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추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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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나를 추격하신다.

시편 23 NKRV
다윗의 시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오늘 설교가 아마 제가 여러분들에게 할 수 있는 마지막 설교가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면 좋을까? 고민하면서 설교를 준비했습니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메시지. 제가 떠나고 후에 여러분들이 이걸 기억해준다면 후회가 없고 매우 기쁠 것 같습니다. 오늘 설교의 시작이자 결론인 하나님은 선한 목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선한 목자 되시는 그분은 우리를 평생토록 목양하신다는 것이죠.
저는 여러분들에게 첫째로 우리는 양과 같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두번째로 목자이신 하나님은 지팡이와 막대기로 우리를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마지막으로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신다는 것을 말씀 드리고 적용하고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첫번째로 말씀드릴 것은 우리는 양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은 시편은 제목에서 나온 것처럼 시입니다. 시라고 생각하면서 같이 읽어볼까요?
시편 23 DKV
다윗의 시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시니 내게 부족한 것이 없습니다. 2 그분이 나를 푸른 목장에 눕히시고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십니다. 3 내 영혼을 회복시키시고 당신의 이름을 위해 의로운 길로 인도하십니다. 4 내가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운 골짜기를 지날 때라도 악한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유는 주께서 나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5 주께서 내 적들 앞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내 머리에 기름을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칩니다.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한결같은 사랑이 진실로 나와 함께하실 것이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의 시에서 우리를 양으로, 하나님을 목자로 비유합니다. 왜 양과 목자라는 비유를 썼을까요?
다윗은 어렸을 때 양을 치던 목동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편을 쓸 때는 오랜 시간동안 왕으로 사람들을 통치했습니다. 왕으로 사람들을 볼 때 사람들이 심지어 자신 조차도 내가 어렸을 때 쳤던 양들과 비슷하다는 것을 느낀 것이죠.
필립 켈러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분은 목동이었습니다. 오랜 기간동안 중동 지역에서 양을 치면서 살았죠. 그러다보니 시편 23편의 말씀이 얼마나 와닿았겠어요. 그래서 자신이 목동으로 살았던 경험을 바탕으로 양과 목자라는 책을 썼어요. 그중에서 양의 특성에 대해서 말해주는 부분이 있습니다. 한번 들어보세요. (클릭)
첫번째 양의 특성은 너무 약하기 때문에 끝없는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니까 지속적인 관심과 보살핌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여러분 그거 아세요? 양이 가다가 걸려서 넘어지면 스스로 못일어난대요. 얼마나 하찮아요. 양을 떠올릴 때 우리는 뿔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양의 뿔은 둥글기 때문에 공격하기 힘들대요. 그리고 그 뿔은 자기들끼리 싸울 때만 사용한대요. 왜냐하면 양은 겁이 너무 많아서 진짜 진짜 너무 많아서 다른 동물이 오면 그냥 도망가버린대요. 놀랍게도 양에게 근력이 있다고 합니다. 근데 몸이 너무 둔해서 그 근력을 잘 사용하지 못한대요. 제가 너무 양을 외모 비하하는 건가요? 암튼 그렇대요. 목자가 그렇다니까 아 그렇구나 싶은거죠. 근데 잘 생각해보면 스포츠팀 중에 양이 없더라구요? (클릭)기아 타이거즈 어흥!, (클릭)삼성 라이온즈 콰아앙!, (클릭)한화 이글스, (클릭)두산 베어스 뭔가 찢어버릴 것 같잖아요. 근데 (클릭)현대 렘즈 메에에에 이상하잖아요. 양은 호전적인 동물이 아니라 보호가 필요한 어쩌면 하찮은 동물이라는 것이죠.
