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시선의 교차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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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가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세 시선의 교차로. 오늘 본문에는 세 시선이 등장합니다. 하나는 삭개오의 시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시선, 다른 하나는 군중들의 시선입니다.
세 시선이 한 곳에서 교차되고 있는데, 사람의 눈은 마음을 드러내죠. 이 세 시선은 각각 어떤 마음을 지닌 채로 한 공간 속에서 교차되고 있는지를 우리 또한 겸손의 시선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바라보면서 깨닫는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삭개오: 목마름의 시선
삭개오: 목마름의 시선
첫 번째로 삭개오라는 사람에 대해서...
우리 유초등부 중고등부 주일학교 커리큘럼에 항상 빠지지 않고 들어가 있는 인물, 우리 승리교회 친구들은 다 예습을 해오셨죠?
삭개오: 순수 순결, 우리 이름을 지을 때는 다 좋은 뜻만 넣고, 그 좋은 이름대로 살아가라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지 않습니까?
삭개오도 그렇죠. 순수하게 살아라, 못 살아도 정직하게 순결하게 살아라. 그런데 인생을 살아가다 보니까 생존을 위해서 어찌저찌 하다가 돈을 만지는, 세금을 삥땅치는 세리장이 되어 버린 인물이 삭개오 입니다.
세리장: 세금관리하는 사람들의 대장, 세금 과장. 보통 이 세리장 정도 되는 인물의 나이가 50살 정도 되었다고 합니다. 50살, 직업은 세리장 어찌보면 그 삭개오는 자기 이름과 맞지 않는 인생을 50살 까지 살아가면서 참 자기 이름이 싫었을 것 같습니다. 참 자기의 존재가 혐오스러웠을 것 같아요.
또 부자라 나오는데, 돈은 많은데 마음 속에 늘 자기 존재에 대한 불합리함과, 공허가 그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제정신이라면 나무에 그 50먹은 아저씨가 자기 체면과 부끄러움을 다 뒤로한채 나무에 올라가는 기행을 벌이진 않았을 거라 봅니다.
3절에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예수가 와있습니다. 보고 싶습니다. 내 키는 작습니다. 내 존재적인 역량이 예수를 보기가 힘듭니다. 사람이 많아 벽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 환경적 배경이 예수님을 보기가 힘듭니다.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뭐 할 수 없죠. 하는 수 없죠. 대부분의 사람은 이 “할 수없지, 하는 수 없지” 하면서 그냥 가던 길 갔을 거에요. 그냥 예수라는 사람이 참 좋다는 소문은 들었는데, 나도 보고는 싶은데, 내가 볼 역량도 안 되고 환경도 안 되는데 하는 수 없지” 하면서 지나쳤을 겁니다.
그런데 삭개오의 행동은 다르죠
4절에 “앞으로 달려가서 보기 위하여 돌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
달려가서 나무에 오릅니다.
여러분 당시에 나이든 사람이 달려간다? 체면을 버리는 아주 격식없는 행위입니다. 그리곤 또 나무에 올라요. 어릴적에나 하던 행동을 어른이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그런 창피들이 아무렇지도 않았습니다. 주변의 따가운 시선도 있었겠죠. 왜 저렇게할까? 왜 저렇게까지 튀는 행동을 하는 걸까? 근데 저 사람 우리 돈 삥땅치는 세리장 아니야?
삭개오는 그런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무에 오릅니다. 왜죠? 그의 시선은 한 사람에게 고정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고정된 시선. 그 시선이 삭개오를 살립니다. 그 시선이 예수님과 만나게 했습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은 눈 싸움입니다. 누가 시선을 고정할 수 있는가? 누가 얼마나 오랫동안 시선을 예수님께 고정할 수 있는가? 눈싸움입니다. 이 시선의 눈싸움에서 패배하지 않길 축원드립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내 눈 앞에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말씀 붙잡고 바라볼 때에 믿음이 생깁니다.
명궁을 만들기 위해서 아버지가 어린 아들을 도사에게 보냈다.
도사는 10년동안 “쌀1톨”만 쳐다보게 한다. 천신만고 끝에 10년을 보냈다.
드디어 외친다. “도사님. 쌀 1톨이 쌀 1가마니처럼 보입니다.”
그때 비로소 처음으로 활을 준다.
“가서 쏴라” 눈 앞의 쌀 1가마니를 못 맞출 사람은 없다.
명궁의 요건은 “눈싸움”이다. 쌀 1톨이 쌀 1가마니로 보이면, 이미 명궁이다.
명궁 그리스도인은 쌀 한 톨 같이 작아 보이는 말씀의 약속들이 당장 내 눈 앞에 선할 정도로 명료하게 보이는 사람들이요, 보이지 않는 예수님의 손길을 가장 밝히 보는 사람들이 명궁 그리스도인입니다.
푯대를 보는 자가 달려가듯이, 내 눈 앞에 당도해 있는 것 같은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그 표적을 똑바로 보면서 기도의 화살을 쏘는 자, 여러분들이 되실 줄 믿음으로 선포합니다.
삭개오는 그렇게 달려간 거에요, 예수님이라는 푯대에 자기 시선을 고정하고 달려가 나무에 올라 시선을 고정한 거에요.
많은 사람은 3절의 그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이 할 수 없어에서 그 인생의 이야기는 예수님을 만나지 못하고 시선을 마주치지 못하고 제 갈길을 갈 겁니다.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곳에 여러분의 시선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자꾸 예배하라고 하잖아요? 그 생각 한 번씩 해볼겁니다.
