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을 주시는 예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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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6:1-15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오늘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말씀 나누겠습니다. 사람에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생명이라는 가치는 사실 어떤 것과도 바꿀 수 없는 고귀한 가치를 지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더 건강하게 더 오래, 그리고 더 풍성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좋은 것을 먹고, 몸을 가꾸고, 삶의 터전을 일구는 데 온 힘을 쏟습니다. 이 모든 수고의 저변에는 생명, 즉 ‘살고 싶다’라는 그리고 잘 살고 싶다라는 생명을 향한 본능적인 갈망이 우리 안에 있는거에요.
그런데 우리에게 이렇게 소중한 생명이 때로는 참 연약하다라는 것을 우리는 경험합니다. 때가 되고 시간이 지나면 쇠하여 지고, 날마다 우리 안에 무언가를 채워주지 않으면 금세 한계에 부딪히고 마는 것이 우리 육체의 생명입니다. 하루만 굶어도 기운이 없고, 잠도 잘 못자면 그 날 하루가 정신이 혼미하며, 마음이 상하면 삶의 으욕마저 쉽게 잃어버리는 것이 우리의 일상입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생명의 한계’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에서 시작됩니다. 수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모여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병자를 낫게 하시는 큰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가르침도 들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하여금, 새로운 희망과 생명을 발견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날이 저물어갈 때, 그들은 곧바로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히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배고픔’입니다.
이 배고픔이라는 문제만큼 우리의 생명과 연관되는 것이 있을까요? 사실 우리의 생명은 섭취하는 것, 음식물에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을 반드시 먹어야만 우리의 생명은 유지됩니다. 또 어떤 걸 먹느냐에 따라, 이 생명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느냐, 모든 것이 음식에 달려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수많은 무리들은 이 배고픔이라는 아주 생명과 직결되는 문제를 눈 앞에 맞닥들이게 된겁니다. 하지만 그곳은 먹을 것이 없는 광야입니다. 들판입니다. 장정만 5천명, 아이와 여인들까지 합하면 수만명에 이르는 그 거대한 인파가, 생존이라는 절박한 과제 앞에 서게 된겁니다.
이 문제 앞에 예수님은 빌립에게 물어보십니다. 5절에 보면,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주님은요 사람들의 배고픔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배고픔을 채우고자 하는 관심을 보이십니다. 특별히 오병이어 사건은 모든 복음서에 기록되어 있는데, 요한복음에는 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단순히 기적이라 부르지 않고, 표적이라고 기록합니다.
표적이 무엇이냐면,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기적 그 자체의 의미보다, 무언가 더 중요한 실체를 가리키는 이정표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단순히 그들의 육신의 한 끼 배불리 먹이는 해결자로 그들 앞에 서계신 것이 아니라는거에요. 떡을 주시고 먹이시는 행위를 통하여, 예수님은 자신이 참떡, 즉 참 생명이심을 보여주며, 자신을 통하여 온전한 생명을 누릴 수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진정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이 시간 되길 바랍니다.
첫번째는 먹을 것이 없는 상황 가운데 빌립에게 물어보셨다고 말씀드렸죠.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 예수님이 과연 어디서 살지를 몰라서 물어보셨을까요? 아니에요. 6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하심은 친히 어떻게 하실지를 아시고 빌립을 시험하고자 하심이라 / 이미 예수님은 이 백성들으 풍성히 먹이실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셨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에게 물으신 이유는, 그가 처한 이 배고픔의 상황 가운데서, 그가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빌립은 예수님께 대답합니다. 7절, 사람들에게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200데나리온이 필요합니다. 빌립은 매우 똑똑했습니다. 단순 계산이 바로 나오는거에요. 200데나리온은 당시 노동자 7개월치 임금입니다. 그런데 그 돈이 있어도 먹이기엔 부족하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빌립의 계산은 정확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계산은 틀렸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그 계산 안에 넣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돈을 보았고, 환경을 보았고, 지금 굶주려 있는 사람들의 숫자는 보았지만, 곁에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은 보지 못했습니다.
여러분 빌립은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다니며 수많은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수십년간 절대로 낫지 못했던 병을 예수님이 고치십니다. 이것이 한번이 아니라, 수도 없이 그는 옆에서 이런 장면을 목격합니다. 그런데 정작 이런 문제가 내 문제가 되자,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정작 눈 앞에 이걸 내가 해결해야 되자 전혀 예수님과는 상관 없는 답변만 내어놓습니다.