필립 켈러가 말한 또 다른 특징은 양은 (클릭)방향감각이 없다는 것입니다. 양은 지독한 근시라 멀리 보지 못한대요. 양은 지독한 근시라 발 밑, 눈 앞에만 보인대요. 그러니 어느 한 방향을 정해서 가기가 어렵죠. 양들은 길을 가다가 절벽으로 가거나 웅덩이에 빠지기 쉽다고 합니다. (클릭)사진을 볼까요. 양 떼 앞에 염소한 마리가 양 떼를 몰고 갑니다. 염소 한 마리는 맨 앞에서 양들의 신뢰를 받으며 앞장 서죠. 하지만 향하는 곳은 푸른 초장이 아니라 피 냄새가 진동하는 도살장이라고 합니다. 입구에 도착하는 순간 염소는 비밀 문으로 유유히 빠져나와 주인에게 달콤한 간식을 보상을 받습니다. 그리고 다시 돌아가 아무 것도 모르는 다음 양 떼를 안내하죠. 이 염소를 가리켜 유다 염소라고 해요. 눈 앞만 보이기 때문에 우르르 따라가는거에요. 도살장인지도 모르고요. 이게 두번째 특징이에요.
근데 세번째 특징이 그런데. 그런데도 양은 (클릭)고집이 세다는 거에요. 목자가 야 거기로 가지마 거기 절벽이야. 거기 웅덩이 있어. 라고 해도 양은 아니?! 아닌데?! 여기가 맞는데?! 라고 간다는거예요. 방향감각도 없고 보호능력도 없는 주제에 목자의 말도 안듣고 고집을 부린다는 거예요. 이런 양을 치기 위해서 목자와 강아지들이 오랜 시간 동안 훈련해가지고 막대기로 힘들게 목양을 해야만 말을 듣는대요.
(클릭)여러분, 목자와 양은 하나님과 우리와 너무 똑같지 않습니까? 성경에 가르침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셨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만든 분인데, 인간이 어떻게 기능하고 동작해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진짜 행복할 수 있는지 가장 잘 아시겠죠? 맞죠? 그러니까 우리에게 이렇게 살아라. 그렇게 살면 안된다. 얘들아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면 안돼. 거짓말하지마. 간음하지마. 바람피지마 혼전순결해야해. 용서해라. 겉옷을 달라하면 속옷도 줘라.. 말씀하시는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종종 이렇게 말하죠.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해주시고 내가 지치고 힘들 때 위로해주시고 함께 해주시는 것은 내가 원하지만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구체적으로 가이드라인을 주면서 정해주는 것 까지는 원하지 않아요. 하나님. 내가 어떻게 살아야할지, 뭘 해야하며 뭘 하지 말아야할지는 내가 결정할 거예요. 하유가 저한테 하는 말인데요. 삼촌 왜 강요해? 내가 싫다잖아. 강요하지마! 라고 하나님께 이야기하는거죠. 지지배 지 생각해서 태권도좀 배우라니까.”
보호가 필요하고, 멀리 보지 못하고, 고집이 센 양과 우리는 똑같습니다. 여러분, 사실 우리는 지금 나에게 진짜 필요한게 무엇인지 몰라요. 여러분, 제가 신대원 2학년 때 가졌던 고민인데 한번 듣고 여러분들이 판단해주세요. 한 목사님이 저한테 이런 얘기를 해주셨어요. 제가 군목이잖아요? 군대에 있는 교회에 목사님으로 가는거에요. 근데 이제 목사님이 요즘에 군목들이 목회를 너무 못한다. 그래서 말이 너무 많다는거죠. 그래서 저한테 대기야 너도 예일교회 나와서 큰 교회로 가서 사역도 경험해보고 배워야한다. 어떻게 목회하는지, 성도들, 어른들과 어떻게 관계 맺는지 배워서 가야하지 않겠냐? 라고 하시는거예요. 저는 지금까지 어떤 생각을 했었냐면, 어차피 학교 졸업하면 교회에서 목사님으로 평생 일할텐데. 빨리 일하는게 중요할까? 물론 지금은 먼저 일을 시작한 사람이랑 이제 일을 시작한 사람이랑 차이가 있겠죠. 일을 시작한지 1년차냐 2년차냐 큰 차이가 나지만 10년 뒤를 생각하면 결국 다 잘하지 않을까요? 중학교 1학년이랑 3학년은 엄청난 차이가 나요. 1학년은 모든게다 낯설고 선배들이 무섭고 긴장하지만 3학년들은 지그들 세상이지. 무서울 것도 없고 내가 젤 높고, 선생님들도 이제 막 장난도 치고. 1학년이나 3학년이냐 엄청 차이가 크지만. 지금 제가 그때를 돌아보면 그래봤자 둘다 애기들이야. 성인되서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말이에요. 차라리 공부를 더 준비하는게 낫지 않을까? 학교 졸업하면 공부할 시간도 없는데 지금 공부에 집중하고 사역은 평생하는건대 그때 배워도 늦지 않을거야 라고 생각한거죠.