왜 이렇게 귀찮게 하시는 분 같지?
저는 그렇게 생각해요. 예배는 다른 의미도 많지만 한편으로는 시선의 연습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연약한 우리를 위해서 말씀이 들려오는 곳을 바라보게 하는 연습을 시키는 시선의 연습장. 교회의 예배시간. 우리 아이들 신앙교육 시킬 때, 예배 참석에 각별히 신경쓰십쇼. 수요예배, 주일어른예배, 애들이 듣기에는 설교 내용이 좀 어려우니까 열외 시키지 마십쇼.
어떤 예배든 간에 앉혀놓으면 예수 바라보는 사람으로 자랄겁니다.
시선이 단단한 사람으로 자랄겁니다.
군중들: 낙인의 시선
군중들: 낙인의 시선
뭇 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이르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예수님: 사랑의 시선
예수님: 사랑의 시선
예수님 시선으로 넘어가봅시다.
예수님은 삭개오의 시선을 받으시고 어떤 마음이셨을까요?
갓난 아이가 할 수 있는 일이 한 가지 있습니다. 까꿍할 때 바라보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히 사랑받는다. 시선을 주는 아이는 어딜가나 사랑받습니다.
선생님에게 최고의 학생은 시선을 주는 학생이 최고다. 성적은 비록 비루할지라도, 잘 이해가 안 되는 표정을 지을지라도, 앞자리에서 흔들리지 않는 시선을 주는 사람이 선생에게는 최고의 학생입니다.
제 고등학교 1학년 때, 저는 앞에서 가르치시는 수학 선생님에게 칭찬받았습니다. 갑자기 수업하다가 대놓고 제 이름을 언급하세요. 건희 너는 수학 참 잘하겠다. 눈이 나를 뚫을 것 같이 집중을 잘 한다. 저는 수포자였습니다.
단지 그렇게 집중하는 것이 어릴적 예배 시간 때부터 제가 배운 에티켓이라 감히 고개를 숙이지 못하고, 칠판 내용엔 관심이 없고 수학선생님의 몸짓을 분석하던 참이었습니다. 시선을 주는 사람은 어딜가나 사랑받습니다.
설교자에게도 잘 쳐다봐 주는 사람이 넘버원이다. 쳐다만 봐도 마음을 얻는다. 예배에 집중하는 사람을 보면 그 시선이 예수님이 부족한 저를 응원하는 선물같이 느껴집니다.
아이의 시선, 학생의 시선, 예배자의 시선 무슨 말을 하고 싶냐?
시선을 주는 자는 사랑받기 마련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삭개오의 간절한 시선을 받았던 예수님은 삭개오를 참 안쓰러운 사람, 참 불쌍한 사람, 사랑의 시선으로 보시고 오늘 삭개오의 집에 놀러가기로 작정하시는 것입니다.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쳐다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예수께서 쳐다 보시고 “시선을 그 불쌍한 영혼에게 향하십니다”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왜 집에 갈까요? 그냥 복음 전하시고 갈 길 가셔도 되는데 왜 굳이 집에 갈까요? 할 얘기가 많기 때문에, 삭개오를 친구처럼 친근하게 여겨주신 거에요, 삭개오는 예수님한테 집에가서 여태 못 말했던 자신의 인생 이야기들, 아무데도 못 말한 상처들 다 얘기했을 겁니다.
못 다 푼 회포를 풀듯이,
그렇게 회포를 풀다가. 8절에 삭개오가 집에서 예수님에게 한 가지 약속을 하죠.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예수님과의 교제 중에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할지를 깨닫고 그것을 예수님 앞에서 고백합니다.
중요한 것은, 성경에는 예수님이 삭개오한테 이래라 저래라 충고하는 장면이 나오지 않아요,
여러분 사람을 바꾸는 것은 율법이 아니라, 예수님입니다. 예수님 만나면 이렇게 사람이 바뀝니다. 예수님과 교제하면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깨달아요, 바꾸기 시작해요, 무엇으로 주님을 기쁘게 할지도 알아져요.
우리가 기도하는 이유가 이거 아닙니까? 처음에는 구하기 위해 기도하다가, 주님 앞에서 주절주절 이야기 하다가, 그렇게 교제하다가 갑자기 내가 행해야할 하나님의 뜻을 불연득 깨닫고 인생의 방향을 수정하는 것, 이것이 기도의 힘이고, 시선을 주님께 고정시키는 힘 아니겠습니까?
죄송한 말이지만, 피곤하게 사는 분들이 있습니다. 왜? 시선이 분산 되었기 때문이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며 장정이라도 넘어지며 쓰러지되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
소년도 피곤하다. 장정인데 자빠진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사40:30-31) 시선의 집중에서 힘이 나오는 것이다. “앙망”은 “비틀어서 하나로 묶는다”는 뜻이 있다. 여성분들이 땋은 머리를 하듯이 중구난방 헝클어지지 않게 비틀어서 하나로 묶는 것이죠.
여호와를 앙망. 어지럽게 헝클어진 내 시선을 묶어서 주님 한 분만 바라보는 것이 앙망입니다.
예배는 시선을 주는 것이다. 하나님께만 시선을 주는 것이다. 주만 바라보는 것이다. 우상숭배는 “시선의 분산”이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환경은 변한다. 조건 보는 사람은 흔들린다. 하나님께 시선을 두는 사람은 흔들림이 없다. 두려움이 없다. 예배는 경배이자 힘이다. 시선만 주어도 일이 된다. 보는 것이 미래다. 잘 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