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상4: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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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nscript
지난주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사람의 반응을 살폈음. 말미암는다는 것은 구원에 관하여 자주 사용되고 하나님으로 인하여 구원을 받은 백성은 마음이 즐겁고 하나님의 자녀라는 명예가 회복되고 약속을 지키는 자들에게 주시는 구원을 누리게 됨. 한 주간도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잘 따라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듦.
오늘 본문은 이스라엘의 패배의 소식을 듣고 사사 엘리가 죽는 장면입니다. 이스라엘은 블레셋과 전쟁에서 패배하고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와 옷을 찢고 머리에 티끌을 덮고 실로에 갑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낙심한 마음을 표현할 때 사용하는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궤를 보낸 엘리는 염려로 떨고 있을 때 온 성읍이 부르짖습니다. 눈이 멀었던 엘리는 소리로는 상황을 파악하지 못했고 베냐민 사람에게 전쟁에서 도망쳤다는 소식과 홉니와 비느하스가 죽임을 당하고 궤가 빼앗겼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하나님의 궤를 말할 때 엘리는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목이 부러졌고 죽었습니다. 엘리의 며느리인 비느하스의 아내가 해산할 때 하나님의 궤가 빼앗긴 것과 남편이 죽은 소식을 듣고 해산하여 아들의 이름을 이가봇-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영광이 어디에 있는가?)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것은 이가봇-하나님의 영광이 없는 상태를 잘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하나님과 어떠한 관계를 가지고 있는지 살피고 현재 내가 이가봇의 상태라면 애통하여 돌이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시간 되길 소망합니다.
가장 먼저 본문의 배경은 하나님의 심판이 이뤄졌음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엘리의 가정에 심판이 있을 것임을 두 자녀가 한 날에 죽음으로 이루어진 다는 것을 삼상2장에서 한 선지자를 통하여 엘리에게 알렸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엘리와 자녀들은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엘리의 두 자녀에게는 하나님의 제물을 빼앗아 예배를 멸시하고 성전 문에서 섬기는 여자를 범하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여 아버지의 훈계까지도 무시하게 됩니다. 이러한 죄를 하나님은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심판하십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기 때문입니다.
이가봇의 상태는 엘리, 이스라엘 백성, 비느하스의 아내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먼저 엘리는 하나님보다 두 아들을 존중합니다. 사무엘상 2:29 “너희는 어찌하여 내가 내 처소에서 명령한 내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네 아들들을 나보다 더 중히 여겨 내 백성 이스라엘이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너희들을 살지게 하느냐”라고 말씀하면서 엘리가 하나님보다 두 아들을 더 사랑하는 우상으로 여겨 자녀들을 올바른 길로 돌이키지 않았습니다. 심지어는 이스라엘의 백성이 법궤를 요청하자 전쟁에 나갈 때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법궤를 가지고 나가도록 허락해 줍니다. 그의 마음에도 찔림이 있었던지 본문 13절에서 떨고 있는 심정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엘리와 두 아들은 하나님의 법을 가장 잘 알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엘리는 사사로 자기의 직무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제사를 집행하고 제사를 통해서 예표로 오실 그리스도를 잘 알았을 것입니다. 제사는 자기의 죄를 대신해서 동물의 멱을 따고 피가 하늘로 솣구치고, 피냄새와 짐승이 죽는 소리, 사람의 애통하는 소리가 들리고 각을 뜨고 불태움을 통해 죄가 얼마나 더러운 것이며 하나님이 죄를 얼마나 미워하신지 알았을 것입니다. 성경은 엘리를 표현하기를 눈이 어둡고 몸이 비대하다고 표현합니다. 영적으로 어둡던 그의 상태를 말하고 그 역시도 아들들과 다름 없이 하나님의 제물에 손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요청에 하나님의 법궤를 내어주게 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생각뿐입니다. 생각으로만 두려워하여 죄를 미워한다고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착각은 그의 삶에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척하게 했고 한나를 정죄했던 것처럼 다른 이들도 정죄했을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로 말하면 바리새인과 같은 사람이죠. 머리로는 율법에 가득 찼지만 실천하지 않는 것,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자리에 자기의 명예를 키우고 자기를 드러냈던 큰 죄악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렸습니다.