자 여러분 어떻게 생각해요? 향후 10년 후에 볼 때 예일교회 남아서 더 공부에 집중하기 대 다른 큰 교회로 가서 일을 배우기 어떤게 저한테 더 도움이 될까요? 우리는 뭐가 정답인지 몰라요. 큰사랑아 취업하는게 좋을까? 대학을 가는게 좋을까? 진짜 10년 후 너에게 도움이되는건 뭘까? 채연아 꼭 인서울 하는게 앞으로 너의 삶에서 꼭 필요할까? 우리 고딩들 지훈 은우 지혜 사랑 하연 유은이 앞으로 어느 대학에 가는게 중요할까? 어떤 과를 선택하고 어떤 직업을 선택하는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뭘 해야 내가 나중에 진짜 행복하게 살고 있을까? 우리는 모른다는거에요. 그런데 양처럼 고집이 세죠. 아 하나님 아니라구요. 이게 절 행복하게 해준다구요. 하나님 강요하지마세요!
그러면 이제 두번째로 넘어가도록 하죠.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양과 같은 우리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이끌어주십니다. 우리 4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편 23:4 NKRV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고대 근동 목자들은 양을 칠 때 (클릭)지팡이와 막대기 두 개를 가지고 다녔다고 합니다. (클릭)지팡이는 양을 인도하는 장비고, 막대기는 양들을 공격하는 맹수들과 싸우는 무기로 구분된다고 합니다. 아까 말했듯이 엄청난 근시라고 했잖아요. 그니까 지팡이로 여기로 가라 톡톡톡 쳐주기도 하고 때로는 거기로 가면 안돼하면서 양을 때리기도 하죠.
근데 우리가 양 입장에서 생각해봐요. 우리는 양이니까. 나는 그냥 가는거에요. 앞에 풀이 있넹. 우와 애들이 앞으로 가네. 나도 가야지. 하면서 가는데 자꾸 목자라는 놈이 나를 찔러. 자꾸 때려. 양은 뭐라 생각할까요? 목자놈.. 나를 불편하게 하는 놈. 하고 목자 다리에 박치기하겠죠. 근데 양은 불편할지라도 목자의 인도 안에 있어야 살 수 있습니다.
(클릭)아까 양의 특성을 이야기해준 필립 켈러 목사님이 목동 초기 시절에 양을 한마리 잃었대요. 성경에 잃어버린 양을 찾으러 오신 하나님에 대한 말씀도 있으니까. 자기도 그런 마음으로 양을 찾으러 떠난 것이죠. 그러면서 (클릭)머리속으로 아름다운 상상을 했다고 합니다. 양을 찾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여기를 다 돌아다니면서 사막일지라도 아무리 힘들지라도 다 돌아다니며 양을 찾을거야. 그리고 양을 마침내 찾아내면 양은 나를 보고 너무 기뻐서 나에게 달려오고 나는 양을 끌어안고 양과 함께 행복하게 돌아가겠지?그런 아름다운 상상을 하면서 찾았대요. 그리고 드디어 양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필립 켈러는 오히려 반항하는 양을 마주하게 됩니다. 양이 어디에 걸렸어요. 그래서 상처가 나고 아프니까 양은 예민한거죠. 목자가 뜨거운 가슴에 그래 내가 꺼내줄게 라고 다가가는데 양이 반항하는거에요. 아프고 예민하니까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하죠? 얘를 안전하게 집으로 데려오려면, 얘를 정말 사랑해주려면 어떻게 해야하죠? 양에게 폭력을 행사해야합니다. 어떤 폭력이죠? (클릭)양의 다리를 묶으면 됩니다. 다리를 묶는건 폭력입니다. 양이 무슨 생각을 할까요? 아 나는 폭력을 당하고 있어. 물론 지금까지 안전하지 않았지만 이 목동놈이 와가지고 더 고통스럽다고 한다고 생각하겠죠?
