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본)재정의 성화
Notes
Transcript
#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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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을 하나님 아래로 둬야 한다.
이게 무너지면 안 된다.
#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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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나를 돈의 문제에서 구원해 주실 수 있다.
뭘 근거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예수님은 나 대신 돈에 팔리신 분이기 때문이다.
돈에 팔리셔서 무얼 하셨나? 나를 구원하셨다. 돈의 문제보다 더 무겁고 해결하기 어려운 죄의 문제를 해결해주셨다. 그 경로로 돈에 팔리시는 방향을 선택하셨다.
그런 분이 돈 때문에 신음하는 우리를 무시하시겠는가?
우리 때문에 돈의 거래에 종속되신 분이 어떻게 우릴 무시하시겠는가?
예수님은 금전거래의 시스템에 자신을 집어넣으셨다.
돈 때문에 법정 앞에 끌려가셨다.
이곳저곳 끌려다니셨다. 헤롯 앞에도 갔다가 빌라도 앞에도 갔다가,, 온갖 수치를 당하셨다.
여러분. 예수님은 온 세상을 소유하신 분입니다.
최근에 두쫀쿠가 유행했는데요. 두바이 쫀득 쿠기의 줄임말이에요. 이거 하나 가격이 7천원이에요. 크기는 찹쌀떡 하나만하거든요? 그런데 가격이 7천원이에요.
예수님은 이 두쫀쿠를 원없이 사실 수 있는 분이다. 온 세상 모든 두쫀쿠를 사재기하셔서 윗돈 받고 팔 수 있는 분이시다.
두쫀쿠라고 하니까 부모님들은 공감이 안 되실텐데, 예수님은 전세계에서 제일 비싼 아파트들을 모조리 수집할 수 있는 분이시다.
그런데 그런 분이 은 삼십에 팔리셔서 이리 끌려갔다가 저리 끌려갔다가 온갖 수치를 당하신다.
은 삼십은 요즘 돈으로 치면, 약 천만원 정도다. 노예 한명에게 매겨진 가격이 은 삼십이었다. 예수님은 노예처럼 팔려가신 것이다.
성경을 좀 아는 분들은, 이렇게 질문하실 수도 있다.
목사님, 요셉은 형제들에게 은 이십에 팔렸잖아요?
요셉도 노예로 팔려갔는데, 그럼 예수님이 더 가치 있는 노에였나요? 삼십대에 팔리셨으면, 십대 요셉보다 더 가치 있는건가요?
여러분. 고대 이스라엘에서 살아있는 노예에게 매겨진 가격이 은 이십이었구요.
실수든, 고의든 다른 사람의 노예를 죽였을 때, 그 노예 주인에게 지급하는 보상금이 은 삼십이었어요.
그러니까 은 이십 세겔보다 은 삼십 세겔로 매겨졌다는 건, 더 가치 있다는 게 아니라, 더 낮은 존재로 취급한 겁니다.
가룟유다가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이렇게 질문합니다. 내가 예수를 너희에게 넘겨주겠다. 얼마 쳐줄거냐? 그러니까 대제사장들이 은 삼십냥을 던져주죠.
대제사장들은 이미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우고 있었고, 고대 이스라엘 율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죽은 노예에게 쳐주는 은 삼십냥을 던져준겁니다.
그 증거가 출애굽기의 21장 32절에 있어요. 내가 키우는 소가 다른 집 종을 받아서 죽이면 그 노예 주인에게 은 삼십 세겔을 지급하라고 나옵니다. 은 삼십은 노예에 대한 배상금인 거죠.
예수님은 아직 살아계신데, 죽은 노예 취급 받으며 끌려다니셨던 겁니다.
여러분. 여러분이 아직 살아있는데, 다른 사람이 여러분을 죽은 사람 취급하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누가복음의 15장에 나오는 탕자의 아버지도 그랬지 않을까요? 아직 살아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 죽은 거라고 생각할테니까 유산을 계산해서 주십쇼. 이러잖아요.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사랑을 돈으로 거래했고,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돈으로 거래했습니다.
우리라고 다르겠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예수님을 돈으로 거래했던 순간들이 수도 없이 많을 겁니다.
헌금함에 헌금을 넣으려고 할 때, 아,,, 이번 달 카드값이 많이 나갈텐데,,, 바로 계산이 됩니다. 하나님이 내 삶을 책임지실 거란 믿음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제 부끄러운 얘기를 해 드릴까요?
제가 장교로 군대를 갔다왔는데요. 딱 임관하기 직전에 처음으로 신용카드를 만들었어요. 이름하야 국방복지카드였어요. 그런데 임관하기 전에 장교들이 임관반지를 맞추거든요? 필수는 아니에요. 선택인데, 저는 선택했어요. 두글자, 가오를 챙기고 싶었어요. 임관하면 4달동안 장교훈련소에 들어가서 훈련을 받는데, 또 장굔데 체육복도 좋은 거 입어야 하잖아요? 운동화도 좋은거 신어야 되잖아요? 그래서 아식스 가서 아래 위 신발까지 세트로 쫙 마쳤어요.
제가 신용카드를 처음 써보니까 돈 나가는 날짜를 잘못 계산했어요. 첫 월급 날짜보다 카드값 이체 날짜가 더 빨랐던 거예요. 그 때 친구들한테 돈 빌리고, 난리도 아니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한 번 꼬이니까요? 군생활 내내 카드값이 밀렸어요. 그런데 동기들이랑 부대찌개는 사먹어야 되고, 치킨은 시켜먹어야 되니까 카드값에 나갈 돈을 세이브해놓지는 않았어요. 그러면 자연스럽게 어떤 돈을 건드냐면요. 십일조를 건들게 됩니다.
그 때 하나님이랑 거래를 했습니다.
“하나님, 십일조 3개월 무이자 할부해주세요.. 이번달 십일조 일부를 다음달에 갚겠습니다.”
웃기려고 하는 게 아니라, 그 당시에 진지하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그리구요. 어떤 달은요. ‘아, 십일조를 할부 하다니, 이게 웬말이냐, 성경 보면 하나님이 돈을 보는 게 아니라 내 맘을 본다고 하셨으니까, 한 달 지나서 드리는 십일조 할부를 하나님은 받기 싫어하실 것이다. 그럴바에 안 드리는 게 낫겠다.’ 이러면서 자기합리화하고, 십일조를 떼먹곤 했습니다. 그 당시 제 삶은 하나님 손에 있지 않았습니다.
유다는 예수를 ‘거래’했지만,
하나님은 그 은 삼십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재정을 깨끗하게 쓰는 건, 돈으로 거래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는 것이다.
거래의 목적은 순전히 자기 자신에게만 있다.
돈으로 거래한다는 건, 자기만을 위한 것이다.
가룟 유다가 돈으로 예수님을 거래했다.
그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자기 자신에게만 있었다.
🔹 요한복음 12:6
🔹 요한복음 12:6
그는 도둑이라 돈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감이라
가룟유다는 이미 돈에 묶여있었다.
돈이 하나님 위에 있었다.
구속은 무슨 뜻을 가지냐면,
다른 사람이 값을 대신 지불해서 묶여있던 사람을 풀어주는 것이다.
돈으로 이웃의 상한 마음을 고칠 수 있다.
#결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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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하고 싶은가?
하나님은 나에게 투자하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