우리의 모습이 마치 빌립과 같지 않습니까? 우리는 참 현실적인 계산은 빠릅니다. 심지어 그 계산을 틀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삶은 ‘내 주머니의 잔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력’으로 사는 것을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간증을 들을 때는, 주님의 살아계심에 대해 생각합니다. 그런데 막상 그 문제가 내 현실이 되면, 주님보다는 세상의 것을 신뢰하는 모습이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계산 속에, 주님이 들어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생각과 현실 가운데, 주님이 계셨으면 합니다. 우리에게 풍성한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을 기억하며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길 소망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또 한명의 제자가 등장합니다. 바로 그 사람은 8절에 보면 베드로의 형제 안드레입니다. 안드레는 예수님께 한 아이를 데려와 소개합니다. 주님 그 아이의 손에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가 있습니다. 9절에 보세요 안드레는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
예수님게서는 그 작고 초라해 보이는 한 아이의 도시락에 손을 드시고 축사하십니다. 축사라고 번역된 단어는, 직역하면 감사 기도를 드렸다라는거에요, 오천명을 먹이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그 보리떡 다섯 개를 손에 쥐시고 하나님 앞에 감사부터 하셨다는겁니다. 이것이 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신비로운 원리입니다. 기적은 많은 양이나 엄청난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것을 주님 손에 맡기는 순종과 그것을 드리는 감사에서 시작되는 겁니다. 안드레의 손에 있을 때에는 그저 한 아이의 도시락이었지만, 그것이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 손에 들려졌을 때, 수만 명의 생명을 살리는 하늘의 영식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늘 이 모습이 주님의 방법입니다. 주님의 역사는 늘 이런 과정이 중요시됩니다. 가만히 생각해보세요. 예수님은 그냥 무에서 뿅하고 떡을 만드실 수 있는 분이세요. 그런데 대부분 그렇게 일하시기 보다는 사람들의 작은 순종과, 감사를 통하여, 자신의 생명을 이 땅에 전하신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 안에 늘 이런 마음이 있습니다. 안드레의 말처럼, 그것이 이 많은 사람들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니까. 내놓기 부끄럽기 짝이 없는 작은 것이라도 주님의 손에 들려들릴 때, 주님 앞에 맡겨드릴 때, 생명의 주인 되신 주님은, 그 작은 것을 사용하셔서, 훨씬 더 풍성하고 능력있는 생명으로 역사함을 우리가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이런 오병이어의 기적을 우리의 삶에서 경험하는 은혜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빈들에서 일어난 놀라운 풍성함의 역사를 보았습니다. 빌립의 계산을 뛰어놈고, 안드레와 아이의 헌신 가운데, 수만 명이 배불리 먹고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확인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이 진정 우리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떡이 얼마나 많아졌는가’ ‘어떻게 이 땅에서의 풍성함을 누릴 것인가’가 아닙니다. 이 표적의 강조점은,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참 떡 되신 예수님이십니다.
본문 15절에 보면 이 기적을 경험한 군중들의 반응이 나옵니다. 그들은 흥분했고 예수님을 억지로 자신들의 왕 삼으려 했습니다. 이유는, 자신들의 배고픔을 해결해줄 능력 있는 왕이라 여겼기 때문입니다. 떡을 먹고 배부른 것에 마음을 뺏겨 예수님을 이 땅에 왕 삼고자 하는 잘못된 반응으로 나아갔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뒤로 한채 홀로 산으로 떠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이런 육체적 배고픔, 한 끼의 풍성함만을 위해 오신 분이 아니였기 떄문입니다. 주님은 죄로 인해 굶주리고 죽어가는 우리 영혼을 위해 친히 생명의 떡이 되어 당신의 살과 피를 내어주로 오신 구원자입니다. 우리의 삶에 떡을 먹고 배부르는 것 중요하죠. 그런데 그게 아니라, 우리는 이 주님과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생명의 관계 안에 들어가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합니다. 세상의 떡은 먹어도 다시 배고프고, 이 땅의 성공은 다 가져도 다시 갈급합니다. 그러나 이 생명의 주인 되신 예수님을 소유한 자는 영원히 주리지 목마르지 않는겁니다.
오늘 살아가며 눈 앞에 있는 문제가 해결되냐 해결되지 않느냐 너무 마십시오. 나에게 참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고 그분과 동행하는 우리의 삶이 되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생명의 주인되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오늘 우리에게 참 생명을 주시고 눈을 뜨고 주님 앞에 나아오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에 대해 알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우리는 세상에 살아가며 내 주머니의 잔액과 처해진 환경과 현실만 바라보았던 모습이 있다면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의 삶에 예수님이 계시다는 것을 기억하며 살아가도록 인도하옵소서, 작고 초라하지만 주님 앞에 드려진 것을 통하여, 풍성하게 채우시는 분임을 믿습니다. 내가 먼저 그 자리에 서게 하시고, 주님께 드려지는 우리의 삶에 되게 도와주옵소서,
무엇보다 이 땅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주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우리의 삶이 되길 원합니다. 먹고 또 배고프고, 마시고 또 갈급함에 취해 사는 인생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의 근원되신 주님 안에서, 주님과의 복된 관계 가운데 살아가, 주님께서 주시는 풍성함을 누리는 우리의 삶이 되게 도와주옵소서, 생명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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