양이 안전하다고 느끼지 않는 바로 그때 양은 가장 안전한 상태입니다. 맞죠? 양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낄까요? 온 다리가 묶여있는대? 목동이 양의 다리를 묶고 어깨에 짊어져요. 그리고 양은 막 꽤애애액하면서 발버둥치겠죠. 그러면 목자가 가만히 있어 퍽퍽 때리겠죠. 왜? 가만 있어야 안전하게 올 수 있으니까요. 양은 자신이 사랑받고 있지 않지만 양이 사랑받고 있다고 느끼지 않을 바로 그때 양은 가장 사랑받고 있는 것이죠.
여러분 이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선한 목자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이 하시는 일은 늘 우리가 생각했을 하나님 제게 안전을 주세요. 사랑을 주세요. 라고 말했을 때 내가 사랑을 느끼는 방식으로 주시는게 아니에요. 내가 안전을 느끼는 방식으로 내게 안전을 주시는게 아니에요. 내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나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내가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주시죠. 이게 양이 인도함을 받는 방식이에요.
(클릭)다시 제 이야기로 돌아와 볼게요. 제가 다른 교회를 가야하나 예일교회에 남아야하나 고민했다고 했었죠? 제가 어떻게 선택했을까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사실 다른 교회 가려고 했었어요. 추천받은 교회가 있었고, 그 교회 담임목사님이랑 잘 알기도하고 몇번 만나기도하면서 서로 이야기가 잘 됐어요. 목사님이 화순으로 데려가서 소고기도 사줬어요. 그니까 날그만큼 스카웃하고 싶었던 거지. 그래서 다 오케이가 나왔고, 이제 교회 최종 회의를 하신 후에 알려주신다고 했어요. 한주가 지났는대도 딱히 말을 안해주시는거에요. 2주가 지나가요. 제가 연락드리니까. 목사님이 너무 미안하다. 교회에서 어려울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미안하다 라고 하시는거에요. 자 그런데 재밌는건. 이 일이 정확히 똑같이 한번 더 있었다는 거에요. 다른 목사님도 만났고 너무 좋아하셨어요. 저도 좋았구요. 근데 똑같이 교회랑 이야기해보겠다 하시고 취소됐어요. 오케이. 하나님이 가지 말라나보다 하고 예일교회에 남았죠.
자 그리고 저는 어떻게 됐을까요? 아무래도 하나님이 막으셨으니까. 오케이 좋아요. 하나님 그러면 저 공부합니다? 공부 완전 집중할 수 있게 해주셔야해요? 라고 생각했던 저에게 기다린건. 1년간 설거지알바였습니다. 딱 1년간 기숙사에서 쫓겨나면서 집이랑 일터를 다 잃었어요. 그러면서 빵집에 설거지 알바를 시작했습니다. 평일에 일하고 집에 돌아오면 성경공부 준비하고 설교쓰고 찬양인도 준비하고 이러다보면 일주일이 그냥 지나가버렸어요. 내가 생각했을 때 이제 군대 군목으로 들어가는데 마지막 1년의 준비시간일텐데 사역 일을 배운 것도 아니고 좀더 공부하는데 시간을 쓸 수 있었던 것도 아니었어요. 오히려 설거지하면서 일을 했죠. 이게 맞나? 이렇게 마지막 시간을 보내는데 맞나? 그렇게 알바를 한지 딱 1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돌아보니. 제 생각이 바뀌었어요. 아 딱 필요한 시간이었구나. 뭐냐면요. 알바를 시작하면서 솔직하게 제 마음에 목사를 그만하고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늘 제 마음에 난 목사가 아닌 것 같아. 재능이 없어 라는 마음이 있어요. 교회에서 설교하고 해도 아무런 반응, 인정, 칭찬도 없고 아이들도 요즘에 2명 나오고. 이 모든게 제 부족 때문인 것 같은거에요. 근데 평일에 일을 하면 인정을 받아요. 나름 제가 일을 잘해요. 인정도 받고 사람들이 저랑 일하는걸 좋아해요. 금방금방 배우고 잘한다고. 그니까. 이게 제 마음에 사역하고 설교를 하는 것보다 여기에 있으면 나름 돈도 모을 수 있고 사람들도 나랑 일하는걸 좋아하고 나도 인정받고 제가 설거지하면서 일 잘해가지고 카운터판매까지 올라갔어요. 진짜로 아 목사 그만하고 돈벌까? 일할까? 라고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이죠. 그러면서 내가 왜 목사를 하려고 했었지? 하나님이 부르신 거잖아. 내가 좀 인정받지 못한다고해서 사람들이 무반응이라고해서 내 마음대로 그만둘 수 있는건가? 이게? 하나님이 시키신건대? 대기야 정신차려. 참고 견뎌내. 인내해. 하나님. 제 능력이 없고 부족할지라도. 이렇게 안하고싶다고 흔들리고 도망치려고 하는 저일지라도 주님이 사용하신다면 제가 견뎌낼게요. 다짐을 했었죠.
