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를 치시는 은혜, 거룩으로 응답하는 교회

강해설교  •  Sermon  •  Submitted   •  Presen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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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에스라 9장 9-15절

[서론: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우리는 살면서 때때로 "하나님이 나를 버리신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 만큼 깊은 절망의 터널을 지날 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벨론 포로 생활 70년이 바로 그런 시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 9절에서 에스라는 놀라운 고백을 합니다. "우리가 비록 노예가 되었사오나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그 종살이하는 중에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페르시아 왕들의 마음을 움직여 그들에게 자비를 베풀게 하셨고, 무너진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셨으며, 유다와 예루살렘에 **'울타리(Wall)'**를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에스라 9장 9절부터 15절은, 이토록 세밀하게 보호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도 또다시 죄를 지은 백성들을 대신하여, 에스라가 가슴을 치며 드리는 회개의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오늘날 은혜 안에 거하면서도 거룩함을 잃어가는 우리 교회를 향한 경종이자, 진정한 회복의 길을 보여주는 이정표입니다.

[대지 1: 회복은 '보호하시는 은혜'를 깨닫는 것입니다 (9절)]

에스라가 기도를 시작하며 가장 먼저 붙든 것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이었습니다. 9절을 보십시오. "우리가 불쌍히 여김을 입고 소생시키사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세우게 하시며 그 무너진 것을 수리하게 하시며 유다와 예루살렘에서 우리에게 울타리를 주셨나이다."
여기서 **'울타리(Wall/Fence)'**는 단순히 돌로 쌓은 성벽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위험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을 지키시는 **'하나님의 보호막'**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종살이할 때도 버리지 않으셨고, 돌아와서도 맹수 같은 대적들 사이에서 안전한 울타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교회의 회복은 우리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를 지금껏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 그 보이지 않는 울타리를 발견하고 감사할 때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모범: 양의 문이 되신 주님]
예수님은 요한복음 10장에서 자신을 가리켜 **"양의 문"**이라고 하셨습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요 10:9)목자가 밤에 양 떼를 지키기 위해 우리 입구에 누워 친히 문(울타리)이 되어 주듯이, 예수님은 십자가로 우리 교회의 울타리가 되어 주셨습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가 우리를 넘보지 못하도록 당신의 몸으로 막아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교회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은 것은 우리의 능력이 아니라, 친히 울타리가 되어주신 예수님의 은혜 때문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대지 2: 회복은 '배반의 역사'를 끊어내는 결단입니다 (10-14절)]

그러나 이 놀라운 은혜 앞에서 이스라엘의 반응은 어떠했습니까? 10절을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이여 이렇게 하신 후에도 우리가 주의 계명을 저버렸사오니 이제 무슨 말씀을 하오리이까"
'이렇게 하신 후에도', 즉 하나님이 울타리를 쳐주시고 성전을 세워주신 후에도 그들은 또다시 계명을 배반했습니다. 하나님은 선지자들을 통해 "이방 사람들과 섞이지 말라, 그들의 가증한 일을 본받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11절). 그래야 너희가 강성해지고 형통할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12절). 하지만 그들은 그 약속을 헌신짝처럼 버렸습니다. 에스라는 13절과 14절에서 두려움에 떨며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죄보다 형벌을 가볍게 하시고 우리를 남겨주셨는데, 우리가 어찌 또다시 계명을 거역하리이까? 그리하면 주께서 진노하사 멸하시지 않겠나이까?".
진정한 회복은 "은혜받았습니다"라고 말하는 감상에서 멈추면 안 됩니다. 은혜를 원수 갚는 배반의 역사를 끊어내야 합니다. 반복되는 죄의 고리를 끊지 않으면 교회는 소생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말씀: 성전을 깨끗하게 하라]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셨을 때, 그곳은 기도하는 집이 아니라 장사치들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을 드시고 그들을 다 내쫓으시며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막 11:17)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가 머물러야 할 성전이 죄악으로 더러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우리 안에도 몰아내야 할 장사치들이 있지 않습니까? 세상과 타협하는 마음, 은혜를 이용하려는 마음을 예수님의 채찍으로 몰아내야 합니다. 거룩함이 회복될 때 교회는 다시 능력을 얻습니다.

[대지 3: 회복은 '하나님의 의로우심' 앞에 엎드리는 것입니다 (15절)]

기도의 마지막인 15절에서 에스라는 변명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처분만을 기다리며 엎드립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는 의로우시니 우리가 남아 피한 것이 오늘날과 같사옵거늘 도리어 주께 범죄하였사오니 이로 말미암아 주 앞에 한 사람도 감히 서지 못하겠나이다"
에스라는 하나님을 **"의로우신 분(Righteous)"**이라고 부릅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은 설 곳이 없습니다. 에스라는 "우리는 죄인입니다. 할 말이 없습니다. 감히 주님 앞에 얼굴을 들 수 없습니다"라고 고백하며 철저히 낮아집니다.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않고, 공동체의 죄를 뒤집어쓰고 하나님의 긍휼만을 바라는 이 겸손한 태도, 이것이 바로 회복의 열쇠입니다.
[예수님의 모범: 십자가의 대속]
우리는 죄 때문에 감히 의로우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자들입니다(15절). 그런 우리를 위해 예수님께서 대신 심판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베드로전서 3장 18절은 말씀합니다. "그리스도께서도 단번에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의로우신 예수님이 불의한 우리를 대신하여 심판받으심으로, 우리가 감히 하나님 앞에 나아갈 담력을 얻게 되었습니다. 교회의 회복은 우리가 잘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자격 없습니다"라고 고백할 때,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가 우리를 덮어주심으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결론 및 적용: 거룩한 울타리 안으로]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에스라 시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울타리)을 받고도 죄를 지어 그 울타리를 스스로 허물어뜨릴 위기에 처했습니다. 오늘 우리 교회는 어떻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로 쳐주신 은혜의 울타리 안에서 안전하게 거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세상과 타협하며 그 울타리를 헐고 있습니까?
은혜의 울타리를 확인하십시오. 우리 교회를 지키시는 분 성도의 삶을 지키시는 분은 사람이 아닙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고 지키시는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십시오.
배반의 고리를 끊으십시오. "어찌 다시 계명을 거역하리이까(14절)"라는 에스라의 절규를 기억하십시오. 알면서도 짓는 반복적인 죄를 오늘 이 시간 끊어내십시오.
예수님의 공로만 의지하십시오. "감히 주 앞에 서지 못하겠나이다"라는 겸손함으로 십자가 앞에 엎드리십시오.
에스라 한 사람의 눈물 어린 회개가 이스라엘 전체를 거룩한 개혁으로 이끌었습니다. 오늘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교회와 가정을 위한 에스라가 되어 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정결케 되어, 다시 거룩한 능력으로 세상을 이기는 우리 교회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함께 기도하겠습니다. "은혜의 울타리가 되어 주시는 하나님 아버지, 종살이하던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구원하여 주신 사랑에 감사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큰 은혜를 받고도 또다시 세상과 짝하며 주님의 계명을 배반했음을 고백합니다. 의로우신 주님 앞에 감히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오나, 우리를 위해 대신 심판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나아갑니다. 우리 교회를 불쌍히 여겨 주시옵소서. 죄악의 고리를 끊고 다시 거룩함으로 옷 입게 하사, 세상의 빛이 되는 교회로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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