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0205 목 새벽. 막2:2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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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오늘 본문은 앞에 ‘금식’ 논쟁 후에 나오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그 결론에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죠.
마가복음 2:21–22 “21 생베 조각을 낡은 옷에 붙이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기운 새 것이 낡은 그것을 당기어 해어짐이 더하게 되느니라 22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것과 낡은 것의 대조를 통한 강조와 메시지가 있습니다.
다양하게 해석할 수 있지만
간단하게는 새 것은 새로운 것에 담고, 함께해야한다고 이해가 됩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마가복음 2:23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실새 그의 제자들이 길을 열며 이삭을 자르니”
그리고 ‘먹으면서’ 시작합니다. 심지어 ‘안식일’에요.
세례 요한의 제자들과 바리새인의 제자들은 금식할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습니다.
다들 일을 율법적으로 하지 않는 안식일에
이삭을 자릅니다.
평행본문인 마12:1-8, 눅6:1-5를 보면
자르고, 먹고, 비비며 까먹습니다.
참 재미있죠?
누군가는 종교적으로 먹습니다. /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먹습니다.
제자들의 일탈이 아닙니다. 스승이신 예수님의 지도 아래에서 행한 것이죠.
그리고 바리새인들이 등장합니다.
마가복음 2:24 “24 바리새인들이 예수께 말하되 보시오 저들이 어찌하여 안식일에 하지 못할 일을 하나이까”
그런데 하필 그 날이 안식일 입니다.
안식일에는 39가지 금지된 행동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탈곡’이었다고 합니다.
물론 ‘추수’도 금지되어 있었습니다. 물론 안식일에 허용된 이동 범위(약 1킬로미터를 조금 넘는 거리)를 넘은 것
무엇을 정확히 지적하는지는 모르지만, ‘안식일’과 관련된 무엇을 어겼습니다.
조심스럽지만, 바리새인들이 보기에 전체적으로 너무 낯설고 기괴해보였을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밀밭에 들어가는 사람 자체가 없었을테니까요.
심지어 바리새인들 앞에서 말입니다.
문맥상 볼 때
금식 논쟁에서 나오는 옛 것은 바리새인들이 말하는 ‘하지 못할 일’일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말하신 새 것은 예수님이 허락 혹은 승인 혹은 지도 하에 일어난 ‘어떤 일들’일 것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죠.
당시 유대 사회는 종교가 가장 중심입니다. 신정통치 국가에 가깝죠.
물론 식민지이기에 로마의 통치 아래에서 허용된 신정통치 사회입니다.
그리고 종교적인 핵심 지도층이 바로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한 참된 율법을 벗어나서, 규칙들을 여러개 만듭니다. 물론 나름 성경에 근거한 것들입니다.
그들은 ‘지도자’입니다.
누군가가 안식일을 어쩔 수 없이 어기더라도, 적어도 바리새인들 앞에서는 어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치 경찰, 공안이 근처에만 있어도 우리가 조심하게 되듯이 말이죠.
당연히 유대 사회에서 신앙심, 종교심이 낮은 사람들이 분명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안식일을 지키지 않더라도, 적어도 그들 앞에서는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장면은
그들에게 낯설고도 기괴했을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기준’인가? 예수님이 ‘기준’인가?
나는 어느 기준 앞에 서 있는가?
나는 바리새인 앞에서 살아가는가?
예수님 앞에서 살아가는가?
나는 바리새인을 따르는가?
나는 예수님을 따르는가?
이런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그런 바리새인들에게 예수님이 답해주십니다.
마가복음 2:25–26 “25 예수께서 이르시되 다윗이 자기와 및 함께 한 자들이 먹을 것이 없어 시장할 때에 한 일을 읽지 못하였느냐 26 그가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하나님의 전에 들어가서 제사장 외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진설병을 먹고 함께 한 자들에게도 주지 아니하였느냐”
유대인들에게 가장 중요한 조상 중 한명인 다윗입니다.
다윗을 언급하며, 그가 ‘먹는 것’으로 ‘율법을 어긴 것’을 말하죠.
심지어 삼상21:6을 보면 거룩한 떡을 준 것은 ‘제사장’입니다.
성경에 나와있는 예외.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죄하지 않으시고 묻지도 않으시는 율법을 어기는 장면이죠.
즉. 하나님 보시기에 죄, 문제가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안식일을 더럽히거나, 안식일에 일하면 죽이라고 하셨...는데?!
출애굽기 31:14–17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거룩한 날이 됨이니라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모두 죽일지며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모두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어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일곱째 날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안식일에 일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죽일지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일곱째 날에 일을 마치고 쉬었음이니라 하라”
민수기 15:32–36 “32 이스라엘 자손이 광야에 거류할 때에 안식일에 어떤 사람이 나무하는 것을 발견한지라 33 그 나무하는 자를 발견한 자들이 그를 모세와 아론과 온 회중 앞으로 끌어왔으나 34 어떻게 처치할는지 지시하심을 받지 못한 고로 가두었더니 3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그 사람을 반드시 죽일지니 온 회중이 진영 밖에서 돌로 그를 칠지니라 36 온 회중이 곧 그를 진영 밖으로 끌어내고 돌로 그를 쳐죽여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하니라”
무슨 차이일까요?