여기가지 다다르니 제 생각이 완전히 바뀐거에요. 하나님 이 시간이 무의미하고 불필요하다고, 아깝다고 생각했었는데 하나님 저에게 꼭 필요한 시간이었군요? 그래서 알바를 하게 하신거군요?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다시한번 말씀드릴게요. 하나님은 내가 정말 위험하다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나를 안전하게 인도하시고 내가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방식으로 나를 사랑해주십니다. 이게 하나님이 양을 치시는 방식이에요. 사랑하는 목자는 그런식으로 양을 어디로 데려갈까요?
마지막으로 넘어가죠. 선한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해주십니다. 2절을 함께 읽어볼까요?
시편 23:2 NKRV
2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여기서 보면, 목자가 양에게 풀밭과 물 가의 쉴 곳을 준다고 합니다. 목자는 지팡이와 막대기로 양을 인도해서 풀밭과 쉴 곳을 준다는 것이죠. 풀밭은 먹을 거, 곧 양식을 준다는 말이고, 물가의 쉴 곳은 쉴 곳, 양식을 주신다는 말이죠.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과 쉴 곳을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한 점을 발견하게 되죠. 뭐냐면 우리는 양식과 안식은 같이 얻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내가 안식해요. 내가 계속 쉬어요. 그러면 어떻게 되죠? 우리는 굶어죽겠죠. 반대로 내가 양식을 위해서 계속 일해요. 그러면 나는 못쉬는구나. 내 삶에는 쉼이 없어 라고 이야기하죠. 양식과 안식은 동시에 가지기 어려운 거죠. 열심히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얻겠죠. 좋은 성적을 얻어야 좋은 대학을 가고 좋은 직장을 얻겠죠. 열심히 일해야 돈을 벌겠죠. 내가 중학교때 고등학교 때 놀수록 고등학교 내신점수 올리는게 너무 힘들어요. 그니까 미리 미리 공부해야해요. 내가 쉴 때 다른 친구들은 공부하느라 내가 뒤쳐지거든요. 지금은 쉴 수 없어. 양식을 위해 노력해야해! 라고 생각하는거죠. 혹은 반대로. 나는 짧은 내 인생, 학창시절을 지옥같이 공부만하면서 보낼 수 없다. 학생이라는 죄로 학교라는 교도소에서 공부라는 벌을 받으면서만 살 수 없다. 그러니 놀겠다. 추억쌓겠다. 게임하겠다. 라고만 하며 아무것도 노력하지 않고 공부하지 않는다면 안식을 누리겠지만 점점 양식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근데 목자는 양을 어떻게 돌보신다구요? 양식과 안식을 동시에 주신다는 거예요. 이거는요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렇게 살도록 해주신다는 거예요. 우리가 살아갈 때 일도하고 삶에서 필요한 것을 할 수 있도록 해주십니다. 안식을 주신다는게 일을 안시킨다는게 아니에요. 그러면서 동시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거나, 이웃을 사랑하기 위해서 내 시간과 열정, 돈을 쓸 때 충분히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와 지금 먹고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염려하지 않도록 해주신다는 것이죠.