두 번째로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가봇의 상태가 보입니다. 전쟁에서 패배중인 이스라엘의 장로는 법궤를 가져오자고 요청합니다. 엘리와 두 아들은 그것을 정죄하고 마음을 돌이키도록 했어야 했지만 허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법궤는 하나님이 임재하여 백성에게 하실 말씀을 하시는 법궤 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장소를 전쟁을 이기는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전쟁을 나갔을 때 부터 이 전쟁이 하나님께 속한 전쟁인지 아닌지를 묻고 싸워야 했습니다. 만약 묻지 않고 나가서 패배했다면 하나님께 엎드려서 죄를 자복하여 승리를 달라고 요청했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엎드리기를 싫어했습니다. 무슨 의미일까요? 하나님을 주인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연합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내 맘대로 움직일 수 있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비느하스에게 이가봇의 상태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궤가 빼앗기고 시아버지와 남편이 죽은 소식으로 인하여 충격을 얻었습니다. 아들을 낳았지만 그의 마음은 도무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아이의 이름을 이가봇이라고 지으면서 이스라엘과 자기의 상태를 말하고 있습니다. 시아버지와 남편을 잊어버린 충격은 이루말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궤가 빼앗긴 것으로 인하여 받은 충격을 앞에 기술함으로 법궤에 대한 중요성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비느하스의 며느리 역시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고통으로 힘들어할 때 함께 한 사람들이 생명을 허락하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하려고 위로함에도 그는 저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엎드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시아버지의 범죄, 남편의 범죄와 외도, 하나님의 법궤가 사라짐에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너무 두려운 것은 우리에게도 엘리와 이스라엘. 비느하스의 며느리와 같은 마음이 있지 않나요? 엘리와 같이 하나님보다 사람의 시선을 더욱 신경 쓸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두려워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공동체에서 따돌림 당하고 멀어질까봐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대학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두려워 말씀 읽는 시간을 드리지 못하고 사람의 눈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을 가려버리는 우리의 죄악된 모습이 있지 않나요? 우리에게도 이스라엘의 백성과 같이 하나님의 약속을 이용할 때가 있지 않나요? 내가 원하는 하나님을 만들고 거기에 절하면서 이리, 저리 나의 입맛대로 움직이려고 하는 우리의 샤머니즘이 가득합니다. 하나님을 배우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비느하스의 아들처럼 시아버지와 남편의 죄악을 알고 있었으나 공의의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고 하나님은 징계하신다, 우리를 떠났다고 여전히 머리숙이지 않는 모습이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주권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의 심판을 보고서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또 한 가지는 저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던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가장 선두에서 하나님을 배운 제사장과 장로들과 제사장의 아내였습니다. 저와 여러분 역시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예배를 드리는 사람,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 죄가 죄인줄 아는 사람들, 하나님의 존재를 알고 믿어졌던 자들 아닌가요?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현재 하나님의 영광이 떠난 상태인가요? 아니면 우리를 통해서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고 있나요?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였습니다(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고 따르려는 의지도 상실하고 마음이 강팍하여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셔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모든 죄책을 감당하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자들이 받아야 하는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대신 감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고 멸시하고 미워했던 우리가 받아야 하는 죄책을 하나 뿐인 독생자에게 감당시키셨습니다. 한 번도 아버지를 멀리한 적 없으신 분이, 한 번도 아버지의 이름을 가리지 않으시고 드러내셨던 분이 우리 때문에 죽으셨습니다(로마서 3: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감사한 것은 부활하셨습니다. 다시 사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어지게 하사 이제 죄 없다고 선포하셨습니다. 말씀 앞에서 그리스도의 첫사랑을 다시 기억하여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길 소망합니다. 하나님을 왕으로 섬기는 백성되길 소망합니다. 사람의 눈치를 보지 마시고 예수님이 우리의 왕이심을 고백하십시오. 우리의 머리되셔서 지금도 우리를 통치하십니다(요한계시록 1:5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에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 6 “그의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하나님을 이용하지 마시고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사랑하시듯 아버지의 뜻을 배우고 아버지의 뜻을 따르십시오. 아버지의 뜻대로 죽으시고 부활하사 우리도 그와 같게 하셨습니다(히브리서 2:12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죄가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형편을 한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죄를 아뢰시길 소망합니다(요한1서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
사랑하는 여러분
시간을 드리는겨우 교회 섬김 때문에 놀지 못한다 이정도로 말하는 모습,
하나님의 영광이 없습니다.
자기의 죄를 대신 당하는 것을 똑똑히 보았을 것이고
우리도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존재였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