영식이 아니라, 죄로인해 처참하게 무너진 거룩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절망하여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1절부터 8절까지 보여준 것처럼, 옷을 찢는 **'통회'**와 말씀 앞에 '떠는 마음',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붙드는 기도로 다시 일어섰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회복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남 탓하지 마십시오. 가정의 문제, 교회의 문제를 보며 손가락질하기보다, 에스라처럼 "이것이 나의 죄입니다"라고 옷을 찢으며 중보의 자리로 나아가십시오.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십시오. 죄에 무뎌진 세상 속에서, 작은 죄 하나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거룩한 성도가 되십시오.
은혜의 못이신 예수님을 붙드십시오. 내 죄가 정수리를 넘쳐도, 십자가 은혜는 그보다 큽니다.
오늘도 내일도 매일 매일 나의 죄 그리고 다른 이들의 죄, 공동체의 죄를 볼 때마다, 에스라처럼 죄에 대해서는 아파하고 하나님에 대해서는 소망을 품는 참된 회개자가 되어, 무너진 곳을 다시 세우는 '거룩한 그루터기'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하나님 아버지, 주님의 은혜로 구원받았음에도 여전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에스라가 옷을 찢으며 민족의 죄를 아파했던 것처럼, 우리도 죄에 대해 민감하게 반응하며 말씀 앞에 떠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죄가 하늘에 미칠 만큼 클지라도, 우리를 거룩한 처소에 박힌 못처럼 붙들어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의지합니다. 우리를 잠시 소생하게 하신 그 은혜를 붙들고, 다시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일어서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