그런 우리는 이런 라이프 스타일이 생기게 됩니다. 늘 할 수 있는만큼 합니다. 그리고 나머지를 주께 맡기는 거에요. 공부도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는거예요. 합격하기 위해서 1등급을 맞기 위해서 하는게 아니에요. 사실 열심히 한다고해서 합격하거나 1등급을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우리는 미래를 몰라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그리고 미래를 하나님께 맡기는 거예요. 그러니 우리는 쉴 수 있죠. 그러나 할 수있는 만큼 하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만큼 하는 걸 통해 양식을 계속해서 공급해주시죠. 이건 게으름을 피운다는게 아니에요.
관계도 마찬가지죠. 연인관계 친구관계에서 내가 그 사람을 소유하고 그 사람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으려고 노력하잖아요? 그리고 그 사랑을 반응을 받지 못할까봐 두려워하잖아요? 그러면 우리는 할 수 있는 이상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피곤하죠. 그 사람의 노예가 되죠.
그러나 정말 하나님이 지팡이와 막대기로 내 삶을 인도하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할 수 있는 만큼만 합니다. 관계에 있어서도요.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고 주님께 맡기죠. 무슨 말이에요? 12시간씩 공부하지마세요. 지훈아. 새벽까지 안돼 정신차려. 그거는 과로하는거야. 채연아 하나님께 맡겨야 돼.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같이 읽어볼까요? 마 6 33
마태복음 6:33–34 NKRV
33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34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미래를 책임져주시겠다는 말씀을 설명해드릴게요. 경원 집사님이 사랑이랑 하은이한테 이번 수련회 찬양팀 같이 하자 이야기해요. 이때 솔직하게 경원 집사님이 혼자하기 떨려서? 혹은 나만하면 없어보이잖아요. 그래서 하은이랑 사랑이를 같이하자고한게 아니에요. 없어서 못하는건 아니에요. 혼자서도 충분히 잘하세요. 다른 뜻이 있죠. 어쨌든 사랑이랑 하은이랑 같이 연습도하고 해야하는데, 하은이가 자기는 연습에 못올 것 같대요. 그래서 못할 것 같대요. 왜? 뭔일있어? 하니까 학원숙제를 오늘까지 빨리 해야하는데 시작을 못하고 있어요. 왜? 뭔일 있어? 아 아니… 다른게 아니고 학원숙제풀다가 잘못 풀어서 지우고 다시 풀어야 하는데 지우개가 없어서 못하고 있어요. 라고 한다면 경원집사님이 뭐라고할까요? 소영아 뭐라고 할 것 같아? 어이가 없네? 야 고작 지금 지우개가 없어서 찬양팀을 못한다니. 내가 사줄게. 지금 당장 사줄게. 라고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도 우리를 한명한명 부르셔서 특별한 일을 맡겨주셨어요. 물론 이게 하나님이 혼자서 할 수 없어서가 아니에요. 우리가 없다고해서 그분이 일을 못하시는건 아니에요. 우리랑 함께 하고 싶으셔서 맡겨주신거예요. 아연아 요즘 지혜언니가 좀 힘들어보이더라. 너가 좀 도와줄래? 근데 아연이가 하나님 제가 수족냉증인데 양말이 없어서 못갈 것 같아요 한다면 하나님이 이 상황을 그냥 보시겠어요? 지혜가 힘들다는대?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 때,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행동하려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염려하지 마세요. 두려워하지 마세요.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죠. 공중의 새를 봐. 새들은 미래를 위해 공부하거나 유학가지 않아. 저축하고 주식하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먹이신다. 너희들은 그것보다 귀한 나의 자녀잖아.