그리고 예수님은 이에 대해서 바리새에게 더 말씀하십니다.
마가복음 2:27–28 “27 또 이르시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있는 것이요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있는 것이 아니니 28 이러므로 인자는 안식일에도 주인이니라”
크게 두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
Lexham 성경사전 복음서
1. 바리새인들이 해석하듯이 안식일 규정들은 구약에서 규정된 안식일의 의도를 잃었다. 그러므로 그들이 지켰던 규칙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 인간이 만든 것이며 어길 수 있다.
2. 창조시에 선언된 안식일은 거룩한 날로서 인간에게 복을 주고 하나님의 안식/회복을 보게 하려는 의도를 갖는다.
(마태복음에서는 추가된 내용과 다른 내용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12:5 “5 또 안식일에 제사장들이 성전 안에서 안식을 범하여도 죄가 없음을 너희가 율법에서 읽지 못하였느냐”
가 있습니다. 예배를 섬기기 위해서 죄를 범해도 죽지 않음.
또
마12:7과 막2:27이 다릅니다.
마태복음 12:7 “7 나는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을 너희가 알았더라면 무죄한 자를 정죄하지 아니하였으리라”
그러나 의미상으로는 통하죠.
자비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제사보다도 예배보다도 자비, 사랑을 베풀고 실천하는 것이 더 중요하죠.
그 대상이 ‘사람’이니까요. 안식일에도 사람을 위하는 것.
욕심, 탐심, 이익을 위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위하는가? 사람을 위하는가? 회복과 살리는 것인가?
그리고 이게 3장 1-6절에서 더 극명하게 나타납니다.
마가복음 3:1–3 “1 예수께서 다시 회당에 들어가시니 한쪽 손 마른 사람이 거기 있는지라 2 사람들이 예수를 고발하려 하여 안식일에 그 사람을 고치시는가 주시하고 있거늘 3 예수께서 손 마른 사람에게 이르시되 한 가운데에 일어서라 하시고”
막3:1에 ‘다시’ 회당에 들어가십니다.
마가복음 안에서 ‘회당’에 들어간 것은 1장 21-28절에서 입니다.
마가복음 1:21–28 “21 그들이 가버나움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곧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시매 22 뭇 사람이 그의 교훈에 놀라니 이는 그가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 23 마침 그들의 회당에 더러운 귀신 들린 사람이 있어 소리 질러 이르되 24 나사렛 예수여 우리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우리를 멸하러 왔나이까 나는 당신이 누구인 줄 아노니 하나님의 거룩한 자니이다 25 예수께서 꾸짖어 이르시되 잠잠하고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 하시니 26 더러운 귀신이 그 사람에게 경련을 일으키고 큰 소리를 지르며 나오는지라 27 다 놀라 서로 물어 이르되 이는 어찜이냐 권위 있는 새 교훈이로다 더러운 귀신들에게 명한즉 순종하는도다 하더라 28 예수의 소문이 곧 온 갈릴리 사방에 퍼지더라”
마가복음을 읽고 있으면 저게 연상되게끔 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가?
귀신을 쫓는 분. 병든 자를 고치시는 분.
귀신이 두려워 떠는 분.
그런데 안식일에 귀신을 쫓고, 먹게끔 하고, 살리시는 분.
“하나님의 거룩한 분”께서 묻습니다.
마가복음 3:4 “4 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과 악을 행하는 것, 생명을 구하는 것과 죽이는 것, 어느 것이 옳으냐 하시니 그들이 잠잠하거늘”
안식일의 본질에 대해서 물으시는 것이죠.
안식일의 주인께서, 물으십니다.
안식일은 선을 행하는 날이라고. 생명을 구하는 날이라고.
안식일에 안식해야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생명’을 살리며 ‘저의 생명’을 살리며 ‘우리의 생명’을 살리라고. 회복하라고. 좀 쉬라고 주신 것이라고요.
잘 깨닫도록 가르쳐 주시는 것이죠.
율법의 참된 의미를 온전하게 하시며
사람들이, 바리새인들이 이상하게 꼬고 만들고 불필요하게 과하게 만들어버린 것들을...
온전하게 돌려주려는 것이죠.
마가복음 3:5–6 “5 그들의 마음이 완악함을 탄식하사 노하심으로 그들을 둘러 보시고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네 손을 내밀라 하시니 내밀매 그 손이 회복되었더라 6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곧 헤롯당과 함께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니라”
참 놀랍고도 두려운 장면입니다.
이들은 왜 깨닫지 못할까요?
이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마가복음 2:17 “17 예수께서 들으시고 그들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 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자신들은 건강한 자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의인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필요하신가요?
고린도후서 12:9 “9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요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