사랑하는 중고등부 여러분. 할 수 있는 만큼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기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양식과 인식을 둘 다 줄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가 되시기 때문에 우리는 내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어떤 대학에 가야하는가, 어디과에 가야하는게, 어디에 취업해야하는가 염려하지 않게 됩니다. 뒤쳐지고 도태될까봐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목자이신 주님께로 돌아오십쇼. 목자의 음성을 들으십시오
적용입니다.
첫번째,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평생토록 우리를 추격하십니다. 6절 같이 읽을까요?
시편 23:6 NKRV
6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존 파이퍼 목사님은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따른다는 표현을 이렇게 비유합니다. 마치 (클릭)미국 경찰이 쌍불을 켜고 사이렌을 올리며 추격하잖아요. 그런 것처럼 하나님이 한손에는 선하심을, 다른 한손에는 인자하심을 켜고 우리를 추격하신다는 말씀이래요. 뒤에서 졸졸졸 따른다가 아니라 마치 경찰차가 범죄자를 추격해서 붙잡는 것처럼 우리를 붙잡으신다는 거죠.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내 평생 모든 순간, 과거 현재 미래 모든 순간에 추격하시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무슨 말이에요? 하나님은 절대 우리의 모든 시간과 선택과 결정을 심지어 내 잘못된 선택일지라도 헛되이 하지 않으신다. 무의미하게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우리의 후회조차도 하나님은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추격에 굴복한 우리는 이렇게 고백하죠. 하나님 항복하겠습니다. 저는 늘 도망치려고만했지만 하나님은 늘 저와 함께 하셨어요. 주님이 이겼습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6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겠습니다. 이렇게 굴복하지만 그 굴복은 가장 행복한 굴복이죠.
두번째 적용입니다. 사랑하는 여려분. 하나님을 신뢰하십쇼. 목자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지팡이와 막대기로, 선하심과 인자하심으로 우리를 가장 안전한 곳으로, 가장 좋은 곳으로 이끄시는 분이에요. 그 방법이 바람이 부는대, 챡 안전한 곳에 있는게 아니라 그 바람을 맞으며 날라다녀 이리저리 날라다니다가 아아아 하나님 더이상 못버티겠어요 하고 날라가서 어딘가 떨어졌어. 바람에 푹 떨어졌는데 어?! 그 떨어진 장소가 내가 정확하게 있어야하는 장소였어요. 그래서 어?! 어? 주님 감사해요? 어 머지? 주님 쵝오! 이런 방식이 많아요. 그러니까 바람이 불어요. 주님이 나를 사랑하느 것처럼 느껴지지 않아요. 나를 버린 것처럼 느껴져요. 폭력을 쓰는 것처럼 느껴질 때. 선한 목자를 떠올리세요. 그분의 성품을 신뢰하세요. 믿음은 신뢰예요.
제가 딱 일년전 동계 수련회때 썼던 예화인데 쿨타임이 찼어요. 또 해도 돼. (클릭)물놀이 하다가 조카 하임이한테 아빠가 말하는거죠.하임아 물속으로 뛰어. 달려들어와서 점프해! 아빠가 받아줄게. 라고 했을 때. 하임이는 물이 무서워요. 발이 안닿고 물먹고.. 무서운데 앞에 아버지가 있잖아요. 아빠가 나를 물리 법칙을 잘 알아서 받아줄거야. 헬스 삼대 500치닌까 거뜬할거야. 라고 이해해서 뛰는게 아니라. 사랑하는 아빠는 날 절대 내버려두지 않을거라는 신뢰가 있기 때문에 뛰는거에요. 이게 하나님과 우리의 믿음이에요. 내가 이해되고 내 눈앞에 보여서 하나님을 믿는게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이 선하신 나의 아버지라는 것을 내가 신뢰하기 때문에 뛰는거에요.
여러분. 하나님을 신뢰하세요. 그분은 반드시 우리를 가장 좋은 곳으로, 내가 있어야하는 곳으로 인도해주실 것입니다.
함께 찬양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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